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60
뒤이어 네 번째 답천교는 바르르 진동하면서 점점이 빛이 되어 흩어졌다. 그 빛들은 천천히 다가와 한제를 휘감으며 회오리쳤고 이로 인한 엄청난 흡입력이 한제의 인영을 삼키면서 그는 이 기이한 공간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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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강 대륙 고족 구역, 시고 구역의 나후군, 계도 황자의 행궁 밀실.
가부좌를 틀고 있던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두 눈에는 혼란의 빛이 어려 있었다.
이 무렵, 살육의 진신은 이미 그와 완전히 융합된 상태였다. 뒤로는 허상의 본원의 빛 덩어리가 떠 있었고 앞으로는 선황의 혼이 영혼의 화염에 휩싸인 채 제련되고 있었다.
밀실은 한없이 고요했다. 한제의 거친 숨소리만 울려 퍼질 뿐이었다.
“답천의 길, 공멸도(空滅道), 불후의 혼, 중생의 숭배⋯⋯ 아홉 개의 답천교 중 내가 건넌 것은 세 개… 네 번째 다리에서 멈추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한제의 눈에 어린 혼란의 빛은 점차 흩어져 사라졌고 그 자리에 결연한 빛이 차올랐다.
같은 시각, 고족 구역 고도산, 탑 꼭대기 층. 안개로 모습을 감추고 있는 인영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4백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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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족 구역. 혼란스러웠던 상황은 점차 안정되어가고 있었지만 이 사단이 일어난 실마리를 파악하고 있는 구제 대천존만은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었다. 좌선을 하는 동안에도 수시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의 눈에서 경외심과 갈망이 드러났다.
‘고도 대천존이 선강 대륙 최강자가 된 것은 분명 전설의 경지에 한 걸음을 내딛었기 때문이지. 난 언제쯤 그럴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요원하기만 하군.’
구제는 복잡한 표정으로 긴 한숨을 내뱉었다.
한편, 해자는 제산 꼭대기에 선 채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었다. 백의가 팔랑팔랑 날리는 동안에도 그녀의 얼굴에는 의혹이 어려 있었다. 점을 치는 동안 느꼈던 한 줄기 익숙함 때문이다. 구제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자신조차도 그저 착각일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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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족 구역, 시고 일맥 황성 밖의 원시산. 송천 대천존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복잡한 표정으로 먼 곳을 내다보고 있었다.
“스, 스승님⋯⋯.”
그 뒤쪽에서 치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닥쳐라!”
송천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제자의 말을 끊었다. 지금 그는 그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방금 전 고족 구역 전역에 일어났던 급격한 변화가 한제와 관련되어 있는지 고민하는 데 방해를 받기 싫었던 것이다.
믿기 힘들지만 만약 한제와 관련 있는 것이라면 일이 복잡해질 터였다.
“됐어. 가서 물어보면 될 것 아닌가!”
눈을 번득이던 송천은 오른손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그러자 세상의 힘이 사방에서 몰려들더니 요란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균열을 냈다. 그리고 그 균열에서 거대한 머리가 튀어나왔다. 푸른색을 띠고 두 개의 뿔까지 가진 고마의 머리였다.
전신이 검은 기운으로 뒤덮인 고마는 두 발을 뻗어 균열을 더 찢은 뒤 완전히 빠져나왔다.
“크아아아!”
키가 10만 척에 달하는 녀석은 균열 밖으로 나와 포효를 내지르더니 송천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런 고마를 번득이는 눈으로 바라보던 송천은 왼손으로 이마를 쳐 한 줄기 푸른 빛을 쏘아 보냈다. 그 빛은 고마의 미간으로 파고들어 사라졌다.
뒤이어 송천은 가부좌를 틀고는 눈을 감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고마는 음침한 안색으로 고개를 홱 쳐들더니 몸을 훌쩍 날려 다시 균열 안으로 들어갔다. 벌어진 균열이 닫히며 녀석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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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후군. 송천의 눈앞에서 고마가 사라진 순간, 한제는 침착한 눈으로 숨을 깊게 내쉬며 체내의 수준을 느껴보다가 미간을 살짝 구겼다. 자신이 어느 경지에 속해 있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이미 공겁기 절정은 돌파한 상태였지만 대천존은 아니었다. 그저 대천존의 경지가 눈앞에 와 있다고 느낄 뿐이었다. 허나 이 약간의 간극이 실제로는 뛰어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거리였다.
“반 발짝만 더 가면 답천이라⋯⋯.”
한제는 미간을 문지르며 1백 년이 넘도록 영혼의 화염에 제련되고 있는 선황의 혼을 바라보았다. 혼에는 갓난아이 주먹만 한 저술이 뭉쳐 있었다. 이는 지금 그의 수준으로도 제거하기가 쉽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선황의 혼 쪽으로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혼은 즉시 그의 손바닥으로 날아왔다. 이어서 그가 움켜쥐자 혼을 휘감고 있던 영혼의 화염은 손바닥 안에서 사라졌고 눈을 감은 선황의 혼만 남게 됐다.
한데 그 혼을 본 순간, 한제는 더 이상 힘들이지 않아도 선황의 혼에 담긴 저술의 위력을 제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사실 남은 저술의 위력은 얼마 되지 않았다. 당시 구제를 비롯한 다른 대천존들과 저술의 위력을 분담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 1백여 년간 제련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제의 수준으로는 영혼의 화염으로 1백 년은 더 제련해야만 그 위력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을 터였다.
흑, 백, 금!
한제는 왼손 검지를 뻗었다. 선황의 혼을 뚫고 들어간 손가락 끝에 회색 덩어리가 만져졌다.
“흩어져라.”
한제가 작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 순간, 밀실 안에는 왜곡이 일어났다. 수없이 많은 선이 어렴풋이 나타나 사방을 에워싸는가 싶더니 돌연 한제의 왼손 검지에 응집돼 선황의 혼 안에 있는 회색 덩어리로 주입됐다. 그러자 회색 덩어리는 바르르 진동하더니 빠른 속도로 흩어지다가 곧 사라졌다.
선조가 남긴 저술의 위력을 이토록 간단하게 제거하다니, 한제 자신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데 그때, 저술의 위력에서 벗어난 선황의 혼이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한제는 선황 연도진의 혼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내 눈을 뜬 연도진은 잠시 멍하니 한제를 보았으나, 이내 그 눈에는 분노와 원한이 들어찼다.
“이한제!”
동시에 한 줄기 원념이 심신으로 파고들었으나, 한제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선황 연도진은 꿈쩍도 않는 한제의 모습에 흠칫 놀랐고 한제는 그런 연도진의 혼을 오른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크아악!”
그 손짓에 강력한 힘 한 줄기가 선황의 혼으로 밀려들었고 이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선황 연도진은 완전한 죽음을 맞았다. 선강 대륙 아홉 태양의 하나라 불리는 대천존으로 선족의 황제였던 선황으로서는 너무도 원통하고 또 허무한 죽음이었다.
한 덩어리 안개가 된 선황의 영혼이 흩어지려 하자 한제는 왼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밀실 밖으로 거대한 선조의 머리가 하나 나타났다.
그 순간, 금색 빛이 사방으로 확산되면서 주위를 짙은 선기로 뒤덮었다.
“이 혼을 중심으로 융합하라!”
한제가 낮게 외치며 소매를 휘두르자 선황 연도진의 혼으로 이루어진 안개는 일곱 갈래로 나뉘어 밀실 밖으로 나가더니 선조의 머리를 향해 흘러갔다. 뒤이어 일곱 갈래의 안개는 선조 머리의 칠규로 스며들었다.
한제는 벌떡 일어나더니 1백여 년 만에 드디어 밀실 밖으로 나아갔다. 이어서 선조의 머리 앞에 선 그는 하늘을 향해 두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선조의 머리 뒤로 거대한 태양이 하나 나타났다. 흑백의 태양은 윤곽만 존재할 뿐 진정한 대천존의 태양처럼 실체화되어 있지는 않았다.
“지금 내 수준으로는 이 태양을 대천존 태양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연도진의 혼을 선조의 머리에 녹여 넣은 뒤 태양에 융합시킬 수는 있지. 그리 하면 내 대천존 태양은 완전히 응집될 터!”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초록색의 기운을 줄기줄기 선조의 머리에 쏘아 보냈다. 여기에 연도진의 혼까지 스며들면서 선조의 머리는 진동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강림한 위압감이 사방을 뒤덮었다. 심지어 아주 먼 곳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한제가 끊임없이 그려낸 결인에 선조의 머리는 점점 더 격하게 진동하면서 줄기줄기 균열을 드러냈다.
이 균열들은 곧 선조의 머리를 완전히 뒤덮었다. 허나 그럼에도 선조의 머리는 깨지거나 녹아내릴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한제는 소리 없이 중얼거리며 결인을 그리는 동안 입을 벌려 초록색 화염을 토해냈다. 이 화염은 곧장 선조의 머리를 에워싼 채 활활 타올랐고 선조의 머리는 그제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순간 한제의 흑백 대천존 태양이 녹아내린 선조의 머리를 감싸 흡수했고 강렬한 빛을 폭발시켰다. 하지만 머리가 녹아내리는 속도는 너무도 느렸고 점점 더 느려졌다. 그대로 멈춰버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과연 여덟 번째 다리를 건넌 선조답군. 죽은 지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머리 하나를 녹이는 데 이 정도로 힘이 들다니⋯⋯.”
한제가 중얼거렸다. 이런 선조를 누가 죽였을지에 대해서도 몇 차례 생각해봤으나 끝내 아무런 단서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허나 그래봐야 머리는 머리일 뿐이지.”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올려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흐릿한 하늘에 가느다란 선들이 수도 없이 나타났다. 대천존에 이르러야만 어렴풋이 느낄 수 있으나 이들로서도 통제할 수는 없는, 오직 첫 번째 다리를 건넌 후에만 세상 속에서 뽑아내 사용할 수 있는 선들이었다.
“고도 대천존이 다른 대천존들을 죽일 수 있었던 게 이것 때문이로군. 세상의 규칙을 통제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 대천존을 죽이는 것도 어렵지 않아!”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선조는 여덟 번째 다리를 건넌 사람이니 그의 머리를 내 대천존 태양에 융합시킬 수 있다면 강력한 법보가 되어줄 거야!”
그때였다. 10만 척 너머 하늘에서 돌연 쾅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큼지막한 균열이 벌어졌다. 뒤이어 그 안에서는 검은 기운으로 뒤덮인 거대한 고마의 머리와 그보다 더 거대한 몸뚱어리가 쑥 빠져나왔다.
허나 균열 밖으로 나온 고마는 그 순간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 체내에 신념을 주입해놓은 송천 역시 이곳의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는 표정이 급변했다.
그는 멀리 떨어져 있는 한제가 자신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여러 가닥의 선을 쥐듯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여러 가닥의 선으로 선조의 머리를 둘둘 감은 한제는 혀끝을 깨물어 피를 한 움큼 뱉어냈다. 이 피는 가느다란 선들을 따라 선조의 머리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