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4
오랜 시간이 필요한 계획이었다. 그 계획을 실행하기 전까지 많은 일들을 미리 해놔야 계획에 실수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산공(散功)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방법이었다. 그다지 선택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기도 했다. 허나 산공을 하지 않으면 지금 상태에서는 원영기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결단기에 머문 채로는 복수는 먼 이야기였다.
어떻게 해야 산공을 하지 않으면서도 원영기에 이를 수 있을까. 이 두 가지 목적을 다 이루기 위한 방법은 딱 하나뿐이었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신식을 펼쳤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날아가면서 사방을 훑었다. 그러다 돌연 멈추더니 북쪽을 바라보았다. 북쪽으로 2천 리 정도 떨어진 곳에서 두 명의 수련자가 동쪽으로 질주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둘 모두 남자였고 나이가 많지 않은 쪽은 축기 초기 수준이었다. 다른 한쪽은 이제 막 중년에 접어든 사람으로 수준은 결단기 초기였다. 한제는 두 사람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훌쩍 날렸다.
맥국송은 호연종(浩然宗)의 제자로 스승의 명에 따라 개령회(開靈會)에 가는 중이었다. 개령회는 단약 제조로 초나라에서 이름이 높은 운천종(雲天宗)이 2년에 한 번씩 거행하는 단약 판매 행사였다.
운천종에서 제작한 단약은 4성 수련국에서도 구매를 하러 온다. 다만 그들은 10년에 한 번씩 열리는 대형 개령회에만 참가한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소형 개령회에는 초나라 각 문파의 제자들이 경험을 쌓을 목적으로 참가했다.
소형 개령회에서는 진귀한 단약이 아닌 제식(制式) 단약밖에 판매하지 않았지만 아직 수준이 낮은 제자들 입장에서는 이런 단약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운천종에서 만들어낸 것은 같은 단약 중 효과가 유달리 뛰어나기 때문에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몰렸다. 더구나 운천종은 개령회에서가 아니면 일체 거래를 하지 않기 때문에 초나라의 모든 문파에서는 매 개령회마다 많은 제자를 참가시켰다.
맥국송은 자신이 다른 제자들을 제치고 이번 개령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참가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그의 사부 덕이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맥국송의 눈빛이 앞장 선 중년 남자에게 닿았다. 평범한 외모에 얼굴은 약간 누런빛을 띤 게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기운이 풍겼다. 하지만 맥국송은 그런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가슴 깊이 우러났다.
결단기 수련자의 눈에 들어 제자로 받아들여지는 일은 호연종에서 결코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이는 그의 신분이 단숨에 정식 제자로 등극했다는 의미였다. 비록 핵심 제자와는 차이가 있지만 만약 자신이 축기 후기에 이르면 자연스레 핵심 제자가 될 것이다.
그의 스승은 결단기 수준의 수련자일 뿐만 아니라 호연종에서도 많지 않은 연단 대사 중 한 명이다. 호연종의 단약은 비록 운천종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해도 그리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의 사부는 호연종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였고 자연히 맥국송 역시 정식 제자들 중 높은 대접을 받게 됐다.
“침착하게 검을 쥐어라. 다른 마음을 품어서는 아니 된다. 이제 운천종과 가까워졌으니 우리 호연종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거친 목소리가 맥국송의 잡생각을 끊었다.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잡생각을 접은 채 스승의 뒤를 바짝 따랐다.
잠시 후, 맥국송은 앞에 있는 스승을 보며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사부님, 운천종은⋯⋯?”
“조용!”
그가 말을 다 맺기도 전에 그의 스승이 제자리에 우뚝 멈추었다. 그리고 잔뜩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홱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맥국송은 흠칫 놀라 얼른 그를 따라 그 자리에 멈춰서는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 있는 것이라고는 파란 하늘과 흰 구름 뿐, 어떤 이상한 구석도 없었다.
한데 바로 그때, 저 멀리서 우르릉 소리와 함께 구름이 강력한 힘에 밀린 듯 천천히 움직였다. 언뜻 보면 구름이 폭풍으로 변해 앞으로 밀려드는 듯했다.
맥국송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순식간에 검은 인영 하나가 다가왔다. 단 몇 초 만에 그 인영은 그들 앞에 나타났다. 상대의 검은 옷과 대조되는 백발, 그리고 냉혹한 얼굴에서 요사스러운 기운이 흘러넘쳤다.
그의 수준은 감히 맥국송으로서는 파악하기조차 어려웠다. 특히 두 눈에서는 끝없는 냉기가 흐르고 있어 바라보는 것만으로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맥국송은 얼른 고개를 숙이고 스승의 뒤로 섰다. 창백해진 얼굴로 급기야 온 몸을 떨기 시작했다.
“무거운 살기(煞氣)로군!”
맥국송의 스승이자 호연종의 연단 대사인 서리의 목소리에도 긴장감이 어렸다. 그는 신식을 통해 상대의 수준이 자신을 훌쩍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특히 상대의 몸에서 풍기는 신식에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다.
서리가 보기에 저자는 원영기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그 느낌만은 호연종의 원영기 수준 수련자 못지않았다. 더구나 그 살기(煞氣)만큼은 그들보다도 훨씬 강했다.
서리는 평생 단약을 연구하는 데 집중했던 터라 영력의 파동에 상당히 민감했다. 때문에 그는 이 정도의 살기를 풍기는 자라면 그 손에서는 지워지지 않는 피비린내가 풍길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큰 화를 입기 쉬웠다.
서리는 얼른 공손하게 포권을 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우, 난 호연종의 서리이고 여기는 내 제자일세. 이리 급하게 달려온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돕겠네.”
백발의 청년, 한제는 두 사람을 훑어보다가 서리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포권을 하며 말했다.
“도우, 여기는 어느 수련국인가?”
서리는 흠칫 놀라며 상대를 몇 번 훑어보다가 말했다.
“이곳은 초나라일세. 어디에서 왔는가?”
“초나라라⋯⋯.”
한제는 한참 고민하다가 상대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저물대를 두드렸다.
그의 동작에 서리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제자 맥국송을 끌어당기며 얼른 뒤로 몇 걸음 물러난 그는 신중한 눈빛으로 상대를 주시했다.
한제는 그를 힐끗 보더니 어느새 옥패 하나를 꺼내 들었다. 옥패를 이마에 얹자 순간 넓은 지도가 그의 머릿속에 펼쳐졌다.
이 옥패는 전신전의 주자홍으로부터 얻은 것으로 화분국 주변에 대한 정보가 포함된 지도가 들어 있었다.
‘초나라’라는 이름이 왠지 낯이 익어 한제는 곧장 지도를 확인했다.
초나라는 북쪽으로는 화분국, 동쪽으로 선무국에 인접해 있었으며 수마해와도 인접한 나라로 ‘신선이 선사한 곳’이라는 말로도 일컬어지는 자갈산맥의 땅이었다.
말하자면 초나라는 자갈산맥에 바짝 붙어 있는 수련국으로 옥패에 따르면 면적이 매우 넓고 기거하는 수련자도 많으며 3성 수련국의 세 번째 단계 절정에 달해 있었다. 즉, 언제든 4성 수련국으로 진급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 모든 것은 초나라 안의 원영기 후기에 달한 수련자가 열 명 이상이기 때문이었다. 그 힘이 초나라가 진급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제 화신기에 이르는 사람이 한 명만 나타나도 초나라는 곧장 4성 수련국으로 진급하게 된다.
옥패에는 초나라의 문파들에 대해서도 기록되어 있었다. 한제는 그것을 한동안 살피다가 옥패를 집어넣고 물었다.
“그럼 이곳은 초나라의 어디쯤이지?”
왼손을 저물대에 넣은 채 신중한 눈빛으로 상황을 살피던 서리는 상대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이곳은 운천산맥이네!”
고개를 끄덕인 한제는 어느 한쪽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이 앞으로 만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운천산맥 꼭대기가 바로 운천종이 있는 곳이로군?”
서리는 신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운천종에 상대할 적이 있나?”
한제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서리를 보며 포권을 취했다.
“도와줘서 고맙네. 그럼 이만!”
쉬익-
말을 마친 그는 몸을 훌쩍 날려 긴 무지개를 그리며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의 모습은 눈 깜짝할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제가 떠나고 나서야 서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등은 이미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상태였다. 미풍이 불어오자 땀으로 젖은 몸에 소름이 돋았다.
한제의 압박감은 엄청 났다. 만약 서리가 항상 단약을 만들며 수준을 공고히 해 심리적으로 일반적인 수련자들보다 훨씬 더 안정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방금 정신을 잃었을지도 몰랐다.
그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고개를 돌려 자신의 제자를 힐끗 보았다. 맥국송의 두 눈은 두려움에 질려 있었다. 한제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사⋯⋯ 사부님, 저 사람의 수준은 대체 어느 정도입니까? 원영기 선배님이십니까?”
서리는 고개를 저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다. 그리 느낀 것은 살기(煞氣) 때문일 게다. 내가 제대로 봤다면 저자는 수마해에서 나온 사람일 게다. 수마해에서 온 사람이야 종종 볼 수 있다지만 저토록 강한 살기(煞氣)를 풍기는 사람은 난생 처음이구나.”
“살기(煞氣)요?”
맥국송이 흠칫 놀라며 물었다.
간결한 분신
서리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사람을 죽일 때마다 살기(殺氣)가 쌓이지. 그게 어느 정도 쌓이면 악기(惡氣)로 바뀐다. 어떤 수련자는 그 악기로 법보를 단련하기도 하지. 악기를 오랫동안 쌓아두면 다시 살기(煞氣)로 전환이 돼. 한데 저자의 살기(煞氣)는 하늘을 뒤덮을 정도구나.
어떤 신통술을 쓰지 않고도 저 정도의 살기(煞氣)를 풍긴다면 사람들에게 엄청난 두려움을 줄 수밖에 없지. 저자가 체내의 살기(煞氣)를 사용할 줄 아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사용할 수 있다면 원영기 수련자라 해도 환각의 영향을 받게 될 게다.”
맥국송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사부님 말씀대로라면 저 사람은 아직 원영기에 이르지 않았다는 거지요?”
서리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원영기에 이르지 않았다고는 하나 금방 원영기에 이를 것 같구나. 만약 내가 제대로 봤다면 저자는 이미 결단기 후기의 절정에 달해 있어. 자 이 일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거라. 공연히 화를 불러올 수도 있으니까. 호연종에 돌아가서도 가벼이 입을 놀려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맥국송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서리가 따로 이르지 않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생각은 없었다. 좀 전의 끔찍한 두려움을 실감한 상황에서 괜히 입을 놀려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한편 한제는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 뒤 빠르게 움직였다.
한참 날아온 뒤에야 신식을 통해 전방에서 느껴지는 영력의 파동을 감지할 수 있었다. 옥패의 기록에 따르면 전방에는 운천종이 있다.
방향을 확인한 한제는 한동안 침묵했다. 위치가 어디인지 확실히 알았으니, 이제 부근에서 폐관 수련을 할 생각이었다. 그는 방향을 돌려 날아갔다.
운천종이 있는 곳에서 8천 리 떨어진 절벽에 이른 한제는 사방을 둘러보며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물대에서 비검을 꺼내 절벽의 중간쯤을 깎아나갔다. 금세 동굴이 하나 만들어졌다.
동굴에 딸린 두 개의 석실 중 하나로 들어간 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또 하나의 석실을 만들어냈다.
작업을 마친 그는 밖으로 나가 저물대에서 금번을 꺼냈다. 이어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자 금번이 펄럭이며 눈 깜짝할 사이에 점점 불어나더니 결국 하늘을 가릴 수 있는 거대한 흑막이 됐다.
한제는 담담하게 외쳤다.
“해산!”
그의 말이 떨어지자 흑막이 진동했고 수천 개에 이르는 금제들이 그 안에서 떨어져 나오더니 모두 절벽으로 빽빽하게 스며들었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한손을 휘둘렀다. 금번은 곧장 줄어들어 그의 손에 떨어졌다. 한제는 그것을 한 번 흔들어 석벽 깊은 곳에 침투시켰다.
이제 밖에서는 더 이상 절벽 가운데에 난 동굴을 볼 수 없었고 절벽에서는 어떠한 이상한 점도 찾을 수 없었다.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두 손을 흔들어 잔영의 원을 몇 개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들을 각각 절벽의 사방에 찍어댔다. 결국 잔영의 원들은 서로 연결되어 치밀한 보호막을 이루었다. 그제야 한제는 한시름 놓았다.
동굴로 들어선 한제는 저물대에서 이모완이 준 청룡 옥패를 꺼냈다. 금이 좀 가 있기는 했지만 사용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한제는 그것을 들여다보다가 영력을 불어넣었다.
순간 옥패에서 용의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한 마리 청룡이 튀어나와 한제의 주위를 맴돌았다. 청룡의 몸집은 갈수록 커졌다. 한데 석실의 벽들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 용의 움직임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청룡은 다시 한 번 포효하더니 동굴 위쪽을 뚫고 들어가 절벽과 일체가 되게 보호막을 형성했다.
이 동굴은 한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치밀한 보호 장치로 뒤덮였다.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이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머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