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50
두 번째로 나타난 거대한 도마뱀은 백옥처럼 하얀 빛이었다. 녀석은 안개 밖으로 나오자마자 혀를 날름거리더니 서늘한 기운을 뿜어내면서 뱀 흉수와 함께 한제의 오행진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음으로는 여섯 개의 날개가 달린, 사마귀처럼 생긴 흉수가 나타나 여섯 극도의 문양을 향해 돌진했다.
마지막으로 나타난 것은 구더기처럼 생긴 흉측한 모습의 흉수로 그 비취색 몸에서는 끊임없이 진득진득한 점액이 흘렀다. 머리에는 두 개의 촉수가 달려 있었는데 각 촉수 끝에는 아름다운 여인의 머리가 있었다.
이 흉수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두 촉수 끝에 달린 여인의 머리는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면서 한제를 노려보았다. 동시에 이 흉수는 한제에게로 달려들었다.
도고 국사
한제는 그 기이한 구더기 같은 흉수가 다가오자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뒤로 거대한 도고의 허상이 나타났다. 동시에 한제는 미간과 두 눈동자에서 총 스물일곱 개의 반점을 번득이면서 주먹을 휘둘렀다. 도고의 허상도 주먹을 뻗었다.
콰쾅!
굉음과 함께 한제의 주먹에 맞은 구더기 흉수는 몸을 바르르 떨면서 안개 속으로 떠밀려 들어갔지만 눈 깜짝할 사이 다시 튀어나왔다. 조금의 충격도 받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때, 오행진신을 공격하던 두 마리의 흉수가 동시에 절규했다. 난데없이 나무로 이루어진 듯한 거대한 두 개의 손이 나타나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몸을 가진 흉수를 짓누르면서 뭉개버린 것이다.
백옥처럼 하얀 도마뱀 흉수는 불바다로 뒤덮여 있었다. 짙은 화염의 기운을 품고 있는 불바다의 위력에 도마뱀은 끊임없이 비명을 지르며 안개를 향해 물러났다.
한편, 여섯 극도로 이루어진 문양은 여섯 개의 날개가 달린 사마귀 흉수가 달려든 순간 돌연 폭발하면서 거대한 손을 형성하더니 이 흉수를 움켜쥐어 단숨에 으스러뜨렸다.
한데 기이하게도 그와 동시에 안개 속에서 방금 전 으스러진 흉수와 똑같이 생긴 사마귀 흉수가 튀어나왔다. 이 흉수는 안개 속에서 튀어나오자마자 허공에서 나타난 대량의 수증기에 휩싸였다. 수많은 물방울은 마치 예리한 검처럼 순식간에 사마귀 흉수의 온몸을 관통했다.
그 무렵, 한제의 주먹에 밀려났다가 다시 튀어나온 구더기 흉수는 노란 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한 알 한 알의 모래알로 이루어진 노란색 빛은 한제의 오행진신 중 흙 본원의 힘이었다.
흙의 본원은 순식간에 구더기 흉수의 몸을 칭칭 에워싸 흙으로 만들어진 조각상처럼 변해갔다. 그리고 이 조각상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려 산산조각이 났다.
오행진신과 여섯 극도의 힘은 다섯 마리 흉수를 제압하기에 충분했다.
눈을 번득이던 한제는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러자 뒤쪽에 나타났던 거대한 도고의 허상이 진짜처럼 실체화됐다.
도고는 곧장 성큼 돌진하면서 안개의 정중앙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그 주먹은 안개에 닿은 순간 뭔가에 가로막힌 듯 바르르 진동했고 동시에 여덟 개의 다리가 달린 거대한 바다 흉수가 안개 속에서 떠오르듯 나타났다. 여덟 개의 촉수 같은 다리는 도고의 팔을 칭칭 옭아맨 상태였고 입으로는 날카로운 쉭, 쉭 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뒤이어 또 다른 흉수 세 마리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거대한 붕새처럼 생긴 흉수는 거대한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로 솟아올랐고 사방을 보랏빛으로 물들이며 나타난 거대한 보라색 봉황은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마지막 흉수는 인간 같았으나, 머리가 두 개나 달린 거인이었다. 녀석은 불끈 쥔 두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퍽퍽 두들기면서 입을 쩍 벌린 채 튀어나와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총 아홉 마리의 흉수가 한제의 진입을 막으려 든 것이다.
‘열 번째 흉수도 있을 것이 분명해!’
한제는 차게 웃으며 왼손으로 하늘에 떠 있는 붕새 흉수를 가리켰다. 그러자 붕새 주위의 공간이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듯했고 무언가가 그 공간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이는 고조의 손짓에 담긴 위력이었다.
동시에 한제는 살육 천둥번개의 진신을 소환했다. 머리가 검은색으로 변한 진신은 하늘을 뒤덮을 듯 강력한 살육의 기운을 발산하며 잔인한 미소를 지었고 두 눈은 음산하고 무정한 빛으로 번득였다.
그렇게 한 걸음 내딛는 사이, 진신은 수많은 검은색 실들로 흩어지면서 곧장 보라색 봉황을 향해 뻗어 나갔다.
“캬아아!”
수많은 검은 실들로 뒤덮인 봉황은 비명을 내지르면서 터져버렸고 그 안에서 튀어나온 검은 실 한 가닥은 살육 천둥번개의 진신으로 돌아왔다.
혀를 살짝 내밀어 입술을 핥은 진신은 곧장 다음 흉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홉 번째 흉수인, 두 개의 머리가 달린 거인은 이미 한제에게서 수백 척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르러 있었다. 한제는 그 흉수로부터 짙은 비린내와 잔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죽으려고 환장을 하는구나!”
그의 눈에서는 살기 어린 빛이 번득였다. 이미 오행진신과 살육 천둥번개의 진신을 내보내 허상의 본원만 남아 있는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고작 이런 흉수 하나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한제는 선강 대륙에서 한 번도 사용된 적 없던 고족의 최강 신통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세 고족이 파악하고 있는 모든 신통술을 통틀어 가장 강력하고 충격적인 구명 신통술이었다.
두 개의 머리를 가진 거인 흉수가 달려든 순간, 한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낮은 기합을 내질렀다. 그러자 그의 몸은 펑,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눈 깜짝할 사이 불어나 단숨에 1천 척에 달하게 됐다.
도고 진신!
선강 대륙에서 도고 진신을 드러낸 것은 처음이었다. 거대한 몸과 두꺼운 팔, 강건한 다리에서는 아주 오래된 기운이 풍겼고 온몸을 가득 채우다시피 한 어두운 문양은 매우 신비롭게 느껴졌다.
“꺼져라!”
고족 중 누구도 도고 진신을 쉬이 드러내려 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 상태에서 손상을 입으면 수준에 아주 큰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전장에서 쓰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은 몸이었다.
한제의 키는 지금 1천 척에 달했지만 한계는 아니었다.
한제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거인 흉수는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고함을 내지르며 마주 주먹을 날렸다.
퍼펑!
두 주먹이 충돌하자마자 거인 흉수는 폭발하듯 터져버리고 말았다.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한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곧장 안개에 발을 들이면서 몸집을 한 번 더 키웠다. 이제 그의 키는 7, 8천 척에 이르렀지만 이 역시 한계는 아니었다.
거대한 주먹이 안개를 향해 뻗어 나갔다. 한데 그 주먹이 안개에 닿으려던 순간, 안개에서는 하늘을 뒤흔들 듯한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웅!
고막을 진동시킬 정도로 요란한 소리에 안개는 마구 꿀렁거렸고 한제의 오행진신과 살육 천둥번개의 진신에 맞서 싸우고 있던 아홉 마리의 흉수는 안개로 터져버리면서 꿀렁거리고 있는 짙은 안개로 되돌아왔다.
꿈틀거리던 안개가 빠른 속도로 응집돼 수축하는 사이, 한제의 주먹이 꽂힌 곳 근처에서는 키가 8천 척에 달하는 거대한 흉수가 튀어나왔다. 날개를 퍼덕이며 모습을 드러낸 흉수는 겹눈을 가진 거대한 파리였다.
녀석은 한제의 주먹을 향해 곧장 달려들어 몸통박치기를 했다.
콰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충돌한 순간, 한제는 몸을 바르르 떨며 고개를 숙이더니 두 눈을 기이하게 번득였다. 자신의 주먹과 부딪힌 파리 흉수가 나가떨어지는 동안 안개가 주위로 퍼져나가면서 중앙에 가부좌를 튼 노인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천운자! 역시 너였구나!”
★ ★ ★
폐허가 된 민둥산 안. 거대한 진을 뒤덮은 안개가 흩어지면서 드러난 진 중앙의 인영은 온몸으로 열 가지 색채의 빛을 번득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빛은 짙지 않았기 때문에 한제는 그 인영을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천운자와 매우 닮은 이 노인을 다시 살핀 한제는 그가 또 다른 누군가와도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이한제, 또 만나는구나.”
노인은 빙그레 웃었다. 그의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탐욕의 미소 같기도 추억에 잠긴 웃음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두 눈 깊은 곳에서는 숨겨진 두려움도 읽어낼 수 있었다.
“천운자라고 불러야 하나? 아니면 칠채선존이라 불러야 하나?”
한제는 8천 척에 달하는 거대한 몸으로 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노인의 모습은 칠채선존과 천운자를 겹쳐놓은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난 아주 많은 이름으로 불렸지. 어쨌든 지금은 천운자라고 불리는 것이 좋겠군.”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자신이 깔고 앉은 진을 내리쳤다.
그러자 거대한 진이 다시 가동되면서 기이한 빛을 발산했다. 눈부신 빛은 주위를 맴돌면서 줄기줄기 힘을 확산시켰다. 이에 거대한 몸집의 한제 역시 몇 걸음 뒤로 밀려났다.
“전송진!”
한제가 두 눈을 번득이며 외쳤다. 금제에 대해 잘 알고 있던 그는 저 진이 전송진임을 단박에 알아차린 것이다.
“안타깝게도 네가 죽인 사람의 수가 부족하구나!”
가부좌를 튼 노인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제는 입을 꾹 다물었다.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질문을 하는 대신 진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콰쾅!
강력한 도고의 육신에 어마어마한 힘이 담긴 주먹이 닿자 전송진에서는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한제는 한 줄기 어마어마한 반동을 느꼈다. 그의 주먹 또한 펑, 펑 소리와 함께 곧장 튕겨나갔지만 전송진에는 작은 흠집조차 남지 않았다.
“넌 이 진을 파괴할 수 없다. 내 계획을 막을 수도 없어! 난 이날을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점차 기이한 빛으로 물든 노인의 두 눈에는 동시에 탐욕과 두려움의 빛 또한 어려 있었다. 한제는 이전에 천운자에게서 그러한 눈빛을 본 적이 있었지만 당시는 지금처럼 또렷하지는 않았다. 이는 아마도 한제가 대천존에 이르렀기 때문일 터였다.
“천운자는 이미 죽었고 칠채선존의 혼과 백은 흩어져 사라졌다. 넌 대체 누구냐!”
한제는 낮게 호통치듯 외치며 다시 몸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그의 몸은 눈 깜짝할 사이 1만 척 이상으로 불어났고 그 상태로 내지른 소리는 바람과 구름의 기색을 변하게 했다. 동시에 한제는 발을 들어 진을 짓밟으려 했다.
콰쾅!
굉음이 고막을 찢을 듯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한제는 발이 진에 닿자마자 강력한 반동에 경련하며 뒤로 밀려났다.
“내가 누구냐고? 으하하핫!”
노인은 고개까지 젖히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나를 제외한다면 단 한 사람밖에 없다. 그리고 머지않아 너도 알게 될 날이 올 게다!”
진은 갈수록 격렬하게 번득였고 웅웅 하는 소리와 함께 진동하기 시작했다.
‘대체 어떤 전송진이기에 대지까지 뒤흔든단 말인가!’
한제의 눈빛이 서늘하게 번득였다. 눈앞의 노인이 천운자든 칠채선존이든 상관없었다. 어느 쪽이든 모완의 잔혼을 빼앗아 간 장본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한제는 반드시 상대를 죽여야만 했다.
전송진이 점점 더 격하게 가동되는 것을 본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러자 그의 체내에서 우렁찬 소리가 울리며 푸른 혈관이 울룩불룩 튀어나왔다. 심지어 그의 얼굴 위로도 또렷하게 핏줄이 드러난 채 꿈틀거렸다. 덕분에 한제의 모습은 매우 무시무시해 보였다.
“하앗!”
한제는 기합을 내지르며 다시 몸을 부풀렸다. 이번에는 단숨에 10만 척에 이를 정도로 거대해진 그는 세상에 우뚝 섰다. 하늘과 땅을 뒤흔들 정도로 거대해진 한제에게 지면의 진은 개미보다도 작아 보였다.
두 눈으로 무궁무진한 은색 빛을 번득이던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올려 격렬하게 빛을 뿜어내고 있는 진을 향해 다시 한번 주먹을 날렸다.
그 주먹은 반경 10만 리 안의 모든 힘을 그대로 뽑아내 흡수하며 진을 향해 내리 떨어졌다.
진의 중앙에 가부좌를 튼 채 고개를 들어 이 광경을 바라보는 노인의 표정은 기이했다. 허나 조금도 당황하거나 겁먹은 기색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