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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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산 아래. 한제는 서늘함이 번득이는 눈으로 산꼭대기를 노려보았다. 고도 대천존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듯, 그 역시 고족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고족 전체를 통틀어 그가 존중하는 것은 오직 현라 대천존 뿐이었다. 현라가 없었더라면 애초에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3백 번째 계단⋯⋯.”
등 뒤로 나타난 대천존 태양의 윤곽이 흑백의 빛을 번득이는 가운데 한제는 첫 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수십 개의 계단을 단번에 뛰어넘었다. 39번째 계단이었다.
그 순간, 산꼭대기에서 발산된 어마어마한 힘이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그를 짓누르자 한제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산봉우리가 그를 압박하고 있는 듯했고 눈에 비친 계단은 급기야 왜곡되기 시작했다. 마치 살아 있는 교룡처럼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흥! 이 정도로 나를 막을 수는 없다!”
차게 코웃음을 친 한제 뒤로 대천존 태양의 윤곽이 더욱 밝은 빛을 발산해 사방을 뒤덮었고 한제는 다시금 몸을 훌쩍 날렸다.
42번째, 57번째, 69번째, 83번째 계단⋯⋯.
귓가에서는 끊임없이 쾅, 쾅 소리가 울렸고 갈수록 압박은 묵직해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99번째 계단에 이른 한제는 1백 번째 계단에 쾅 하고 오른발을 올렸다.
그 순간, 우렁찬 소리가 퍼져 나가면서 고도산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강력한 압박이 한제의 몸에 떨어졌다. 그의 입가에서는 주르륵 피가 흘렀다.
이 어마어마한 압박은 고도산과 고도 대천존으로부터 기인하고 있었다.
“총 999개로 이루어져 있는 이 계단에서 각 백 번째 계단은 내가 가진 힘의 1할이 담겨 있지. 여태까지 그 어떤 대천존도 나에게 대항하며 6백 번째 계단을 밟아본 적 없다. 가장 많이 올라온 자가 당시 선족에서 온 동림 대천존이었지. 6백 번째 계단 앞에서 실패한 그로부터 물건 하나를 받고 그를 돌려보냈다. 너는 과연 어디까지 올라올 수 있을지 보겠다!”
한제가 1백 번째 계단 위에 발을 올린 순간 고도 대천존의 서늘하고 노련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와 함께 산꼭대기까지 이어진 교룡 같은 계단은 진짜 교룡으로 변했다. 온몸이 새카만 녀석은 거친 바람을 일으키며 한제를 향해 돌진했다.
교룡은 악취를 품은 비린내를 훅 끼치며 눈 깜짝할 사이 눈앞까지 다가왔다.
한제의 두 눈이 번득였다. 허나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와중에도 그는 물러나기는커녕 고개를 들면서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의 뒤에 있던 대천존 태양의 윤곽이 축소하면서 흑백의 빛으로 그의 오른손에 응집됐다. 기이한 광경이었다.
한제는 손바닥은 하얗고 손등은 검게 변한 오른손을 교룡에게 뻗었다.
콰쾅!
요란한 굉음이 울려 퍼졌고 교룡은 마구 경련을 일으키면서 찢어질 듯한 절규를 내질렀다. 녀석의 거대한 머리가 무너져 내리더니 삽시간에 몸통까지 완전히 와해되어 재로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산꼭대기로 이어진 계단은 더 이상 꿈틀거리지 않았다. 마치 모든 것이 한제의 환각에 불과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한제는 피를 한 움큼이나 토해냈다. 교룡이 붕괴하던 순간 그의 오른팔 역시 흩어져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곧 응집된 검은 기운이 새로운 팔로 형성됐다.
한데 오른손이 교룡과 닿은 순간, 그의 오른발은 셀 수 없이 많은 산봉우리에 얻어맞은 것처럼 강한 충격을 받았고 당장이라도 99번째 계단으로 밀려날 것만 같았다.
1백 번째 계단에도 이르지 못하고 실패하려는 순간…
“하앗!”
기합을 내지른 한제의 온몸에서 펑, 펑 하는 우렁찬 소리가 났다. 고족의 육신에 의지해 그 어마어마한 충격을 감당한 한제는 곧장 오른발의 방향을 틀었다. 덕분에 그는 1백 번째 계단에 머무를 수 있게 됐다.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1백 번째 계단에 오른 이때 고족의 힘과 선력이 아주 약간 융합되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 상황에 약간 놀라면서도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한 번에 열 칸 정도만을 뛰어넘을 수 있을 뿐이었지만 그의 발이 계단을 디딜 때마다 고도산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1백 번째 계단 이후로는 압박이 배로 늘어났다.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그 압박 아래 150번째 계단에 이른 한제는 몸을 덜덜 떨며 그 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산 정상 탑의 꼭대기 층에서 한제를 바라보는 현라는 애가 타는 모습이었다. 그는 한제가 실패한다면 고도 대천존에 반기를 드는 한이 있더라도 한제를 데려가고 말겠다고 이미 결심을 내린 상태였다.
‘저 녀석을 데려온 건 나야. 우리 도고족을 위해서라도 난 반드시 한제를 데리고 가야 해!’
현라가 속으로 외쳤다.
“만약 저 녀석이 2백 번째 계단도 지나치지 못한다면 현라, 너는 네 제자를 두고 가야 할 것이다.”
현라 뒤쪽, 안개에 모습을 숨긴 인영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데 현라가 그 말에 대답을 하기도 전, 한제가 낮은 기합을 내질렀다. 그러자 그의 뒤에서는 대천존 태양의 윤곽이 빠른 속도로 수축했다. 동시에 고개를 번쩍 쳐든 한제는 한 발 앞으로 나서며 160번째 계단에 이르렀다.
대천존 태양이 끊임없이 줄어들면서 무궁무진한 힘을 주입해주기라도 한 것처럼 한제는 끊임없이 나아가 170번째, 180번째, 190번째 계단을 지나쳤다. 그리고 수축하던 대천존 태양의 윤곽이 끝내 사라짐과 동시에 그는 2백 번째 계단에 발을 디뎠다.
그 순간, 산꼭대기 탑 안, 안개 속에 모습을 감춘 인영이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한편 현라는 두 눈을 번득이며 처음으로 미소를 드러냈다.
“대천존 태양을 태워 2백 번째 계단에 오를 힘을 얻었군. 그런 방법도 있었어. 하지만 과연 3백 번째 계단에 다다를 수 있을까?”
흐릿한 인영이 말했다.
한편, 고도산 계단 위에서는 산꼭대기 탑 사방 네 개의 거대한 기둥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네 사람 중 북쪽 기둥에 앉은 사람이 여태까지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회색 눈빛을 번득이던 그는 몸을 훌쩍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음 순간, 그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계단이었다. 한제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간 그는 소매를 휘두르면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가면을 쓴 것처럼 아무런 표정도 없는 얼굴로 한제를 가리켰다.
그 손짓에 하늘과 땅의 기색이 변했다. 마치 이 순간 하늘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대지는 뒤흔들리고 고도산도 진동했다.
한제의 두 눈이 바짝 졸아들었다.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힘은 대천존에 비할만 한 위력이었다.
‘대천존의 위력! 저자는⋯⋯ 대체 누구지?’
그러나 길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상대의 손끝이 자신의 미간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손에 닿는다면 고족의 육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한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위기의 순간, 한제는 150번째 계단에서부터 2백 번째 계단으로 향하는 동안 흡수한 대천존 태양 윤곽의 힘을 모조리 폭발시켰다. 심지어 한제는 체내의 수준도 가동하고 본원도 동원했으며 아흔아홉 개의 허상도 소환했다. 뒤이어 오른손을 들어 올려 자신에게 달려들고 있는 회색 도포 차림의 상대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한제의 뒤로 도고와 고신, 고요, 고마의 허상이 나타나 동시에 주먹을 날렸다. 뿐만 아니라 도고 허상 상공에 흐릿하게 나타난 금색 그림자도 순수한 선기를 발산하면서 주먹을 휘둘렀다.
이때 한제의 몸에서는 대량의 검은 기운도 발산됐다. 살육과 광기, 천둥번개를 품은 이 기운은 살육 천둥번개의 주먹을 형성하여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콰르릉!
고도산을 중심으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순간, 회색 도포의 사내 손끝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에 우뚝 멈춰선 그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한제를 힐끗 보더니 곧장 몸을 돌려 정상으로 향했다. 곧 한제의 시야에서 사라져 탑 주변에 자리한 북쪽 기둥 위로 돌아온 그는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더니 다시 두 눈을 감았다.
구곡삼상(九曲三相) (1)
한제의 입으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뒤로 나타났던 도고의 허상과 순수한 선기를 발산하던 금색 그림자도 사라졌다. 허나 비록 호흡은 거칠어졌어도 한제는 여전히 2백 번째 계단 위에 굳건히 버티고 서 있었다.
안정을 되찾은 그때는 체내에서 고족의 힘과 선력이 기이한 방식으로 천천히 융합하고 있음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융합은 고도산의 압박 아래 억지로 응집됨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선족의 천존도 약천존도 내 고도산에 올라오지는 못한다. 오직 대천존만이 가능하지. 네가 2백 번째 계단에 발을 디뎠다는 것은 이미 기본적인 대천존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야. 계속해봐라. 네가 정말로 3백 번째 계단에 이를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한제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는 사이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도 대천존, 저 녀석은 제 제자입니다!”
현라의 낮은 외침이 산꼭대기에 자리한 탑에서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한 줄기의 빛이 산꼭대기 탑 안에서 튀어나와 한제의 곁에 이르렀다. 현라였다.
“이자를 데려온 건 접니다! 그리니 저는 이자를 데리고 갈 겁니다! 고도 대천존, 이 현라는 평생 단 한 번도 개인적인 이해득실을 따진 적 없이 도고 일맥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허나 오늘은 고도 대천존께 부탁드려야겠습니다. 제 제자를 데리고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현라는 고개를 들어 산꼭대기를 바라보며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짙은 결의가 느껴졌다.
적막이 맴돌던 산꼭대기에서는 한참 뒤 약간 누그러진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현라, 네가 막 대천존이 됐을 때 난 네게 내 제자가 되어 이곳 고도산에 함께 머무르겠냐고 물었다. 허나 너는 도고 일맥을 수호하고 싶다고 그래서 이곳에 머무를 수는 없다고 했지. 네가 도고 일맥을 위해 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해온 일을 나는 모두 보고 있었다. 이게 너의 첫 번째 간청이지. 그래, 그 간청을 들어주겠다. 허나 이번이 마지막이다.”
복잡한 표정의 현라가 고도산 꼭대기를 향해 절을 했을 때였다.
“스승님, 이 제자는 더 할 수 있습니다!”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몸을 꼿꼿하게 세웠다.
“너⋯⋯.”
현라의 눈에 걱정이 담겼다.
“스승님, 강한 압박이 드리운 이곳은 제게 가장 좋은 수련 장소입니다. 더 올라가 보고 싶습니다!”
한제는 굳건한 눈빛으로 현라를 향해 절을 하더니 곧장 201번째 계단으로 향했다.
그 순간, 한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듯 체내에서 울리는 굉음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두 눈은 더욱 밝게 번득였다.
‘내 고족의 힘은 혈맥으로 인해, 선족의 수준은 본원으로 인해 존재하고 있다. 이 두 종류의 힘이 융합된 적은 없었지. 시도는 해봤지만 결국 실패했어. 허나 지금 그 두 가지 힘이 융합하고 있다. 선강 대륙에서 가장 강한 존재인 고도 대천존의 압박 덕분이야!’
말하자면 이것은 그에게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굳은 결심이 어린 한제의 표정을 본 현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한제가 201번째 계단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한제가 201번째 계단에 발을 뻗은 순간 고도산에 흐르는 압박은 다시 몰려들어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위압감으로 그를 강타했다.
2백 번째 계단부터 느껴지는 압력의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이전까지의 압박이 성난 파도와 같아 모든 힘을 불사르고 대천존 태양의 윤곽을 태우면서 이를 악문 끝에 가까스로 이겨낼 수 있었다면 이후의 압박은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 그 자체 같았다.
겨우 한 걸음을 내딛었을 뿐이지만 한제의 얼굴은 전보다 더 창백하게 질렸고 몸은 바들바들 떨렸으며 끊임없이 피를 토했다. 급기야 몸 곳곳에서 끼이익 소리가 나기도 했다. 강력한 압박에 뼈가 짓눌리고 살과 근육이 찢기고 원신이 분쇄되고 영혼이 뭉개질 것 같았다. 이 어마어마한 힘 앞에 한제는 풍랑 속의 조각배처럼 나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물러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이 선력과 고족의 힘을 융합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이 기회를 포기해버린다면 선력과 고족의 힘을 융합할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될 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우게 될 것이다. 저항할 수 없는 존재인 고도 대천존에 대한 두려움이 오랫동안 남아 엄청난 해를 끼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고도 대천존⋯⋯ 내 반드시 3백 번째 계단을 밟을 것이다!’
한제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몸 안팎에서 기승을 부리는 끔찍한 고통에 하늘을 향해 비명을 내지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는 애써 참아냈고 그 고통을 의지로 바꾸어 두 번째 걸음을 내딛었다.
그 순간, 한제는 머릿속에서 콰쾅 하고 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몸의 경련도 매우 격렬해졌다. 동시에 그는 체내의 수준과 본원의 힘, 그리고 고족의 힘이 순간 강력한 압박에 의해 끊임없이 융합되는 것 또한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어마어마한 배척력도 생겨나는 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배척력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고도산의 위압감이 자체적으로 그것을 억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제는 고통에 몸부림을 치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몸이 바들바들 떨려왔지만 그리 크지 않은 몸에는 엄청난 끈기가 깃들어 있었다. 그 끈기는 그의 척추를 지지하는 한편 누구를 앞에 두더라도 고개를 꼿꼿이 들게 했다.
여덟 걸음!
한제가 208번째 계단에 이르렀을 때, 그의 얼굴에는 핏줄이 잔뜩 돋아 있었고 몸 곳곳에서는 뼈가 서로 맞물리며 끽끽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한제는 의지를 불태웠고 체내에서 선력과 고족의 힘이 강력한 위압감 아래 빠르게 융합되는 사이 뭔가 다른 것까지 느낄 수 있었다.
‘고족으로서의 육체는 외피이고 선족으로서의 수준은 내부다. 그런 고족의 힘과 선족의 힘을 융합하여 하나로 만드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