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588
‘동매는 이천매가 환생을 거쳐 태어난 사람이 아닐까?’
허나 송세정은 끝내 그 말은 내뱉지 않았고 자신의 아름다운 친구를 바라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태고 신경이란 무엇인가!
선강 대륙의 수련자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의문이었다. 대천존조차 태고 신경이 대체 어떤 곳인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지 못했다.
한제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붉은 하늘에는 별도 달도 해도 없이 그저 어스름한 빛뿐이었고 대지는 둥근 형태였다.
이곳에서는 신식을 펼치는 데 제한이 있어 온 대륙을 뒤덮을 수 없었기에 부근의 산맥들과 매우 긴 협곡, 주위의 갈래갈래 균열만을 볼 수 있었다.
말없이 걷는 한제의 눈에는 혼란과 익숙함의 빛이 동시에 어려 있었다.
긴 협곡에 이른 한제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 대지의 균열을 살폈다. 보통의 구불구불한 균열과 달리 마치 누군가가 검으로 내리쳐 만들어낸 흔적처럼 일자로 쭉 뻗은 형태였다.
균열에서는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균열 깊은 곳은 시커먼 어둠으로 가득 차 있어 제대로 살필 수가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한 걸음 내딛어 그 거대한 균열 너머 더 먼 곳으로 나아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제는 그동안 더 많은 균열과 산맥을 보게 됐다. 한데 그 모든 균열들 역시 일자로 쭉 뻗어 있었다.
“둥근 대지⋯⋯.”
중얼거리던 한제는 눈을 번득이더니 천천히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저 아래로 대지가 점점 작아졌고 하늘 끝에 이르러 살핀 대지는 한층 낯이 익었다.
깊은 균열들은 규칙적으로 벌어져 있어 대지 전체가 마치 하나의 나침반처럼 보였다. 대지의 균열은 눈금이고 곳곳의 산맥들은 오래된 문양을 이루었다.
“나침반. 바늘이 없는 나침반⋯⋯. 이 나침반은 완벽하지 않아. 절반이 부족하지.”
이어서 한제는 대지의 절반이 허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부족한 하나
잠시 후 한제의 시선은 대지의 중앙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구름을 뚫을 듯 높이 솟은 산이 있었다. 일곱 색채의 눈이 내리고 있는 산이었다.
그 산을 본 순간, 한제의 눈빛이 복잡하게 번득였다. 시고 조묘 안에서 고도삼분신을 진행했을 때 환상 속에서 봤던 바로 그 산이었다.
저 산에서 시체를 끌어안은 채 하늘을 향해 절규하던 누군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 그곳에는 시체를 끌어안은 인영이 아니라 가부좌를 튼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매우 낯익은 사람이 있었다. 일견 노인인 듯하면서도 아닌 듯한 그는 마치 천운자처럼, 칠채선존처럼, 도고 국사처럼 온몸을 일곱 색채의 빛으로 뒤덮은 채 흥분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 인영이 앉아 있는 산 뒤로는 다리가 하나 있었다. 거대한 호를 그린 다리의 한쪽 끝은 대지와 닿아 있었고 다른 한쪽 끝은 하늘에 녹아든 상태였다.
“답천교…”
하늘에 닿은 다리의 한쪽 끝에서 한제는 붉은 하늘 너머 흐릿한 허상을 보았다. 아홉 번째 답천교 뒤쪽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허상. 그러나 허상에 나타난 두 개의 인영은 너무 흐릿했다.
“마침내 왔구나! 하하하하!”
천운자가 호탕하게 웃었다.
한제는 그제야 다리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천운자를 바라보며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산 위에 선 한제는 일곱 색채의 눈이 자신의 몸은 물론 사방에 쌓이는 것을 보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난 오늘을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이한제. 이 모든 것은 네 꿈일 뿐이야. 허나 이곳에 온 이상, 그 꿈에는 왜곡이 일어날 터! 크하하하!”
천운자는 크게 웃으며 두 손을 바깥쪽으로 휘둘렀다.
콰쾅!
둥근 대지에서는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동시에 대지의 수많은 균열에서는 검은 기운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더니 곧장 이 산으로 몰려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 상공의 붉은 하늘을 뒤덮은 검은 기운은 천운자의 뒤쪽에 응집해 거대한 인영을 형성했다.
하늘을 떠받칠 듯 거대한 인영은 품이 넉넉한 검은 도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한제는 그 인영을 보자마자 천운자와 똑같이 생겼음을 알아차렸다.
“이한제, 네가 전생에 답천의 경지에 이르렀던 강자였다 한들 이 정계 나침반 안에서는 내가 가장 높고 강한 존재다! 선강 대륙 전역을 통틀어 내가 너를 삼키고 융합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지. 이곳에서 네 꿈은 뒤틀리게 될 것이다. 앞으로 나는 곧 네가 될 것이야!”
거대한 인영의 목소리가 콰르릉 하고 사방에 울려 퍼졌다.
“전생이라⋯⋯.”
천운자와 그 뒤로 나타난 허상을 바라보는 한제의 표정은 덤덤했다.
“보아하니 아직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군. 좋다, 네가 죽기 전에 모든 것을 알려주도록 하지.”
천운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거대한 인영과 융합했고 얼굴을 가리고 있던 도포를 걷었다. 그러자 기이한 얼굴이 드러났다.
“선강 대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네 꿈으로 만들어낸 곳일 뿐. 이곳은 허무다. 역진계에 속한 일부에 불과하지.”
“허무⋯⋯.”
한제가 중얼거렸다.
“못 믿겠느냐?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너를 보고 있으려니 가련하구나! 하하하! 이곳은 우주에 존재하는 네 개의 계 중 하나인 역진계! 각 계에는 하나의 보물이 있고 역진계의 보물은 바로 이 정계 나침반이다. 유일한 공의 보물이기도 하지. 즉, 이곳 태고 신경은 바로 역진계의 정계 나침반이다!”
거대한 허상이 된 천운자의 눈에서 격앙된 감정이 번득였다.
“전생의 너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 답천의 경지에 이른 수련자였다. 역진계를 마음대로 호령할 수 있는 인물이었지. 허나 너는 고작 아내를 되살리기 위해 수호자로부터 정계 나침반을 빌렸고 몽도를 통해 윤회를 만들었지. 몽도의 허상을 실제처럼 만들고 그 안에서 아내를 부활시켜 하늘과 땅을 뒤엎으려 했어!”
천운자가 한제를 바라보며 외쳤다.
“그렇다면 너는 대체 누구지?”
한제는 잠시 감았던 눈을 떠 전방의 거대한 허상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정계 나침반의 수호자다! 넌 당시 내게서 그것을 빼앗아갔어! 묵지라는 내 제자 녀석도 알고 있을 터!”
천운자의 일갈에 한제는 침묵했다.
그 순간, 두 눈을 번득이던 천운자가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모습을 이루고 있는 검은 기운 일부가 떨어져 나와 하늘에 검은 회오리를 하나 형성했다. 그 회오리 안에서는 점차 하나하나의 장면들이 나타났다.
“못 믿겠다면 직접 보고 이 장면들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직접 판단해라!”
검은 회오리 속에서 한제는 또 다른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시체를 끌어안은 채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있었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 전, 모완의 부활에 실패하여 슬픔에 사무친 자신의 분노와 광기가 가득한 두 눈을 볼 수 있었다.
“하늘이 널 데려간다면 나는 널 빼앗아올 거야! 하늘을 파괴하고 땅을 깨부수겠다! 윤회에 파고들어 그 안의 너를 조금씩 끌어 모아서라도 다시 살려낼 거야! 그래도 성공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너와 함께 그 윤회 속에 침잠하겠어! 영원히…”
한제는 회오리 안에 나타난 장면들을 마치 잊었던 기억을 살피듯 바라보았다.
“여기서 모완을 부활시킬 수 있을 거라는 말은 나를 이곳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했던 말이로군. 그 말은 진실이냐, 거짓이냐?”
한제가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진실이기도 하고 거짓이기도 하지. 정계 나침반은 역진계에서 유일한 공멸의 보물이다.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지. 허나 네게 그럴 기회가 있을까? 하하하!”
천운자는 호탕하게 웃었으나 덤덤한 한제의 표정에 내심 불안해졌다.
“저건 무슨 다리지?”
한제는 검은 기운으로 이루어진 천운자의 허상 뒤로 하늘과 땅을 잇고 있는 다리를 가리켰다.
“정계 나침반의 답천교다. 역진계의 모든 중생은 일정 수준에 이르면 답천교의 본체를 감지할 수 있지.”
천운자는 알 수 없는 불길함이 점차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그 불길함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한제는 씩 웃으며 그런 천운자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내 의식이 잠들어 있다가 막 깨어난 사람처럼 몽롱해지지 않는지, 어째서 왜곡되지 않는 것인지 의아한가?”
한제의 말을 들은 순간, 천운자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는 거대한 허상의 몸으로 몇 걸음 물러나 한참이나 한제를 바라보다가 돌연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번쩍 떴다.
“너⋯⋯ 아니야, 불가능해! 일찍이 전생의 기억을 알게 됐다 해도 이곳 정계 나침반 안에 이르러야만 몽도에서 깨어날 수 있는데… 이전에도 몇 차례나 이 정도 수준에서 깨어났는데… 한데 어째서 이번에는…?”
“넌 수호자가 아니야. 부족한 하나지⋯⋯.”
한제의 덤덤한 목소리에 천운자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처음에는 망설였지. 시고 조묘에서 일곱 색채의 눈이 내리던 산 위, 시체를 끌어안은 인영을 두 번째로 보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 순간 내심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고 어떤 방법이 떠올랐어. 스스로도 미친 게 아닐까 싶은 방법이…”
한제는 천운자가 아니라 그 너머의 다리를 보며 말했다.
“그게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완의 부활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 진실일까 봐 두려웠다. 모완을 만나고 그녀를 부활시키기 위해 온힘을 다했던 그 모든 것이 정말로 그저 전생일까 봐. 그래서 나 자신을 몽도에 침잠시켰지. 윤회를 변화시켜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그런데… 그게 정말 전생일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한제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약간 격앙되어 있었다.
“난 그 모든 것이 현실이 될까 두려웠다. 그래서 변화시켜야만 했어! 당시 난 천역주에서 어떤 목소리를 들었어. 그 목소리는 내게 끊임없이 하나가 부족하다고 하더군. 대체 뭐가 부족하다는 건지 알 수 없었지.”
한제의 눈이 광기로 번득였다.
“또한 나는 동부계에서 환상을 보기도 했어. 선제 백범이 광기에 차 하늘을 가리키는 환상… 시간이 지나서야 그가 무의식중에 자신이 있는 세계가 어느 동굴 속 만들어진 세상에 불과했음을 깨닫고 미쳐버렸으리라 짐작했지. 산령 상인처럼 말이야. 다만 그에게는 산령 상인과 같은 용기와 기백이 없었을 뿐. 그 환상으로 계시를 얻게 된 나는 더욱 두려워졌어.”
한제는 잠시 말을 끊고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난 동부계에서 세 번째 단계에 진입했을 때 나타난 공의 문 안에서도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어. 천역주에서 들었던 목소리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아차렸지. 그리고 동부계에서 죽은 길궁의 머리를 보고 그 머리에 남아 있던 한 줄기 신념을 찾아낸 순간!”
말을 잇던 한제는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어 길궁의 두개골을 소환했다. 두개골에 새겨진 문양은 번득이면서 서늘한 빛과 살육의 기운을 풍겼다.
“난 모든 답을 찾았다!”
한제는 손에 든 두개골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천역주의 목소리가 부족하다고 했던 건 바로 너였어! 넌 수호자가 아니라 정계 나침반의 기령(器靈)이다!”
한제는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형형하게 빛나는 그의 눈빛에 천운자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이전까지는 모완을 부활시킬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도고 구역의 민둥산에서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갈피도 잡지 못했지. 한데 네가 했던 말과 이후의 경험들을 통해 시고 조묘에서 하늘을 향해 울부짖던 인영을 본 순간, 마침내 방법을 찾아냈지.
허나 그 방법을 실행에 옮길 때도 난 망설였어. 내 존재가 과연 실체인지 아니면 꿈속의 허상인지, 이곳 선강 대륙이 정말로 존재하는 곳인지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이 두개골을 보기 전까지는⋯⋯.”
한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것을 보고 듣던 천운자는 침을 꼴깍 삼켰다.
“대, 대체 무슨 방법을 생각했기에⋯⋯?”
검은 기운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천운자의 몸은 끊임없이 꿈틀거렸다. 평온하고 덤덤한 한제의 모습과 목소리에 오히려 천운자는 더욱 두려움을 느꼈다.
한제는 여전히 덤덤한 눈으로 천운자를 바라보았다.
“간단해. 나의 유월 술법은 알고 있겠지? 난 내 살육의 분신을 완성한 뒤 유월을 발휘해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하고 살육의 분신을 과거로 보냈다! 수만 년 전으로 보내 현생을 모방하게 했어. 분신은 과거에서 그 자신의 몽도를 발휘하여 미래의 모든 일을 예측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