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71
한데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대전이 우르릉 진동하더니 그와 동시에 하늘을 뒤덮을 듯한 압박감이 땅속으로부터 솟아나왔다. 사방을 휘젓는 듯한 그 압박감에 깜짝 놀란 원영기 수련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신식으로 땅속을 살폈다.
모완의 눈에 부드러운 빛이 담겼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한제가 왔다는 것을.
★ ★ ★
광장 아래의 밀실 안.
모완이 만든 일곱 개의 용이 주조된 단정(丹鼎)에서 쩌적 소리가 연거푸 나면서 상처 같은 균열이 하나 나타났다. 단정의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균열은 눈 깜짝할 사이에 아래쪽으로 쭉 뻗었다.
그와 동시에 여러 색채로 반짝거리는 빛이 그 균열 안쪽에서부터 새어나왔다. 빛은 갈수록 거세지더니 결국 균열을 따라 온 밀실을 가득 채웠다. 이어 또 한 번 파열음이 들리더니 단정 표면에서 다시 여러 갈래의 균열이 나타났다. 밀실을 채운 빛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바로 이때, 수정처럼 투명하고 반짝거리는 팔 하나가 천천히 그 단정의 균열에서부터 뻗어 나와 가로로 휙 그었다. 순간 단정은 산산 조각이 나며 거대한 파편들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단정이 있던 곳에 백발의 남자가 눈을 감은 채 허공에 떠 있었다. 오색찬란한 빛의 원들이 그의 뒤에서 서서히 나타났다. 남자의 몸은 허상처럼 투명해졌다가 다시 실제처럼 색깔을 찾아가기를 반복했는데 투명해졌을 때에는 단전 부근에 그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있는 모습이 언뜻 드러났다.
사람을 질식시킬 듯한 압박감을 발산하던 그의 몸이 점점 실체화되었다. 그리고 그가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단전에 자리한 작은 사람 역시 거의 동시에 두 눈을 떴다. 그 눈에는 동공 대신 붉은색 번개만 자리하고 있었다. 그 번개는 무수히 많은 벼락과 뇌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순간, 밀실 안의 오색찬란한 빛이 씻은 듯 흩어져 사라졌다. 대신 밀실 안에서는 붉은색 번개가 횡포를 부리듯 활개치고 돌아다녔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단정 조각들은 순식간에 재로 변해 흩어졌다.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인지 신식으로 땅속을 살피던 자들은 모두들 저도 모르게 잔뜩 겁을 먹은 표정으로 신식을 회수했다.
그때, 운천산맥의 바람과 구름의 형세가 바뀌었다. 땅속에서부터 몰아치는 듯한 위압감에 운천산맥 전체가 흔들리는 듯했다. 다채로운 빛깔의 상서로운 구름들이 하늘에 나타났고 대전은 별안간 진동하기 시작했다.
원영을 맺다 (3)
대전 안에 있던 각 문파의 수련자들은 모두 잔뜩 굳어 있었다. 개중 식견이 넓은 몇몇 사람들은 상서로운 구름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 소리쳤다.
“여⋯⋯ 여기에 원영을 맺은 사람이 있는 것인가?”
그 말이 나오자 대전 안의 원영기 수련자들을 제외한 모든 자들은 부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원영을 맺는 것은 모든 수련자들에게 평생의 과업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문파에서는 뜻밖의 사고나 변고를 막기 위해 원영기 진입을 위해 폐관 수련하는 수련자들을 더욱 철통같이 보호했다.
지금 이곳에 상서로운 구름이 떠올랐다는 것은 운천종 내의 누군가가 원영을 맺었다는 뜻이었다. 이곳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은 생각을 했다. 운천종에 또 한 명의 원영기 수련자가 늘었구나.
사마운남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축하하네. 운천종에 또 한 명의 원영기 수련자가 늘어난 모양이군. 내가 아는 이인가? 모두에게 얼굴 한 번 보여주는 게 어떤가?”
송청과 류비는 내종와 외종 장로들을 바라보았다. 장로들은 모두 아연한 표정으로 진땀을 흘렸지만 결국 누가 원영을 맺었는지는 생각해내지 못했다. 이에 그들은 분분히 고개를 저었다.
송청과 류비의 얼굴도 구겨졌다. 송청은 그늘진 표정으로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부끄럽군. 나 역시 원영을 맺은 자가 누군지 궁금하네. 찾아낸다면 여러 도우들도 분명 그자가 누구인지 알게 될 기회가 있겠지!”
그의 목소리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
그의 말이 나오자마자 대전 안의 모든 수련자들은 곁눈질을 했다. 만약 운천종 안에 원영을 맺은 사람이 없다면 일이 재미있어 질 것 같았다.
동시에 각 문파의 수련자들은 저마다 아쉬워했다. 원영을 맺은 이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하필 오늘 같은 날 원영을 맺다니, 이리 많은 사람 앞에서 운천종의 체면을 떨어뜨렸으니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류비는 한기가 잔뜩 어린 눈으로 억지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직접 봐야겠군. 대체 어느 누가 감히 우리 운천산맥의 힘을 빌려 원영을 맺었는지 말이야. 그자의 원영은 내가 처리하지!”
류비는 가라앉은 얼굴로 소매를 휙 휘둘렀다. 순간 그의 모습이 사라졌고 그와 동시에 대전 안에 있던 각 종파의 원영기 수련자들도 신통술을 부려 대전 밖으로 나갔다. 그들은 모두 재미있는 구경을 할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초나라의 최고 문파라 할 수 있는 운천종에서 벌어진 일이라 특히 재미있었다.
오늘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은 이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힌 상태였다. 원영을 맺은 정체 모를 누군가에 비하면 혼례식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대전 밖으로 나간 순간, 광장에 놓여 있던 일곱 개의 탈천정에서 귀를 울리는 웅웅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 그 일곱 개의 단정은 마치 커다란 손에 의해 옮겨진 듯 분분히 사방으로 흩어졌다.
땅에서 쩌적 소리가 울리더니 깊은 고랑과 같은 균열이 줄기줄기 나타났고 거기서부터 짙은 음산한 기운이 확산됐다. 대전 광장이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사마운남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이었으나 내심 불안한 마음이었다. 이것은 결단코 원영기 수준의 수련자가 낼 수 있는 기운이 아니었다.
그는 곁눈질로 다른 사람들을 살폈다. 광장 안에는 열 명이 넘는 원영기 수련자들가 있었는데 모두 침착한 표정이었지만 그 눈에서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류비는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며 번개처럼 빠르게 몸을 놀려 그 균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크게 외쳤다.
“대체 누구기에 우리 운천종의 힘에 기대어 원영을 맺었느냐? 우리 운천종을 능멸하는 것이냐!”
그의 몸이 균열 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균열 안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류비의 것이 분명한 비명에는 잔뜩 겁에 질린 기색이 어려 있었다.
사방의 원영기 수련자들은 분분히 뒤로 몇 걸음 물러난 채 신중하게 균열을 주시했다. 마치 그 안에 원고 시대의 저주라도 들어있는 것처럼…
손진위의 아버지 역시 얼굴이 살짝 굳은 상태였지만 그는 오히려 앞으로 나섰다. 동시에 운천종의 원영기 수련자들도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모두 저물대에서 법보를 꺼내들고 있었다.
이때, 손진위가 대전에서 뛰쳐나왔다. 그는 아직 원영기 수련자가 아니었고 순간 이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 다른 원영기 수련자들보다는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뛰었다.
모완은 느릿하게 그 뒤를 따라 나왔다. 손진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모완의 눈에 비웃음이 담겼다. 그러다가 깊게 파인 균열에 닿자 시선이 부드럽게 바뀌었다.
회색 옷의 노인은 몸을 앞으로 내밀어 그 안을 들여다보려다가 손진위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외쳤다.
“진위야, 돌아가거라. 여기는 네가 올 곳이 아니야!”
“여기까지 왔다면 도망칠 생각은 마라!”
한겨울 바람처럼 서늘하고 냉랭한 목소리가 균열에서부터 음산하게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에 손진위는 와르르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익숙한 그 목소리에 그의 심장은 가슴을 뚫고 나올 듯 요동쳤다.
잠시 후, 백발에 냉담한 얼굴을 한 청년 하나가 천천히 그 균열 속에서 나왔다. 미간에서 보라색 반점이 빛나는 그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사방의 공기가 꽁꽁 얼어버렸다.
그의 오른손은 류비의 머리카락을 쥐고 있었다. 청년의 몸이 지면 위로 올라오자 창백한 얼굴에 두 눈이 감긴 류비의 모습도 드러났다. 그와 동시에 손진위의 부친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나 청년을 주시했다. 사방에 자리한 운천종의 원영기 수련자들도 모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마운남을 비롯한 다른 종파의 원영기 수련자들은 겁에 질린 안색으로 잠자코 상황을 살폈다. 류비가 당해내지 못한 상대라면 그들이 돕는다 해도 소용 없을 것이었다.
송청은 찬 숨을 들이마시며 변함없는 표정으로 오른손을 흔들었다. 순간 한 명의 장로가 은밀하게 옥패 하나를 꺼냈다. 그가 그것을 사용하려던 찰나, 백발 청년은 냉담한 시선으로 송청과 그 장로를 힐끗 보더니 픽 웃었다.
송청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속속들이 간파당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옥패를 꺼내든 장로는 당황하여 손에서 옥패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을 다시 주워 들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만약 그랬다가는 분명 끔찍한 결말을 맞게 될 것만 같았다.
깊은 숨을 들이마신 송청은 얼른 상대의 손에 붙잡혀 있는 류비를 살핀 뒤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으며 말했다.
“도우, 그건 오해야, 오해!”
백발 청년은 한제였다. 사방을 훑던 그의 시선이 모완에게 닿았을 때 서늘한 눈빛 속에서 부드러움이 반짝였다. 왼손을 뻗은 그가 조용히 읊조렸다.
“이리 와.”
모완은 아름답게 미소 지으며 한제 곁으로 다가갔다. 그에게로 다가가는 내내 그 길 위에 서 있던 다른 원영기 수련자들은 옆으로 비켜서 그녀에게 길을 내주었을 뿐, 어느 누구도 감히 막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깊은 숨을 들이마시던 사마운남의 눈빛이 살짝 빛났다. 그는 야망이 넘치는 사람이었지만 운천종이 지난 수천 년 동안 매번 호연종을 짓밟을 때마다 속이 뒤집힐 것 같으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눈앞에 백발 청년이 나타난 순간 그는 그 청년이 서리가 묘사했던 그자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다만 저자의 수준이 단번에 류비를 제압할 정도일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기에 매우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내심 기뻤다. 청년이 강할수록 운천종이 화를 입을 가능성은 커졌다. 특히 방금 저 청년의 원영을 처리하겠다고 출사표까지 던진 류비가 오히려 산 채로 청년에게 붙들렸으니 운천종의 체면은 더더욱 곤두박질 친 셈이었다.
송청 역시 모완에게 길을 비켜 주었다. 오직 회색 옷의 노인만이 분노한 기색이었다. 모완은 자신의 며느리가 될 여인이었다. 그런 여인이 저자의 말에 순순히 따르다니, 그로서는 정말이지 견딜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생각이 깊은 그는 분노를 억누르며 표정을 푼 채 모완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
모완이 그 원영기 수준의 수련자들 사이를 걸어갔다. 이전까지 그들은 웃는 얼굴로 모완을 보면서도 속으로는 불손한 생각들을 품어댔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모두 두려워하고 있었고 모완을 향한 눈빛도 이전과 달랐다.
모완은 이 모든 것이 한 사람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는 사람, 손짓 한 번에 류비 같은 자를 잡아들일 수 있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그녀의 남자 한제였다.
모완은 꽃 같은 얼굴로 해사하게 웃으며 한제의 곁에 섰다.
한제의 눈길은 손진위를 향했다. 손진위는 창백한 얼굴로 한제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전의 온화함은 씻은 듯 사라졌고 그 눈에는 원망과 한스러움만이 깃들어 있었다.
한제가 가볍게 한 마디 뱉어냈다.
“죽어.”
극의 신식이 발동되면서 광장은 거대하고 불가사의한 신식으로 뒤덮였다. 모든 원영기 수련자는 찬 숨을 들이마셨다. 체내의 원영이 불안하게 덜덜 떨리기도 했다.
이런 느낌은 왔을 때처럼 빠르게 떠나갔다. 몸을 부르르 떨면서 두 눈을 까뒤집은 손진위는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져 몇 차례 경련하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인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은 멍하니 손진위를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시뻘겋게 충혈된 두 눈으로 몸을 훌쩍 날려 아들 곁으로 다가간 그는 저물대에서 몇 병의 단약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떨리고 있었다. 결국 집어 들었던 단약을 내던진 그가 고개를 들어 한제를 노려보며 외쳤다.
“어째서냐!”
한제는 오른손을 한 번 털었다. 그의 손에 붙들려 있던 류비가 몸을 미약하게 떨며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으며 몸은 기이한 힘에 고정되어 있었다. 류비는 분노가 끓어오르는 듯한 눈빛으로 낮게 내뱉었다.
“죽이려면 얼른 죽여라. 이렇게 욕보일 필요 없지 않느냐!”
송청은 애가 탔다. 시조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이곳에서 어떤 사태가 벌어졌는지 알아차렸을 텐데 왜 오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깊은 숨을 들이마신 그는 지금으로서는 시간을 끄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에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선배님, 우리 운천종은 이 장로가 선배님의 정인인 줄 몰랐습니다. 이 일은 저희 운천종의 잘못이니 대전으로 드시어 저희에게 사죄할 기회를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가 지금 이 상황이 벌어진 연유와 자초지종에 대해 모를 리 없었다. 저도 모르게 시조께서 쓸 데 없는 일을 벌이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모완을 그냥 뒀다면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모완에게 저런 수준의 벗이 있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 손진위의 죽음이야 외종의 수많은 결단기 제자 중 한 명의 죽음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의 일은 나와 저자의 개인적인 원한으로 벌어진 일이다. 누구라도 끼어든다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한제는 송청은 본 척도 않고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을 향해 느릿하게 말했다.
회색 옷의 노인은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며 오른손으로 저물대를 두드렸다. 그러자 보라색 비검 일곱 자루가 튀어나왔다. 그 비검들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하늘을 뒤덮을 듯한 검기(劍氣)를 뿜어냈다. 노인은 원영기 중기에 달하는 실력으로 그 일곱 자루 비검을 동시에 한제에게 날렸다.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상황을 주시하던 류비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땅속으로 돌진하자마자 파멸적인 위력의 기운에 뒤덮였던 그는 체내의 원영이 자칫 몸 밖으로 빠져나갈 뻔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를 통해 상대가 원하면 자신은 언제라도 죽을 것임을 명확하게 깨달았다.
운천종의 시조조차 자신에게 그런 느낌을 줄 수는 없었다. 류비는 이미 원영기 중기의 절정에 달한 상태로 앞으로 조금만 더 정진한다면 후기에 진입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연단(煉丹) 재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