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61
입을 비죽이던 정현이 원숭이의 털을 쓰다듬으며 여유롭게 말했다.
“정영, 그래도 같은 마을 출신인데 그럴 필요까지 있어? 어렸을 때 내가 안고 다녔던 건 기억도 안 나는 모양이지? 난 똑똑하게 기억하는데. 내가 널 안아들었을 때 네가 내 옷에 오줌을 싸버렸잖아.”
한제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원숭이의 머리를 두드렸다. 원숭이는 한제의 마음을 알아챈 듯 얼른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공중에 떠 있던 여인의 얼굴은 붉어졌다가 이내 푸른게 변해갔다. 두 눈에서는 분노의 불길이 이글거리는 듯했다. 그녀는 저물대에서 세 자루의 비검을 꺼내 들더니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오늘 아주 끝장을 내자!”
세 자루의 비검은 마치 번개처럼 정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정현은 가볍게 비검을 피한 뒤 오른손을 휘둘러 옥패 하나를 꺼내 영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곧장 빛의 장막이 그를 둘러쌌다. 동시에 그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화내지 마. 또 오줌 쌀라. 너만 기쁘다면야 이 오빠는 상관없지만.”
이번에는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여인이 이를 악물며 왼손을 휘둘렀다. 그 손목에 매여 있던 세 개의 방울이 낭랑한 소리를 냈다.
한제가 살짝 두드리자 그를 태우고 있던 원숭이는 다시 뒤로 좀 더 물러났다. 동시에 한제는 오른손을 몰래 움직여 금제를 하나 만들어냈다. 이 모든 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여인이 손목을 흔든 순간, 한제는 금제를 앞쪽으로 내던졌다. 이때 울린 낭랑한 방울소리는 처음에는 미약했으나 갈수록 커져 결국에는 마치 봄날의 우레처럼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정영이라 불린 여인의 화는 정현과 함께 온 한제에게도 미쳤다. 그녀는 운천종의 3대 해(害) 중 하나인 정현과 함께 다니는 사람이라면 분명 좋은 녀석은 아닐 것이라 생각해 한제까지 공격했다.
소리를 지르며 쓰게 웃던 정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일이 커졌군. 어렸을 때 일로 좀 놀렸다고 운령(雲鈴)을 쓸 줄이야.’
그의 앞을 막고 있는 빛의 장막은 방울 소리의 우렁찬 공격에 몇 번 휘청거리다가 무너져 내렸다. 정현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입을 벌려 노란 빛을 토해냈다. 그 노란 빛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작은 단정(丹鼎)으로 변했고 그 안에서 퍼져 나온 약의 향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원숭이로 변했다.
원숭이의 몸집은 크지 않았지만 그 몸으로부터 하늘을 뒤덮을 듯한 흉악한 기운이 풍겨 나왔다. 그 원숭이가 나타나자 정현이 올라타 있던 원숭이는 노기 어린 소리를 내지르더니 자신의 등에 타고 있던 정현을 바닥에 내던져 버리고 약의 향기로 이루어진 원숭이를 향해 내달렸다.
그와 동시에 한제가 타고 있던 작은 원숭이 역시 그렇게 했지만 한제는 정현처럼 내던져지지 않고 알아서 내려왔다.
단정의 약 향기가 만들어낸 원숭이는 맹렬하게 공격해오는 방울소리에는 아예 신경 쓰지도 않았다. 녀석의 배가 부풀어 오르더니 별안간 큰 숨을 한 번 내쉬었는데 그러자 방울 소리는 그 입김에 휘말려 돌아가 버렸다.
정영이라는 여인은 창백해진 얼굴로 피를 조금 토해내더니 매서운 눈초리로 정현을 노려보았다. 그와 동시에 그의 뒤쪽에 있던 여인들 역시 화가 난 듯 분분히 자신들의 법보를 꺼냈다.
한제의 곁으로 끼쳐온 방울소리는 한제의 코앞에서 우뚝 멈추더니 이상하게도 소리 없이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한제의 수준은 낮았지만 그의 눈썰미와 금제에 대한 실력만큼은 건재했기 때문에 겨우 축기 수준 수련자의 법술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금제가 적중한 곳은 그 방울 소리를 통한 공격 중에서도 가장 약한 부분이었다.
약 냄새로 만들어진 원숭이는 고개를 홱 돌려 의아한 눈으로 한제를 힐끗 보았다. 그 순간 원숭이의 몸은 흩어져 다시 단정이 됐고 정현은 단숨에 그 단정을 다시 삼켜버렸다.
“그만 둬. 싸우러 온 거 아냐. 그냥 이 친구를 도와서 누굴 좀 찾으러 온 거라고.”
정현이 구겨진 얼굴로 말했다. 잘못하면 동원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할 것 같았다. 괜히 정영을 약 올리지만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도 들었다. 다 가벼운 자신의 주둥이 탓이었다.
“누굴 찾아와? 이동희 사형은 안 돼!”
정영은 저물대에서 단약 한 알을 꺼내 삼키더니 혈색을 되찾았다. 그녀는 혐오감이 담긴 서늘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느릿하게 물었다.
한제는 침착한 표정으로 그 여인을 마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람을 찾으러 온 건 나야. 이동희 사형을 찾으러 온 것도 아니고.”
“이 자는 라월을 찾으러 왔어!”
정현이 옆에서 얼른 끼어들었다.
정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한제를 바라본 채 말했다.
“무슨 일로 라월을 찾아왔지?”
한제는 가벼운 웃음과 함께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지? 당신이 물으면 내가 답해야 하나?”
여인은 노기가 가득한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더니 가벼운 코웃음을 치며 저물대를 두드렸다. 그러자 옥패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 옥패를 손에 쥐고 잠시 정신을 집중하더니 곧 그것을 내던졌다. 옥패는 번개 같은 속도로 하늘을 가르며 동원 쪽으로 향했다.
일을 마친 정영은 정현에게 시선을 돌리며 매섭게 쏘아붙였다.
“정현, 말해두는데 다시 한 번 말썽을 벌였다가는 너의 부친께 다 일러버릴 거야!”
정현은 흠칫 놀랐다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럴 필요까지 있니, 사촌 누이야. 우리가 남도 아니고 네가 어렸을 때 내가⋯⋯.”
정현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정영의 표정이 다시 굳어버린 탓이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살뜰히 보살펴줬는데… 먹을 것도 주고 놀아도 주고 했잖아. 이 오빠가 오늘 온 건 정말로 이 친구가 라월을 찾고 싶다기에⋯⋯. 그리고 나도 그 김에 우리 사촌 누이도 보려고 말이지.”
정영은 콧방귀를 흥 뀌더니 정현을 무시했다. 그녀의 뒤에 선 여인들은 작은 소리로 뭐라 수군거리며 한제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한숨을 내쉰 정현은 한제 곁으로 다가가 쓴웃음을 지으며 속삭였다.
“사형, 내 입이 방정이야. 휴, 어쩔 수 없었어. 저 계집애를 보니까 나도 모르게 놀리고 싶어져서… 오늘 저 애가 당직일 줄은 몰랐거든. 미리 알았다면 내일 오는 게 나았을 텐데…”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제 할 일은 다 한 겁니다. 라월이 나오지 않더라도 약속은 지켜야 해요.”
정현은 씩 웃더니 저물대에서 소리 전송 옥패를 하나 꺼냈다. 그것을 한제에게 건넨 그가 막 뭔가 말을 하려는데 허공에 떠 있던 동원에서 학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 위에는 아름다운 소녀가 올라타고 있었는데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그녀는 학에서 훌쩍 뛰어내려 공중에 선 뒤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날 찾으러 왔다고?”
정영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라월, 아는 사람이야?”
라월은 얼른 몸을 그녀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압니다, 저자는 저와 함께 운천종에 입문한 자거든요.”
정영은 한제를 다시 훑어보더니 경고하는 듯한 눈빛으로 정현을 노려보고는 다른 여인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이제 남은 것은 세 사람 뿐이었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라월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정현은 쳐다보지도 않고 한제를 향해 재차 물었다.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담담하게 말했다.
“혹시 괜찮다면 여기 이 사람과 함께 동원으로 들어가 줄 수 있겠어? 이동희 사형을 볼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은 없어.”
말을 마친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향을 틀어 자리를 떴다. 남겨진 정현과 라월은 멍하니 제자리에 서서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참이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뭐야, 날 불러낸 게 고작 이 일 때문이었어?”
라월은 발을 살짝 구르며 소리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제 갈 길을 갈 뿐이었다.
정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한제 저자는 고고하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눈앞에 두고 쳐다보지도 않다니. 자신에게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라월⋯⋯ 사저, 혹시 지금 시간 있습니까? 저와 한제는 아주 친형제 같은 사이죠. 입문한 뒤부터 제가 얼마나 잘 보살펴 왔다고요. 방금 한제가 부탁한 일, 해주실 수 있습니까?”
정현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라월은 불만스러운 눈으로 정현을 훑어보더니 한제가 사라진 방향을 다시 바라보며 뭐라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손을 흔들어 손목의 방울을 울렸다. 순간, 학 한 마리가 공중에서 내려와 그녀의 곁에 내려앉았다. 라월은 학 위로 올라탔고 학은 곧장 위로 날아올랐다.
정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돌아서려 했다. 한데 바로 그때, 공중에서 라월의 옥구슬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따라와. 하지만 이번 한 번 뿐이야. 다음은 없어.”
정현은 순간 기쁨에 겨워 얼른 라월이 탄 학 뒤를 쫓아 동원으로 향했다.
한편 한제는 동원을 떠난 뒤 곧장 북원에 있는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다. 처소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가 떠나기 전 걸어놓았던 금제에도 누군가 건드린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한제는 모완이 준 단로를 꺼내 다시 단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없으니 최대한 빨리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모완과 서로 지난 시간의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더구나 자칫하면 가까스로 얻은 운천종 제자 신분이 사라져버릴지도 모르기에 원영기에 이르기 전까지는 모완을 아는 체 할 수 없었다. 또한 2백 년이 넘는 지난 시간 동안 달라진 게 너무 많으니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는 편이 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모완이 마량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 놀랍긴 했다. 하지만 2백 년간 자신의 흔적을 찾았다면 육신의 이름 정도는 알게 됐을 것이다. 그쯤이야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허나 이모완의 표정이나 반응으로 보아 자신의 존재에 어느 정도 의심을 가진 듯했다. 이는 분명 문제였다.
이모완에 대한 한제의 감정은 복잡했다. 사실 신선계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마주친 여인은 많았지만 이모완은, 그와 한 공간에서 여러 해를 지낸 유일한 여인이었다. 또한 그 여인에 대해 한제 역시 일찍이 마음을 두고 있었지만 그런 감정을 억지로 지워버렸다.
한데 지금, 다시 그 여인을 만나게 되니 한제의 마음은 복잡했다.
방에서 한참이나 고민하던 그는 한숨을 내쉰 뒤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다스렸다.
본체, 나타나다
또다시 몇 개월이 지났다.
주림의 폐관 수련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반면 그 사이에 한제의 연단술은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다만 단약 제조에 대한 자질이 그리 뛰어난 것 같지는 않았다. 모완이 준 단로로 93번을 시도한 끝에 겨우 화기를 통제하는 법을 파악한 것을 보면 말이다.
그는 옥패에 기록된 단약 제조 방법을 이용해 단약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주림이 준 옥패 안에 기록된 것은 모두 반제품의 단약이었다.
약초밭의 약초들을 이용해 한제는 그 방법들을 하나하나 시도해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실패율이 높아 열 번에 한 번 성공하는 꼴이었다.
심지어 때로는 그 한 번마저 제대로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약초밭에는 아직도 많은 약초가 있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곧 동이 날 것 같았다.
결국 한 가지 약초를 다 써버린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영기 액체로 대체하여 단약을 만들어 보았는데 뜻밖에도 성공적이었다.
게다가 이 성공은 한 번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 성공률이 기이하게 높아, 열 번 중 아홉 번은 성공을 거두었다.
이렇게 영기 액체와 석주의 중첩적인 작용으로 한제의 수준은 끊임없이 상승해, 벌써 응기 15단계에 이르러 축기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한제는 그의 본체가 축기에 이르는 데 몇 차례나 실패하자 사도환이 가르쳐준 방법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축기단을 얻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마도의 신통술인 탈기법을 사용하는 것이었으며 세 번째는 원영기 이상 수련자의 도움을 받는 방법이었다.
축기단은 굉장히 드물었고 원영기 수련자가 그를 도와줄 리는 없었으므로 당시 한제가 선택했던 것은 마도의 탈기법이었다. 그 탈기의 대상으로 어쩌다보니 등화원의 증손자 등력을 사용했다.
지금 한제는 다시 그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탈기법을 이용할 필요도 원영기 수련자의 도움을 갈구할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이미 연단술을 파악한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축기단의 제조 방법은 굉장히 얻기 힘들었다. 원래 이 축기단은 사부가 만들어 제자에게 주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 주림은 폐관 수련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