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83
‘혹시… 평이의 것은 아닐까?’
사실 그는 그 의혹에 대한 답을 얻은 상태였다.
들고 있던 두개골을 거둬 넣은 한제는 곧장 돌아서서 고신의 땅을 벗어났다.
“도고 국사가 그랬지. 두개골과 하얀 머리카락을 벌써 찾았느냐고⋯⋯. 지금 그 두개골은 변했다. 그렇다면 언젠가 그 하얀 머리카락 역시 그렇게 될 거라는 의미인가?”
한제는 무거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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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사이 10년이 지났다.
일찍이 봉인에서 벗어나 자유를 되찾은 허이국은 10년 전에 유금표와 함께 의기양양하게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한제도 모르고 있었다. 해룡이 함께 갔으니 두 사람이 누군가에게 해를 당할 거라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유금표는 떠나기 전에 진지한 얼굴로 허이국에게 말했다.
“나는 기만책의 궁극에 달하고 싶다고 했소!”
그는 허이국과 함께하는 게 만족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여기에 한 명이 더해져야 비로소 완전해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허이국 또한 그 의견에 동의했고 둘은 상의를 거쳐 예전에 함께 어울렸던 종대홍을 남은 한 명으로 삼기로 했다. 그래서 그들의 첫 번째 목표는 종대홍을 찾는 것이었다.
한편, 십삼은 주작성에 머무르며 폐관수련에 집중했고 스승이 깨어날 때까지 보호를 자처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수준이 대폭 올랐고 한제의 완전한 도통을 이어받아 거의 모든 신통술까지 전승했다. 비록 허상의 본원까지는 제대로 깨닫지 못했지만 오행의 본원은 이미 응집한 상태였다. 또한 팔극도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흡혈마수 역시 한제를 보호하고 있었다.
매우 강력한 이 흉수가 한 번 외출할 때마다 주작성의 수련자들은 질겁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이 흡혈마수를 잡으려 드는 수련자들도 있었지만 그런 자들이 하나같이 끔찍한 결말을 맞게 되자 이제 누구도 녀석을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흡혈마수는 누가 먼저 건드리지 않는 이상 아무도 해치지 않고 이따금 주작성 밖으로 나가 드넓은 우주를 맴돌았다. 주작성 수련자들도 점차 이 흉수의 존재에 익숙해져갔다.
한편, 한제와 모은미는 10년 전 함께 어느 산봉우리의 동굴에 들어갔다. 그 안에서 한제는 몽도를 발휘해 그 안에서 모은미의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기로 했다. 그 응어리가 풀리고 나면 둘의 관계는 이전과 달라질지도 모른다.
또다시 10년이 지났다.
주작성 수련자들은 전설로만 전해지던 한제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20년 전 주작성 어느 냉랭한 수련자가 산 하나를 차지하고 그곳을 금지로 정했다는 것뿐이었다. 이곳을 침범할 경우 한 번은 경고에 그치지만 두 번째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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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라. 이곳의 백성 대부분은 평생을 집 근처에서만 살았다. 조나라에서도 구석진 곳의 어느 산맥 아래의 작은 산골 마을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을바람에 휘날린 낙엽이 집을 찾듯 허공을 맴돌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맑고 아름다웠으며 이른 아침을 맞은 마을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마을 어귀에서 나팔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장난스러운 동네 아이들이 달음박질을 치며 잔뜩 흥분한 듯 웃는 소리도 들려왔다.
뒤이어 마을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붉은 가마가 어느 집 마당 앞에 멈췄다. 곳곳에서 즐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오늘은 이 집에서 신부를 맞이하는 날인 듯했다.
조상 대대로 목수 일을 해왔다던 이 집의 가장은 서생이었다. 과거에는 합격했지만 그는 어째서인지 수도로 가지 않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과거에 합격한 지 20년이 흘러 이미 중년이 된 그에게는 외아들이 있었다. 이날은 어느덧 성인이 된 그 외아들, 한제의 혼인이었다.
이웃들은 이곳에서 나고 자란 한제를 아주 잘 알았다. 불쌍하게도 벙어리인 그는 언제나 어딘지 모를 먼 곳을 묵묵히 내다보곤 했다.
흥겨운 음악 소리가 울려 퍼졌고 가마 안에서 붉은 천으로 모습을 감춘 한 여인이 고개를 숙인 채 걸어 나왔다. 한제는 여인의 손을 잡고 마당 안으로 향했다.
이 여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마을 청년들이 흠모해 마지않던 류씨 가문 둘째 딸이었다. 마을 유지인 류씨 가문의 둘째 딸은 어렸을 때부터 한제와 함께하기를 좋아했다. 죽마고우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은 종종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이 먼 곳을 내다보곤 했다. 두 사람이 자라나면서 이들이 결혼하게 되리라는 것은 모두가 예상했지만 질투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작은 마을의 혼례는 무척 간소했다. 주인은 잔치를 준비하고 초대된 마을 사람들은 신랑신부를 축하해주며, 해가 지면 잔치는 끝이 난다. 그때부터는 신혼부부만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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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방.
정직하고 무던한 한제는 신부의 모습을 가린 붉은 천을 걷어냈다. 심장이 떨릴 만큼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여인의 이름은 류미였다.
살짝 상기된 얼굴로 한제를 바라보며 여인은 웃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눈을 맞췄다. 오랜 세월을 관통한 눈 맞춤은 영원처럼 느껴졌다.
다음 날, 류미는 마당에 앉아 있었고 맞은편에는 한제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제는 손에 나무와 칼을 든 채, 자신의 아내를 위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그녀를 조각하는 중이었다.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이 흘러 2년이 지나갔다.
그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이평이라는 사내아이가 생겼다. 총명하고 말솜씨가 좋은 아이는 쑥쑥 자라났고 세 가족은 따뜻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아비를 따라 공부를 하는 대신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목수 일을 택한 한제는 이 조용한 산골 마을에서 살아갔다.
그의 아내 류미는 아이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어 거의 하루의 대부분을 이평을 돌보는 데 들였다. 아침에는 아이를 위해 밥을 하고 낮에는 아이와 함께 놀았으며, 저녁에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이평은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고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마을을 떠났다.
이평은 마을을 떠나기 전, 마당에 앉은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두 번째로 조각하고 있는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그 조각상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과거에 합격한 이평은 몇 년 후 수도로 떠났고 한제와 류미도 함께 수도로 가서 세 가족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세월은 하염없이 흘러 어느새 한제와 류미의 머리는 하얗게 세었다. 이평은 수도에서 이름을 널리 알려 심지어 그의 이름을 딴 길이 생겼을 정도였다. 그리고 매우 아름다운, 수도의 유명한 부잣집 딸인 청희라는 여인과 혼인했다.
청희는 한제와 류미에게 극진했다. 이 부부는 그런 아들 덕에 행복하면서도 서글펐다. 아들이 완전히 성장해 가정을 꾸렸다는 사실을 실감한 것이다. 이제 품안의 자식이 아니었다.
한제와 류미는 수도를 떠나 다시 고향 마을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여생을 보낼 생각이었다.
한제는 류미를 위해 세 번째 조각을 시작했다. 나무토막에 새겨진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삶은 그렇게 평탄하게, 곡절 없이 이어졌다.
한제는 인생의 하루하루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비록 류미와 함께하는 평생을 그녀에게 말 한 마디 할 수 없었지만 그녀와 함께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흰머리는 점점 늘어만 갔다.
또 한 번의 가을에 접어들었다. 한제와 류미는 이미 완연한 노인이 되어 있었고 그들의 아들 이평은 이따금 고향을 찾아왔지만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두 노인은 마당에 앉아 있었다. 류미는 미소를 지은 채 맞은편에 앉은 한제를 바라보았고 한제는 나무토막을 손에 든 채 류미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가 남길 마지막 조각인지도 모른다.
역시 류미의 조각이었지만 지금의 그녀처럼 백발이 성성한 모습이 아니라 혼례를 올린 그날처럼 생기 넘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알아. 평생 나에게 말 한 마디 하지 않았지만 넌 벙어리가 아니라는 걸⋯⋯.”
류미는 한제를 그의 손에서 점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조각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고개를 든 한제는 류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말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렇게 조각이 완성된 지 사흘째 되던 날, 류미는 병들어 침상에 눕게 됐다. 늙었음에도 여전히 젊었을 때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그녀는 곁에 앉은 한제의 손을 꼭 쥔 채 놓지 않았다.
“난 알아. 네가 벙어리가 아니라는 걸⋯⋯.”
류미는 또다시 말했다.
“어렸을 때, 우리가 처음 만났던 때 기억해? 그때 넌 하늘을 보고 있었어. 난 네가 대체 뭘 보고 있는지 궁금해서 네 곁에 앉아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았지. 하지만 난 아무것도 볼 수 없었어. 그래서 그냥 가려는데 네가 불쑥 입을 열어 처음으로 말했어. 기억날 거야. 나도 기억하고 있으니까⋯⋯.”
한제를 향한 류미의 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넌 나한테 내가 네 아내고 너는 내 남편이라고 했어. 그건 정해진 운명이라고⋯⋯.”
꿈꾸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 류미의 미소가 더욱 깊어졌다. 그녀는 기억에 푹 잠긴 듯한 얼굴로 한제를 보고 있었다.
한제 역시 웃으며 류미의 손을 꼭 잡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말을 하는 쪽은 언제나 류미였다. 그녀는 어렸을 때, 결혼했을 때, 그리고 이평과 함께했을 때의 기억을 이야기했다.
“평이는 착한 아이였어. 자라나면서 제 길을 따라갔을 뿐이지. 우리가 그 애를 평생 곁에 둘 수는 없는 거야. 내가 떠나면 너 혼자 남게 될 텐데… 그 애를 잘 돌봐줘.”
류미가 중얼거렸다.
한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따스한 눈빛으로 류미를 바라보았다.
류미의 말은 깊은 밤을 지나 다음 날 아침 햇살이 내리쬘 때까지 이어졌다. 가을바람에 실린 낙엽이 이리저리 휘날리던 그때, 류미의 눈빛은 흐려졌고 한제의 손을 꼭 붙잡고 있던 손에는 돌연 힘이 들어갔다.
주름으로 가득한 얼굴은 약간 붉어져 있었다. 허약한 몸에 마지막으로 생기가 주입되기라도 한 것처럼.
“봤어. 이한제, 난… 봤어⋯⋯.”
급기야 버둥거리며 일어나 앉은 그녀는 기쁨으로 가득 찬 얼굴로 창밖의 하늘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 함께 봤던 하늘에 대체 뭐가 있었는지, 정말로 봤어! 그 하늘에는⋯⋯ 너와 내가 있었어. 우리는 선인이었고⋯⋯ 나는⋯⋯.”
말을 잇던 류미는 갑자기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그녀가 보았다는 어떤 광경이 그녀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기라도 한 것처럼.
“난⋯⋯ 어떻게 이럴 수가⋯⋯.”
류미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모두 다 과거일 뿐이야.”
한제는 류미를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 결혼한 이래 처음으로 낸 목소리는 약간 거칠었지만 따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