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58
몸을 바르르 떨며 찬 숨을 들이마신 송천은 벌떡 일어나더니 오른손으로 곁에 있는 치만을 붙잡고는 몸을 훌쩍 날렸다. 그와 동시에 방금 전까지 그가 앉아 있던 곳은 콰쾅 하고 무너져 내렸다.
나후군. 대흉의 혼 나후라가 한제에게 흡수되어 살육의 혼으로 융합된 그때, 계도는 몸을 바르르 떨면서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그 피가 바닥에 뿌려진 순간, 체내의 무형의 봉인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계도 황자는 두 눈이 기이하게 번득였다. 그는 자신의 체내에서 한 줄기 힘이 깨어난 것을 느꼈고 그 힘이 온몸을 채우는 동안 두 눈을 감았다.
★ ★ ★
대전 밖 상공. 흑발 한제는 시고 황성 원시산으로 향했던 시선을 거두었다. 다만 그 눈빛은 여전히 냉랭하고 무정했다.
그의 곁에는 오색찬란한 빛을 번득이는 오행 진신이 서 있었다.
두 진신의 생김새는 똑같았지만 풍기는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한제가 평생 쌓아온 수준을 대표하는 오행 진신은 부드럽지만 강한 위압감을 발산했고 한제가 평생 행해온 살육을 대표하는 살육 진신은 무정하고도 냉랭했다.
“돌아와라!”
잠시 후, 한제의 덤덤한 목소리가 대전 밀실에서 울려 퍼졌다. 그러자 오행 진신과 살육 진신 모두 흩어져 사라졌다. 두 진신은 어느새 한제 앞에 이르러 있었다.
한제는 매우 진중한 눈으로 두 진신을 바라보았다.
“1백 년의 수련 끝에 살육 진신을 응집해내는 데 성공했다. 이제는 내 본체와 융합했을 때 내 수준이 얼마나 더 높아질지 확인할 차례로군. 만약 수준이 한 번 더 높아진다면 선황 연도진의 체내에 깃든 저술의 힘을 제거하고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한제는 영혼의 화염에 휩싸인 채 지난 1백 년 동안 불살라지고 있던 선황의 혼으로 시선을 돌렸다. 번득이는 금빛 안에 드러난 회색 빛은 더 이상 퍼지지는 않았지만 갓난아이 주먹만 한 덩어리로 응집돼 선황의 혼에 남아 있었다.
“다른 수련자들과 달리 내 수준은 경지의 구분에 따라 높아져 왔다.”
한제는 순간 기대감이 치솟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정말로 수준이 높아진다면 그래서 공겁기 절정에 이른 여기서 한 걸음 더 내딛는다면 어느 정도에 이르게 될지 너무도 궁금했다.
“대천존일까? 아니면⋯⋯?”
이에 그는 진중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니면 네 번째 단계일까? 한데… 세상에 네 번째 단계라는 것이 정말 있긴 한 것인가? 어쩌면 선조와 고조가 네 번째 단계였을지도…”
한제는 부풀어 오르는 기대감을 애써 억누르며 오행 진신을 가리켰다. 그러자 오행 진신은 곧장 다가와 한제의 본체와 융합됐다. 그러자 한제의 수준은 즉각 공겁기 절정에 이르렀다. 1백 년의 폐관수련을 거친 결과 그의 정신도 육신도 모두 최상에 이른 상태였다.
뒤이어 흑발의 살육 진신을 바라보던 한제는 결단을 내린 듯 단호한 눈빛으로 손을 들었다. 그가 가리키자 살육 진신은 곧장 고개를 쳐들더니 무정한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다가 다가왔다.
눈 깜짝할 사이 한제의 근처에 이른 살육 진신은 가부좌를 틀고 있는 한제와 중첩되더니 천천히 융합되기 시작했다.
융합이 진행되는 사이 한제의 눈빛은 점점 흐릿해졌고 체내의 수준은 폭발적으로 증폭되기 시작하면서 하늘과 땅의 기색을 변화시켰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증폭에 한제의 수준은 공겁기 절정 이후의 기이한 경지를 향해 솟구쳐 올랐다.
어느새 한제의 수준은 순식간에 일반적인 기준에서의 천존을 돌파해 약천존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고 나서도 이어진 증폭은 멈출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제의 눈빛은 급기야 의식을 잃으려는 것처럼 흐릿해졌다. 동시에 모든 것이 허상처럼 느껴졌다.
그의 수준은 약천존의 경지마저 관통하고 또 다른 경지, 대천존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살육 진신과 한제 본체는 융합을 거의 마친 상태였다. 한데 그의 눈에는 은빛과 함께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혼란의 빛이 드러나 있었다.
쾅!
마지막으로 무언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한제는 마치 영혼이 껍데기로부터 분리되어 육신의 제한을 뚫고 밀실 위로 떠오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보게 된 하늘은 푸르지 않았고 해와 달, 별도 없었다. 오직 한제의 영혼뿐이었다.
한제는 대지를 바라보았다. 대지 역시 하얀 안개로 뒤덮여 있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뒤이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세밀하지만 나름의 규칙을 가진 줄기줄기의 얇은 선으로 뒤덮여 있었다. 선마다 각각의 규칙이 담겨 있었다.
“이것이 하늘⋯⋯.”
한제의 멍한 눈이 보고 있는 것은 하늘이 아니라 그 하늘을 메운 하나하나의 얇은 선들이었다. 보이는 것은 너무나도 빽빽해 그 끝이 보이지도 않는 선들뿐이었다.
혼란스러워진 한제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만약 자신이 그 하늘의 선들을 밟을 수 있다면 공겁기 이후의 경지를 향해 한 걸음 내딛을 수 있을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 걸음은 도약이자 탈변, 번데기가 나비가 되기 위해 고치를 찢는 순간이었다. 그런 느낌은 마치 영혼 깊은 곳에서 기인하는 것처럼 강렬했고 점점 강해졌다.
한제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 눈에는 아직 혼란한 빛이 어려 있었지만 단호함과 결연함이 더 강했다.
이어서 더는 아무 생각 하지 않고 무궁무진한 선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자신조차도 주위를 또렷하게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한제는 그 얇은 선들에 몸이 에워싸이면서도 계속해서 전진했다.
인지할 수 없는 시간이 흐른 후, 한제는 무궁무진한 선들로 이루어진 바닷속에서 어떤 다리를 보게 됐다. 총 아홉 개의 다리였다.
그리고 저 멀리, 아홉 번째 다리 뒤로 펼쳐진 허상의 장막 안으로는 또 다른 세상이 보였다. 그 안으로 언뜻 스쳐 가는 인영도 볼 수 있었지만 자세히 살필 수는 없었다. 너무도 흐릿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다리 아래로 거대한 비석이 하나 보였다. 그 비석에는 세 개의 큰 글씨가 새겨져 있었는데 난생처음 보는 문자였지만 그것을 본 순간 그의 머릿속이 번득였다.
“답천교(踏天橋)!”
한제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또한 비석에는 작은 글자로 한 줄의 글귀도 적혀 있었다.
답천의 길, 공멸도(空滅道), 불후의 혼, 중생의 숭배!
한제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세상에 정말로 네 번째 단계가 존재한다면 그 이름은 답천(踏天)일 거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한참 뒤에야 눈빛이 점차 또렷해졌다. 이어서 또다시 한참을 침묵하더니 고개를 번쩍 쳐들며 첫 번째 다리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첫 번째 다리는 가까워 보였지만 실제로는 몇 시진을 들인 뒤에야 닿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이른 뒤에야 그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리는 실체가 없는 허상에 불과했고 볼 수는 있지만 신식으로는 감지할 수 없었다. 또한 한제는 이 다리에서 풍기는 아주 오래된 기운을 통해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답천교⋯⋯.”
한제는 손을 들어 다리를 가볍게 쓸어보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다리를 그대로 지나쳐갔다.
다소 놀란 그가 자세히 살펴보니 그의 손은 수정 같은 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흘러넘칠 듯한 생기가 어린 이 빛은 한제의 손에서 날아올라 다시 첫 번째 다리로 돌아갔다.
혼 108개의 애원
한제는 1각 동안 눈을 감은 채 서 있다가 다시 눈을 뜨더니 첫 번째 다리 위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이 다리에 닿은 순간, 한제는 이곳에 이르러 있는 자신의 영혼이 승화하여 수많은 세상의 규칙을 또렷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을 느꼈다. 난생처음 접하는 느낌에 그는 한동안 압도되었다.
한참 뒤에야 그는 긴 숨을 토해냈고 기이한 눈으로 다시금 다리를 살폈다.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첫 번째 다리 끄트머리에 이른 순간, 이 세상 규칙의 변화는 이미 그의 심신에 낙인이 찍힌 것처럼 남았다.
한제는 고개를 들어 먼 곳에 자리한 아홉 번째 다리 뒤쪽으로 펼쳐진 흐릿한 장면을 바라보았다. 아까 전보다는 약간 더 또렷해진 그 안에는 새가 노닐고 꽃향기가 진동하는 공간이 펼쳐져 있었지만 인영은 여전히 흐릿해 심지어는 몇 명인지도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한제는 진중한 얼굴로 첫 번째 다리에서 내려와 두 번째 다리를 향해 나아갔다. 만약 자신이 이 아홉 개의 다리를 건너가 그 뒤에 자리한 장막 속 광경을 또렷하게 본다면 세 번째 단계를 돌파해 전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답천의 길에 발을 들일 수 있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첫 번째 다리와 두 번째 다리 사이 역시 가까워 보였지만 실제로는 아득히 멀었다. 아마도 며칠은 지났을 시간을 비행한 끝에야 두 번째 다리 앞에 이를 수 있었다.
이 다리는 첫 번째 다리보다 몇 배나 컸다.
한제는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다리에 첫 걸음을 내딛은 순간,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영혼이 무너져 내릴 것처럼 진동했다. 마치 그는 이 다리에 오를 자격이 안 되는 것처럼…
한제는 머리가 터지고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신식과 영혼이 분리되려 했고 대지를 뒤덮은 안개 너머로 어렴풋이 어떤 대륙이 보였다.
무척 낯익은 이대륙의 왼편은 72개의 주로 오른편은 36개의 군으로 나뉘어 있었고 중앙에는 거대한 분지가 있었다. 분지 위에 수직으로 세워진 바닷물은 회전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바닷물 안쪽으로는 아홉 개의 기둥이 하나로 이어져 문을 형성한 상태였다. 그 문은 아직 닫혀 있었다.
“답천⋯⋯ 난 지금 하늘을 밟고 있는 것인가.”
자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 채 아래의 대지를 바라보던 한제는 잠시 후 선족 구역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은 순간 72개의 주는 돌연 72마리의 흉악한 흉수가 되어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그중에는 천우도 녹색 마갈도 이전에 천존열에서 본 적이 있는 천외 흉수도 있었다.
이 흉수들은 한제의 존재를 감지한 듯 요란하게 포효했다. 한제는 그 포효로부터 또렷한 두려움을 읽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두려움 외에 다른 무언가도 담겨 있었다.
★ ★ ★
한제가 공겁기를 뛰어넘어 전설에나 나오던 다음 경지로 향하고 있는 그 무렵, 선족 구역은 지면이 경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각 주의 사당이 진동의 중심이었다.
진동은 갈수록 격렬해지면서 선족 구역 내 여러 강자의 시선을 끌었으나, 72개의 주가 모두 진동하자 이들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혼란스러워했다.
이들은 화들짝 놀라 날아오른 후에야 각자가 속한 주에 진압되어 있던 천외 흉수의 혼이 깨어나려는 듯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알게 됐다.
천외 흉수의 혼들은 대지가 진동할수록 포악해졌고 심지어 허상으로 나타나기까지 했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천우주의 거대한 천우였다. 천우주를 뒤덮고 잔뜩 격앙된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녀석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어려 있었지만 그보다는 애원의 빛이 더 강했다. 마치 하늘에 있는 기이한 존재를 향해 자신을 풀어 자유롭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처럼…
천우에 뒤이어 72개 주에 진압되어 있던 다른 천외 흉수의 혼들도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전설에 따르면 이미 죽은 영혼이 되어 있다던 이들은 허상의 상태에서도 두려움을 느끼며 애원하듯 포효를 내질렀다.
선족 수련자들은 각자의 주에서 나타난 이 충격적인 광경에 마치 거대한 재난을 맞은 것처럼 혼잡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도일종 도일 대천존의 어두운 얼굴 한쪽으로 약간의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의 눈앞에서는 산해주에서 나타난 거대한 나무의 허상이 날카로운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다.
“빌어먹을 저 천외의 요상한 나무는 이미 죽은 것 아니었던가! 어째서 영혼이 아직도 남아 있단 말인가! 설마… 조성 황궁에 제압된 연도비에게도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겠지?”
같은 시각, 북주의 무봉 또한 저 멀리 나타난 거대한 얼음 거인을 바라보며 은근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한편, 조성 제산의 구제 대천존 역시 뒷짐을 진 채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는 비교적 덤덤했지만 두 눈동자는 바짝 졸아들어 있었다.
“지하 궁전에는 별문제가 없습니다. 연도비는 여전히 잠든 채 72개의 천외 흉수 혼을 제압하고 있어요.”
가부좌를 틀고 있던 해자가 감았던 눈을 뜨며 구제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