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81
“류미, 과거는⋯⋯ 이미 지나간 거야. 그러니⋯⋯ 이제 모든 것을 기억에 흘려보내자. 네가 그랬지. 평이를 한 번만 보게 해달라고⋯⋯. 그래, 내가 이번에 돌아온 것은 너와 끝을 내기 위해서야. 평이에게는 엄마가 필요해.”
한제는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픔에도 말을 이었다.
“난 몽도를 발휘할 거야. 그곳에는 너와 나, 그리고 평이가 있을 거고. 한 번의 윤회를 그렇게 지내고 끝을 내자. 평에게 엄마를 보여주고 네 집착을 청산하고 내게도⋯⋯ 더 이상 아쉬움이 남지 않게.”
한참을 말없이 울고만 있던 모은미는 눈물을 훔쳐내더니 복잡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몽도를 통해 1백 년의 세월로 한 차례의 윤회를 끝낸다면… 그렇다면 지금의 너는 내 지아비인 건가?”
모은미의 가냘픈 목소리에 한제는 두 눈을 감았다가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모은미는 미소를 지었다. 눈가에는 아직도 눈물이 어려 있었지만 미소를 지은 채 조심스레 다가와 한제의 품에 몸을 기댔다.
한제는 모은미를 살짝 끌어안았다. 아득한 체향에 취할 것만 같았다.
이들에게 있어 진심을 담은 포옹은 처음이었다. 이것은 복잡한 감정을 모두 내려놓은 채 한 번의 실수로 인한 악연을 청산하기 위한 포옹이기도 했다.
이들이 이렇게 붉은 하늘 아래 산봉우리에 서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렀다. 선계의 하늘은 더욱 붉어졌고 미세한 균열까지 일어나 언제든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한제는 모은미를 데리고 산봉우리를 떠나 먼 곳으로 나아갔다.
★ ★ ★
선계.
남운자와 남몽도존, 그 밖의 모든 사람이 백의발발의 청년을 봉계의 지존을 보았다. 당시 직접 한제를 본 적이 없던 수련자들도 그 소문만은 익히 들어왔던 터라 그를 알아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한제의 정체를 알게 된 선계의 수련자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원신만 남은 남운자에게 한제는 세상의 힘을 응집해 육신을 만들어주었다. 새로운 몸인데도 남운자는 불편함이나 어색함을 조금도 느끼지 않을 정도였다.
곁에 선 남몽도존은 한제에게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벙긋거렸지만 그저 한숨만 내쉴 뿐 끝내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한제는 미소를 지은 채 낯익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는 허이국과 유금표가 몇몇 수련자들에게 무언가를 떠들고 있었다.
손가락 굵기로 줄어든 채 유금표의 어깨에 올라 있는 해룡은 지루한 표정이었는데 몇몇 수련자가 다가와 쓰다듬으려 하자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수련자들은 그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번잡한 것을 싫어하는 십삼은 멀지 않은 공터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이따금 한제의 통태를 살필 뿐이었다.
모두를 둘러본 한제는 이내 남몽도존에게 다가갔다.
남몽도존의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다. 부상이 심각했던 모양이다.
한제는 손을 들어 남몽도존을 가리켰다. 그러자 세상의 힘이 마구 몰려들어 남몽도존의 체내로 주입되면서 부상이 순식간에 회복됐다.
잠시 후, 혈색을 찾은 남몽도존은 한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이군. 잘 지냈나? 그리고… 내 딸도 잘 지내는가.”
그의 물음에 한제는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한제의 표정을 본 남몽도존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슨 일인가? 천매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인가? 말해보게.”
“환생한 그녀를… 찾지 못했습니다.”
한제가 씁쓸하게 답했다. 선강 대륙 최강자가 된 그로서도 자신에게는 은인이자 이천매의 아버지이기도 한 남몽도존에게는 예를 다할 수밖에 없었다.
“찾을 수 없었다니⋯⋯.”
남몽도존은 두 눈을 감은 채 처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아이는 오직 자네만을 바라보고 선강 대륙으로 향했는데 그런데 자네가 찾을 수 없었다니⋯⋯.”
이내 다시 눈을 뜬 남몽도존은 별안간 크게 웃기 시작했다. 허나 그 웃음에는 실망과 분노가 어려 있었다.
그때였다.
콰르릉!
핏빛 하늘에서 돌연 굉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이미 미세한 균열로 뒤덮여 있던 하늘은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조짐을 보였고 하늘 밖에서는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하하핫! 네놈들은 정말이지 고집이 세구나! 허나 이깟 진으로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이 진이 곧 파괴되면 너희들은 모두 내 수준을 증진시키기 위해 희생될 것이다! 크하하하! 하하하하!”
계속해 이어지는 그 웃음소리는 처음에는 미약했으나 점점 우레처럼 우렁차게 변해 선계의 대륙을 진동시켰다.
허나 남운자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한제의 정확한 수준은 알 수 없었으나, 손짓 한 번으로 세상의 힘을 응집해 육신을 만들어낸 모습을 본 그로서는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한제의 강력함을 똑똑히 느낀 것이다. 더욱이 적혼자를 바라보는 허이국과 유금표의 눈빛이 경멸로 가득한 것을 보고는 그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녀에게 찍어놓았던 봉인은 이미 흩어져 사라졌으니 분명 기억을 되찾았을 겁니다. 허나 아주 오랫동안 그녀를 찾아 헤맸지만 끝내 찾을 수는 없었지요. 다만 선강 대륙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느낌은 듭니다. 그녀는 제 존재를 그리고 제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한제는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굉음에는 아랑곳 않고 남몽도존에게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한 줄기 기운만 보여줘도 곧장 감지할 수 있을 겁니다. 동부계에 와 있는 지금이라도 마찬가지지요.”
이천매에 대한 한제의 감정은 특별했다. 이모완과 달랐지만 어쨌든 그의 마음속에 두 번째로 들어온 여인이었다.
“⋯⋯그녀가 일부러 저를 피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말을 마친 한제를 눈을 감았다. 모완을 생각할 때와는 다르지만 분명한 고통이 느껴졌다.
남몽도존은 침묵에 잠겼다. 그는 한제의 마음을 그가 자신의 딸을 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다시 한 번 콰르릉 소리와 함께 하늘에는 대대적인 균열이 드러났다. 거대한 구멍이 생겨날 듯했고 피처럼 붉은 빛이 그곳을 통해 밀려들었다. 동시에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선계 전역에 울려 퍼졌다.
하늘은 온통 균열로 뒤덮였다. 선계를 보호하고 있던 진이 마침내 구멍을 드러낸 것이다. 심지어 진의 나머지도 계속해서 흩어져 사라지는 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계의 보호막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 분명해 보였다.
“크하하하!”
거만한 웃음소리가 하늘과 땅을 뒤흔들었고 줄기줄기 수많은 붉은 그림자가 구멍을 통해 들어와 하늘을 뒤덮었다. 꼭두각시들이었다.
녀석들은 하늘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선계의 수련자들을 내려다보았다.
뒤이어 붉은 도포를 입은 청년 하나가 그 구멍 안으로 발을 들이더니 살기가 어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크게 외쳤다.
“이따위 진은 파괴됐다. 네깟 놈들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 모은미, 스승님께서 너를 다 길들이고 나면 나와 이한제가 얼마나 다른지 내 직접 경험하게⋯⋯.”
청년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중간에 말이 뚝 끊기고 말았다.
저 아래에서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남운자를 어느새 갖춰진 그의 육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모은미 역시 서늘한 눈으로 청년을 노려보고 있었다.
허나 정작 그를 놀라게 한 것은 남몽도존 앞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백의의 사내였다. 상대는 자신을 보지도 않고 있었지만 붉은 도포의 청년은 상대의 어딘가 낯익은 모습에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저, 저자는⋯⋯.”
청년은 머릿속에서 수많은 천둥이 떨어지는 듯 우렁찬 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두 눈을 믿기 힘들 정도였다.
상대의 모습은 그가 어렸을 적 주작성에서 보았던 조각상의 모습과 똑같았다.
“선조(先祖)⋯⋯. 아, 아니야. 그럴 리가…”
그는 상대가 자신의 선조 이한제라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영혼으로부터 기인하는 떨림은 그에게 저 백의백발의 청년이 바로 주작성의 선조이자 봉계의 지존, 그 이전에 자신의 선조인 이한제가 확실함을 알리고 있었다.
“진짜 이한제라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랴! 우리 스승님의 적수가 되지는 못할 것을…”
청년은 애써 침착함을 되찾으며 뒤로 물러났으나, 그때 한제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 침착한 눈빛을 본 순간, 붉은 도포의 청년은 온몸을 덜덜 떨었다.
“십삼, 저자를 죽여라!”
한제는 금세 시선을 거두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 순간, 십삼이 두 눈을 서늘하게 번득이더니 곧장 날아오르며 오른손을 들었다. 그 손짓에 초록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팔극도 중 극화도를 발휘하려는 것이다.
한제는 다시 만난 십삼에게 적합한 신통술을 전수하고 세상의 힘을 취해 주입해줌으로써 그 수준을 대폭적으로 높여주었다. 답천의 경지에 반걸음 들어선 한제로서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선계 수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날아오른 십삼의 주위로 초록색 연기가 맴돌며 수많은 고리를 확산시켰다.
콰쾅!
우렁찬 소리와 함께 퍼져 나간 연기 고리에 온 하늘이 활활 타오르는 화염으로 뒤덮였다. 그 뜨거운 화염 속, 붉은 꼭두각시들은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삽시간에 화염으로 뒤덮인 하늘에서는 비명이 가득했다.
도일과의 친분
잠시 후, 여전히 냉랭한 얼굴로 그 불바다에서 걸어 나온 십삼의 손에는 경악스런 표정으로 굳어버린 머리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하늘을 뒤덮은 불바다가 사라졌다.
하늘은 여전히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지만 그 빛은 상당히 옅어진 상태였다. 진의 거대한 구멍 너머로 한 노인이 멍한 눈으로 한제를 보고 있었다.
“이, 이한제!”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빽 소리를 지르더니 곧장 공겁기 수준의 위력을 폭발시켰다. 하늘이 진동하고 땅이 뒤흔들렸다.
“돌아왔구나! 허나 그래봐야 네놈은 한낱 미물에 불과해!”
적혼자는 날카롭게 외치며 한 줄기 붉은 빛이 되어 곧장 한제에게 돌진했다.
한제의 표정은 한없이 덤덤해 거의 무료해 보일 정도였다.
그때, 유금표의 어깨 위에 있던 손가락 굵기의 해룡이 돌연 고개를 번쩍 들더니 험악한 눈빛을 번득이며 하늘을 뒤흔들 듯 우렁차게 포효하기 시작했다.
“캬오오오!”
이 포효에 선계 수련자들은 고막이 아파왔고 적혼자는 몸을 덜덜 떨었다. 무의식적으로 우뚝 멈춰 서서는 포효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적혼자는 찬 숨을 헉하고 들이마셨다.
“저, 저건⋯⋯?”
그 무렵, 해룡은 쏜살처럼 날아오르며 급속도로 불어나고 있었다. 순식간에 원래 크기인 10만 척 길이로 돌아온 해룡은 넋이 나가 있는 적혼자를 향해 다시 한번 포효했다.
“캬오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