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53
이 인영은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저 멀리 어딘가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태고 신경! 저곳이라면 저술을 완벽하게 제거하고 내 수준을 높일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 ★ ★
자양종. 두 명의 귀여운 소녀는 폐관수련 중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선조의 눈알은 기이한 빛을 번득이며 두 소녀를 하나로 연결하고 있었다.
동시에 눈을 뜬 두 소녀는 또한 동시에 같은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폐관수련을 하고 있는 공간의 벽 너머 어딘가를 내다보고 있는 듯했다.
★ ★ ★
그 외에도 선족 구역의 강자들과 고족 구역의 강자 극고 일맥의 대천존과 시고 일맥의 대천존 역시 태고 신경이 열리려는 조짐을 느꼈다.
일찍이 이상을 알아차린 현라는 한제가 향했던 황량한 산과 계속해서 변하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심지어 도고 황궁 지하로 돌아갔던 성황조도 다시 현라 곁에 나타나 놀란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태고 신경이 예정보다 일찍 열리려는 모양이군!”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무거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 ★ ★
고족 구역, 세 고족 구역을 연결하는 중심 구역의 고도산 꼭대기 탑. 안개 속에 모습을 감춘 인영은 창가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완전히 열리려 하는군. 난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날, 나로서는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됐지.”
흐릿한 인영은 씁쓸한 눈빛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수백 년이 지난 후 무량 천벌⋯⋯. 천도의 수감자는 생을 거듭하며 셀 수 없이 많은 벌을 받아야 한다. 깊은 지옥에서 떠나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수련의 길을 걸어라.”
흐릿한 인영이 중얼거렸다.
★ ★ ★
선강 대륙 하늘이 여덟 번째로 어두워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 무너진 민둥산 상공에 마지막 남은 검은 회오리도 사라졌다.
하지만 드넓은 바다에는 여전히 여덟 개의 거대한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이 기둥들은 거친 파도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여덟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범위 안의 바닷물은 점점 안개로 변해가고 있었으나 기둥 너머의 바다는 그대로였다.
무너진 민둥산 아래의 진 중앙. 도고 국사는 매우 진중하게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고 진을 두드리면서 기이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마치 수많은 사람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한데 합쳐놓은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게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데 그 소리를 듣는 순간 한제의 두 눈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짝 번득였다.
“천도의 수감자는 생을 거듭하며 셀 수 없이 많은 벌을 받아야 한다. 깊은 지옥에서 떠나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모든 생명은 영원히 앞으로 나아가며 현생을 풀어야 한다. 하늘의 의지에서 벗어나고 삶의 길을 얻어야 한다. 수련의 길을 걸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도고 국사가 말했다.
그 순간, 진이 무궁무진한 빛을 발했고 진 주위로 거대한 그물이 나타났다. 한제가 뚫고 나갔던, 공간과 공간 사이의 경계 역할을 하는 그물이었다. 한데 진에서 끊임없이 번득이는 빛에 의해 좍좍 갈라진 그물에는 균열이 일어났다.
도고 국사가 뭘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선강 대륙으로 옮겨지고 있는 것이었다.
폐허가 된 민둥산 아래에 있던 진은 그저 투영된 허상에 불과했다. 그런 진에 실질적인 타격을 입히기 위해 한제는 어마어마한 힘을 들여 공간 사이의 경계를 뚫었어야 했다. 한데 지금, 이 진은 한제가 사용했던 것과 같은 방법을 이용해 이 공간으로 옮겨졌다. 덕분에 허상에 불과했던 진은 실체가 됐다.
진과 함께 살육 진신도 따라 나왔다. 이제 진신과 본체가 같은 공간에 있게 된 셈이었다.
진이 경계를 관통해 옮겨진 순간, 진 위의 도고 국사는 낮은 기합을 내질렀다. 그러자 진에서 발산된 열 가지 색채의 빛이 하늘로 뿜어져 나갔다. 멀리서 보면 아홉 번째 기둥이 솟아오른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살육 진신은 뒤로 물러나더니 한제의 본체로 돌아와 융합했다. 이어서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진에서 발산된 빛 근처에 이르렀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빛기둥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 안에 담겨 있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무시무시한 힘이 느껴졌다.
“아홉 번째 기둥, 태고 신경을 열어라!”
빛기둥 안에서 도고 국사가 외치자 빛기둥은 끊임없이 위로 솟으면서 선족 구역과 고족 구역 사이의 바다로 향했다.
잠시 후, 멀리서 날아온 빛기둥이 각 바다에 솟아 있던 여덟 개의 기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하늘과 땅이 진동하고 바람과 구름의 기색이 변하면서 하늘에는 수많은 파문이 일어나 끊임없이 퍼져 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 선강 대륙 전역의 하늘이 파문으로 뒤덮였다.
하늘에 나타난 아홉 번째 기둥은 천천히 아래로 내려와 여덟 개의 기둥 중앙에 안착했다.
그 순간, 이곳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던 모든 이들은 형용할 수 없는 충격에 심신이 진동했다. 드넓은 바다의 바닷물이 선강 대륙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우렁찬 소리를 내며 솟구쳐 올랐기 때문이었다. 마치 거대한 손이 강력한 신통술로 바닷물을 하늘로 띄워 올리고 있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허나 고도 대천존도 이 정도로 거대한 바다를 들어 올리는 신통술을 발휘할 능력은 없었다.
바닷물이 하늘로 떠오르면서 그 아래로 움푹 파인 거대한 구덩이가 드러났다. 수많은 해초로 뒤덮인, 울퉁불퉁하고 깊은 구덩이는 영겁의 세월 동안 한 번도 햇빛을 본 적이 없는 해저 세계였다.
바닷물은 계속해서 떠올라 곧 선족 구역과 고족 구역의 지면보다 더 높은 곳에 이르렀다.
넓고도 깊은 바닷물은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상승해 이제는 바닷물과 하늘을 구별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때였다. 드넓은 바다에 담겨 있던 바닷물은 반 바퀴를 돌아 수직으로 세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바닷물의 깊이는 너비가 너비는 깊이가 된 상태였다. 그야말로 기이하고 신묘한 광경이었다.
아홉 개의 기둥은 수직으로 세워진 바닷물의 중심에 있었다.
고족 구역과 선족 구역 사이를 가로막은 거대한 장벽 같은 바닷물은 고개를 들어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 충격적인 광경에 하늘이 뒤집힌 것 같다는 착각을 느낀 사람도 적지 않았다.
수직으로 선 바닷물은 중앙의 아홉 기둥을 에워싼 채 회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느릿했으나 점점 빨라져 이내 날카로운 바람 소리까지 들려왔다. 하늘과 땅을 잇는, 바닷물로 이루어진 폭풍 같았다.
그 폭풍 중앙의 아홉 기둥이 빛을 발하면서 거대한 문을 하나 형성하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허나 그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안타깝게도 네가 죽인 사람숫자가 부족하다. 충분했다면 문을 열 수도 있었을 텐데… 이제는 5백 년을 기다려야만 문을 열 힘을 모을 수 있어. 그러니 이한제, 5백 년 후 태고 신경에서 다시 만나자!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 너 또한 모든 진상을 알게 될 것이다!”
도고 황성 가장자리의 무너진 민둥산 안, 진이 가동되는 사이 그 가운데에 가부좌를 튼 도고 국사의 인영이 흩어져 사라지기 시작했다.
“동림종을 파괴한 건 너지?”
한제는 흩어지고 있는 인영을 바라보다가 불쑥 물었다.
하지만 인영은 호탕하게 웃으며 진과 함께 흩어져 사라졌고 한제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이제 이곳에는 폐허가 된 산만이 남아 있었다.
한제는 한참이나 폐허가 된 산을 바라보다가 돌아서서 몸을 훌쩍 날리더니 눈 깜짝할 새 사라졌다.
그로서는 더 이상 도고 일맥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제 그에게 있어 이곳은 죽음으로 관계를 청산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따를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는 곳일 뿐이었다. 비록 스승이라 부를 수는 없었지만 그는 한제의 마음속에 영원한 스승으로 남을 터였다.
도고 황궁에서의 이야기는 시고 일맥과 극고 일맥 사자들의 입을 통해 점차 고족 구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허나 이 엄청난 사건도 예정보다 빨리 열릴 조짐을 보인 태고 신경으로 인해 묻혀버렸다. 이러한 조짐에 고족 구역뿐만 아니라 선강 대륙 전역의 시선이 집중됐다.
고족 구역과 선족 구역 사이의 드넓은 바다는 거대한 구덩이가 되어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구덩이는 썩어 들어가는 냄새를 풍겼고 중앙에서는 바닷물이 수직으로 떠올라 회전하면서 끊임없이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구 회오리치는 바닷물 내부로 아홉 개의 거대한 기둥으로 이루어진 문이 보일 듯 말 듯했다.
이러한 광경에 선강 대륙의 거의 모든 강자들은 가까이서 이 어마어마한 광경을 관찰하다가 하나둘 떠나갔다.
구제 역시 이곳을 찾아왔다. 그의 수준으로는 폭풍처럼 회전하는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고 보일 듯 말 듯한 문을 여는 것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는 해자의 예측을 통해 5백여 년 후에는 태고 신경이 열리게 되리라 짐작했다. 더욱이 이전과는 다르게 완전히 열리게 될 터였다.
도일과 무봉, 현라를 포함한 몇몇 대천존이 속속 이곳에 이르렀지만 이들 역시 회오리치는 바닷물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다가 떠나갔다.
얼마 후, 고도산에서 세 고족 대천존과 황족의 심신으로 전언이 전해졌다. 태고 신경은 5백 년 후에 열리게 되어 있으니 더 이상 관찰하러 가지 말고 그때까지 전쟁 준비에 힘쓰라는 것이었다.
선족 구역에서도 조성 제산의 연합 선족 황궁으로부터 교지가 내려졌다. 태고 신경은 5백 년 후에 열리게 될 것이니 그동안 72개 주의 모든 종파는 전력을 다해 강자를 길러내라는 것이었다.
이에 천존과 약천존 수련자들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들에게 태고 신경은 잘하면 대천존에 등극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허나 아직 5백여 년 후의 일이었기에 이내 선족 구역에서는 폭풍전야처럼 암류(暗流)가 흘렀다.
선족과 고족을 막론하고 태고 신경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자들은 5백 년 후 태고 신경이 열리는 순간은 엄청난 위험이기도 함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전쟁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족과 선족은 각자 그런 미래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5백 년이라는 시간은 일반인에게는 영원보다도 길었지만 태고 신경에 들어갈 강자들에게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내일
도고 구역과 시고 구역이 맞닿은 지역. 우기를 맞은 이곳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줄기는 굵지 않았지만 그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빗방울은 나뭇잎을 두들기고 바닥으로 떨어져 작은 개울로 흘렀다.
어스름하고 흐린 하늘 아래, 저 멀리 높지 않은 산봉우리 위에는 백의를 입은 청년이 종이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 곁에서는 한 여인이 청년과 함께 저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게 당신과 제 체내의 잔혼인 모완이라는 여인의 이야기군요.”
조용히 입을 연 여인은 내리는 비로부터 시선을 거두더니 고개를 돌려 백의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는 도고 황궁에 쳐들어가 도고 황존을 죽이고 혼자만의 힘으로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그녀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사람이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끌려온 그녀에게 사내는 더없이 부드럽고 상냥하게 대해주었고 여인도 곧 진심으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사내는 그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제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여인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그 여인이 아니라 여인의 체내에 담긴 잔혼을 향한 눈빛이었다.
도고 황궁에서의 그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지도 1년이 넘게 지난 시점이었다. 송세정은 연약했기에 한제로서는 속도를 높일 수가 없었고 이곳에 이르기까지 1년이 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데 기이하게도 도고 황존의 죽음에 대해서도 고도산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고도 대천존에게 한제의 처벌을 부탁해야 한다던 도고 일맥 일부의 주장도 무시됐고 이내 이런 말들조차 자취를 감추었다.
묵묵히 비 내리는 전경을 바라보던 여인은 한참 뒤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