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75
대신 팔조수는 무려 여덟 개의 내단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유독 독마궁의 부식액에는 맥을 못 추기 때문에 독마궁의 제자들은 이곳에 오기를 전혀 꺼리지 않았다.
구사평은 독마궁에서 온 저 둘이 독약으로 팔조수를 죽이고 나면 그들을 처리하고 내단을 독차지할 생각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갑자기 엄청난 신식이 먼 곳에서부터 훅 끼쳐왔다. 팔조수와 맞붙을 준비를 하던 두 수련자도 깜짝 놀란 듯 얼굴이 굳었다. 심지어 문어 마수마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신식에 배어 있는 공포스러운 기운을 느낀 마수는 어린아이의 울음 같은 소리를 내더니 온몸을 웅크린 채 땅속 구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감히 밖으로 나올 생각도 하지 못했다.
구사평은 감각이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었고 이미 원영기 초기에 이르러 있었기 때문에 먼 곳에서 끼쳐오는 신식을 느끼자마자 누군가가 자신의 전신을 꿰뚫어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원영이 금방이라도 몸 밖으로 빠져나갈 것처럼 통제하기 어려웠다. 그는 몇 년 전 수마해에서 검은 비를 이동시켰을 때 나타난 화신기 수준의 노인들을 떠올렸다.
이 씨 남자는 얼른 뒤로 몇 걸음 물러나 법보를 거두었고 공손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두려울 것이라곤 없을 듯하던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구사평 도우, 오랜만이군!”
멀리서 호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사평은 깜짝 놀라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선배님, 저를 아십니까?”
그와 동시에 백발 청년 하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가 좁혀져 그와 세 사람 사이의 거리는 1백 척 남짓에 불과했다.
구사평은 모습을 드러낸 자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헛숨을 삼키며 외쳤다.
“자네는!”
그는 한제였다.
한제는 두 남녀를 훑어본 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구사평을 쳐다봤다. 구사평이 뭔가 꿍꿍이를 가지고 있음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도우는 과연 경지가 높군. 원영기의 수준으로 두 명의 수하까지 데리고 다니니 말이야. 대단해!”
한제는 느릿하게 말했지만 두 결단기 수준의 수련자에게는 마치 천둥소리처럼 크고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 둘도 그저 그런 수준은 아니었다. 한제의 말을 들은 순간 서로를 마주 보더니 한제에게 포권을 살짝 취한 뒤 얼른 물러났다. 두 개의 무지개가 먼 곳으로 내달렸다.
구사평은 쓰게 웃더니 저물대에서 작은 북을 꺼냈다. 그가 그 북을 살짝 두드리자 육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얇은 검은색 실이 퍼져나갔다. 그 검은 실은 상상을 초월할 속도로 두 사람을 뒤쫓았다.
허나 거의 따라잡았을 때, 푸른빛이 두 사람 뒤쪽에 나타나 검은 실을 감싸버렸다. 이윽고 푸른빛이 사라졌을 때 두 사람은 이미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구사평은 잔뜩 구겨진 얼굴로 속으로는 한제를 향해 이를 갈았다. 그러나 겉으로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도우, 오랜만이네.”
한제를 보는 구사평의 얼굴은 웃는 것도 화를 내는 것도 아닌 표정이었다.
“저 두 수련자는 독마궁의 사람들인 것 같은데? 독마궁에서는 자기 사람들을 끔찍이 아끼니 도우는 앞으로 훗날을 조심해야 할 것 같군.”
구사평은 쓰게 웃었다. 여자야 그렇다 쳐도 병약한 꼽추는 독마궁의 핵심 제자 중 한 명이니 만약 저 두 사람이 정말 안전하게 도망친다면 한제의 말대로 자신에게 귀찮은 일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안타깝게도 독마궁이 점거하고 있는 주요 성에는 반 발짝도 들어가기가 힘들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 문제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한제에게서 풍기는 엄청난 압박감에 구사평은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굴었다. 상대의 경지에 그의 심장이 마구 뛰었다.
“허나 저 두 결단기 후기 수련자의 속도라면 도우가 빠르게 뒤쫓을 경우 따라잡을 수 있겠지.”
한제가 여유롭게 말했다.
구사평은 한숨을 내쉬며 포권을 취했다.
“도우, 할 말이 있거든 해보게. 자네와 나의 정이 깊다고 할 수는 없으나 함께 어려움을 극복한 사이 아니던가?”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수마해의 지도를 가지고 있나?”
구사평은 흠칫 놀라는가 싶더니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내게 수마해의 지도는 없네. 허나 만약 필요하다면 주요 성의 시가지에 가서 구할 수 있을 걸세.”
한제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였다. 그가 구사평을 죽이지 않은 것은 상대가 자신에 대해 꽤 깊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죽이는 건 쉽지만 그로 하여금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음? 그럼 나와 함께 가지. 지도를 찾고 난 뒤에 다시 저 둘을 쫓더라도 늦지는 않을 테니.”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덤덤하게 말했다.
구사평은 잠시 침묵하더니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속을 알 수 없는 자였다. 나타나자마자 자신의 경지를 모르는 척 짚어낸 것은 독마궁 수련자들이 도망치게 만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그의 계산 아래 이루어진 행동이었고 자신은 모르는 사이에 그의 계획 아래 끌어들여진 상태였다. 만약 자신이 완고하게 버틴다면 상대는 망설임 없이 자신을 죽여 버릴 것임을 구사평은 알고 있었다.
구사평은 복잡한 눈빛으로 한제를 한 번 바라보더니 저물대에서 옥패 하나를 꺼냈다. 꺼낸 옥패를 미간에 댄 그는 자신의 기억을 세세하게 그 옥패에 기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사평은 그 옥패를 한제에게 건네며 말했다.
“내가 지난 세월동안 수마해 안에서 돌아다녔던 모든 지역에 대한 기억이네. 약간의 오차는 있을 수 있겠지만 큰 차이는 없을 거야. 도우, 다른 일이 없다면 이만 작별하겠네!”
한제는 옥패를 받아든 뒤 그것을 살펴보지도 않고 포권을 취하며 웃었다.
“고맙네!”
구사평은 흠칫 놀라며 한제를 힐긋 바라보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확인 안 하나?”
한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럴 필요가 있나?”
구사평은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도우, 그럼 이만!”
말을 마친 그는 포권을 취하며 몸을 뒤쪽으로 날렸다. 한참 멀리까지 나아간 그가 눈을 번득이며 소리쳤다.
“도우, 난 그 옥패에 아무런 수작도 부리지 않았으니 걱정 말게!”
이내 그는 몸을 번쩍, 하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한제는 옥패를 쥔 채 그것을 훑어보았다. 그 안에는 수마해 중앙 지역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비록 외곽 지역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으나, 중앙 지역에 대한 기록에는 오래된 전송진에 대한 기록도 있었다.
이 옥패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을 것이라고 한제는 믿었다. 하지만 그는 하나의 지도만 가지고 수마해를 돌아다닐 생각도 없었다. 완전한 지도를 찾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더라도 지도와 유사한 것들을 모아 규합할 생각이었다. 그간 모은 것들을 중첩해본다면 진실과 거짓은 단번에 구별할 수 있으리라.
한제의 기억대로라면 이곳에서 북쪽으로 열흘 정도 나아가면 연묵성(連墨城)에 닿을 수 있었다. 연묵성은 수마해 중앙 지역에 있는 999개 성 중 하나로 외곽 지역의 작은 성들은 비교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구사평이 준 옥패에는 연묵성으로부터 30만 리 떨어진 곳에 방치된 전송진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기에 한제는 이곳을 택했다.
하늘을 날아 이동하는 동안 크고 작은 마수들이 나타났고 그때마다 한제는 그것들을 처리하고 내단을 취했다. 상급 마수와 마주치면 피해서 돌아갔다.
일주일쯤 흘렀을 때, 한제는 다소 두렵기까지 했다. 지난 몇 년간 이곳의 마수들에게 이런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심지어 화신기 수준에 가까운 상급 마수도 벌써 두 번이나 마주쳤다.
다행이라면 그 마수들은 서식지에 머물기만 했을 뿐, 일부러 다가가지만 않으면 쫓아오지 않았다.
그동안 한제가 손에 넣은 내단만 해도 벌써 1백 개가 넘었고 하나씩 삼킬 때마다 고신결의 운용 아래 빠르게 원영으로 흡수되었다.
드디어 전송진에 도착한 한제는 눈을 번득인 후 허공에서 아래에 펼쳐진 협곡 분지를 바라보았다.
이곳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심지어 마수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신식으로 훑어보아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한제가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리자 마혼이 빠져나왔다. 운천종에서 원숭이의 영혼을 거두어 만들어낸 세 번째 마혼이었다. 본래도 하급 영수이었던 데다가 마혼으로 변하면서 수준이 더 높아져 결단기 수련자에게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운천종에서 머문 마지막 몇 달 동안 한제는 마혼을 완전히 복종시켜두었다.
마혼은 나타나자마자 몇 번 포효하더니 유령 같은 몸으로 빠르게 협곡 안으로 향했다.
한참 둘러본 뒤에도 아무런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녀석이 막 다시 날아오려던 그때, 협곡의 한쪽 절벽에 갑자기 큰 균열이 열리더니 엄청난 흡인력이 생겨났다.
다만 마혼은 실체가 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그 흡인력에도 아랑곳 않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절벽에 난 균열은 다시 천천히 맞물리기 시작했다. 한제는 맹타자의 독왕정으로 만들어낸 독검을 저물대에서 꺼내 그 균열 안으로 던졌다.
몇 차례 마찰음이 들려왔다. 허나 막 균열이 맞물리던 순간, 한제는 독검을 뒤로 물렸다. 균열에서 빠져나온 독검은 한제 곁으로 돌아와 맴돌며 웅웅 소리를 냈다.
한제는 균열이 나타났던 절벽을 한참이나 응시하다가 오른손으로 결인을 했다.
“나와라, 얼음 화염!”
원영으로부터 별안간 한 덩이 푸른 화염이 나타났다. 얼음 화염은 원영의 기운에 잠식당하면서 예전보다 몇 배는 강해진 상태였다.
흡혈 마수
주위의 온도가 순식간에 내려갔다. 동시에 얼음 화염은 쏜살같이 앞으로 날아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절벽에 닿았다. 바로 그때, 절벽이 기이하게 요동치며 사람의 얼굴 형상이 나타나더니 한 입에 얼음 화염을 삼키려 했다.
하지만 얼음 화염에 닿는 순간 얇은 푸른색 얼음층이 그 얼굴의 입가에서부터 퍼져나갔다. 단 몇 초 만에 온 절벽은 얼음층으로 뒤덮였고 얼굴 형상도 표정이 굳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암벽에 붙어 자라는 마수의 일종인 모양이었다.
내심 호기심이 생긴 한제는 그 절벽을 지나 협곡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과연 오래된 전송진이 있었다. 그러나 파손된 부분이 많아 사용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진을 잠시 살핀 한제는 옥패를 꺼내 그 전송진의 탁본을 뜬 후 몸을 훌쩍 날려 협곡 위로 향했다. 그가 손을 흔들자 절벽 위에 드리웠던 얼음층이 한데로 모여들더니 다시 얼음 화염으로 변해 손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절벽 위에 나타났던 사람의 얼굴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얼굴은 한제를 바라보며 적의를 가득 담아 포효했다.
보면 볼수록 흥미가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아마도 결단기 후기 수련자와 비슷한 하급 마수인 듯했다. 그러나 암벽에 숨어 있는 마수의 능력은 탐이 났다. 한제는 폐관 수련을 할 때 이런 마수를 두어 경계하게 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수준이 낮은 것이 흠이지만 자신이 가진 수많은 내단을 먹이로 준다면 수준은 금세 오를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오른손으로 결인을 한 뒤 영력을 살짝 불어 넣으며 외쳤다.
“파괴!”
영력이 깃든 결인이 그의 손을 떠나 암벽을 내리친 순간, 무수히 많은 거미줄 같은 균열이 나타났다. 그 균열은 갈수록 커졌고 결국 절벽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검은 빛 한 줄기가 절벽에서 빠져나와 재빨리 도망치려 했다.
한제는 신식을 통해 그 검은 빛을 살폈다. 검은 빛 안에는 손바닥만 한, 주둥이가 길고 날개가 달린 기괴한 생물이 들어 있었다.
언뜻 보면 상당히 무서운 생김새로 특히 그 긴 주둥이는 거의 몸의 절반 크기에 이르렀다. 더구나 그 예리한 주둥이에서 서늘한 빛이 번득였다.
한제는 느긋하게 그것을 쫓았다. 동시에 허이국 마혼과 원숭이 마혼을 꺼냈다. 두 마혼은 그 기괴한 생물체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데 허이국 마혼은 기괴한 마수를 보자마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건 또 뭐야? 진짜 끔찍하게 생겼잖아! 원숭이 녀석에게 맡겨두는 게 낫겠다. 너무 약하게 생겨서 내가 나설 필요도 없겠어.’
원숭이 마혼이 유령 같은 몸으로 달려들자 마수는 날개를 빠르게 움직여 속도를 높였다.
한제는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저물대를 두드렸다. 그의 손에 청동 거울이 하나 나타났다.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자 거울에서 푸른빛이 쏟아져 나와 마수를 쫓았다.
그 마수는 순간 우뚝 멈추었다. 하지만 곧 회색 기운 한 줄기가 몸 안쪽에서 확산되었다. 마수의 몸을 뒤덮었던 푸른빛은 그 회색 기운에 닿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에 돌로 변해 버렸다.
허이국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자신에게 그 화가 끼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는 한제가 자신에게 신경 쓰지 않자 몰래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한제가 명령을 내리지 않는 이상 앞으로 나서지 않을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