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64
세 번째 손, 두 번째 겁
계도는 점차 시고 일맥의 숨겨진, 역대 황존의 힘, 그리고 권력과 접하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인 시고 황존은 남은 70년 동안 계도에게 그 권력과 힘을 천천히 물려줄 생각이었다.
이는 고족의 새로운 황존이 등극하기 전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었다. 또한 이런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은 시고 일맥이 가장 안정된 시기가 되기도 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어갔다. 계도는 매일 이른 아침마다 가장 먼저 조묘가 있는 곳을 묵묵히 바라보는 습관을 유지했다. 언제 또 양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습관만큼은 버리지 않았다. 계도를 따르기 시작한 여러 사람은 그러한 그의 습관을 이해할 수 없어 넌지시 이유를 물어보기도 했지만 그는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계도는 한제의 분부도 잊지 않고 있었다. 여러 강자를 흑석성으로 보내 송세정이라는 여인을 몰래 보호한 것이다.
1백 년이 넘게 흐른 지금 송세정의 모습에는 세월의 흔적이 남아 당시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녀는 흑석성의 성주를 포함한 수많은 강자가 숨어서 자신을 보호하고 있음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또다시 20년이 흘러 한제가 조묘에 들어간 지도 벌써 50년이 되었다.
그 무렵, 시고 일맥에서는 성대한 대전이 열렸다. 계도의 혼례식이 있었던 것이다. 그의 아내는 송천의 후손인 송옥이라는 여인이었다. 송천의 총애를 받은 여인으로 송천에게서 개인적으로 교육을 받은 몇 안 되는 후손 중 하나였다.
행사는 몇 달 동안 이어졌고 극고와 도고 일맥 사람들과 황족도 적지 않게 찾아왔다. 그중 도고 일맥에서 온 사자는 중년 사내로 한제가 봤다면 단박에 그 정체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는 바로 엽막의 후손이었다.
행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속속 떠난 그날, 하늘 높은 곳에서 밝은 달이 대지를 은빛으로 물들이던 밤, 계도는 아내와 함께 조묘 앞으로 다가왔다. 사방은 고요했고 달빛은 부드럽게 고조의 조각상을 비추고 있었다.
계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내의 손을 잡고 조묘에서 1백 척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그는 한참이나 무릎을 꿇고 앉았다. 옆에 선 여인은 이러한 남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질문을 하는 대신 남편을 따라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송옥, 우리가 무릎을 꿇은 상대는 고조가 아니오.”
계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인의 얼굴에 흠칫 놀란 빛이 드러났다.
“나의 양아버지께 무릎을 꿇은 것이라오.”
“양아버지요?”
여인이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양아버지, 제가 송존의 후손과 혼인을 했습니다. 이 여인은 앞으로 시고 일맥의 황후가 될 것입니다. 양아버지께 소개시켜 드리고자 데려왔습니다!”
계도는 매우 공손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심이 묻어나는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이 지금 손에 넣은 모든 것이 한제가 준 것임을 잊지 않았다.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곁에 앉은 여인 역시 자신의 아내가 아닌 치만의 아내가 됐을 것이다.
“양아버지, 앞으로 50년만 더 있으면 계도는 새로운 시고 황존이 됩니다. 그 날 양아버지를 뵐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계도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조묘를 향해 절을 올렸다.
그 순간, 그의 아내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흠칫 놀랐다. 가문의 선조인 송존이 일찍이 지나가듯 해주었던 이야기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어렴풋이 떠올랐던 것이다. 당시 그의 이름을 언급할 때, 송천은 매우 복잡하고도 감개무량한, 한편으로는 감탄한 표정이었다.
“이, 이존⋯⋯.”
여인이 작은 소리로 탄성을 내뱉었다.
계도는 말없이 한참을 그렇게 꿇어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그리고 이내 아내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한데 이 부부가 조묘에서 수백 척쯤 걸어갔을 때, 조묘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가 새로운 황존이 되는 날, 나 또한 그곳에 있을 것이다.”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계도는 온몸을 바르르 떨더니 홱 돌아서서 조묘를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 있었다.
★ ★ ★
조묘 깊은 곳. 한제는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는 해골처럼 비쩍 마른 상태였고 몸에서는 썩어 들어가는 듯한 냄새가 풍겼다. 하지만 두 눈만큼은 여전히 밝게 번득이고 있었다.
“고족의 삼손칠겁… 당시 난 동부계에서 이미 두 개의 손과 네 개의 겁을 통과했다. 세 번째 손에 따르는 첫 번째 겁 역시 통과했지. 고족의 세 번째 손 중 첫 번째 겁은 고맥창궁혈. 두 번째 겁은 고도삼분신(古道三分神). 그리고 세 번째, 즉 마지막 겁은 고조의 은혜야!”
한제가 중얼거리며 전방을 바라보았다. 앞에는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었고 그 위로는 고족 삼손칠겁에 대한 모든 정보가 새겨져 있었다.
한참 뒤 눈을 감은 한제는 다시금 자신이 세 번째 손의 첫 번째 겁을 통과하면서 첫 번째 혼혈을 얻었던 때 머릿속에 울렸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내가 하늘에게 무너지라고 명하면 하늘은 무너져 내릴 것이다. 땅에게 부서지라고 명하면 땅 역시 부서질 것이다! 사람들에게 죽으라 명한다면 감히 죽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며, 선인들에게 소멸되라 명한다면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리라⋯⋯.”
“나는 고족이다. 이 세상이 나타나기도 전에 태어났으며, 우주가 열리기도 전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나보다 먼저 태어난 선인들은 나를 노예로 부리려 했다. 하여 나는 그들을 파멸하려 한다! 내가 실패한다면 나의 후손들은 대대손손 선인을 주적으로 삼아 그들을 소멸시킬 것이다!
허나 내가 어찌 실패하겠는가! 난 영원히 실패하지 않는다! 아홉 방울의 혼혈을 받은 세 아들아, 너희는 우리 고족의 백성을 통솔하며 나의 부활을 나의 후계자를 기다려라.”
한제의 머릿속에서는 이 목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벌써 50년째였다. 처음에는 들릴 듯 말 듯한 속삭임 같았던 목소리는 점점 커져 이제 거의 포효에 가까웠다.
하늘에 대한 저항과 불만을 품은 목소리는 한제의 피를 뜨겁게 달구다 못해 활활 타오르게 했다.
그의 육신은 뜨겁게 끓는 피를 감당하지 못하고 녹아내리듯 계속해서 말라붙었다. 해골과 같은 몰골이 된 이유였다.
허나 약해지는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놀라운 생기와 힘을 얻은 느낌이었다.
고족의 삼손칠겁 중 세 번째 손에는 세 개의 겁이 따른다. 여기에는 고맥창궁혈만이 아니라 고도삼분신도 있다. 이 단계를 넘어선다면 증폭된 고족의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을 터였다.
대부분의 고족 사람들은 스물일곱 개의 별을 가진 뒤 삼손칠겁을 경험한다. 특히 세 번째 손의 마지막 두 개의 겁은 반드시 각 부족의 조묘 안에서만 통과가 가능했다.
그러나 각자가 얻는 기회와 행운은 달랐다.
50년 동안 내내 가부좌를 튼 채 귓가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소리를 듣고 있던 한제는 계도 황자가 조묘 앞에 이르러 절을 하고 떠나간 뒤에야 세 번째 손의 두 번째 겁이 강림할 조짐을 느꼈다. 귓가의 포효는 갈수록 격렬해졌고 체내의 피 또한 갈수록 뜨거워졌다.
“고도삼분신⋯⋯.”
한제가 중얼거렸다. 앞에 놓인 비석을 통해 고도삼분신이 원신을 셋으로 나누는 것이 아님을 파악한 상태였다.
이 과정에서는 세 차례의 분열과 융합이 진행되는데 분열할 때마다 산공(散功)처럼 어마어마한 고통이 수반된다. 그렇게 한 차례 분열이 끝나면 스스로를 천천히 융합해 두 번째 분신(分神)을 진행해야 하는데 엄청난 끈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융합할 때마다 원신과 육신은 비약적으로 강력해지는데 세 차례의 융합을 모두 마쳐야 세 번째 손에 따르는 두 번째 겁을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분열을 견디는 시간에는 괴로움이 따르고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분열은 철저해진다. 그럴수록 얻을 것도 많지만 대신 감당해야 할 고통도 커졌다.
황족이라 해도 오랫동안 버티기 힘든 고통 앞에 대부분은 스스로가 완전히 분열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도중에 융합해버렸다. 각자가 얻는 결과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가 바로 각자 버티는 시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고도삼분신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시간에 따라 융합을 선택할 수 있어.”
한제가 눈을 번득이며 중얼거렸다.
원신이 완전하고도 철저하게 분열될 때까지 버텼다가 제대로 융합하지 못한다면 죽음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황족이라 해도 엄청난 끈기가 있는 사람이라 해도 그렇게까지 버티지는 않았다.
끝까지 버틸 생각이라 해도 첫 번째 분신에서만 시도해볼 뿐, 두 번째 분신에서까지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세 번째 분신에서도 목숨을 거는 이는 더욱 적었다.
간혹 그런 도박을 하는 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 대부분은 죽음을 맞게 됐다. 소문에 의하면 수만 년 전 선강 대륙의 최강자였던 고도 대천존만이 세 번째 분신에서 완전한 분열을 선택해 끝내 성공했다고 전해진다.
세 번째 손의 두 번째 겁에 비하면 세 번째 겁은 사실 겁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고조의 은혜’라는 이름이 붙은 이 관문은 여태 세 개의 손과 여섯 개의 겁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포상이었다.
이 포상은 한 줄기 기억이 될 수도 있고 완전하지 않은 신통술이나 매우 순수한 고조의 피가 될 수도 있으며, 운이 좋으면 혼혈이 될 수도 있다.
허나 혼혈을 포상으로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소문에 불과했다. 누군가가 그저 원하는 바를 넋두리처럼 풀어놓은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았다. 들리기로는 고도 대천존 역시 이 관문에서 혼혈을 얻지는 못했다. 물론 그가 받은 것은 분명 범상치 않은 것이겠지만 정확히 무엇을 얻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온몸의 피가 뜨겁게 들끓으면서 육신이 떨려왔고 점차 고통이 밀려들었다.
고통은 머릿속에서 울리는 포효와 합쳐져 기이한 힘을 형성했고 한제는 원신이 조금씩 쪼개지려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시작됐군.”
한제는 날카로운 눈빛을 번득이며 중얼거렸다. 지난 50년간 기다려온 날이었다. 혼혈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완의 육신을 가지고 태고 신경에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가 이 겁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원신이 쪼개지려는 조짐은 점점 강해졌고 동시에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강림했다. 한제로서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이었으나, 이는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
“혼혈을 얻으려면 이 겁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최대한 오래 참아야 한다!”
한제는 결연한 눈빛을 번득이다가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한편, 그가 고도삼분신에 돌입한 순간, 조묘 위 고조 조각상에서는 줄기줄기 고리 형태의 파문이 일어나 사방으로 확산돼 시고 황성 전역을 뒤덮었다.
이 기이한 현상은 모든 시고 일맥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총 아홉 개의 고리! 고도삼분신 중 첫 번째 분신을 진행 중인가 보군!”
“한데 이상하네. 황족 대기자가 여럿 모여야 조묘를 열잖아? 최근 조묘에 들어갈 사람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몇 명이나 들어갔을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하군.”
고조 조각상에서 일어난 기이한 현상에도 시고 일맥 사람들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한두 번 겪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허나 고조 조각상에서 아홉 개의 빛 고리가 확산된 순간, 황궁의 시고 황존과 계도는 하던 일을 멈추고 집중했다.
“50년⋯⋯. 마침내 첫 번째 분신이 시작됐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우리 일맥에서는 첫 번째 분신에서 1년을 버텨 완전히 분열됐던 사람이 있었지. 이한제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시고 황존은 고조 조각상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더니 한참 뒤에야 시선을 거뒀다.
같은 시각, 계도는 그가 머무는 궁전 창가에서 고조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양아버지⋯⋯.”
계도가 중얼거리자 곁에 있던 아내가 그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고도삼분신(古道三分神)
한편 황성 밖 원시산에서는 폐관수련을 하던 송천이 자리를 털고 나와 뒷짐을 진 채 황성 쪽을 바라보았다.
“이한제의 수준이라면 첫 번째 분신에서는 분명 완전히 분열될 때까지 기다릴 터. 적잖은 시간이 걸리겠지. 그는 내가 저질렀던 결례에 대해 나를 추궁하지 않았어. 그러니 보답을 해야겠지. 첫 번째 분신을 진행하는 동안 내가 그를 지키겠다.”
조용히 중얼거린 송천은 한 걸음 내딛어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다음 순간 황성 조묘 앞에 나타났다. 그러더니 곧장 조묘를 등진 채 가부좌를 틀었다.
“조묘를 중심으로 반경 1만 리 내로는 누구도 발을 들이지 마라. 이를 어기는 자는 내가 직접 처벌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