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83
여인은 온몸에 한 차례 열이 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난 20년간 그녀를 옭아맸던 고질병이 상대의 손짓 한 번에 사라져버린 것을 확인한 그녀는 상대가 전설 속에 존재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임을 알아차렸다.
“시⋯⋯ 신선이십니까?”
여인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신선이라⋯⋯. 그런 셈이지.”
한제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넷째 작은 아버지가 수도에서 장수하며 잘 살다가 떠난 것 같아 무겁기 그지없던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다.
한제는 여인을 바라보며 느릿하게 말했다.
“말하자면 난 네 선조다. 당시 난 넷째 작은 아버지와 약속했지. 만약 내가 신선이 되는 데 성공한다면 그분의 후손들을 보살펴 그 은혜를 갚겠다고.”
말을 마친 그가 저물대를 두드려 그 안에서 몇 개의 단약 병을 꺼냈다.
“이 안에는 총 72개의 단약이 들어 있다. 모든 직계 후손들에게 한 알씩만 먹여라. 그보다 많이 먹는 것은 금한다. 단, 너만은 세 알을 먹도록 해라.”
약병을 여인에게 건넨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의 미간을 두드려 한 방울의 피를 취했다. 그리고 저물대를 두드려 옥패 하나를 꺼낸 뒤 그 안에 극의 경계를 이용해 낙인을 찍더니 냉정한 눈빛으로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이 옥패 안에는 내 신식을 한 줄기 남겨두었다. 조나라 안에서 이 옥패를 공격하고도 살아남을 자는 없다. 허나 이 옥패는 딱 세 번만 사용할 수 있다. 죽기 전까지는 꼭 네가 가지고 있도록 해라. 어차피 우리 이 씨 가문의 직계 후손이 아닌 사람은 사용할 수 없다. 신중하게 사용한다면 스스로를 잘 지킬 수 있을 게다.”
옥패를 여인에게 건넨 한제는 소매를 휘둘러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여인은 멍한 얼굴로 자신의 손에 들린 단약과 옥패를 바라보았다. 꿈을 꾼 듯한 느낌이었다.
그때, 바닥에 쓰러져 있던 노인이 천천히 눈을 뜨더니 흐릿한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아가씨,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이때, 지우산을 들고 있던 계집종도 밖에서 뛰어 들어오더니 여인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겨우 한시름을 놓더니 약간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아가씨, 방금 어찌나 졸렸는지 저도 모르게 한숨 자버렸습니다.”
노인은 계집종의 말을 듣자마자 얼굴을 구겼다. 분명 여인이 보낸 신호를 받고 이곳에 들어온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이 안에 들어서자마자 저도 모르게 혼수상태에 빠져버렸던 것이다.
“아무 일 없었어. 허튼 생각 말고 이제 수도로 돌아가야지.”
여인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얼굴은 더 이상 창백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여인에게서 달라진 점을 느낀 노인이 놀란 듯 말했다.
“아가씨⋯⋯.”
계집종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여인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돌려서는 단상에 놓인 두 개의 위패를 찬찬히 살폈다. 특히 한제의 이름이 적힌 위패를 한참 바라보던 그녀가 이내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태생적으로 총명한 그녀는 방금 상황으로 어느 정도 짐작을 했다. 다만 이 짐작은 수도로 돌아가 족보를 확인한 뒤에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만사 제쳐두고라도 함께 족보를 살필 것이라고 믿었다.
마을을 떠난 한제의 얼굴은 다시 서늘하게 변해 있었다. 온몸에서 풍기는 살기도 짙어졌다. 그는 공중에 뜬 채 질주했다.
나무가 넘어지면 원숭이도 흩어진다고 했다. 만약 직접 등화원을 죽인다면 그 나머지 후손들은 뿔뿔이 흩어질 테고 그렇다면 한제가 지난 4백 년 동안 꿈꿔온 피바다는 만들 수 없을 터였다.
또한 무엇보다도 등화원을 깔끔하게 죽여 버리기만 해서는 그간의 원한을 풀 수 없었다. 그는 등화원이 후손들의 죽음에 사무치도록 슬퍼하다가 죽기를 원했다.
한제는 신식을 사방으로 펼쳐 온 조나라를 뒤덮었다. 그리고 쉽게 등화원의 등가성을 찾아냈다. 한제의 눈에는 지금 하늘을 뒤덮을 듯한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 그의 몸은 마치 번개처럼 빠르게 질주했다.
등가성으로부터 1만 리 정도 거리에 이르렀을 때 움직임을 멈춘 한제는 저물대를 두드려 깃발 하나를 꺼내더니 그것을 땅에 꽂고 오른손을 휘둘렀다. 깃발은 단숨에 사라졌다.
잠시 후 그는 다시 움직였다. 등가성을 중심으로 1만 리 떨어진 곳마다 총 16개의 깃발을 꽂은 그는 냉랭한 눈으로 등가성 쪽을 바라보다가 비릿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오늘부터는 등가성으로 들어갈 수는 있어도 밖으로 나올 수는 없다. 등화원, 나 이한제의 복수는 이제 시작되었다.”
한제는 서늘한 눈을 빛내며 두 손으로 결인을 한 채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허공에 떠오른 그는 낮게 소리를 지르며 두 손으로 자신의 몸을 빠르게 두드렸다. 그러자 푸른 기운이 그의 체내로부터 흘러나와 그의 온몸을 감쌌다. 뒤이어 그의 뒤쪽에서 상고 시대의 마신(魔神) 같은 허상이 떠올랐다.
한제는 한쪽 무릎을 꿇고 손가락 끝을 물어 피를 한 방울 뿌리며 외쳤다.
“나타나라, 등력의 영혼!”
순간 두 눈을 번쩍 뜬 허상의 마신이 한제의 선혈을 삼킨 뒤 몇 번 씹는가 싶더니 한 줄기의 약한 푸른색 빛을 토해냈다. 그 푸른색 빛은 천천히 한제의 손으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마신의 허상은 사라졌다.
그 마신과 같은 허상은 한제와 고대 신 서사의 기억을 잇는 작은 통로였다. 그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모두 이 통로를 통해 허상의 존재에서 실체를 갖출 수 있었다. 다만 그 효력은 1각 뿐이었다.
돌아온 영혼에 기억은 없었다. 오직 본능적인 반응만 있을 뿐이었다. 고대 신 서사가 보기에 이 신통술에는 별다른 용도가 없어 종종 법보의 위력을 유지하는 데 썼을 뿐이지만 한제는 이 신통술을 본 순간 복수를 떠올렸다.
등력의 영혼을 쥔 한제는 두 말 않고 그것을 입에 넣고 삼켜버린 뒤 신식을 다시 확산시켜 조나라를 뒤덮었다. 천천히, 등력의 영혼에 따른 감응이 한제의 신식에 하나둘씩 빛으로 나타났다.
그 빛들은 등 씨 혈통들이었다. 직계든 방계든 할 것 없이, 등 씨 가문의 여자가 낳은 다른 가문의 아이까지도 모두 나타났다. 말하자면 등 씨 가문의 피가 조금이라도 섞인 사람이라면 모두 한제의 신식에 나타난 셈이었다.
한제가 생각하는 멸족(滅族)은 등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을 죽이는 정도가 아니라 등 씨 가문의 피를 가진 모두를 죽여 그 뿌리를 뽑아내는 것이었다.
한제의 신식에 나타난 빛은 점점 늘어났고 한제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갈수록 잔인해져갔다. 4백 년 동안 등 씨 가문의 후손은 엄청나게 늘어나 있었지만 한제의 신식 아래 그들이 가진 영혼의 파동은 모두 똑똑히 기억되었다.
1각 후, 등력의 영혼은 천천히 흩어졌다.
한제는 저물대를 두드려 흡혈 마수를 꺼냈다. 그 위에 올라탄 그는 가장 가까운 곳의 한 문파를 향해 질주했다. 한제의 기억에 남은 등 씨 가문 혈통 중 그곳에 총 일곱 명이 있었다.
★ ★ ★
등현은 등 씨 가문의 6대 자손으로 이미 결단기 수준에 이른 수련자였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등 씨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천도문 원영기 시조의 정식 제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등 씨 가문 사람 중 천도문 제자는 총 여섯으로 이들은 모두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경지가 높은 사람은 등현이었다. 나머지 다섯은 축기에 불과했다.
등현은 자신의 삶에 만족했다. 자신의 수준과 지위, 좋은 아내 등, 이 모든 것은 등 씨 가문의 핵심 인물들에게는 별것 아니겠으나 등현은 자신의 신분이 그들에게 비할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등 씨 가문에서도 그런 좋은 운명을 타고난 자는 많지 않았고 등현 자신은 평생 결단기 후기에만 이를 수 있어도 만족했다.
오늘 합환종에서 자신을 만나러 여동생 등유가 오기로 되어 있는 것을 생각하니 등현의 뱃속에 불 한 덩어리가 일었다. 그와 여동생 사이에는 굉장한 비밀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등현은 태생적으로 음란한 여동생 등유가 성인이 된 후로는 가문의 적지 않은 사람들과 정을 통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그녀가 합환종에서 배운 각종 방중술을 생각하면 아래가 불끈불끈 솟았다.
서둘러 뒷산에 오른 그가 누각의 문을 연 순간, 진한 향이 이는 여체가 그의 품에 안겼다.
등 씨라는 이유로
한제는 멀리 떨어진 기이한 봉우리에서 한 문파를 발견했다. 산 정상의 대전에 ‘천도문’이라는 세 글자가 걸려 있었다.
한제는 곧장 그곳으로 내달렸다. 순간 산봉우리에서 빛의 장막이 번쩍 하고 나타나더니 방어용 진이 가동되었다. 한제는 신경도 쓰지 않고 저물대를 두드려 금번을 쥐고 휘둘렀다. 그러자 번쩍거리는 수십 갈래의 검은 기운이 나타나 빛의 장막을 공격했다.
방어용 진은 순식간에 와장창 깨져버렸고 그와 동시에 온 천도문의 산봉우리가 진동하면서 바위와 돌들이 굴러 떨어졌다. 부연 회색 연기도 피어올랐다.
순간 천도문의 몇몇 원영기 시조들이 폐관 수련을 멈추고 밖으로 나와 놀란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제가 타고 있는 흡혈 마수는 주인의 살기를 느끼기라도 한 듯 포효했다. 몇몇 원영기 수련자들이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며 법보를 꺼내 상대에게 저항하려던 그때, 강한 압박감이 천도문 전체를 휘감았다.
“난 등 씨 가문의 자손들에게 사적인 원한을 갚기 위해 왔다. 앞길을 막는 자는 모두 죽일 것이다.”
신식이 실린 한제의 목소리가 멀리까지 우렁차게 퍼져나갔다. 점점 더 커진 그 목소리는 마침내 온 하늘을 뒤흔들 듯한 포효가 되었고 원영기 수련자들은 분분히 피를 토해냈다. 그들의 눈에는 여태 본 적 없던 두려움이 깃들었다.
한제는 흡혈 마수의 등에서 뛰어내리며 신식을 펼쳤다. 그리고 음산한 눈빛으로 대전 광장에 있는 여러 천도문 제자들 중 한 명을 주시했다. 어린 그 자의 얼굴이 겁으로 잔뜩 질렸다.
한제는 피에 굶주린 듯한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자의 몸이 하늘로 떠오르더니 한제에게로 끌려갔다. 두 손으로 자신의 목을 힘껏 움켜쥔 그가 몸부림을 치면서 뭔가 말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등 씨였다.
한제는 오른손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등 씨 젊은이의 두 눈이 부풀어 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숨을 거두었다. 그와 동시에 한제는 왼손을 휘둘렀다. 손에 영혼의 깃발이 나타났다. 방금 한제의 손에 숨을 거둔 그자의 영혼이 떠올라 영혼의 깃발에 스며들었다.
한제는 시체를 뒤쪽으로 내던지더니 저물대에서 긴 교룡의 힘줄 하나를 꺼내 그 시체를 단단히 묶은 뒤 한쪽 끝을 흡혈 마수의 주둥이에 물렸다.
천도문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한제는 일을 마무리한 뒤 망설임 없이 대전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는 한 청년이 분하다는 듯한 얼굴로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하지만 그 주먹은 다시 펴지지 못했다. 그 역시 등 씨였기 때문이었다.
한제가 가볍게 손짓을 하자 그자의 오장육부가 단번에 갈가리 찢어졌고 영혼은 깃발에 흡수되었다. 한제는 곧장 다음 사람에게로 움직였다.
천도문의 시조들로서는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다. 그중 붉은 얼굴의 노인이 앞으로 나서더니 용기를 내 의연하게 외쳤다.
“도우, 멈추시게. 말로 하세!”
한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거의 동시에 그 노인의 두 눈에 회색빛이 어른거리는가 싶더니 신식이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 곁을 스쳐지나가던 한제가 툭 치자 노인의 원영이 찢겨져 산산이 흩어졌다.
“날 가로막는다면 등 씨 혈통과 함께 죄를 물을 것이다.”
냉랭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자리의 수련자들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한제는 대전을 떠나 누각으로 질주했다. 천도문의 원영기 시조들은 한참 머뭇거렸고 그중 한 사람이 옥패를 꺼내 자신의 말을 기록하더니 내던졌다. 옥패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잠시 후 몇몇 원영기 수련자들은 서로를 돌아보다가 이를 악문 채 한제의 뒤를 쫓았다.
아름다운 여인 한 명이 다급히 천도문의 연단방으로 향했다. 그녀가 막 연단방에 도착한 순간, 벌써 모습을 드러낸 한제는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녀의 몸이 뒤로 당겨졌다. 그녀는 비명을 내지르며 한제의 손에 붙들렸다.
그녀의 눈에 두려움이 어렸다. 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 역시 등 씨였다.
무정하게 그녀의 가는 목을 으스러뜨린 뒤 영혼을 거둔 한제는 시체를 한쪽으로 걷어차 버렸다. 그러자 교룡의 힘줄 한 줄기가 시체를 옭아맸다. 교룡의 힘줄에는 어느덧 세 구의 시체가 매여 있었다.
한제는 멈추지 않았다. 이제 네 명이 남았다. 뒷산의 둘을 제외한 나머지 둘은 빠른 속도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천도문의 기이한 봉우리를 곧 떠나기 직전이었다.
한제의 눈이 서늘하게 빛난 순간 그는 그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천도문의 기이한 봉우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옷을 입은 청년 하나가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살피며 날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등 씨였다.
한제가 손가락을 살짝 튕기자 청년은 온몸을 바르르 떨며 숨을 거두었다. 그의 영혼을 거두고 시체를 교룡의 힘줄에 묶은 한제는 다음 목표를 향했다.
그의 뒤를 따르던 몇몇 원영기 시조들은 갈수록 더한 충격을 느꼈다. 그들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한제의 눈빛은 여전히 서늘했다. 짙은 살기(煞氣)가 그의 몸에서부터 피어올랐다. 그는 서늘한 미소를 지은 채 다섯 번째 목표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다섯 번째 목표는 백발이 성성했지만 수준은 축기 절정에 불과했다. 그에게서는 겁에 질리거나 분통한 표정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그저 신중한 얼굴로 질주하며 연이어 여러 개의 옥패를 날렸다.
순간, 한제가 그자의 전방에 나타났다. 움직임을 우뚝 멈춘 그는 그늘진 얼굴로 한제를 바라보며 얼른 입을 열었다.
“대체 우리 가문에 어떤 원한이 있기에 이러십니까? 분명 뭔가 오해가⋯⋯.”
한제는 대답 없이 오른손을 휘둘렀다. 저물대에서 검은 비검이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상대의 가슴을 꿰뚫었다. 노인은 눈 깜짝할 사이에 온몸이 시커멓게 물든 채 숨을 거두었다.
영혼을 거두고 시체를 묶은 한제가 몸을 훌쩍 날려 뒷산으로 향했다.
등현은 매번 등유와 좋은 시간을 보낼 때마다 누각에 진을 설치해 두고 자신의 모든 기운을 감추었다. 그렇게 되면 그 역시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지금 밖에서 벌어지는 일체의 일들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등유의 매혹적인 몸과 얼굴에 취해 있을 뿐이었다.
다른 다섯 명에 비하면 등현과 등유는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둘 역시 죽음이 정해져 있었지만 최소한 육체적 쾌락을 누리다가 함께 숨을 거두게 되었으니 다른 자들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등현은 숨을 몰아쉬며 등유의 몸 위에 쓰러졌다. 하지만 순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껴 고개를 든 그는 그 방 안에 누군가가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깜짝 놀란 그가 막 뭔가 말을 하려던 순간, 상대의 눈이 번득였다. 그것이 그가 살아서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