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7
“당장 오늘부터 가주면 좋겠구나. 지금은 잡무처가 너무 지저분하니 가서 한번 정리를 해야 할 것이다.”
말을 마친 장 사형은 가볍게 포권을 취한 후 발을 한 번 굴렀다. 그러자 윤기가 나는 작은 검이 나타나, 무지개가 되어 그를 태우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갔다.
한제는 무기력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잡무처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곳은 보는 눈이 많아 비밀을 유지하기 어려웠고 잡무가 많아 수련 시간을 뺏길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렇다고 가지 않겠다고 말할 수도 없었기에 한제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짐을 챙겨 잡무처로 향했다.
★ ★ ★
잡무처에 도착한 한제는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가 생각한 방법은 일을 엉망으로 처리해 수련생들이 불만을 터뜨리게 만들어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우선 죽은 유 사형의 방을 정리하고 침상과 책상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장원으로 꺼내버렸다. 그러는 동안 몇몇 수련생이 잡무처로 찾아왔다. 한제가 잡무처를 담당하게 됐다는 소식에 불안해진 이들이 많았다. 특히 그동안 한제를 가장 많이 비웃고 무시했던 수련생들은 좌불안석이었다.
처음에 수련생들은 방 정리하는 것을 도우려 했으나, 한제가 냉랭한 눈빛으로 노려보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장원 앞을 서성였다.
정리를 마친 한제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의자 하나를 가져와 그 위에 앉아서는 냉랭한 눈빛으로 장원에 모인 백여 명의 수련생들을 바라보았다. 이들은 대산파의 그 많은 수련생 중 일부에 불과할 뿐이니, 앞으로 며칠간은 그들에게 할 일을 배분하는 것만으로도 바쁠 터였다.
“너, 앞으로 장작을 패. 매일 500근 씩!”
한제가 한 사람을 지목하며 말했다. 예전에 수련생 시절의 자신을 가장 많이 비웃고 욕하던 자였다.
그 사람은 깜짝 놀라며 곧장 울상이 되어버렸다.
“이 사형, 저⋯⋯ 저는 여태 취사장에서만 일을 해서 밥만 할 줄 알지, 장작 패는 법은 모릅니다.”
한제는 그를 노려보며 흥, 소리를 냈다.
“뭐라고? 500근은 너무 쉽다고? 그렇다면 1000근!”
상대는 쿵 소리가 나도록 꿇어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이 사형, 제가 잘못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해서는 안 될 짓을 분간하지 못하고 저지른 실수였습니다. 허나 사형도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1000근이라니… 사람이 그걸 어떻게 다 할 수 있겠습니까? 500근으로라도 줄여주십시오.”
옆에 있던 수련생들은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한제가 자신들을 괴롭힐 것이라 예상하긴 했지만 이토록 악독하게 굴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수련생들 사이에서 몇몇이 불만을 터뜨렸다.
“다들 아무 지시도 따르지 말고 장로님을 찾아가서 말씀드리자! 장로님께 시시비비를 잘 가려달라고 하면 이한제도 크게 혼날 거야!”
“그래, 다 같이 장로님께 가서 다른 정식 제자로 바꿔달라고 하자. 바꿔주지 않으면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꿇어앉아 버리는 거야!”
“그러자! 가자! 여기서 우물쭈물 하지 마. 저 득의양양한 표정 좀 보라고! 자살 소동으로 이곳에 들어온 놈에게 휘둘릴 게 뭐 있어!”
성토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더니, 나중에는 욕설로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들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장원을 나가 장로에게로 향했다.
한제는 편하게 의자에 기대어 앉아서 떠나는 그들을 막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수련생들을 응원했다. 제발 다른 정식 제자를 보내 자신을 잡무처 일에서 해방시켜 준다면 자신은 수련할 시간을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장원에 남은 열 명 정도의 수련생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뭇거렸다. 떠나고 싶기는 하지만 만약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가는 더 미운털이 박힐까봐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한제는 조급한 기색도 없이 수련생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련생들이 돌아왔다. 허나 다들 잔뜩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좀 전의 의기양양함은 어딜 갔는지, 절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제는 그들의 표정을 보자마자 크게 실망하고는, 이내 조금 더 일을 크게 벌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너희들은 일전에 날 비웃고 놀렸다. 잘 들어라. 난 오늘 복수를 하러 이 자리에 왔다. 불만이 있다면 장로님을 찾아가라. 날 잡무처에서 쫓아낼 수 있다면 난 오히려 그 자에게 감사할 것이다.”
“이 사형, 사형은 큰 힘을 가지셨습니다. 저희를 너무 괴롭히지는 말아주십시오.”
수련생 하나가 애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맞아요, 이 사형. 저희가 어리석었습니다.”
“이 사형, 저는 안 그랬어요! 저는 처음부터 사형을 지지했어요.”
★ ★ ★
그때, 누군가가 버럭 화를 냈다.
“조이남! 이 사형 욕하는 거 제일 좋아했던 사람이 누군데 이제 와서… 이 사형, 이 자식 말 듣지 마세요. 조이남이 했던 욕이 제일 심각했어요!”
“조삼남, 이 정신머리 없는 자식! 친형에게 그게 할 소리냐?”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는 와중에 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형, 저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 많은 일을 하지 못합니다. 매일 저녁 사형의 어깨와 등을 주물러드리는 일을 맡으면 안 될까요?”
꽤 예쁘장하게 생긴 수련생이었다.
대산파 수련생 중 여자는 10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그 수가 워낙 적은 터라 여자 수련생들은 언제나 많은 환영을 받았다. 심지어 타고난 자질이 있는 여자 수련생들은 정식 제자들로부터도 많은 어여쁨을 받곤 했다.
이때 또 다른 여자 수련생이 한제에게 눈을 찡긋하며 응석을 부리듯 말했다.
“사형, 이전에 유 사형께서는 제게 매일 저녁에 한 번 시중드는 것이면 족하다 했습니다. 저녁에 자매들을 데리고 뵈러 가도 될까요?”
모두가 분분히 하고 싶은 말들을 떠들어댔다. 묵묵히 듣고 있던 한제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소리쳤다.
“다들 조용히 해!”
그 한 마디에 조용해지자 한제는 한 사람을 지목했다.
“너, 물을 길어. 하루에 항아리 스무 개 분량이야! 불만 있으면 장로님을 찾아가!”
상대는 바들바들 떨면서 입을 쩍 벌렸다. 하지만 한제의 냉랭한 표정에 그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현
“너, 옷을 빨아. 하루에 500근씩. 불만이 있다면 곧장 장로님을 찾아가라고!”
지목당한 사람은 침을 꿀꺽 삼키며 암담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500근이라면 문파 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옷을 더한 무게⋯⋯.”
“넌 청소 담당이야. 온 문파의 청소는 네가 담당하는 거다. 다시 말하는데 불만 있다면 장로님을 찾아가!”
“넌 약초를 캐. 매일 500근씩. 아무 잡초나 뜯어서 날 속였다가는 다리몽둥이를 분질러서, 문파에서 쫓아낼 줄 알아! 잘 들었겠지만 불만 있으면 장로님을 찾아가!”
마지막 지시를 받은 사람은 한제의 말을 듣자마자 쓰러져 버렸다. 모든 수련생이 동정하는 표정으로 그 수련생을 바라보았다. 500근의 약초라니, 대문파가 위치한 온 산을 뒤져도 그만큼의 약초를 캐낼 수는 없었다.
한제는 자신을 놀렸던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한 명씩 지목한 뒤 마음 가는 대로 일을 맡겼다.
잠시 후, 작업 배분이 끝나자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저들이 그 많은 일들을 다 할 수는 없어. 장로를 찾아갈 수밖에 없을 걸? 음, 그런데도 장로와 사숙들이 꿈쩍도 안 하면 어떡하지?’
만일에 대비하기 위해 일을 더 줘야 할 것 같았다. 한제 자신을 계속 잡무처에 두는 것은 큰 실수라는 것을 모두에게 알리기 위해서!
한제는 한 수련생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넌 운이 좋았다. 일은 간단해. 누가 몇 월 며칟날, 내게 어떤 선물을 주었는지 잘 적어놓고 보관하고 있다가 한 달에 한 번 그 선물들을 내게 가져오는 거지. 욕심을 냈다가는 너 역시 문파에서 쫓겨날 줄 알아라!”
그 사람은 깜짝 놀라면서도 기쁘다는 듯 바닥에 머리가 닿을 듯 절을 했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절대 아무런 실수도 없도록 하겠다고 연신 중얼거렸다.
모든 수련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전에 유 사형도 선물이나 뇌물을 받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요구하지는 않았다.
이때 어느 수련생이 갑자기 앞으로 나오며 품에 있던 천리부 세 장을 꺼내 두 손으로 공손히 내밀었다.
“이 사형, 제 작은 성의입니다.”
한제는 콧소리를 내며 그것을 받아 품에 챙겨 넣었다.
“네가 맡은 일이 뭐지?”
“물 긷기입니다. 하루에 항아리 스무 개를 채우라고 하셨죠!”
긴장한 기색의 수련생이 얼른 대답했다.
“하루에 항아리 다섯 개로 하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한제의 말에 그 사람은 기뻐하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이를 시작으로 다른 수련생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제는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다들 흩어지도록. 선물을 줄 때에도 절차와 규칙이 있는 법이다. 자신이 맡은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종이에 적어서, 내가 지정한 사람에게 제출하도록. 열흘에 한 번씩만 가능하다!”
말을 마친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았다.
장원에 남은 수련생들은 저마다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이들은 분노한 눈으로 한제가 사라진 방을 노려보기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다들 화를 속으로 삭이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모두가 떠나자 한제는 밖으로 나와 잡무처를 한번 쭉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구석에 있는 창고를 찾아갔다.
창고는 크지 않았다.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숨어 있기에는 훌륭한 곳이었다.
창고를 한 번 청소한 그는 문을 걸어 잠근 뒤 가부좌를 틀고 앉아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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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 한제가 잡무처를 맡은 지 두 달이 됐다. 한제는 수련생들에게 일을 배분한 첫 며칠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수련에 집중했다. 수련생들의 일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