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79
노인이 얼른 답했다.
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덤덤하게 답했다.
“지금 어디 있습니까? 앞장서시지요.”
흠칫 놀라던 노인은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좋소, 날 따라오시오!”
말을 마친 그가 몸을 훌쩍 날려 하늘로 날아올랐다. 한제가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에 연묵성을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 밖으로 3천 리 정도 떨어진 분지의 상공에 이르렀다. 한제는 신식으로 그곳을 훑어보다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는 내심 냉소했다. 생각해보면 노인은 마치 자신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특히 가게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 여자 수련자는 한제 자신을 보자마자 앞으로 나섰다.
그때부터 한제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와 같은 이름을 가진 도우가 있었다고 거짓말을 했을 때, 노인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신식을 통해 상대가 혼란스러워 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무래도 자신의 추측대로였던 모양이다.
분지 아래쪽에는 진이 하나 배치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네 명의 원영기 수련자가 숨어 있었다.
“안타깝구나, 만약 그 대머리 사내가 죽지 않았다면 너희 여섯 명으로 이곳에 멸둔주살진(滅遁誅殺陣)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한제는 평온한 말투로 느릿하게 중얼거렸다.
매부리코 노인의 안색이 순간 변했다. 그 순간, 한제의 극의 신식이 발동되었다. 노인에게는 옥패를 깨버릴 틈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의 눈에 붉은색 번개가 들어찼다.
노인은 한제의 말을 듣자마자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가 막 몸을 뒤로 물리려 할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붉은색 번개들이었다. 그것은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본 광경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극의 신식은 매우 예리해진 상태로 노인의 신식을 파멸시켰다. 노인의 원영이 몸을 떠나려는 순간, 한제는 이미 한손으로 노인의 가슴을 때려 영력을 불어넣었다. 그 덕에 원영은 그 안에 꼼짝없이 갇혀 도망치지 못하게 되었다.
그저 멍하니 상대가 자신의 원영을 취해 그대로 꿀꺽 삼켜버리는 광경을 볼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죽이고 그 원영을 취해 그대로 삼켜버리다니, 분지에 숨어 있는 네 사람의 눈에 한제는 마혼과 다름없었다.
사람을 죽여 원영을 취하는 광경이야 본 적이 있지만 그대로 삼켜버리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네 사람은 몸서리를 치며 각자 흩어져 도주했다. 아니, 도주하려 했다. 하지만 한제는 제자리에서 그저 극의 신식만을 이용해 순식간에 그들을 죽여 버렸다.
연거푸 다섯 사람을 죽인 탓에 극의 신식은 원영의 기운을 상당히 소모한 상태였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네 사람의 원영을 삼켜버린 뒤 고신결을 운용해 모두 소화했다. 그러자 수준이 한층 더 상승했다.
검집
일단 지도 옥패에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한 한제는 한시름 놓고는 다른 자들의 저물대에 있는 법보도 살폈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본 순간, 한제 체내의 영력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겨우 영력을 안정시킨 한제는 그 법보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검집이었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그것을 몇 번이고 자세히 살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이 검집은 예전에 그가 가지고 있던 것과 똑같았지만 그 검집은 아니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당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검집은 한단으로 제련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 검집에서는 한단의 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비록 그 검집과 똑같긴 하지만 자신의 검집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이렇게 확신한 이유는 또 있었다. 그의 검집 정중앙에는 자잘한 꽃무늬 그림과 함께 이상한 부호가 하나 새겨져 있었다. 이 검집에도 부호가 있긴 했으나, 전혀 다른 형태였다.
한참 고민하던 한제는 저물대에서 보통의 비검 하나를 꺼내 천천히 그 검집에 집어넣어 보았다. 검이 검집의 5분의 3정도에 이르렀을 때 커다란 저항력이 차올랐다. 한제는 영력을 발동하여 검을 밀어 넣었고 비검은 검집의 5분의 4에 해당하는 지점까지 들어갔다.
돌연 한제의 안색이 변했다. 그 검집으로부터 발산되는 강력한 살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망설임 없이 손을 놓고 검집을 내던졌다. 그 순간, 살기가 몰아쳐 비검에 맺혔고 그 기운을 정통으로 맞은 비검은 산산조각이 났다.
동시에 하늘을 뒤덮을 듯한 한기가 검집에서 쏟아져 나왔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한제가 서 있던 분지가 거대한 맷돌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한 줄기의 깊은 균열이 수백 리 밖까지 뻗어나갔다.
한제는 머리가 쭈뼛했다. 그는 검집을 바라보며 찬 숨을 들이마셨다. 이내 그는 조심스럽게 검집을 저물대에 넣고 더는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는 이 검집에 살기가 봉인되어 있음을 알아차렸다. 반금 뿜어져 나온 살기는 일부에 불과했다. 만약 이 안에 봉인된 살기가 모두 방출된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이를 통해 이 검집이 자신의 검집이 아님은 더욱 확실해졌다. 그의 검집은 비검의 위력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어쨌든 그 검집에 대해 호기심은 더욱 커졌다. 아마도 이런 검집이 두 개 외에도 더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 ★ ★
화분국의 어느 화산 분화구 안.
수련자들의 신통술로 인해 죽어버려 더 이상 용암이 끓어오르지 않는 사화산이었다. 그 안에는 크고 작은 밀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파여 있었고 각 밀실에서는 수련자들이 좌선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화분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재난을 겪고도 살아남은 자들이었다.
당시 화분국은 선무국을 점거했었지만 다른 수련국과 손을 잡은 선무국의 반격에 사방으로 내몰리게 됐다. 모완이 이곳을 떠나 타향으로 향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 화산 아래에는 완벽한 석실 하나가 있는데 그 안에는 전신전이 선무국에서 퇴각할 때 원영기 수련자들이 목숨을 걸고 가져온 것이 들어 있었다. 바로 전신전 역대 선조들의 유해와 신도술이 놓인 곳이었다.
그 석실 안의 여러 문들 중 하나에서 밝은 빛이 번득이더니 뒤이어 비쩍 마른 팔이 뻗어 나왔고 그 팔을 따라 천천히, 말라붙은 몸이 걸어 나왔다.
밖으로 나온 그는 한손으로 바닥을 눌렀다. 순간 줄기줄기 녹색 기운이 동굴로부터 질주하듯 날아들어 그 비쩍 마른 몸으로 들어갔다. 곧 그의 몸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천천히 근육과 피부가 생겨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음산한 기운을 온몸에서 내뿜는 젊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매우 준수했지만 어딘가 사악한 기운이 느껴졌고 두 눈은 노련한 빛을 띠다가 한참 후에야 실체로 응결되었다.
그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중얼거렸다.
“3천 년 동안 치료한 끝에 마침내 3할의 수준을 회복했구나.”
그는 오른손을 꽉 쥐고 미간을 살짝 구기며 말을 이었다.
“영변기와 비슷해졌어. 충분치는 않지만 성라반(星羅盤)을 사용하면 이 별의 방어막을 파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모성(母星)으로 돌아가면 좀 더 빨리 회복할 수 있겠지.”
그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오른손으로 허리를 두드렸다. 그 순간, 그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고개를 숙여 허리를 살폈다. 허리춤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오른손을 앞으로 뻗어 휘둘렀다. 순간 수정 같은 빛의 장막이 그의 앞에 피어올랐다. 잠시 요동치던 그것은 한참 뒤 어떤 장면을 보여주었다. 한제가 동굴 안으로 들어와 그의 저물대를 가져가는 장면이었다.
남자는 수정 같은 막에 드러난 한제를 응시하며 오른손으로 결인을 했다. 그리고 두 눈을 감은 채 신식을 천천히 펼쳤다. 신식의 확장에 따라 그는 어딘가에서 그의 저물대가 발산하고 있는 신식의 파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두 눈을 번쩍 뜨더니 몸을 훌쩍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는 이미 수마해 상공에 이르러 있었다.
그가 낮게 외쳤다.
“천귀수신술(天鬼搜神術)!”
순간 그의 체내에서 초록색 빛이 수많은 갈래로 나뉘어 발산되었다. 그 빛의 갈래 하나하나는 그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하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사내 역시 몸을 훌쩍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한제는 흡혈 마수의 등에 올라 질주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지도 옥패가 들려 있었다.
이 옥패를 손에 넣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졌다. 지금보다 더 빠른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한순간이라도 빨리 조나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옥패에 따르면 조나라까지는 꽤나 멀었다. 이렇게 날아가서는 몇 년이 걸릴 거리였다.
한제는 전송진을 이용하기로 했다. 다행히 그 옥패에는 수마해에 존재하는 오래된 전송진들에 대한 정보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 이를 세심하게 탐색한 끝에 조나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았다.
총 세 개의 오래된 전송진을 거쳐야 했다. 그중 하나는 수마해 안에 있었고 나머지 두 개는 조나라가 속한 대륙에 있었다.
우선은 수마해에 있는 진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옥패에는 그 전송진이 완벽한 상태는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사용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 옥패가 기록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그 정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이런 의문 때문에 한제는 흡혈 마수를 더욱 재촉해 미친 듯이 내달렸다.
그 오래된 전송진은 수마해 중앙 지역의 가장자리에 있었다. 마수의 출몰이 잦은 곳으로 이미 몇 마리의 상급 영수를 마주쳤고 심지어 황수를 마주치기도 했다. 다행히 강력한 신식으로 미리 그들의 존재를 파악한 뒤 빙 둘러 피해 갈 수 있었다.
한 달 뒤, 한제는 마침내 그 오래된 전송진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 평원에는 수많은 해저 식물이 자라나 있었는데 이 식물들도 검은 빗물로 인해 마수들처럼 공격성이 강해진 상태였다. 그것들은 붉은 잎을 살랑살랑 흔들고 있어 언뜻 보기에는 아름다웠지만 한제는 신식을 통해 그 식물 아래 가득한 백골을 확인했다. 수련자만이 아닌 마수의 뼈도 섞여 있었다.
신식으로 사방을 훑어 그 오래된 전송진을 찾아낸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흡혈 마수에서 내린 뒤 눈 깜짝할 사이에 그곳에 이르렀다.
그러나 진을 본 그의 표정이 돌변했다. 이미 그 붉은 잎의 식물이 너무도 많이 자라 전송진을 가득 뒤덮었고 가지들이 전송진 위로도 자라나 있어 진은 이미 파손된 상태였다.
그는 검은색 비검을 꺼냈다. 이 비검은 마치 번개처럼 지면에 자라난 식물들을 제거했다. 식물들은 잘려나갈 때마다 피와 같은 붉은 액체를 내뿜었다. 이내 주위의 땅은 그 액체로 뒤덮였다.
위험한 기운이 지면으로부터 피어올랐다. 순간 새로 생겨난 식물들이 그 핏물 속에서 다시 자라났다. 이번 식물들은 더 컸고 잎도 더 무성했다.
한제는 한숨을 내쉬고는 비검을 회수했다. 그러나 비검에서는 광택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그 안에 깃들어 있던 영력이 모조리 떨어진 듯했다.
한제가 두 손으로 결인을 하자 순간 사방에서 괴이한 바람이 불어와 그 비검을 맴돌았다. 비검에 묻은 핏빛 액체가 바람에 실려 날아가자 비검은 비로소 원래 상태를 회복했고 한제의 저물대로 들어갔다.
한제는 끊임없이 자라나는 식물들을 보며 금번을 꺼냈다. 그가 두 손을 흔들자 금번은 점점 커져 지면을 뒤덮었다.
99개의 조를 이룬 금제는 99마리의 검은 용으로 변해 포효하며 전송진의 사방을 향해 미친 듯이 내달리면서 회전했다. 한 번 회전할 때마다 식물들이 사라지며 대량의 붉은색 액체를 분출했다.
한제는 두 손을 빠르게 날려 몇 개의 결인을 그려내며 낮게 외쳤다.
“비켜라!”
순간 지면 가득했던 붉은색 액체는 마치 거대한 손에 의해 갈라지듯 중앙에서부터 양쪽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아래 가려져 있던 파괴된 전송진이 드러났다.
한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래로 내려가 옥패를 꺼낸 뒤 그 전송진을 기록했다. 잠시 후 다시 위쪽으로 날아오른 그는 오른손을 휘둘러 금번을 회수했다.
금번이 한제의 손으로 돌아온 뒤 붉은 액체는 곧장 다시 지면을 뒤덮었고 전보다 더 크고 무성한 식물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미 그들의 높이는 수백 척에 이르러 있었다. 전에 비하면 세 배나 더 증가한 상태였다.
한제는 허공에서 옥패를 살폈다. 한참 뒤, 그는 어두운 안색으로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벗어났다.
이곳으로 향하던 지난 한 달 동안 그는 비밀 시장에서 구한 오래된 전송진의 구조도를 깊이 연구했다. 이 전송진의 원리는 복잡했지만 한제는 이전에 진법과 전송진에 대해 연구를 한 상태였기에 어떻게 복구하는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방법을 찾아두었다. 물론 이 방법들이 통할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수마해에서 오래된 전송진 방면의 대가(大家)를 찾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육욕마군이 다시 살아난다면 모를까, 한제는 누가 오래된 전송진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지도 옥패에 기록된 바에 따라 사방을 돌아본 한제는 일주일 후에 또 다른 오래된 전송진을 찾았다. 그 진은 협곡 사이에 있었다. 주변에 마수들이 있었지만 흡혈 마수가 재빨리 정리해준 덕에 넓은 터가 드러났다.
놀랍게도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던 이 진을 한참 연구하던 한제의 두 눈이 진의 어느 한곳에 꽂혔다. 그곳은 뭔가 달랐다.
한참 동안 살피던 한제는 깜짝 놀랐다. 이 전송진은 분명 누군가가 고친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눈에 띈 그곳은 분명 누군가가 첨가한 부분이었다.
한제는 생각에 빠졌다. 대체 누가 이 진을 보수했단 말인가? 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전송진을 이용해 밖으로 나가려고 했던 것일까?
잠시 후 한제는 두 말 않고 필요한 부분을 떼어낸 뒤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그 진을 좀 더 망가뜨린 뒤에야 흡혈 마수를 타고 그 자리를 떠났다.
이후 보름 동안 한제는 세 개의 전송진을 망가뜨렸다. 하지만 지금 그의 마음은 거대한 돌로 꽉 눌린 것처럼 답답하고 우울했다. 세 개의 전송진 중 두 개는 완전무결했고 자세히 살펴보니 누군가가 보수한 흔적이 있었다.
그에게 필요했던 그 전송진은 그 이상한 식물에 의해 깊이 가려져 있어 다른 사람에 의해 발견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 전송진이 전송을 하는 방향이 맞지 않아서 또는 다른 이유들 때문에 보수되지 않았을는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