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45
도고 황존이 곧장 대꾸했다. 물러날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
그는 한제가 절대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한제와 현라 사이에 끈끈한 사제의 정이 있음을 확인했으니 현라 앞에서는 더더욱 자신을 공격하지 못할 터였다.
게다가 누구든 도고 황존인 그를 죽이려 한다면 일단 고도 대천존과 맞서야 했다. 그러니 도고 황존인 자신이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심지어 그는 이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곧장 송세정을 안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순결을 취함으로써 한제를 더욱 깊은 슬픔과 절망에 빠뜨리고 싶었다.
“황후를 데려가고 싶다면 헛소리에 대한 증거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도고 황존은 소매를 휘두르며 냉소했다.
한제는 대꾸하지 않았으나 마음속에서는 솟구쳐 오르는 살기를 더 이상 억누르기 힘들었다. 곧 폭발할 지경이었다. 당장이라도 눈앞의 1천 여 명의 도고 일맥을 모조리 죽이고 도고 황존의 숨통까지 끊어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한제는 가까스로 광기 어린 살기를 제압했다. 그리고는 슬픈 눈으로 송세정을 바라보았다.
이곳에서는 현라를 제외한다면 이미 대천존의 수준에 이른 한제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한제는 결국 한 발짝도 나서지 못했다. 현라를 실망시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빚을 진 스승에게 또 한 번의 슬픔을 안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두 눈을 감은 한제는 비참한 웃음을 흘리더니 눈을 떴고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소환된 옥패에 신식을 응집시켜 부수었다.
옥패가 부서진 순간, 한제가 이전에 대혼문 선조가 남긴 옥패를 이용해 보았던 장면들이 펼쳐졌다. 허공에 나타난 빛의 장막을 통해 이곳에 모인 모두가 이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빛의 장막 속 장면들은 그 무엇보다 또렷하고 확실했다.
“그 잔혼은 날 통일된 고족의 진정한 고황으로 만들어줄 거라고 했다. 국사의 예측이 틀렸을 리 없지. 그렇다면 이 여인을 황후로 책봉하는 것은 이 여인에게도 가장 큰 상이 될 터.”
“완벽하게 아름답지는 않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어. 이 육체와 융합시킨 잔혼을 어디에서 가져온 것인지 내내 궁금했으나 국사는 끝내 말하지 않았지. 허나 분명 잔혼의 주인은 생전에 상당한 미인이었을 거야. 아마 남편도 있었겠지. 남편은 이 여인의 죽음에 꽤나 고통스러웠겠군.”
“그는 자기 아내의 잔혼이 내 손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를 터. 그자가 누구인지 알아낸다면 그것도 나름 재미있을 텐데 말이야. 어쩌면 그자는 죽었을지도 모르지. 죽지 않았다면 지금 이런 상태가 된 자신의 아내를 과연 알아볼 수 있을까?”
“아주 재밌겠군. 허나 그런 날이 오지는 않겠지. 황후로 책봉될 때까지 처녀의 몸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취하고 싶지만… 급하게 굴어서는 안 되겠지. 책봉식 이후에 충분히 맛볼 수 있을 테니…”
도고 황존의 목소리가 옥패가 깨지면서 나타난 빛의 장막으로부터 흘러나왔다. 한제로서는 두 번째 보고 듣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다시금 끓어오르는 체내의 살기를 억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한편, 도고 황존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으나 마음속에서는 거친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다. 세상에 이토록 신비로운 술법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이런 허상까지 만들어 내다니, 재미있구나. 허나 저건 전부 거짓이 아니더냐! 난 저런 말을 한 적도 없다. 잔혼은 무슨 잔혼!”
도고 황존이 냉소하며 말했다.
한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체내에서는 살기가 솟아오르면서 또다시 폭발하려 했다. 몸은 경련했고 눈에서는 다시 붉은 빛이 번득였다. 하지만 한제는 다시금 살기를 억눌러야 했고 결국 왈칵 피를 토했다.
현라는 미간을 팩 찌푸리고는 송세정을 향해 손을 뻗더니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송세정의 몸에서는 돌연 보라색 빛이 번득이며 나타났다가 흩어져 사라졌다.
“자인조결동신쇄(紫印祖訣同神鎖)!”
팔이 잘린 황포의 노인이 경악한 듯 외쳤다.
그러는 와중에도 도고 선황은 서늘한 한제를 노려보며 외쳤다.
“이 여인은 내 황후다. 누구도 황후를 데려갈 수는 없다! 그래서 자물쇠를 심어두었지. 이것은 고조의 유물로 내가 죽으면 황후도 죽는다!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황후는 내게서 1백 척 이상 떨어질 수도 없지. 즉, 황후의 생사는 내게 달려 있다! 이한제, 그런데도 나를 죽이고 그녀를 데려가겠다는 것이냐? 아직도 내게 무릎을 꿇지 않을 것이냐? 크하하!”
도고 황존은 광소를 터뜨리며 외쳤다.
“자인조결⋯⋯ 고도 대천존에 의해 고족 내의 세 황족에 전수된, 오직 역대 황존만이 평생에 단 한 번 발휘할 수 있는 신통술. 대천존에 이르지 못한 자라면 이 신통술에 걸린 순간부터 그 삶과 죽음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게 되지. 그리고 그 신통술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고도 대천존뿐.”
현라는 어두워진 안색으로 말했다.
“엽도 도고 일맥의 수호자로서 요구하건대, 한제가 그 여인을 데려갈 수 있도록 당장 그 제한을 풀게! 고도 대천존을 찾아가 그 신통술을 제거해달라고 부탁할 것이니!”
현라는 도고 황존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황상, 겨우 여인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이럴 필요까지는 없다!”
황포 차림의 노인도 굳은 얼굴로 도고 황존에게 말했다.
“저 여인에게 이한제 아내의 잔혼이 들어 있다는데 왜 굳이 그런 여인을 곁에 두려 하느냐? 차라리 저자에게 보내라. 우리 도고 일맥의 수호자가 될 강자에게 배짱을 부려봤자 좋을 게 없어!”
“아바마마는 이미 늙어 판단력이 흐려졌습니다. 더는 제 일에 끼어들지 마십시오! 그리고 현존, 이것은 나를 비롯한 황족의 일이네. 도고 일맥의 수호자인 자네가 고도 대천존과의 약속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 게다가 저자는 황궁에 쳐들어와 황권을 욕보였네. 현존이 저자를 죽여 충성을 증명하고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군!”
도고 황존은 현라의 요구를 묵살한 채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도 심지어 현라도 자신을 죽일 수 없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극도의 분노 (7)
현라의 눈빛이 분노로 서늘하게 번득였다. 그는 당시 자신이 직접 지정한 도고 황존이 이렇게 안하무인의 언사를 내뱉는 모습에 기가 찼다.
그때, 침묵을 지키던 한제가 불쑥 입을 열었다.
“만약 내가 무릎을 꿇는다면 그 여인을 데려가게 해주겠느냐?”
“허! 방금 전까지는 나를 죽이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게나 오만방자하게 굴던 네가 이제 내게 무릎을 꿇겠다고? 그래, 이리 와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찧으며 진심을 다해 빌어봐라. 혹시 아느냐. 그 모습에 감동한 내가 이 여인을 네게 상으로 하사할지.”
도고 황존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웃음에는 음산한 기운이 어려 있었다.
“저 여인의 체내에 있는 잔혼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이 이한제는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도고 일맥을 수호할 것이다. 너를 죽이겠다는 의지를 철회하고 네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제발 저 여인을 내게⋯⋯.”
한제의 목소리에서는 짙은 슬픔이 느껴졌다. 수천 년간 축적되어온 슬픔이었다.
“달라고? 그건 내 기분에 달린 문제다. 이 여인을 천 년 정도 데리고 놀다가 그때까지도 네가 고분고분하게 군다면 넘겨줄 수도 있지. 하하하!”
도고 황존이 크게 웃었다.
한제는 몸을 바르르 떨며 두 눈을 감았다. 체내에서 끊임없이 솟구쳐 오르던 살기는 이미 통제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혼혈의 금제도 곧 파괴될 듯했다.
그가 여태까지 그 살기를 억눌러온 것은 오직 현라 때문이다.
“아내의 잔혼만 받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내놓겠다.”
한제는 감았던 눈을 뜨며 말했다. 체내의 살기는 또다시 억눌러졌지만 그의 두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목소리는 거칠어진 상태였다.
“하, 말해 봐라. 무엇을 내놓겠느냐?”
도고 황존은 피식 웃더니 여유롭게 말했다.
한제는 도고 황존 곁에 있는 송세정을 바라보다가 오른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면서 혼을 하나 소환했다. 그의 손안에 나타난, 두 눈을 꼭 감은 혼에서는 밝은 금빛이 뿜어져 나왔지만 그 금빛은 순수하지 못했다. 또한 혼의 표정은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듯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선족 선황의 혼이다.”
한제는 도고 황존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순간 도고 황존은 표정이 급변해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번득였다.
“선황! 이, 이럴 수가⋯⋯ 네가⋯⋯ 네가 선황의 혼을 가지고 있다니!”
도고 황존이 찬 숨을 헉 들이마시며 중얼거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제가 선족 선황의 혼을 꺼낸 순간, 그 혼을 본 도고 일맥 사람들은 하나같이 거의 넋이 나갈 정도였다.
멀리 떨어져 있는 시고 일맥과 극고 일맥의 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중 선황의 얼굴을 본 사람은 적지 않았기에 그들은 저것이 진짜 선황의 혼임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심지어 현라도 놀란 모습이었다.
“부족하다! 겨우 선황의 혼 하나로는 부족해!”
도고 황존은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억누르며 외쳤다. 허나 한제를 향한 그의 눈에는 깊은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선족의 선황은 선강 대륙에 존재하는 아홉 대천존 중 하나가 아닌가!
한제는 말없이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린 왼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뒤로 흑백의 대천존 태양이 떠올랐고 그 안에서 귀와 눈알이 없는 거대한 머리가 하나 나타났다.
그 순간, 더없이 순수한 선기와 함께 햇빛과 같은 금빛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이 머리까지 주겠다. 어떠냐!”
눈이 더욱 충혈된 한제가 거칠게 외쳤다.
“저건⋯⋯?”
흠칫 놀란 도고 황존은 멍한 얼굴로 한제가 꺼낸 머리를 바라보았다. 익숙하긴 했지만 저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떠오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저, 저건⋯⋯ 선조의 머리다! 선조의 머리야!”
가장 먼저 그 머리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은 도고 황존의 아버지였다. 그는 몸을 격렬하게 떨면서 정전 밖으로 몸을 훌쩍 날려 그 머리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그에게서는 엄청난 감정의 파동이 느껴졌다.
“서, 선조의 머리?”
그제야 그 머리를 알아본 도고 황존의 표정이 급변했다.
현라조차 이 순간만큼은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극강의 수준인 이들이 이러할 정도니 광장의 다른 이들의 반응은 볼 것도 없었다.
“서, 선조의 머리!”
“선조가⋯⋯ 죽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고조는? 고조도 혹시⋯⋯?”
거대한 머리를 본 모든 이들의 얼굴에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드러났다.
“선황의 영혼과 선조의 머리다. 이 정도면 되겠나?”
한제는 멍한 얼굴로 선조의 머리를 보고 있는 도고 황존을 바라보며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되지! 되고 말고!”
한제의 질문에 답을 한 것은 도고 황존의 아버지였다. 그는 매우 흥분한 채 고개를 돌려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엽도 이 두 가지 물건이라면 우리 도고 일맥은 반드시 굴기하게 될 것이다! 선황의 혼과 선조의 머리라면 고족을 통일시킬 수 있어! 얼른 그 여자를 넘겨라!”
노인의 격앙된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도고 황존은 여전히 망설였다.
“얼른 금제를 풀지 않고 무얼 하느냐!”
황포 차림의 노인이 초조한 듯 버럭 소리쳤다.
“부족합니다! 저렇게 어마어마한 상대를 두고 안심할 수는 없어요! 선황의 영혼과 선조의 머리는 저자를 죽여야만 우리 도고 일맥의 손에 완전히 들어오게 될 겁니다!”
이내 도고 황존은 살기 어린 눈빛을 번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