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42
그런 여인을 바라보는 도고 황존의 눈에는 즐거워하는 듯한 빛이 어려 있었다. 현재 그는 기분이 매우 좋은 상태였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즐거움이었다.
그는 이미 한제와 그 잔혼이 관계가 있음을 9할 이상 확신하고 있었다. 게다가 한제의 반응으로 미루어 아마도 그 관계란 연인 사이였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도고 황존은 크게 웃으며 술을 마셨다. 자신이 황후와 초야를 치를 때 한제의 표정이 어떻게 일그러질지를 생각하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고조의 직계 자손인 내가 아닌 네가 혼혈을 손에 넣고 현라의 제자까지 된 것이냐! 동부계에서 온 미물이자 천한 수련자에 불과한 네가 감히 나와 맞먹으려 들고 감히 내 앞에 무릎도 꿇지 않았지. 제아무리 수준이 높다한들 고족이라면 반드시 황제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하거늘!’
그는 자신이 혼혈을 손에 넣지 못한 데 대한 분노, 간청을 했음에도 현라의 제자가 되지 못했을 때의 좌절감, 자신을 무시하는 듯 무릎을 꿇을 생각조차 하지 않던 한제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리 나오겠다면 좋다. 내 황후 책봉식을 마무리한 뒤 네 여인이 얼마나 훌륭한지 직접 확인하고 즐겨주마. 보아하니 그 여인의 잔혼을 찾고자 온갖 노력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지? 허나 네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여인이 나의 아내가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구나. 하하!’
속으로 중얼거리던 도고 황존은 다시금 웃음을 터뜨리며 잔을 들었다. 그리고 그가 즐거워 보이자 이곳에 모인 이들 역시 미소를 지으며 잔을 치켜들었다.
허나 술잔을 기울이기도 전, 이들은 황궁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콰쾅!
먹먹하고 요란한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굉음이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황궁을 뒤덮은 금제 때문에 이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없었다. 게다가 광기 어린 기운 때문에 신식을 뻗기도 힘들었다. 심지어 도고 황존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괜찮다!”
도고 황존은 심드렁하게 내뱉으며 잔을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
그 태연하고 평온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생각해보면 도고 황권의 중심지인 도고 황궁의 경계는 보통 삼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런 삼엄한 경계를 뚫고 감히 이곳에 난입할 수 있을 사람은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다시금 음악 소리와 시끌벅적한 대화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도고 황존을 향한 축하 인사도 계속됐다.
하지만 그때, 굉음이 점차 가까이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에 황궁 안 광장은 또다시 점차 고요해졌다.
술잔을 든 도고 황존의 손이 살짝 떨리고 있음을 알아챈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 그는 미간을 팩 구긴 채 먼 곳을 응시했다.
“금위는 어디 있느냐!”
황존의 말이 떨어진 순간, 광장에 있던 108금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도고 황존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가서 이 소란을 일으킨 자를 죽이고 그 머리를 잘라 오너라!”
“명 받들겠습니다!”
108금은 입을 모아 답했다. 하나로 완벽하게 합쳐져 울리는 목소리에는 서늘한 기운이 어려 있었다.
대답을 마친 이들은 108갈래의 빛을 그리며 황궁 밖으로 향했다.
“황후를 처소로 모셔라!”
108금을 내보낸 도고 황존이 다음 명을 내리자 송세정의 곁에서 두 갈래의 흐릿한 인영이 나타나 그녀를 향해 절을 올렸다.
송세정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나 주렴에 가려진 두 눈에 어린 혼란은 전보다 더 짙어져 있었다. 황궁 밖을 살짝 내다본 그녀의 귓가에서는 아직도 ‘모완아’라는 한제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맴돌았다.
“아직도 안 가고 무얼 하고 있소?”
도고 황존이 미간을 팩 찌푸리며 냉랭하고 무정한 눈으로 송세정을 노려보았다.
이에 송세정은 몸을 바르르 떨더니 고개를 숙인 채 양옆에 나타난 두 허상과 함께 정전 뒤로 향했다.
한데 그때였다. 돌연 우렁찬 굉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또렷하게, 마치 귀 바로 옆에서 울린 듯 들려왔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린 도고 황존의 표정이 순간 급변했다.
뒤로 떠밀린 108금은 피를 토해내며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현장에서 죽지 않은 단 한 사람만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추락하듯 착지하더니 도고 황존을 향해 꿇어앉은 채 피를 토해내며 광장이 떠나갈 듯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이한제입니다! 이한제가 황제를 시해하려 합니다!”
날카로운 외침이 광장과 수백 개의 대 위에 모여 있던 모든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좀 전까지 이곳에 있다가 다소 좋지 않은 기분으로 떠났던 한제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다시 돌아와 도고 황존을 시해하려 한다니, 어쩐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108금 중 107명의 육신이 폭발하는 모습을 본 이상 의심할 수는 없었다.
이들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 하늘에서는 전보다 더 우렁찬 굉음이 울려 퍼졌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광장 밖에서 날아든 것은 길이가 수천 척에 달하는 손바닥이었다. 기이하게도 손가락이 열 개나 달려 있는 손바닥이 나타나 황궁 광장에 떨어지려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푸른색 빛의 장막이 막아섰다.
꽈르릉!
온 황궁을 진동시킬 듯 어마어마한 소리가 터져 나왔고 열 개의 손가락을 가진 손바닥은 흩어져 사라졌다. 하지만 푸른 빛의 장막도 격렬하게 깜빡거리면서 무너져 내려 산산조각 나 흩어졌다.
순간 짙은 피비린내가 어린 바람이 불어닥쳐 죽은 듯 고요한 광장을 휩쓸었다. 광장에 있던 모든 이들은 넋이 나간 얼굴로 손바닥이 나타났던 곳을 응시했다.
도고 황존 역시 창백한 얼굴로 주먹을 바르쥔 채 그쪽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분노가 폭발할 듯 맺힌 눈빛이었다.
아직 정전을 빠져나가기 전이었던 송세정도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눈에서는 또다시 혼란의 빛이 나타났고 어째서인지 마음은 크게 흔들렸다. 마치 기억이 깨어나려고 하는 것처럼.
그녀를 처소로 안내하던 두 개의 허상은 도고 황존의 명조차 잊은 듯 멈춰 서서 손바닥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들이 시선이 집중된 그곳에서는 짙은 피 안개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한없이 고요한 황궁 광장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듣는 이들의 심장을 짓밟는 듯한 무자비한 소리였다.
발소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광장 가장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물러났다. 그들은 피 안개 속에서 걸어오고 있는 존재를 무시무시한 흉수로 여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자를 죽여!”
도고 황존이 돌연 외쳤다. 냉정하고 덤덤한 것 같은 목소리였지만 그의 두 눈동자에 드러난 분노 아래로는 두려움이 숨겨져 있었다.
순간 정전 안에서 열 갈래가 넘는 연기와 같은 허상이 나타나 피 안개를 향해 곧장 돌진했다. 그러나…
“끄아악!”
“크악!”
그들이 피 안개로 진입한 순간, 끔찍한 비명이 이어졌다. 이 비참한 비명은 한참 동안 이어지다가 천천히 사라졌다. 허나 비명은 멈췄지만 여전히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의 심신에 비명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도고 황존의 안색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
“아직도 황후를 모셔가지 않고 뭐하는 거냐!”
고개를 홱 돌린 황존은 송세정과 그 곁의 두 허상을 향해 외쳤다. 그러자 두 허상은 몸을 바르르 떨며 허리를 숙이고 회오리가 되더니 송세정을 감싸 정전 뒤로 빠르게 이동했다.
한데 그때, 광기 어린 냉랭한 목소리가 피 안개 안에서 흘러나왔다.
“어딜 가느냐!”
어마어마한 의지를 담은 목소리에 회오리가 됐던 두 허상은 우뚝 멈출 수밖에 없었다. 심신을 뒤흔드는 두려움에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한 발짝이라도 더 움직였다가는 어마어마한 재앙을 마주하게 될 것만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들이 회오리에서 다시 두 개의 허상으로 돌아온 순간, 피 안개에서는 흐릿한 인영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 인영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모든 이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흐릿하던 인영이 또렷해지면서 곳곳에서는 찬 숨을 헉 하고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백의와 백발을 모두 피로 붉게 물든 채 번득이는 두 눈에는 하늘마저 무너뜨릴 듯한 분노와 광기를 담고 있는 인영은 역시 한제였다.
스승인 현라의 선물을 전달하러 왔던 때와 달리 지금 그는 도고 황존에게서 한 사람을 데려가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극도의 분노 (4)
스승인 현라의 선물을 전달하러 왔던 때와 달리 지금 그는 도고 황존에게서 한 사람을 데려가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이한제, 이게 무슨 짓이냐!”
도고 황존은 한제를 죽일 듯 노려보며 외쳤다. 두 사람은 드넓은 광장과 그 안의 수많은 사람들을 사이에 둔 채 마주 섰다.
허나 한제는 다른 것들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눈은 오직 한 여인, 혼란에 빠진 표정의 송세정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 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저 여인을 데려가겠다!”
손을 들어 송세정을 가리킨 한제는 서늘한 눈으로 도고 황존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고 황존은 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심신이 진동했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허나 그 두려움은 곧 어마어마한 분노로 바뀌었다. 그는 도고 일맥의 그 누구보다도 높고 귀한 존재이자 고조의 후손이며 하늘이 내린 천재였다. 또한 고도 대천존의 인정을 받은 그의 생사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좌우될 것이 아니었고 그의 의지는 곧 도고 일맥의 의지였다.
그런 자신의 혼례를 하루 앞두고 시고 일맥과 극고 일맥의 사자들까지 모인 이 자리에 감히 자신의 황후를 데려가겠다니, 이보다 모욕적인 언행이 어디 있단 말인가!
황존은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한제, 넌 현라의 제자이자 장차 우리 도고 일맥의 수호자가 될 사람이다. 하여 난 그간 너를 박하지 않게 대했다. 내게 무릎을 꿇기 싫다 하여 꿇지 않게 해주었고 오늘 연회에서 먼저 가도록 허가해주기도 했지. 한데 그런 자비에 대한 보답이 이런 것이더냐! 감히 우리 일맥의 사람들을 죽이고 멋대로 황궁에 쳐들어와 내 황후까지 탐하려 해?”
도고 황존의 목소리는 점점 분노로 떨려 왔다.
“이한제, 네놈의 행패는 선을 넘었다! 이건 우리 도고 일맥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해하고 망치는 행위야! 네놈의 죄는 세상 모두가 알아야 할 터! 여봐라, 당장 저자의 목을 쳐서 내게 가져오라!”
그는 소매를 휘두르며 낮게 외쳤다.
한제는 묵묵히 두 눈을 감았다. 그로서는 스승인 현라를 생각해 들끓었던 광기를 억누르며 도고 황존에게 한 번의 기회를 준 것이었다. 상대 입장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이는 그가 내민 마지막 손길이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한제는 감았던 두 눈을 번쩍 떴고 그 안에서는 다시 불이 붙은 광기와 함께 하늘을 뒤덮을 듯 어마어마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렇다면 널 죽이고 데려가겠다!”
낮게 외친 한제는 성큼 한 걸음 나섰다. 이때 광장의 모든 도고 일맥 사람들은 자신들이 한제의 적수가 아님을 알면서도 황존의 명에 따라 달려들었다. 황권을 하늘의 위엄처럼 여기는 이들에게 현재 한제의 행동은 모반이자 반역이었다. 그런 존재는 반드시 척결해야 했다.
도고 일맥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든 순간, 한제는 발을 들어 힘껏 땅을 굴렀다. 그러자 그에게 달려들던 이들은 신분과 수준을 막론하고 바르르 경련하다가 그대로 무너져 내려 죽음을 맞았다.
눈 깜짝할 사이 수많은 이들의 숨이 끊어졌지만 그보다 더 많은 도고 일맥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심지어 시고 일맥과 극고 일맥의 사자 일부도 한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도고 황존과의 거리는 수십만 척에 이르렀지만 한제는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혀 나갔다. 그 사이 쾅, 쾅 하는 굉음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날 막는 자 모두 죽는다!”
한제는 낮게 외치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에게 달려들었던 수십 명의 도고 일맥 사람들은 그대로 무너져 내리며 죽었다.
그때, 광장의 모든 도고 일맥 사람들의 몸에서는 거대한 허상이 나타났다. 이 허상들이 한데 응집해 수천 개의 고신과 고요, 고마를 형성하더니 포효하며 곧장 한제에게 돌진했다.
한제의 뒤로는 하늘을 떠받칠 듯 거대한 도고의 허상이 소환됐다. 이어서 한제가 주먹을 크게 휘두르자 도고의 허상 역시 주먹을 뻗어 사방에서 달려들던 수많은 허상들을 공격했다.
콰쾅! 펑! 콰르릉!
우렁찬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땅과 하늘에는 수많은 균열이 일었다. 수천 개의 고신과 고요, 고마의 허상은 일제히 무너져 내렸고 수천 명의 도고 일맥 사람들 또한 피를 뿜어내며 나가떨어져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