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33
“폐하, 수백 년 동안 저희는 그 잔혼과 융합시킬 수많은 여인을 찾아보았습니다만 아직 성공한 적이 없었지요. 그 영혼과 융합되지 못한 여인들은 엄청난 거부반응을 일으키기만 할 뿐, 그 혼을 자양하는 역할도 하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허나 오늘, 드디어 그 영혼과 성공적으로 융합한 여인을 찾아냈습니다!”
노인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들끼리 비밀리에 수백 년 동안 진행해온 일을 마침내 성공시켰으니 이제는 어마어마한 상을 받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여인은 어디에서 왔으며 그 이름은 무엇이냐?”
도고 황존의 표정은 여전히 덤덤했지만 그 마음속에서는 기대감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당시 국사가 했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사는 그 잔혼이 그를 오랜 세월 동안 통일된 고족을 다스릴 진정한 고황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했다.
“시고 일맥에서 온 송세정이라는 여인입니다!”
다른 노인이 얼른 답했다.
“송세정을 입궁시키도록. 내 직접 그 여인을 만나봐야겠다. 너희는 석 달 뒤 황후 책봉식이 열릴 것임을 온 세상에 알려라! 내 송세정을 정실로 맞아 도고 일맥의 황후로 삼을 것이다! 하하하하!”
호탕하게 웃고 있는 도고 황존의 두 눈에서 밝은 빛이 번득였다.
★ ★ ★
파란 하늘 아래 늘어선 누각들이 마치 수련자들의 종파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판에 적힌 이름은 흐릿해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할수록 더욱 흐릿해졌다.
그중 한 누각에는 여인이 홀로 앉아 있었다. 무척 낯익은 이 여인은 아랫입술을 깨문 채 무언가를 찾듯 하늘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녀는 누구일까? 그리고… 나는 또 누구일까?’
대지는 황량했고 하늘은 어두웠으며 사방에서는 짙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마치 이곳에서 격렬한 전쟁이라도 있었던 것 같았다.
한 여인이 하늘을 가르며 질주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창백한 얼굴의 그녀는 수시로 뒤를 돌아보았고 그녀의 뒤로 음탕한 표정의 수련자가 느긋하게 쫓아오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여인은 대지에 숨어 있는 낯익은 사내를 발견했다.
‘그녀는 누구일까? 또 저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나는 누구일까⋯⋯?’
안개가 바다처럼 자욱하게 덮인 곳, 눈에 익은 동굴 안. 가부좌를 튼 사내는 수련자로서 금단을 맺는 데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동굴 입구에 선 여인은 두려움에 심신이 떨렸으나 눈빛에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런 그녀의 앞으로 수많은 수련자가 각종 신통술을 발휘해 동굴의 보호진을 뚫고 쳐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이를 악문 채 끊임없이 각종 진을 소환해 저항하던 여인은 체내의 마지막 힘까지 짜낸 뒤 휘청거리다가 따뜻한 가슴팍에 안겼다.
“저들을 죽일 거야.”
하늘을 관통하여 두 연인을 잇는 듯한 말이었다.
‘그녀는 누구일까? 또 저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나는 누구일까⋯⋯?’
★ ★ ★
맑은 하늘 아래, 낯익으면서도 낯선 종파가 하나 있었다. 여인은 묵묵히 누각에 앉아 칠현금을 타고 있었다. 슬픔이 가득 느껴지는 곡조였다.
그녀는 곧 누군가와 혼인을 하게 된 모양이었다. 허나 그녀가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누각 밖으로 나왔을 때, 엄청난 수준에 이른 한 사내가 나타나 여인에게 다가왔다.
그의 부드러운 미소에 여인은 흠칫 놀라 멈춰 섰다.
그녀는 그가 누구인지, 그녀가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은 또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조용한 산골짜기 안의 나무집. 단란한 이곳에서는 즐거운 칠현금 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인은 칠현금을 연주하며 곁에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품에 기댄 사내의 눈빛에는 애정이 가득했다.
‘저 여인, 굉장히 행복해 보이네. 한데 그녀는 누구일까? 저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나는 또 누구일까⋯⋯?’
무엇보다 그게 제일 궁금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길고 긴 세월 잠들어 있었던 것처럼 머릿속이 흐릿하고 먹먹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와중, 그 행복한 광경은 균열과 함께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기색이 변한 하늘 아래에는 여인을 끌어안은 사내가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사내는 깊은 고통이 어린 목소리로 맹세하고 있었다.
“하늘이 널 데려간다면 나는 널 빼앗아 올 거야!”
★ ★ ★
도고 황성, 황궁 안. 호화스러운 궁전의 부드러운 침상에 한 여인이 누워 있었다. 빼어나게 아름답지는 않으나 어딘가 남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면이 있는 이 여인의 얼굴은 창백했고 두 눈은 꼭 감겨 있었다.
악몽에서 깨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듯 그녀의 속눈썹이 바르르 떨렸다. 그녀의 눈가에서는 언제 맺혔는지 모를 눈물이 흘러내려 흰 베갯잇을 적셨다.
한편, 꿈속에서는 심장을 찢는 듯 처절한 절규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하늘을 향한 포효이자 운명에 대한 저항이었으며, 이 세상과 인생을 비롯한 모든 것에 대한 거역이었다.
그 목소리에 그녀의 눈에서는 더 많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녀는 사내에게 안긴 여인이 누구인지, 처절하게 절규하던 사내는 또 누구인지 끝내 떠올려내지 못했다. 심지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다음으로 그녀의 꿈속에 나타난 것은 방금 전 하늘을 향해 절규했던 사내와 그 곁에 있는 관이었다. 사내는 나무로 만들어진 관을 살며시 어루만지는가 하면 얼굴을 그 위에 비비기도 했다.
한없이 조심스러운 행동에 그녀는 어째서인지 마음이 아팠다. 관 위에 떨어진 눈물방울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눈을 떠 사내의 뺨을 쓰다듬고 눈물을 닦아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렇게 발버둥을 치는 와중 꿈속의 모든 것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여인은 흩어져 사라졌고 사내 역시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가 싶더니 모든 것이 흐릿해졌다.
그리고 그녀는 두 눈을 번쩍 떴다.
“깨어났느냐.”
곁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불에 아름답게 수놓아진 문양을 바라보던 여인의 눈에 혼란의 빛이 어렸다. 꿈속의 모든 것은 아직 생생했지만 이미 흐릿해진 상태였다.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 그녀는 곧 황포를 입은 장발의 사내를 보게 됐다. 중년의 준수한 사내에게서는 고귀한 기운마저 느껴졌다. 그런 사내는 미소를 지은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누구입니까⋯⋯?”
여인의 눈에 어린 혼란의 빛이 더욱 짙어졌다. 머릿속에 찌르르 퍼지는 극심한 고통이 그녀가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마치 모종의 힘이 그녀가 스스로를 찾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도고 황존, 도고 일맥에서 그 무엇보다 높은 존재지. 또한 나는 그대의 부군이기도 하다. 그대의 이름은 송세정, 시고 일맥 출신의, 내 황후다.”
사내는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말했다. 그런 그에게서는 고귀한 황제의 기운이 풍겨 나왔다.
저자는 누구일까
“부군⋯⋯.”
여인의 머릿속에 울리던 두 글자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꿈속에서 하늘을 향해 고통스럽게 절규하던 그 사내⋯⋯.
그 사내는 그녀와 함께 앉아 그녀의 연주를 들었다.
그 사내는 그녀를 안은 채 그녀의 귓가에 저들을 죽여주겠다고 속삭였다.
그러나 사내의 모습은 흐릿했다. 눈앞에 있는 황포 차림의 사내와 겹치는 듯도 했다. 하지만 억지로 겹쳐진 모습은 어딘가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머릿속에 다시 극심한 고통이 몰려들었다. 두 눈을 질끈 감은 여인은 고통에 잠식된 채 의식을 잃었다.
“왜 이러는 거지?”
황포 차림의 사내가 어두운 안색으로 물었다.
“폐하, 송⋯⋯ 황후께서는 잔혼과 융합됨에 따라 많이 허약해지신 듯합니다. 본래의 영혼은 이미 폐하께서 가지고 계셨던 잔혼과 뒤얽힌 상태입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혼란한 기억을 갖게 된 겁니다. 별문제 아닙니다. 며칠 휴식을 취하시면 천천히 회복되실 겁니다.”
황포를 입은 사내 뒤쪽 허공에서, 파문과 함께 나타난 노인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채 공손하게 말했다.
“기억은 앞으로도 계속 뒤죽박죽 얽힌 상태로 남겠지만 이는 오히려 잘된 일입니다. 폐하께서 새로운 기억을 심어주시면 그 기억이 진짜 기억으로 자리 잡을 테니까요.
잔혼에 딱 들어맞는 이 육체는 천천히 자양되어 수년 안에 영혼과 완벽하게 융합될 겁니다. 그때가 되면 잔혼의 진정한 육체도 이미 이 몸에 깃든 영혼과 융합할 수 없게 되지요.”
“나가 보거라.”
조금 마음을 놓은 황포의 사내가 말했다.
노인은 얼른 대답한 뒤 한 줄기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이제 방에는 다시 도고 황존과 여인만 남게 됐다.
도고 황존은 여인 옆에 앉았다. 침상에 누운 여인을 향한 그의 눈에서는 기이한 빛이 번득였다.
“그 잔혼은 날 통일된 고족의 진정한 고황으로 만들어줄 거라고 했다. 국사의 예측이 틀렸을 리 없지. 그렇다면 이 여인을 황후로 책봉하는 것은 이 여인에게도 가장 큰 상이 될 터.”
중얼거리던 도고 황존은 오른손을 들어 혼수상태에 빠진 여인의 뺨을 살짝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완벽하게 아름답지는 않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어. 이 육체와 융합시킨 잔혼을 어디에서 가져온 것인지 내내 궁금했으나 국사는 끝내 말하지 않았지. 허나 분명 잔혼의 주인은 생전에 상당한 미인이었을 거야. 아마 남편도 있었겠지. 남편은 이 여인의 죽음에 꽤나 고통스러웠겠군.”
도고 황존의 미소가 음흉하게 변해갔다.
“그는 자기 아내의 잔혼이 내 손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를 터. 그자가 누구인지 알아낸다면 그것도 나름 재미있을 텐데 말이야. 어쩌면 그자는 죽었을지도 모르지. 죽지 않았다면 지금 이런 상태가 된 자신의 아내를 과연 알아볼 수 있을까?”
황포를 입은 사내의 얼굴에 담긴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아주 재밌겠군. 허나 그런 날이 오지는 않겠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그는 여인의 뺨을 쓰다듬던 오른손에 힘을 잔뜩 주었다. 그러자 여인의 뺨에는 금세 멍이 들었다.
여인은 몸을 바르르 떨었다. 혼수상태에 빠지고도 고통은 느낄 수 있는 모양이었다. 감긴 눈에서 눈물이 또다시 흘러내렸다.
“황후로 책봉될 때까지 처녀의 몸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취하고 싶지만… 급하게 굴어서는 안 되겠지. 책봉식 이후에 충분히 맛볼 수 있을 테니…”
황포 차림의 사내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소매를 휙 휘두르면서 방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