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43
한제는 바르르 경련하면서도 오히려 한층 짙어진 광기를 발산하며 몸을 날렸다. 눈 깜짝할 사이 광장 중앙에 이른 그와 도고 황존 사이의 거리는 확연히 가까워진 상태였다.
“북을 울려라! 하늘 도시의 진을 열고 도고 일맥의 모든 사람을 불러들여 저자를 죽려라!”
도고 황존은 두려움에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며 크게 외쳤다.
그 목소리에 황궁 깊은 곳에서는 수많은 인영이 튀어나와 광장으로 돌진했고 황궁 안에 있던 모든 도고 일맥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둥- 둥- 둥-!
이어서 북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도고 황성 전역을 뒤덮었다.
그 순간, 이 북소리를 들은 도고 황성 내 도고 일맥 사람들은 표정이 급변했다. 도고 황궁이 위기에 처했을 때 울리는 도고의 북소리였기 때문이다. 또한 도고 일맥 사람이라면 이 북소리를 듣자마자 목숨을 바쳐 도고 일맥을 수호해야만 했다.
그와 동시에 하늘 도시 곳곳에 배치된 수백 개의 진에서는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 도시에 있는 도고 일맥들을 최대한 빨리 황궁으로 전송시키는 진들이었다.
“꺼져!”
한제는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주먹을 마구 휘둘렀고 그의 앞을 가로막던 이들은 육신이 터져 나가며 죽어갔다.
한편, 황궁의 전송진에서 번득이는 빛과 함께 나타난 수많은 도고 일맥 사람들은 황궁에 이르자마자 흠칫 놀라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 한제에게 돌진했다.
허나 지금 한제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10만 척가량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모완의 모습뿐이었다.
“다들 비키란 말이다!”
포효를 내지른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렸다. 그가 하늘로 치솟는 와중에 머리카락의 절반이 검게 변했다. 동시에 그의 뒤로 대천존 태양의 윤곽이 드러났다.
이를 본 도고 황존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대천존!”
한제를 포위하고 있던 다른 도고 일맥 사람들도 이 기이한 흑백의 태양을 보자마자 심신이 울렸다.
“대천존이다!”
“대, 대천존이었어!”
멀리서 지켜보던 계도 황자는 다른 이들과 달리 잔뜩 흥분한 표정이었다. 그는 뒤로 물러나면서 속으로 도고 황존을 비웃었다.
‘도고 황존, 정말 어마어마한 존재의 분노를 샀구나. 당신의 오만함 때문이다, 도고 황존!’
그 무렵, 윤곽만 드러난 흑백의 대천존 태양이 무궁무진한 흑백의 빛을 발산해 사방을 뒤덮었다.
한제는 태양을 떠받치듯 들어 올렸던 두 손을 다시 크게 휘둘렀다. 그 손짓에 대천존 태양은 마치 유성처럼 대지와 충돌했다.
콰르릉!
이 거대한 소리는 심지어 황궁 안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오던 북소리마저 억누르고 세상 모든 소리를 대체했다.
굉음이 울려 퍼지는 사이 확산된 어마어마한 충격에 휩쓸린 이들은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비명을 내지를 틈도 없이 숨을 거둔 그들의 육신은 재가 되어버렸다. 그러고도 멈추지 않은 대천존 태양의 힘은 황궁 광장에서 폭발했다.
콰르르.
대지가 무너져 내렸고 광장 바닥의 청석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으며, 하늘마저 진동했다. 광장 허공에 떠 있던 수백 개의 대 역시 남김없이 와해됐고 그곳에 모여 있던 수만 명의 도고 일맥 사람들은 그 수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모든 것을 파괴한 한 줄기 충격이 곧장 정전을 향해 달려든 이때, 한 노인의 허상이 광장 위에 나타났다.
황존과 마찬가지로 황포를 입은 채 짙은 위엄을 풍기고 있는 그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대천존 태양을 향해 오른손을 들어 올리더니 손바닥을 펼쳤다.
이 노인은 정전으로부터 6만 척 떨어진 곳에 서 있었으며 그의 뒤로는 72성, 36살, 18왕, 그리고 불멸의 장군 아홉 명을 포함한 1천여 명의 강자들이 서 있었다. 방금 전의 전투에 참가하지 않고 황존이 있는 정전 앞을 지키고 있던 이들이었다.
노인의 허상이 나타난 순간, 1천여 명의 도고 일맥 사람들은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심지어 도고 황존마저 무척 공손해진 모습이었다.
한데 대천존 태양에서 발산된 충격에 손이 닿은 순간, 허상의 노인은 표정이 급변했고 온몸에서는 펑, 펑 하는 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피를 한 움큼 왈칵 토해내며 뒤로 튕겨나갔다.
“나의 혈맥으로 고족대진을 활성화한다!”
그 와중에 허상의 노인이 날카롭게 외치며 내뱉은 피가 어스름한 붉은빛을 번득이면서 빠른 속도로 사방을 뒤덮어 거대한 빛의 장막을 형성했다. 벽처럼 노인 앞에 세워진 빛의 장막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어 건너편과 그를 완전히 단절시킨 상태였다.
빛의 장막은 나타나자마자 한제의 대천존 태양과 충돌했다.
콰르릉!
우렁찬 충돌음이 도고 황성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한 차례의 충돌이 휩쓸고 지나간 후, 빛의 장막 너머 광장은 완전히 폐허가 된 반면 그 장막 안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했다.
허나 대천존의 태양은 그렇게 쉽게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어스름한 붉은 빛을 번득이던 빛의 장막은 대천존 태양을 막아낸 뒤 몇 번 번쩍이더니 그대로 무너져 내리며 산산조각이 났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노인의 오른팔이 재로 변했다.
“쿨럭!”
다시 한번 피를 토해낸 노인은 수척해진 얼굴로 그 어마어마한 힘에 밀려나다가 도고 황존 곁에 쿵 하고 떨어졌다.
“아바마마!”
도고 황존은 곧장 노인에게 달려가 부축하려 했다. 허나 노인은 이를 악물고는 홀로 일어서더니 남은 왼손으로 도고 황존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짝!
도고 황존의 고개가 홱 돌아갔고 오른뺨에는 검은 손자국이 남았다.
“썩 물러나라! 계집 하나 때문에 우리 일맥을 위기에 처하게 하다니, 어리석은 놈! 스스로 목숨을 끊거라! 난 당장 고도 대천존을 찾아가 새로운 황제를 세워 달라 부탁할 것이다!”
노인의 벼락같은 호통에 도고 황존은 오른쪽 뺨을 매만지며 입에 고인 피를 탁 뱉어내더니 음침한 얼굴로 눈앞의 노인을 바라보았다.
“아바마마, 일단 당면한 일부터 처리하시지요.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아버지께서 관여할 바가 아닙니다. 감사하게도 고도 대천존의 수호를 받는 한 저는 죽지 않으니까요.”
도고 황존이 차갑게 말했다.
“네놈이!”
노인은 분노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도고 황존을 잠시 노려보았으나, 이내 고개를 돌렸다. 한 걸음씩 다가오는 한제에게 닿은 그의 눈에서는 깊은 두려움이 드러났다.
정전을 지키고 있는 1천여 명의 도고 일맥과 주위로 멀리 흩어져 있는 시고 일맥, 극고 일맥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광장은 텅 비어 있었다. 바닥은 피가 강을 이룬 상태였다.
한제는 피로 물든 광장 위를 걸었다. 그와 정전 사이를 가로막은 이는 1천여 명에 불과했지만 대부분은 상당한 강자였다.
그의 시선은 정전 안의 노인과 도고 황존을 지나 송세정에게 닿았다.
송세정의 눈에는 전보다 더 짙은 혼란과 함께 갈등의 빛이 어려 있었다.
이때 광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황궁에서 수많은 인영이 줄기줄기 빛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빽빽한 인영은 적어도 수만 명에 달할 듯했고 그들 뒤로 번득이는 전송진에서는 더 많은 이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극도의 분노 (5)
도고 구역의 수도인 도고 황성에는 본래도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고 황존의 혼례를 하루 앞둔 지금은 훨씬 많은 이들이 행사를 직접 보기 위해 모여든 상태였다. 한제가 제아무리 대천존에 맞먹는 힘을 지녔다 해도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포위당한다면 언젠가는 힘이 바닥날 수밖에 없을 터였다.
뿐만 아니라 황궁에는 수많은 진이 마련되어 있었다. 심지어 고조의 유물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이곳은 그에게 더없이 위험한 곳이었다.
허나 한제는 아무것도 개의치 않았다. 지금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생각은 모완을 데려가겠다는 것뿐이었다.
“멈춰라! 한 발짝이라도 더 움직인다면 이 여인을 죽일 것이다!”
도고 황존의 뺨을 쳤던 노인은 재빨리 송세정 곁에 붙더니 날카롭게 외쳤다.
송세정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두려운 모습은 아니었다. 그녀는 여전히 혼란에 빠진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금방이라도 떠오를 것 같은 기억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봉인된 기억은 아무리 애를 써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우뚝 멈춰선 한제는 노인이 아니라 여인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더없이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허나 그와 달리 입에서 나온 말은 노인의 심신을 뒤흔들었다.
“그녀가 죽는다면 난 곧장 뒤돌아 떠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내 목숨이 다할 때까지 도고 일맥의 씨를 말려주마. 장담하건대, 머지않아 고족에는 단 두 개의 부족만 남게 될 것이다.”
한제에게는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이 있었다. 이를 알기에 그 덤덤하지만 무시무시한 말에 노인은 몸이 떨려왔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노인은 결국 여인의 목숨으로 협박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저자를 죽이기 위해서라도 이 여인이 있어야만 한다.’
게다가 그는 이곳에 오기 전 이미 도고 일맥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고도 대천존의 옥패를 깨부순 상태였다. 위기를 맞닥뜨린 황실이 고도 대천존의 보호를 필요로 할 때 파괴하는 옥패였다.
한제는 말없이 몸을 훌쩍 날렸다. 사방에서 돌진해오는 수만 갈래의 빛이 몰려들기 전에 정전을 지키고 있는 1천여 명의 도고 일맥에게 달려든 것이다.
“죽여라!”
그 순간, 72성은 모든 힘을 동원해 수백 명의 도고 일맥 사람들을 이끌고 한제에게로 돌진했다.
거리가 가까워진 순간, 72성은 동시에 오른손을 들어 올려 주먹을 휘둘렀다.
콰쾅!
요란한 충돌음이 울려 퍼지면서 그들 뒤로 나타난 72개의 거대한 도고 허상은 72명의 거인처럼 일제히 한제에게 주먹을 날렸다.
허나 한제는 공격에 나서는 대신 입을 쩍 벌려 72성을 향해 우렁찬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그의 뒤에 나타나 있던 도고의 허상도 입을 벌려 고족의 고함을 내질렀다.
한제의 모든 수준과 고족의 힘, 혼혈의 위력을 품은 고함은 한 줄기 음파가 되어 72성과 그대로 충돌했다.
콰쾅! 쾅! 퍼펑!
요란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사이, 72성은 하나둘 무너져 내렸다.
이들이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한 순간, 마치 폭풍처럼 정전에 모인 이들을 향해 달려든 한제는 오른손으로는 잡히는 사람의 머리를 으깨고 왼손으로는 주먹을 휘둘러 누군가의 육신을 터뜨렸으며, 입을 벌려 한 줄기의 붉은 빛을 토해냈다.
어마어마한 살기를 발산하던 그 빛은 혈살검으로 변해 단번에 수십 명의 몸을 꿰뚫고 붉은 길을 만들어냈다.
몸을 훌쩍 날려 그 길을 따라 나아간 한제와 정전 사이의 거리는 이제 3만 척도 채 되지 않았다.
그때, 한제의 주위로 36갈래의 붉은 빛이 몰려들었다. 36살이었다.
한제는 두 눈을 서늘하게 번득이며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줄기줄기의 초록색 연기가 다섯 손가락 사이에서 나타난 손 주위를 맴돌며 원을 그리더니 하늘을 불사를 듯 어마어마한 화염을 일으켰다.
극화도!
허나 한제가 이 신통술의 위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하려던 순간, 하늘에서 누군가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깊은 슬픔과 실망, 그리고 고통이 배어 있는 한숨이었다.
“한제야⋯⋯.”
그 순간, 한제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