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74
모완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구양자 사형께서는 소첩과 같은 5품 연단사시니 원하시는 대로 해드릴 수밖에요.”
말을 마친 그녀는 한제를 바라보며 설명했다.
“운천종에 세 명의 5품 연단사가 있다고 했지? 나와 구양자 사형, 그리고 나머지 한 분이 바로 이 운천자 선배님이셔.”
한제는 고개만 끄덕이고는 잠자코 모완이 일을 처리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오랜 시간 운천종에서 생활해온 모완은 모든 원영기 수련자들에게 맞춰 상황을 해결했다. 아름다운 외모에 부드러운 말투, 거기에 훌륭한 연단술까지 더해져 울며 겨자 먹기로 혼혈을 내놓은 사람들의 성난 마음도 사르르 녹아내렸다.
물론 남의 손에 자신의 혼혈이 들려 있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그저 모완이 적절한 대가를 주었으니 누구도 고집을 피우지 못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한제의 차가운 시선이 계속 그들을 훑고 있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떠나자 한제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앉아서 호흡해. 그때 네 수명에 손상이 생기는 바람에 여태 원영기에 이르지 못했잖아. 내가 도와줄게.”
모완은 아랫입술을 깨문 채 고개를 끄덕인 뒤 한제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한제가 저물대를 두드리자 순간 그 안에서 남아 있던 여섯 병의 영기 액체가 빠져나왔다. 한제의 손짓에 뚜껑이 열린 병에 들어 있던 모든 영기 액체가 한데 모여들어 응집하기 시작했다.
한제가 오른손을 꽉 쥐자 응결된 영기 액체가 모완의 체내에 녹아들었다. 한제는 그 영기 액체로 모완의 전신을 보완해주었다. 그의 손짓에 지난 세월동안 손상되었던 모완의 몸이 조금씩 고쳐졌다.
한제를 제외하고 이렇게 많은 영기 액체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또한 이렇게 귀한 영기 액체를 가지고 남의 육신이 원래 상태로 돌아오도록 돕는 것 역시 한제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두 시진 뒤, 한제는 손을 거두었다.
이후 몇 달을 운천종에 머물면서 한제는 매일 석주에서 액체를 모아 일부는 모완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 동안 묵간석 하나를 이용해 또 다른 금번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공격 속성만을 가진 금번을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단일 속성의 금번을 만드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하나의 금번을 걸 때마다 한참동안 생각을 한 뒤에야 다음 금번을 걸 수 있었다.
몇 달 뒤, 금번의 완성을 앞둔 날 한제는 천벌이 내리칠까 두려워 한참 머뭇거리다가 마지막 금번을 걸지 않았다. 이에 금번의 위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는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 금번은 단일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위력은 이전의 금번과 비교해도 약간 떨어질 뿐이었다.
이른 아침, 한제는 모완이 운천종의 장단각(藏丹閣)에서 가져다준 단약을 챙긴 뒤 운천종을 떠났다.
대전 꼭대기에서는 모완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멀리 떠나가는 그의 모습을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그들의 다음 만남이 언제일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사실 그녀도 한제와 함께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곁에 있으면 한제에게 짐이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느니 운천종에 남아 그를 위해 단약을 만드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은 일이었다.
★ ★ ★
한제는 계속 날았다. 번개처럼 빠른 속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초나라에 처음 도착했던 오래된 전송진에 이르렀다. 당시 그는 전송진에 금제(禁制)를 걸어 그것을 가려두었는데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한제는 재빨리 그 금제를 풀었다.
순간 눈앞의 풍경이 어룽어룽해졌다. 마치 호수면에 돌을 던져 넣은 듯 층층이 파문이 일더니 곧이어 그 안에 가려져 있던 오래된 전송진이 드러났다.
한제는 몸을 날려 전송진 안에 서서는 저물대를 두드려 몇 개의 재료를 꺼내 바닥에 놓아두었다. 전송진을 떠날 때 뜯어버린 진의 재료였다.
뒤이어 그는 고개를 들고 멀리 떨어진 운천종 쪽을 바라보았다. 이내 결연한 눈빛으로 그는 마름모 모양의 최고급 영석을 꺼내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는 천천히 그것을 진 안에 내려놓았다.
웅 – 웅 – 퍽
순간 진이 요동을 치면서 빛의 고리가 하나둘 진 안에서 발산되었고 최고급 영석은 영력을 피워 올리면서 퍽 소리와 함께 가루로 부서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한제의 모습은 그 빛의 고리 속에서 흐릿해지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한참 뒤, 진은 천천히 평온을 되찾았다.
★ ★ ★
수마해 중앙 지역, 황량한 땅. 인적이라고는 없는 그 땅 위의 한 부분에는 파괴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때, 지하로부터 음울한 소리가 들려왔고 뒤이어 무너져 내린 돌조각이 거대한 힘에 의해 사방으로 밀려나더니 뭉게뭉게 피어오른 흙먼지 속에서 한제가 서늘한 눈빛으로 걸어 나왔다.
한제는 눈앞의 익숙한 땅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토해냈다. 이어 몸을 훌쩍 날린 그는 허공에 잠시 머물렀다가 동쪽을 향해 질주했다.
오래된 전송진과 주작성의 지도를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초나라에서도 그는 한참을 알아봤지만 결국 조나라의 위치를 알아낼 수는 없었다. 이에 한제는 조나라의 위치가 수마해를 중심으로 다른 끝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하늘을 날던 한제는 갑자기 미묘하게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화신기 수준 수련자에 필적할 만한 신식을 가진 그는 그 신식을 통해 옛사람을 발견했다.
수마해는 천벌이 지나간 이후 이곳을 가득 뒤덮고 있던 안개가 말끔히 사라진 상태였다. 이어 수년간 내린 검은 비를 통해 수마해는 푸른 하늘 아래 드러나 있었다.
999개의 성과 거대한 황량한 땅 안팎으로 주작성 내의 수많은 흉악한 자들이 모여들었다. 각자 고향에서 수배가 내려져 결국 수마해로 내몰린 이들이었다.
안개가 사라지자 연쇄적인 반응이 일어났다. 우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던 몇몇 4성 수련국의 시선이 수마해로 향했다. 뒤이어 각 문파와 수련자 가문의 정식 제자들이 수마해를 탐험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하늘에서 내린 검은 빗물은 여러 수준 높은 수련자들에 의해 옮겨졌다. 그러지 않았다면 수마해는 누구도 살 수 없는 공간으로 전락했을 터였다.
그 검은 빗물에는 독성이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갖가지 병이 돌기 시작했다. 원래 수련자들은 그런 병증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지만 이 병은 특이하게 단 몇 년 만에 수준이 낮은 수많은 수련자의 목숨을 앗아갔다.
결국 수마해의 고수들은 손을 잡고 그 검은 빗물을 수마해에서 말끔하게 몰아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수마해 안의 원기는 크게 상하게 되었다.
그 검은 빗물은 인간 수련자들에게는 사나운 맹수 같은 존재였지만 수마해 고유의 마수들에게는 자양강장제였다. 그 마수들은 끊임없이 퍼붓던 검은 빗물 덕에 점점 강력해져 심지어 황수(荒獸)가 나타나기도 했다.
검은 빗물은 해결되었지만 마수들이 횡행하면서 수마해는 전보다 더욱 황폐해졌고 주요 성을 제외한 곳에서는 수련자의 모습을 찾기조차 힘들었다.
그와 동시에 전문적으로 마수를 사냥해 그들의 내단(內丹)을 거두는 자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삼삼오오 조를 지어 다니면서 각자의 수준에 맞는 마수를 처리하고 그 내단을 판매해 돈을 벌었다.
수마해 중앙 지역의 현지성(玄地城) 밖, 백의를 입은 한 수련자가 우뚝 솟은 성 위에 서서 먼 곳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 중년의 사내는 체격이 당당했고 눈빛은 지혜로웠다.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훌쩍 날아오르더니 성벽을 따라 느릿하게 내려왔다.
그가 땅에 내려서자 성 안에서 일남일녀가 걸어 나왔다. 남자는 등이 약간 굽었고 끊임없이 기침을 해대는 모습이 허약해 보였다. 머리도 벗어진 데다가 안색도 좋지 않아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한편 곁에 있는 여인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씩씩해 보이기까지 했다. 모두 남색 옷을 입은 것으로 보아 같은 문파 소속인 듯 했다.
백의의 중년 남자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이들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여자는 코웃음을 치며 곁에 있는 병약한 남자를 흘겼다.
“점포도 찾았고 그 하급 영수(靈獸)의 내단의 대가로 좋은 가격을 제시받았는데 이 자가 굳이 돈 받고는 안 팔겠다고 죽어도 그 낡아빠진 검집으로 교환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지 뭐야. 정말 짜증나 죽겠다니까.”
중년 남자는 머리가 벗어진 남자를 향해 말했다.
“이 형, 무슨 검집을 말하는 건지 내게 말해줄 수 있나?”
이 형이라고 불린 남자는 쓰게 웃으며 오른손을 휘저었다. 그의 손에 굉장히 오래되어 보이는 검집이 나타났다.
“이 검집, 정말 이상하단 말이지. 마치 전혀 다른 기운을 품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가지고 싶었던 거야. 좋아, 이번에 원하는 값에 물건을 팔지 못한 것은 나 때문이니 다음에 내단의 값을 나눌 때 내 몫은 제하게.”
여자는 다시 코웃음을 치며 그 검집을 힐끗거렸다.
“무슨 검집이기에 하급 영수의 내단까지 주고 바꾸려고 하는지!”
중년 남자는 오른손을 뻗어 그 검집을 쥔 뒤 가만히 응시했다.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던 그가 말했다.
“확실히 특이한 검집이군. 이 형도 나쁘지 않은 수확을 얻었어.”
말을 마친 그는 검집을 상대에게 돌려주었다.
“그럼 이제 가보자고. 그나저나 구 형, 다시 한 번 물어볼게. 정말 그곳에 팔조수(八爪獸)가 있는 게 확실해?”
여자가 구 씨 성을 가진 중년 남자를 응시하며 말했다.
중년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저물대를 두드리자 순간 거대한 배가 나타났다. 몸을 훌쩍 날린 중년 남자가 그 배에 오르자 나머지 두 사람도 그를 따라 배에 올랐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배는 긴 무지개를 그리며 먼 곳으로 향하더니 이윽고 하늘 끄트머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배에 타자 구 씨 성의 남자 외의 두 사람은 눈을 감고 좌선을 했다. 그들이 이 배를 처음으로 타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매번 이렇게 체내의 영력을 안정시키지 않으면 그 속도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구 씨 성의 중년 남자는 살짝 무시하는 눈빛으로 그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저 둘은 모두 결단기 후기였지만 근본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었다. 자신은 결단기 후기였을 당시에도 이 배를 타고 움직일 때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그가 결단기 후기였을 때에는 같은 경지의 수련자라도 그에게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은 굉장히 적었다. 그는 신식으로나 공법으로나 대부분의 사람들을 월등히 앞섰고 특히 법보 방면에서는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게다가 전투 경험도 풍부해, 그는 줄곧 원영기 이하 수준에서는 자신이 제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그자’를 만나는 순간 무참히 깨졌다. 무심한 얼굴의 백발 남자.
한참 뒤, 그는 입가에 냉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한제, 나는 원영을 삼킨 뒤 원영기에 이르는 데 성공했다. 너는 어땠는지 모르겠군. 만약 성공하지 못했다면 다시 만나는 날 당시 겪었던 치욕을 반드시 갚아줄 것이다.
다시 만난 옛사람 (2)
나흘 뒤, 배는 황량한 땅 위에 멈춰 섰고 이 씨 성의 남자와 여인은 눈을 번쩍 떴다. 여인은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미간을 살짝 구겼다.
“구 형, 팔조수는 어디있어?”
구사평은 두 말 않고 저물대를 두드려 손바닥만 한 진흙을 꺼내들었다. 그 진흙에 영력을 불어넣은 순간, 진흙에서 진한 피비린내가 풍겼다.
그 냄새는 천천히 퍼져나갔다. 바람이 불어오는데도 흩어져 사라지기는커녕 갈수록 넓게 퍼져갔다. 바로 그때, 멀리서 갓난아이가 우는 듯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구사평은 그쪽으로 배를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여인의 얼굴에 희색이 드러났다.
“구 형이 가지고 있는 그 진흙, 특이한데? 이곳에 정말 팔조수가 있구나!”
구사평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 마수를 점찍어둔 지 벌써 몇 달째야. 그러니 그 녀석의 습성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고 있지. 만약 경지가 더 높았다면 일찍이 잡아들였을 텐데… 이번에는 두 분의 도움 좀 빌려야겠어.”
여자는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당연한 거 아니야? 결단기 중기에 불과한 수준으로 마수를 어떻게 죽여? 우리한테 맡겨두라고.”
말을 마친 여자는 몸을 훌쩍 날려 배에서 떨어졌다. 이 씨 남자도 쓰게 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구사평은 속으로 피식 비웃었다. 원영기 수준인 그에게 결단기에 불과한 두 사람을 속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이 마수를 죽이는 데에는 반드시 독을 사용해야 했고 마수가 잠드는 시간을 노려야 했다. 그런 조건이 없었다면 두 사람을 여기까지 데려올 일도 없었을 터였다.
그는 천천히, 가장 마지막으로 배에서 내려 여인이 기합을 넣으며 각종 법보로 공격을 날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팔조수는 거대 문어였다. 본래 수준도 낮지 않았던 데다가 검은 빗물의 영향으로 지능까지 높아져 이미 하급 영수의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더구나 이 문어는 비록 하급 마수였으나 그 가죽만큼은 중급 마수 수준이라 원영기 후기 수준의 수련자가 아니라면 상처를 입히기도 힘들었다. 이에 어지간한 수련자들도 팔조수와 얽히기는 싫어해 이곳에 왔다가도 금방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