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61
그 순간, 선조의 머리는 쾅 하는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그러자 한제의 대천존 태양이 재빨리 이를 흡수했다. 이어서 흑백의 대천존 태양은 빠른 속도로 굳어지면서 세 번째 색깔인 금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이럴 수가! 세상의 규칙을 통제하고 있어!”
하늘의 균열을 찢고 나타난 고마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탄성을 내질렀다.
대천존은 하늘의 규칙에서 일어나는 변화 중 더듬어 알 수 있는 것은 그 가장자리에 불과했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강력한 신념으로 느껴지는 그 변화를 응집시켜 실체로 만들 수 있는데 이게 바로 대천존이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비밀이었다.
허나 그것은 허상을 실체로 변화시키는 것일 뿐, 한제처럼 세상의 규칙을 움켜쥐어 자신의 것으로 삼아 휘두를 수는 없었다. 한제는 세상의 규칙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세상의 규칙을 조종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는 송천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오직 고도 대천존만이 이와 비슷한 능력을 발휘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돼!”
한 줄기 신념을 거대한 고마에 녹여 넣은 송천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외쳤다. 큰 관심도 두지 않았던 한제가 한 차례의 폐관수련으로 이토록 놀라운 능력을 갖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조종을 받는 고마의 육신은 하늘의 균열 밖으로 빠져나온 순간 넋을 잃고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녀석의 머릿속은 텅 비어 버렸다. 유일하게 머릿속을 채운 생각은 방금 전 한제가 허공을 움켜쥐어 세상의 규칙을 통제하던 모습뿐이었다.
한제는 고마의 출현에 별다른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는 선조의 머리에만 집중했을 뿐이다.
머리는 방금 전 그가 내뿜은 한 움큼의 피와 세상의 규칙에 둘러싸여 이미 절반 이상 녹아내린 상태였다.
그렇게 녹아내린 부분은 모두 대천존의 태양에 흡수됐다. 이에 따라 태양에서 나타난 금빛은 점점 밝아졌다. 그렇게 세 가지 색을 드러낸 대천존 태양은 하늘에서 기이한 빛을 발했다.
선조의 머리는 눈에 띌 정도로 빠르게 줄어들어 금빛을 발산하면서 확연히 작아졌고 이제 머리가 아니라 한 덩어리의 눈부신 금빛처럼 보였다.
선조의 머리를 완전히 녹여내 모두 흡수한다면 한제의 대천존 태양은 진정한 대천존 태양에 이를 것이고 한제도 진정한 대천존이 될 터였다.
이는 선강 대륙 전역을 통틀어 고도 다음 가는, 두 번째로 강한 대천존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송천의 고마는 저 멀리 떨어져 찬 숨을 들이마시며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믿기 힘들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것은 현실이었다. 이를 자각한 순간 그는 떨리는 심신을 안은 채 최대한의 속도로 물러나 하늘의 균열로 돌진했다.
싸워보기도 전에 겁을 먹고 달아나다니, 대천존이 보낸 고마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처음의 기세등등함과 비교하면 더욱 초라해 보였다.
한데 고마가 막 균열로 파고들려던 순간, 얼음처럼 싸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냥 가려는 것인가!”
그 목소리에 고마는 움찔하더니 더욱 속력을 높였다.
허나 그때, 한제의 냉랭한 시선이 고마의 몸에 닿았다. 그러자 허공에서 가느다란 선들이 가닥가닥 나타나 고마를 둘둘 옭아맸다.
“으윽!”
고마는 덜덜 떨면서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 서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정신술!
한제는 일찍이 이 술법이 세상의 규칙과 관련이 있으리라 예측한 바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수준에 이르고 깊은 깨달음을 얻은 지금, 결인을 그리지 않아도 한 줄기 눈빛만으로도 이 술법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한데 그 눈빛에 멈춰버린 것은 고마 뿐만이 아니었다. 그 안에 깃든 송천의 신념 역시 바르르 경련하더니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크윽!”
시고 황성 밖 원시성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송천은 두 눈을 번쩍 떴다. 창백한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고마의 체내에서 응고되어 버린 신념은 급기야 그의 원신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원시진(原始陣) 가동!”
송천은 두 눈을 뜬 순간 낮게 외쳤다. 그의 외침에 원시산에 모여 있던, 송천을 따르는 시고 일맥 강자들이 흠칫 놀라더니 빠르게 날아올라 각자 진 위의 정해진 자리에 이르렀다.
“스승님⋯⋯.”
치만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매우 어두워진 스승의 안색에 바짝 긴장했다.
“닥쳐라! 네 황위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내가 어찌 원시진을 가동하려 하겠느냐!”
홱 돌아선 송천은 치만을 노려보며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끝내 실패한다면 1백 년 후 새로운 시고 황존에 등극할 이는 네가 아니라 계도가 될 것이다!”
송천은 분노가 절절히 느껴지는 목소리로 일갈하더니 곧장 하늘로 솟구쳐 올랐고 이어서 아래로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콰쾅!
우렁찬 소리와 함께 송천의 원신에서 한 줄기 빛이 튀어나와 그의 손으로 향했다. 거대한 도끼였다.
도끼는 얼룩덜룩 녹이 슬어 볼품없어 보였지만 송천의 손에 들어간 순간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려 퍼지더니 수없이 많은 녹색 잔혼이 튀어나왔다. 이 잔혼들은 송천의 주위를 맴돌았고 번득이는 녹색 빛에 휩싸인 송천의 모습은 괴이해 보였다.
★ ★ ★
나후군. 한제는 계도 황자 행궁의 상공에서 하늘을 향해 우렁찬 포효를 내질렀다.
포효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자 바람의 기색이 변하면서, 거의 녹아내려 눈부신 금빛 덩어리가 된 상태였던 선조의 머리가 마침내 마지막 융화를 시작했다.
머리는 잠시 후 주먹만 해졌고 그 뒤의 대천존 태양은 완전히 실체화되어갔다. 심지어는 다른 대천존 태양보다도 훨씬 또렷한 듯했다.
그 주먹만 한 금빛 덩어리를 바라보던 한제의 눈이 밝게 번득였고 동시에 저 아래 행궁을 향해 뻗은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세 허상의 본원, 즉 삶과 죽음, 원인과 결과 진실과 거짓의 본원이 밀실에서 튀어나와 그의 체내로 스며들었다.
모든 본원을 되찾은 한제의 체내에서는 콰쾅 하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백발이 사방으로 휘날렸다.
하늘마저 무너뜨릴 듯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며 한제는 주먹만 해진 선조의 머리를 향해 본원의 기운을 한 줌 토해냈다. 보이지 않는, 오직 한제만이 느낄 수 있는 기운이었다.
이 기운이 닿은 순간, 선조의 머리는 격렬하게 진동하면서 그대로 녹아내렸다. 이어서 완전히 융화되어버리더니 한제의 대천존 태양에 전부 빨려 들어갔고 이에 세 가지 색을 번득이는 태양은 실체가 됐다.
이제 대천존 태양이 선강 대륙의 하늘로 날아가 열 번째 태양이 되면 한제는 진정한 대천존에 등극할 수 있을 터였다.
송천과의 싸움
대천존 태양이 완전히 굳어진 순간, 한제는 두 손을 높이 쳐들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세 가지 색의 태양을 떠받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잠시 후, 태양은 떠올라 하늘로 올라갔다.
점차 하늘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자신의 대천존 태양을 바라보던 한제는 동부계에서 한 줄기 신식을 통해 선강 대륙에 보냈을 때 하늘에 떠 있던 아홉 개의 태양에 놀랐던 당시를 떠올렸다.
“대천존⋯⋯.”
한제는 중얼거리며 하늘 높은 곳에서 세 가지 색의 강력한 빛을 번득이는 자신의 대천존 태양을 바라보았다.
하늘 높이 올라간 한제의 대천존 태양은 선강 대륙 전역 다른 대천존들의 태양에도 영향을 미쳤다.
선족 구역의 도일종, 북주, 자양종, 조성 제산에서는 순간 거대한 태양이 떠올라 선강 대륙 하늘에서 밝은 빛을 번득였다.
잠시 후, 조성 황궁에서는 금빛의 태양이 하나 나타나 선족 구역의 다섯 번째 태양이 됐다.
그와 동시에 고족 구역, 폐관수련을 하고 있는 현라의 상공에 그의 대천존 태양이 허상으로 나타나 하늘로 떠올랐다. 극고 일맥의 황성 안, 비밀스러운 극고 대천존 역시 하늘에 그의 태양을 허상으로 나타내 떠올렸다.
한편, 시고 일맥의 대천존인 송천의 태양 역시 나타나 하늘로 솟아올랐다.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고도 대천존의 태양이었다. 한제의 대천존 태양에 허상으로 나타나 떠오른 아홉 개까지, 선강 대륙에는 총 열 개의 태양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대천존에게는 낯설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는 새로운 대천존이 나타났을 때마다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선조 일맥 선황이 대천존에 올라 지위를 계승할 때만이 예외였다.
모든 대천존 태양이 허상으로 나타나 하늘에 떠오르면서 선강 대륙 전역이 세상의 힘으로 휩싸였기 때문에 나머지 대천존들은 새로운 대천존의 기운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늘에 나타난 열 개의 태양은 각각 크기가 달랐다. 가장 큰 것은 고도 대천존의 태양으로 한제의 삼색 태양을 제외한 나머지 여덟 개의 태양을 더한 것과 비슷할 정도였다.
다음으로 큰 것이 바로 한제의 삼색 태양이었다. 고도 대천존의 것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그 절반에 상당하는 이 태양은 고도 대천존의 태양에 뒤지지 않는 빛을 발산했다.
“양아버지⋯⋯ 대천존⋯⋯.”
계도 황자는 넋을 놓고 있다가 돌연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이한제! 정말 이한제였어!”
도일종에서 날카로운 고함이 터져 나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 고함에는 분노와 함께 깊은 두려움도 어려 있었다. 한제가 벌써 대천존이 됐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고도 대천존의 태양 다음으로 거대한 한제의 태양을 통해 그의 현재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 ★ ★
“태고 신경에 발을 들이지도 않은 상황에서⋯⋯ 자신만의 힘으로 진정한 대천존이 되다니!”
북주, 한랭한 땅 위의 무봉은 멍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 ★
자양종의 두 소녀는 놀라면서도 기쁜 얼굴로 손을 맞잡은 채 히죽거렸다.
“한제가 대천존이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