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65
송천의 목소리가 담긴 신식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조묘 안에서 분신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던 한제 역시 이 신식을 느꼈다. 상대가 자신을 보호하려 하는 것임을 눈치챈 한제는 송천의 귓가로 한 줄기 신식을 흘려보냈다.
“고맙네!”
“아닐세. 당시 자네를 공격했던 것에 대한 사죄의 뜻으로 생각해주게.”
송천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하늘을 바라보더니 잠시 고민하다가 두 눈을 감았다.
송천에게로 보냈던 신식을 거둔 한제는 몸을 바르르 떨며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첫 번째 분신의 고통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하늘에서 어떤 인영이 묵묵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매우 친숙한 인영이었다.
“⋯⋯스승님.”
한제가 중얼거렸다. 그는 현라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도고 구역을 떠나 이곳에 이르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굳이 이곳까지 찾아온 것은 고도삼분신을 진행하는 동안 외부의 공격에 취약해질 자신을 보호해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늘에 나타난 현라는 시고 황성의 고조 조각상과 그 아래의 조묘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서 어렴풋이 한제의 기운을 느낀 그는 부드러운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넌 이미 이 스승을 뛰어넘었구나.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고도삼분신을 통과하는 동안 허약해진 너를 보호해주는 것뿐이다.”
더 이상 사제 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제는 여전히 현라를 자신의 스승으로 여겼고 현라 역시 동부계에서 데려온 한제를 자신의 유일한 제자로 여겼다. 그리고 사제지간의 정에는 말도 설명도 필요 없었다.
한제는 밀려드는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눈을 감고 온 몸과 마음을 원신의 분열에 집중시켰다. 스승님이 곁에 있는 한 다른 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 ★ ★
눈 깜짝할 사이 사흘이 지났다. 이 사흘 동안 분열하는 원신으로부터 기인한 고통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체내에서 폭풍이 일어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 무렵, 빛으로 이루어진 인영 하나가 떠올랐다. 이 인영은 한제의 정수리와 맞닿은 채 그 위에 떠 있었다. 온몸은 균열과 같은 상처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 균열은 갈수록 많아졌다. 심지어 어떤 균열들은 하나로 이어지듯 빽빽한 상태라 더욱 위태로워 보였다.
그 인영은 바로 한제의 원신이었다.
보통의 시고 일맥 사람이라면 사흘이 한계일지도 모르나, 한제에게는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지금 그에게는 융합을 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또다시 사흘이 지났을 때, 시고 황성 사람들은 의아함을 느꼈다. 고조의 조각상 위로 나타난 빛 고리가 생각보다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꽤나 끈기가 강한 사람이 있는 모양이군.”
“역시 송존이 조묘 앞을 지키고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거였어.”
엿새는 그 이상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치 않은 시간이었기에 사람들은 곧 일상으로 돌아갔다.
허나 아흐레가 지나고 보름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을 때도 고조 조각상 근처에 나타난 빛 고리는 사라질 줄을 몰랐다. 그러자 점점 많은 시고 일맥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혹시… 이번에 들어간 사람이 한 명인 건 아닐까?”
“도대체 누구이기에 송존의 보호를 받는 걸까?”
“두 달이라니, 원신이 완전히 분열될 때까지 기다리려는 게 분명해!”
또다시 여섯 달이 지났다. 한제가 첫 번째 분신에 돌입한 지도 벌써 여덟 달이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이 여덟 달 동안 시고 황성의 수많은 사람은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고조 조각상의 빛 고리에 변화가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이 무렵, 시고 황성에서는 모두가 이 화제를 입에 올렸다. 시고 일맥 중 첫 번째 분신에서 가장 오래 버틴 사람의 기록이 1년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그가 두 번째 분신에서 죽지 않았더라면 대천존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송존도 당시에는 열한 달을 버텼다지?”
“여덟 달이라니, 미쳤군!”
시고 일맥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는 이때, 한제는 조묘 깊은 곳에 가부좌를 튼 채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위로 떠오른 원신은 두 다리가 흩어져 상반신만 남았고 그나마도 거의 투명해 보일 정도로 흐릿해진 상태였다. 당장이라도 흩어져 사라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한제는 두 눈을 감은 채 극심한 고통을 견디는 중이었다. 원신이 조각조각 분열되는 고통은 매순간 천 자루 만 자루의 칼에 사지가 잘려나가는 것과도 같았다. 더욱이 정신을 잃기는커녕 매우 또렷하게 깨어 있는 상태라 그 고통을 순간순간 생생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허나 여덟 달을 그러한 고통에 시달려왔음에도 한제는 굴하지 않았다. 원신이 완전히 박살나기 전까지는 절대 융합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내가 하늘에게 무너지라고 명하면 하늘은 무너져 내릴 것이다. 땅에게 부서지라고 명하면 땅 역시 부서질 것이다! 사람들에게 죽으라 명한다면 감히 죽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며, 선인들에게 소멸되라 명한다면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리라⋯⋯.”
이 목소리만이 한제가 인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아홉 번째 달이 지나고 눈 깜짝할 사이 열 번째, 열한 번째 달도 빠르게 흘러갔다.
송천은 한제가 여태까지 버텼다는 사실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는 한제가 1년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1년은 원신이 산산조각 나는 데 걸리는 시간일 뿐. 수만 년 전, 스물여덟 달 동안 버텼던 극고 일맥 출신의 어떤 미친 자를 제외한다면 원신이 가루로 흩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융합을 시작한 사람은 없지.”
송천은 조묘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시간을 계산했다.
그렇게 열두 달 하고도 두 달이 더 지났을 때, 시고 일맥 사람들은 심지어 두려움을 느끼기까지 했다. 그들은 지금 조묘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가 대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지 내기를 하기도 했다.
“열네 달⋯⋯ 과연 이존이군!”
황궁 안, 노쇠한 시고 황존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한제의 위로 떠오른 원신은 이제 머리만 남아 있었으나 그마저 균열에 뒤덮인 상태였다. 그리고 균열 사이로 빛을 뿜어내던 머리는 결국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신식으로 주위를 훑는다면 원신의 파편들이 사방에 흩어진 채 여전히 분열되는 중임을 느낄 수 있을 터였다.
이 무렵, 한제는 마치 시체처럼 일말의 생기조차 풍기지 않았다. 체내의 피는 더 이상 돌지 않은 채 차갑게 식어버렸고 마치 정말로 죽은 것처럼 지능과 의식도 잃어버린 상태였다.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한 줄기 의지뿐이었다. 계속해서 버텨내려는,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야 융합하겠다는 의지. 만약 성공한다면 그는 다시 되살아날 것이고 실패한다면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지게 될 터였다.
“실패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냐! 난 절대 실패하지 않아!”
한 줄기 남은 의지 속에서는 여전히 고조의 포효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한제 주위로 흩어진 무수히 많은 파편이 천천히 부서지면서 또다시 네 달이 지났다. 그가 세 번째 손 두 번째 겁에 돌입하한 지 장장 열여덟 달이 흘렀다.
이제는 송천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럴 정도였으니 다른 시고 일맥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을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스물일곱 번째 달이 됐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제는 미동조차 없었고 그의 주위로 흩어진 파편의 8할 이상이 가루가 된 상태였다. 나머지 파편들 역시 계속해서 분열 중이었다.
어느덧 서른 번째 달에 접어들었다. 송천은 조묘 안에서 일말의 의지가 느껴지지 않았더라면 이미 한제가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쳤군! 설마 원신이 완전히 분열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건가? 그가 그토록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건 광기 때문이었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조묘 밖을 서성이는 송천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
같은 시각, 노쇠한 황존의 마음에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지금도 이전처럼 계도를 불러 그에게 황존의 권력과 힘을 계승해주고는 있었지만 그의 눈에는 오직 그만 알고 있는 무언가가 숨겨진 채 번득이고 있었다.
허나 황존의 예상과 달리 계도는 그 모든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다만 그에 대해 딱히 신경을 쓸 수 없었다. 양아버지인 한제의 안위에 대한 걱정으로 초조했기 때문이다.
또다시 시간이 흘러 서른여섯 번째 달에 접어든 어느 날 밤, 현라조차 걱정에 마음이 편치 않았던 그때, 고조 조각상에 나타난 아홉 개의 빛 고리가 돌연 밝은 빛을 번득였다. 이 빛은 겹겹이 확산되는 동안 시고 황성의 모든 이들은 하고 있던 일을 멈추고 고조 조각상에 집중했다.
현라 역시 벅찬 감정을 감출 생각도 못 한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송천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뒤로 1만 척 물러나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황궁 안에서는 잔뜩 긴장한 시고 황존이 누각 창가에 서서 그쪽을 응시했다.
계도는 조묘로부터 1만 척 떨어진 곳에 직접 찾아와 초조한 눈빛으로 서성이는 중이었다.
한편, 그 무렵 조묘 안에서 미동조차 않던 한제의 몸에 밝은 빛이 비추면서 수없이 많은 빛이 몰려들었다.
빛은 점차 완전한 인영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 인영은 서른여섯 달 전 한제의 머리 위로 떠올랐던 인영보다 훨씬 더 컸고 어마어마한 위압감까지 풍기고 있었다.
빛으로 이루어진 인영이 완전히 응집된 순간, 고조 조각상을 맴돌던 아홉 개의 빛 고리는 콰쾅 하고 하나로 응집됐다.
빛 고리를 응시하던 이들은 눈을 찌르는 밝은 빛에 눈을 감아야 했다. 시고 황성의 어두운 밤하늘은 대낮처럼 밝아졌다.
그때, 하나로 융합됐던 빛 고리가 곧장 열여덟 개로 분리되어 고조 조각상의 주위를 맴돌았다. 고도삼분신의 첫 번째 분신이 진행될 때는 고조 조각상 주위로 아홉 개의 빛 고리가 나타나고 두 번째 분신에서는 열여덟 개, 마지막 세 번째 분신이 진행될 때는 스물일곱 개의 빛 고리가 나타난다는 것을 시고 일맥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첫 번째 분신에 성공했군! 철저하게 분열됐다가 완벽하게 융합됐어!”
송천이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고족 중 일부는 고조가 아직 살아 있다고 믿었고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은 고조는 이미 죽었으나 영혼만큼은 아직 남아 있다고 믿었다.
고조의 영혼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면 세 황성에 세워진 고조의 조각상이 기이한 현상을 보이는 것도 삼손칠겁의 마지막 단계인 고조의 은혜가 이어지고 있는 현상도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고조의 혼이 살아 있지 않다면 고도삼분신을 진행할 때 조각상으로부터 확산되는 빛 고리 역시 설명이 되지 않았다.
실패
조묘로부터 1만 척 정도 떨어진 곳에 선 송천은 열여덟 개의 빛 고리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곧 돌아서더니 사라졌다.
꼬박 3년간 이곳을 지킨 것으로 당시의 죗값을 치렀으니 더 이상 어떤 죄책감이나 부담감도 느끼지 않았다. 만약 지난 3년 동안 누군가가 한제를 공격하려 들었다면 그는 목숨을 걸고 한제를 보호했을 것이다.
송천이 떠나는 것을 감지한 조묘 안의 한제 위에는 빛으로 응집된 원신이 떠 있었다. 한제는 다음 수준으로 돌파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이번 겁을 순조롭게 통과하고 혼혈을 손에 넣는다면⋯⋯ 다시 답천교로 가봐야지. 그때는 네 번째 다리를 건널 수 있을까?”
한제는 중얼거린 후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정수리 위로 떠 있는 원신을 바라보았다.
“첫 번째 분신을 끝내는 데 3년이 걸렸다. 막바지에는 거의 죽음에 가까워졌지. 만약 내 의지가 끝까지 남아 있지 않았더라면 융합하지 못했을지도… 고도삼분신은 의지와 관련된 관문인데 그보다는 운이 더 중요한 것인가?”
한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제야 완전히 분열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융합한 사람이 많지 않았던 이유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운이란 한 번 얻을 수도 두 번 얻을 수도 있지만 계속되지 않기에 운인 것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는⋯⋯.”
한제는 눈을 감았다가 한참 후에야 다시 떴다.
“운은 분명 중요하다. 허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의지가 있다면 운 역시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있을 터!”
동시에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그는 원신을 가리키며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정수리 위에 떠 있던 인영이 맹렬히 진동하면서 줄기줄기 가느다란 균열로 빽빽하게 뒤덮였다. 두 번째 분신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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