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72
한제는 담담한 눈빛으로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일곱 자루의 비검은 아예 무시한 채 다시 극의 신식을 발동해 눈을 통해 붉은색 번개를 번득였다.
모든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졌다. 회색 옷의 노인은 피를 토해내며 눈을 까뒤집었다. 그의 몸에서 빠져나온 원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순간이동을 통해 빠르게 도망쳤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저물대에서 구리색 거울을 꺼냈다. 그리고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그 위에 찍었다. 순간 그 거울은 푸른빛을 번득였고 그 빛은 곧장 도망친 원영을 뒤쫓았다.
원영은 비참한 비명을 내지르며 그 푸른빛에 갇혀 푸른 연기를 내뿜었다.
한제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그 푸른빛은 곧장 회수되었고 그 안에 들어 있던 원영도 그의 손에 붙들렸다. 한제는 그 원영이 담긴 푸른빛을 힐긋 본 뒤 무정한 눈빛으로 손을 뻗어 원영에서 신식을 제거한 뒤 그것을 모완에게 건넸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연단(煉丹) 재료야.”
모완은 곱게 웃으며 그 원영을 받아든 뒤 조심스럽게 저물대에 집어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굉장히 높은 품질의 단약을 만들 수 있을 거야.”
사방이 고요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전에 있던 다른 종파의 수련자들도 이미 밖으로 나온 상태였다. 방금 벌어진 장면에 그들은 감히 숨소리조차 크게 낼 엄두를 내지 못한 채 겁에 질린 눈으로 한제만 바라보고 있었다. 서리 역시 그 속에 섞여 있었다. 그는 한제를 보자마자 얼른 고개를 숙였다. 마음이 덜덜 떨려왔다.
운천종의 원영기 수준 수련자들 역시 감히 한제를 노하게 할까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한편 다른 종파의 원영기 수련자들은 재차 뒤로 몇 걸음 물러나 한제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들은 어떻게든 이 일에 말려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제는 망설임 없이 오른손을 휘둘렀다. 류비의 몸이 마치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듯 점점 그에게 다가왔다. 동시에 한제는 한 손으로 모완을 끌어안고 마치 번개처럼 몸을 훌쩍 날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운천종 장로에게 돌진했다.
그 장로는 단단히 굳은 얼굴로 순간이동을 했다. 허나 그 와중에도 파멸적인 힘이 신식의 바다에 침입해 마치 거대한 손처럼 휘저었다. 순간이동 상태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는 몇 움큼의 피를 토해냈다. 그의 복부와 원영은 이미 상대의 손에 뜯겨나간 상태였다.
이때 한제는 벌써 다음 사람에게로 넘어갔다. 원영기 수련자들은 분분히 뒤로 물러나며 각양각색의 법보들을 꺼내 공격을 감행했다.
이들은 결단코 평범한 인물들이 아니었다. 모두 존엄한 존재였으며, 일대일로 붙는다면야 두려울 만도 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연합하여 공격한다면 상대의 수준이 하늘을 뚫을 정도로 높더라도 덤벼볼 만 했다.
더구나 운천종의 시조들이 곧 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허나 한제 곁에 류비가 있다는 게 문제였다. 그들의 공격은 자연히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커다란 다섯 개의 신식이 유성처럼 날아오더니 이내 다섯 사람의 모습을 갖추었다. 일반적인 순간이동보다 몇 배는 더 빠른 속도였다.
그들은 거의 눈 깜짝할 사이에 운천종 광장의 상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멈춰라!”
노기 어린 외침이 거센 바람처럼 몰아쳤다.
하지만 그들의 속도는 한제를 따라가지는 못했다. 한제는 움직이기 시작한 이래로 조금도 멈추지 않고 모완을 안은 채 운천종의 장로들을 하나하나 처리하고 있었다. 극의 신식은 빠른 속도로 번쩍거렸고 두 눈에서는 붉은 빛이 흘러넘쳤다.
미처 손을 쓸 틈도 없이 연거푸 세 명의 원영기 수련자를 죽인 한제는 그들의 원영을 거두어 신식을 제거한 뒤 모완에게 넘겼다. 원영이 죽어라 도망쳐도 구리색 거울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렇게 총 아홉 명의 운천종 원영기 수련자들 중 다섯이 순식간에 죽었으며, 류비는 이미 반쯤 죽은 상태였다.
이제 운천종의 원영기 수련자는 송청을 포함해 세 명만 남아 있었다. 이들은 잔뜩 겁을 먹은 채 서로에게 의지했다.
사실 이들이 동시에 덤벼들 경우 아무리 한제라 해도 부상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제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곧장 공격하거나 숨지 않고 적들을 관찰하면서 자신의 강한 기세로 현장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이는 그가 류비를 죽이지 않고 남겨둔 이유이기도 했다. 그렇게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만으로도 모완을 더 안전하게 자신의 곁으로 불러들일 수 있었고 그렇게 모완이 자신의 곁에 있는 이상 이제 더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이번 전투에서 한제의 목적은 상대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그가 기다렸던 것은 원영기 수련자인 손진위의 아버지를 죽이는 순간이었다. 그를 통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고 살육을 자행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원영기 수련자들에게 연속적인 공격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류비는 그의 방패막이였다.
또한 운천종 사람이 아닌 다른 종파의 사람들에게 손을 대지 않음으로써 후환을 남기지 않았다. 어차피 그의 힘을 목격한 다른 종파의 수련자들은 이미 덜덜 떨고 있었다.
한제는 자리에 멈춰 하늘에 떠 있는 다섯 명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을 바라보았다. 착 가라앉은 그들의 얼굴에는 하늘을 뒤덮을 듯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중 한 노인이 소매를 휘둘렀고 순간 검은 구름이 그의 소매에서 빠져나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검은 구름은 엄지만 한 검은 날벌레들이 빽빽하게 모여서 이루진 것이었다. 한데 모인 그것들은 짙은 피비린내를 풍겼다.
다른 종파 원영기 수련자들은 곧장 그 벌레를 알아보았다. 이는 운천종의 시조 중 하나인 진백량의 법보, 자묵충(紫墨蟲)이었다. 자묵충은 온몸이 독으로 차 있었는데 이 독은 온 신선계를 통틀어 184번째로 강했다.
그보다 강한 독을 가진 것들은 대부분 멸종했으니, 사실상 가장 강한 독성을 가진 생명체 중 하나였다. 또한 껍질이 매우 단단하고 흉포해 일단 그것들에게 공격을 받으면 단 몇 초 만에 완전히 뜯어 먹혀 심지어 뼈조차도 남지 않았다.
운천종에 방문한 4성 수련국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을 정도로 자묵충은 굉장히 귀했다.
그 검은 구름이 나타난 순간, 한제는 류비를 옆으로 내던지고는 저물대를 두드렸다. 그러자 금번이 나타나 점점 커지더니 어느덧 거대한 깃발이 되어 한제와 모완을 감쌌다.
동시에 극의 신식이 발동되더니 순식간에 엄청난 위압감이 하늘을 뒤덮었다. 이에 운천종 다섯 시조의 안색이 굳어졌다. 원영기 후기에 이르는 이들은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며 법보로 그 힘에 대항했다.
쉬 – 익
극의 신식은 붉은색 번개가 되어 미친 듯이 몰아치더니 순간 검은 구름을 뚫고 곧장 진백량의 미간으로 향했다. 진백량은 그 공격에 엄청난 힘이 깃들어 있음을 단박에 알아채고는 몸을 뒤로 물리면서 두 손으로 결인을 했다. 그의 원영도 정수리 위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똑같이 결인을 했다.
몇겹의 결인으로 만들어진 보호막이 그의 몸을 감싼 채 극의 신식이 퍼붓는 공격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붉은 번개 형태의 신식은 파죽지세로 질주했다.
진백량은 혀끝을 깨물어 피를 한 움큼 뱉어냈다. 그의 정수리에 나타난 원영도 원영의 정기를 토해냈다. 진백량은 굳은 얼굴로 다급히 외쳤다.
“피의 방패!”
순간, 그가 뱉어낸 피와 원영이 뿜어낸 정기가 합쳐지며 기이하게 요동치더니 거대한 구슬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신식의 번개는 그 구슬 안으로 빠져들었다.
“파괴!”
진백량이 크게 외쳤다. 그의 백발이 휘날렸다. 그 피와 정기가 섞여 만들어진 구슬 옆에 공간의 균열이 나타나더니 그 안에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뒤이어 구슬과 그 안에 들어 있던 붉은 번개가 흡수되었고 균열은 순식간에 맞물려 사라져버렸다.
진백량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방금 조금이라도 반응이 늦었다면 그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그의 뒤에 서 있던 네 명의 시조들도 모두 긴장한 모습이었다.
한제는 시종일관 말없이 냉랭한 시선으로 진백량의 거동을 살피면서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원영기 후기의 수련자는 과연 달랐다. 극의 신식이 누군가에 의해 흩어져 파괴된 것은 처음이었다.
진백량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신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훌륭한 법보구나! 허나 이제 그 법보는 공간의 균열로 보내버렸다. 또 무슨 수를 쓰겠느냐? 자묵충아, 저자를 통째로 남김없이 뜯어먹어라!”
진백량이 오른손을 휘두르자 그의 곁에 있던 검은 구름이 미친 듯한 기세로 한제와 모완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모완은 전혀 긴징한 모습이 아니었다. 한제에 대한 그녀의 믿음은 고작 저런 검은 구름에 흩어질 정도로 얕지 않았다.
과연 한제는 가볍게 오른손을 휘둘렀고 그러자 순간 앞에서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에 이어 붉은 번개가 나타났다. 동시에 한제를 감싸고 있던 금번이 움직이더니 하늘을 뒤덮을 듯 거대한 막이 되어 다가오고 있던 자묵충들을 감싸버렸다.
금제의 빛들이 그 안에서 계속해서 번득였다. 금번에 감싸인 자묵충들은 몸부림을 쳐댔지만 끝내 빠져나오지는 못했다.
진백량은 창백해진 얼굴로 한제를 바라보며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관절 너는 누구이며 원하는 것이 대체 무엇이냐?”
“내가 원하는 것은 운천종이다.”
한제가 덤덤하고 느릿하게 말했다.
진백량은 미친 듯이 웃어댔다.
“경솔하구나! 우리 다섯 명이 연합하면 설령 네가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치명적인 부상은 피할 수 없을 터!”
허나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한제는 오른손을 들었다. 그 손바닥에는 붉은 실이 하나 있었다. 그 실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하늘의 기운이 변하더니 우르릉 하고 번개가 내리쳤고 붉은 구름이 천천히 모여들었다. 수마해에 천벌이 내렸을 때와 흡사한 광경이었다.
진백량은 말을 멈추고 한제의 손에 들린 얇은 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찬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뒤에 있던 운천종의 조사들도 앞으로 나섰다. 그중 신선의 기운이 풍기는 노인 한 명이 얼른 입을 열었다.
“저⋯⋯ 저것은⋯⋯?”
그는 말을 삼키고 고개를 들어 하늘에 모여든 붉은 구름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에 점차 두려움이 묻어났다.
한제는 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너희 다섯을 정면으로 상대한다면 나 또한 크게 다치겠지. 허나 이것은 천벌의 힘이다. 너희가 천벌을 막아낼 수 있을지 퍽 궁금하구나.”
이 천벌 한 가닥은 한제가 원영을 맺을 때 마침내 그의 몸 밖으로 배출되었다. 비록 그것으로 법보를 단련시킬 수는 없었지만 잘 통제하기만 한다면 이렇게도 사용할 수 있었다.
다섯 노인은 침묵에 잠겼다. 저것이 진짜 천벌의 힘인지 의심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얇은 실에서 느껴지는 힘과 하늘에 모여들고 있는 붉은 구름만으로도 충분했다.
“자… 잠깐!”
노인은 뭔가 말하려는 듯 했으나, 한제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천벌의 가닥을 앞으로 내던졌다. 순간 그 실은 하늘에 모여든 붉은 구름으로 향했고 이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터졌다.
다섯 노인은 고개를 들어 그 충격적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한제는 몸을 날리며 극의 신식을 다시 발동시켰다. 이미 거대한 막이 되어 있던 금번이 뒤를 따랐다.
다섯 노인은 잔뜩 굳은 얼굴로 후퇴하려 했으나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극의 신식이 진백량의 몸을 덮쳤고 그는 창백한 얼굴로 주저앉아 가부좌를 튼 채 신식의 파괴적인 힘에 가까스로 저항했다.
다른 노인들이 곧장 진백량의 곁으로 다가가 황급히 보호막을 펼쳤다. 그때, 금번이 그들을 덮쳐 한 명의 노인을 완전히 감쌌다. 노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자신이 모종의 금제(禁制)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천벌의 가닥을 내던진 한제가 곧장 극의 신식으로 진백량을 공격하고 금번으로 한 노인을 가두기까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이제 남은 사람은 세 명 뿐이었다.
초나라를 떠나다
한제는 자리에 멈춰 오른손을 흔들었다. 순간 붉은 구름 사이에 들어갔던 천벌의 가닥이 다시 한제의 손으로 돌아왔다. 한제는 남은 세 노인을 보며 말했다.
“이제 셋뿐이군. 협공을 하더라도 결국 너희는 죽게 될 것이다.”
세 사람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좌선 중인 진백량과 검은 깃발에 휩싸인 또 다른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때, 한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혼혈을 내놓는다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한제의 냉랭한 목소리에 신선 같은 노인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내 1천3백 년 평생 단 한 번도 남에게 혼혈을 넘긴 적이 없다.”
한제는 노인의 말에 차게 웃었다.
“그럼 이번이 처음이 되겠군. 혼혈을 내놓지 않는다면 후회해도 소용없다.”
말을 마친 한제가 미간을 두드리자 두 마혼이 나타났다. 그때, 좌선을 하던 진백량이 피를 한 움큼 뱉어내더니 푹 고꾸라졌다. 이미 죽은 상태였다.
이에 세 노인의 표정은 한층 어두워졌다. 그중 한 명이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혼혈을 넘긴다면 우리 목숨을 네게 맡기는 꼴이 아니더냐.”
한제는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넘긴 혼혈은 5백 년 후에 다시 돌려주지. 믿고 말고는 알아서 판단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