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84
등유는 등현의 머리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가 내지른 마지막 소리였다.
두 사람을 죽이고 영혼을 거둔 한제가 누각 밖으로 나왔다. 누각 밖에는 천도문의 원영기 시조들이 조용히 서 있었다. 한제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몸을 훌쩍 날려 흡혈 마수에 올라탔다. 흡혈 마수가 물고 있는 교룡의 힘줄 한쪽 끝에는 총 일곱 구의 시체가 매달려 있었다.
한제는 곧장 흡혈 마수를 몰아 천도문을 떠났다. 그 뒤로는 교룡의 힘줄에 매인 일곱 구의 시체가 선연한 붉은빛을 뽐내며 공작의 꼬리 깃처럼 화려하게 딸려갔다.
한제의 모습이 하늘 끄트머리로 사라지고 나서야 천도문의 원영기 수련자들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들은 모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조용히 말했다.
“등 씨 가문, 끝났구나.”
“등 씨 가문뿐만 아니라 조나라가 끝짱나게 생겼어.”
다른 한 사람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잠시 후 깊은 숨을 들이마신 그가 천도문의 장교(掌敎)를 멍하니 바라보며 말했다.
“분부를 내려야겠군. 밖에서 수련하고 있는 모든 제자를 불러들이고 등 씨 가문과 연관된 모든 일들을 중단시켜야겠어. 문파 내에서 등 씨 가문의 여인과 결혼을 한 제자들과는 관계를 끊고 쫓아내게. 그렇게 해야 등 씨 가문과 아예 관계를 끊을 수 있을 테니까!”
★ ★ ★
한제의 눈빛은 여전히 냉랭했다. 가문을 몰살시키려는 데에는 굳은 의지가 필요했다. 조금이나마 약한 마음이 있었다면 이렇게 과감히 일에 착수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굳게 밀고 나가지도 못했을 터였다. 멸족은 결심만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한제의 다음 목표는 수만 리 떨어진 곳의 한 문파로 그곳에는 등 씨 가문 자손 93명이 있었다.
한제는 전혀 조급하지 않았다. 등 씨 가문 사람들을 천천히 죽이면서 등화원으로 하여금 가족을 잃는 고통에서 몸부림치도록 할 생각이었다. 자신이 부모님과 가족들을 잃으면서 받았던 온몸이 갈가리 찢기는 듯한 고통을 그대로 돌려줄 작정이었다.
무봉골은 조나라의 마도 연맹을 구성하고 있는 문파 중 하나로 예전에는 꽤나 명성이 높았지만 이제는 갈수록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무봉골의 원영기 고수들은 연달아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숨을 다했다.
이런 현상들은 강했던 무봉골의 힘을 천천히 약화시켰고 거기에 현도종의 성장이 두드러지면서 결국 이류 문파로 분류되었다.
무봉골의 쇠락은 등화원의 야심에 불을 지폈다. 지난 몇 백 년 동안 그는 계속해서 무봉골에 가문 사람들을 보냈다. 무봉골에서는 등화원의 속셈을 알면서도 그의 힘과 지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받아들였다. 더구나 등화원은 원래 무봉골의 외래 장로였다. 그러니 이는 문파 내의 일이므로 다른 문파에서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지금 무봉골에 있는 93명의 등 씨 가문 사람 대다수는 이미 문파에서의 지위가 높았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사람은 5대 자손인 등고인데 그는 이미 장문인이 되어 있었다.
무봉골에는 등화원 외에도 두 명의 원영기 시조가 있었는데 그들은 이 상황이 달갑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등화원의 횡포에 그저 모른 척하며, 남은 생에 폐관 수련을 통해 원영기 중기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되면 수명도 좀 더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등 씨 가문 사람들이 매번 귀한 약초들을 선물하기도 했기에 두 명의 시조는 더더욱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등화원과 척을 질 힘이 그들에게는 없었다.
말하자면 무봉골은 거의 등 씨 가문의 사적인 종파인 셈이었다.
이런 현상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백 년이 지나면서 무봉골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반대의 목소리는 더 이상 없었다. 심지어 정식 제자들도 등 씨 가문이 무봉골에 들어오는 것을 찬성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무봉골 내의 제자 대부분은 최근 1백 년간 새로 들어온 이들이었다.
흡혈 마수의 등에 오른 한제는 일곱 구의 시체를 달고 하늘을 뒤덮을 듯한 살기를 풍기며 날아가 무봉골이 자리한 산에 이르렀다.
무봉골은 이름에 ‘골’ 자가 있긴 하지만 산골짜기가 아니라 산맥 위에 있었다. 조나라에서 제법 유명한 이곳은 오선산(五仙山)으로 손가락을 쭉 뻗은 거대한 손바닥처럼 기이한 형태였다.
무봉골은 오선산 가운데 있는 봉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네 개의 봉우리에 각각 나뉘어 있었다. 무봉골이 한창 흥했던 시기에는 다섯 봉우리 모두 영력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곳에 기거하는 수련자만 해도 수천이 넘어 가히 최고의 문파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이 오선산은 시들고 있어 영력도 부족했고 제자의 수도 1천 명이 못 되었다. 또한 대부분의 제자들은 응기에도 이르지 못했거나 응기 1, 2단계에 이른 입문자에 불과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다
흡혈 마수에 올라탄 한제가 오선산에 이르렀을 때, 푸른 빛의 장막이 나타나 산을 덮었다. 그와 동시에 짙은 살기가 다섯 봉우리 위에서 번쩍이며 나타났다. 이들은 하얀 옷을 입은 다섯 명의 남자로 변해 각 봉우리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모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고 있었고 머리 위에는 다섯 가지 색의 비검이 떠 있었다. 넘칠 듯한 영력이 다섯 사내에게서 흘러나와 비검으로 들어가 강렬한 검기(劍氣)를 발산했다.
한제는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띠었다. 그 다섯은 모두 등 씨 가문의 사람들이었다. 이미 소식을 듣고 대비를 한 모양이었다. 천도문의 등 씨 노인이 보낸 옥패 중 하나가 이곳으로 왔을 터였다.
그러나 한제는 당연히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당시 이런 일이 있을 걸 알면서도 굳이 노인을 막지 않은 것도 그래서였다.
한제는 조나라의 모든 사람이 그가 등 씨 가문을 멸족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를 원했다. 한제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복수는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다섯 사내의 마음은 무거웠다. 그들은 방금 막 등고의 명을 받고 강력한 적의 기습으로부터 산을 보호하는 진을 쳤다. 진이 가동됐지만 이들은 마음을 놓기는커녕 더욱 불안해졌다. 그들의 눈에 적의 뒤로 교룡의 힘줄에 매달린 일곱 구의 시체가 보였다.
한제는 진이 가동되던 순간 망설임 없이 저물대를 두드려 낡은 칼집을 꺼냈다. 그의 눈에 서늘하고 무정한 빛이 어렸다. 저들이 검기로 자신에게 대항하고자 한다면 그는 진정한 검기가 무엇인지 보여줄 생각이었다.
이어 비검 한 자루를 꺼냈다. 그의 저물대에는 이런 법보들이 상당히 많았다. 4백 년의 세월이 남긴 것이니 그 수를 셀 수도 없었다.
비검을 칼집에 꽂은 한제는 그것을 5분의 4 부근까지 꽂아 넣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강력한 저항력이 느껴졌다.
순간 다섯 개의 봉우리 위에 서 있던 다섯 사내가 낮게 외쳤다. 그들의 머리 위에 떠 있던 비검이 웅웅 소리와 함께 하늘을 가르며 솟구쳐 올랐다. 하늘과 땅의 기운이 바뀐 듯했다. 하늘의 구름은 산산이 흩어졌고 다섯 개의 검기는 마치 다섯 마리 교룡처럼 포효하며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제는 검집 안의 검기와 복잡하게 얽힌 살기가 이미 극한으로 치닫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한제가 비검을 쥐고 있던 손을 놓자 다섯 개의 검기보다 수 백 배는 더 강한 기운이 검집에서 발출됐다.
순간 진한 살기로 범벅이 된 검기가 상고 시대의 용처럼 달려들었다. 그 앞에서 등 씨 가문 사람들이 쏘아 보낸 다섯 검기는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보였다. 한제의 검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의 검기를 갈고 삼켰다.
잠시 후, 한제가 손에 들고 있던 검집을 휙 내리치자 거대한 상고 시대의 용 같은 검기가 오선산을 향해 흉악하고 커다란 입을 벌리며 포효했다. 동시에 땅이 진동하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순간, 무봉골을 덮고 있던 진이 산산조각 났고 굉음과 함께 오선산의 다섯 봉우리 중 두 개 봉우리가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진을 통제하던 등 씨 가문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힘에의해 폭발해버렸다. 한제는 오른손을 흔들어 그들의 머리를 교룡으로 잘 묶은 뒤 뒤쪽으로 늘어뜨렸다.
동시에 한제는 흡혈 마수의 등에서 뛰어내린 뒤 무봉골로 향했다. 그리고 신식에 고정된 목표를 따라 하나하나 죽이기 시작했다.
“오늘 난 등 씨 가문과의 사적인 원한을 갚으러 왔다. 내 앞을 막는 자는 모두 죽을 것이다.”
냉랭하고 무정한 목소리가 무봉골 가득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순식간에 1백 명에 달하는 수련자들이 오선산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각자의 비검을 탄 그들은 최대한 빨리 사방으로 도망쳤다. 모두 등 씨 가문 사람들이었다.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하며 하나하나 금제를 쏘아 보냈다. 순간 반경 1천 리의 범위는 마치 거대한 사발을 뒤집어놓은 듯 가로막혀 누구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한 청년 수련자는 얼마 도망치지도 못하고 형태 없는 손에 붙들렸고 이내 아드득 소리와 함께 전신의 뼈가 부서지며 숨이 끊어졌다. 물론 등 씨 가문이었다.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으로 이루어진 한 쌍의 수련자는 검은색 비검 한 자루에 가슴을 동시에 꿰뚫리며 온몸이 곧 새카맣게 변해버렸다. 한제는 그들의 영혼을 거뒀고 시체는 교룡의 힘줄에 매였다.
한제는 그들에게서 조금의 가련함도 느끼지 못했다. 한 사람을 죽일 때마다 자애로운 어머니의 얼굴과 엄하지만 따스한 아버지의 눈빛이 떠올랐다. 모든 것은 등화원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후회는 없었다.
등화원에게 육체적인 죽음을 맞은 후 4백 년간 도망자 생활을 했고 그러는 와중에도 수차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섰다. 위기를 맞을 때마다 그는 다시금 복수를 다짐했다.
사실 한제는 일의 발단도 자신에게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당시 한제와 장호를 뒤쫓아 무자비하게 죽이려 했던 것은 등력이었다. 그 후 장호는 실종되어 생사를 알 수 없었고 한제는 등력에게 마치 깊은 원한을 산 듯 쉴 새 없이 쫓겼다.
축기 후기의 수련자가 응기 초기에 불과한 소년을 쫓았으니, 맹수가 먹이를 사냥하는 꼴이었다. 등력은 심지어 한제의 법보를 보고는 탐욕을 품기까지 했다.
그런 상황에서 가까스로 잡은 기회에 등력을 살려뒀어야 했단 말인가? 등력을 붙잡고도 그 앞에서 비굴하게 무릎을 꿇고 자신을 풀어 달라 간청해야 했을까? 석주와 비검, 칼집,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야 했단 말인가? 이 세상에 남을 죽일 수는 있지만 남에게 죽임을 당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한제는 등력을 죽인 뒤 그의 축기를 빼앗았다. 모든 것은 등력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한제는 등화원이 겨우 자신을 죽이기 위해 그리도 끔찍한 일까지 자행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신선계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온 규칙이 있었다. 수련자는 멋대로 일반인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모든 수련자는 전력을 다해 일반인을 죽인 수련자를 공격해야 했다. 하지만⋯⋯ 등화원이 한제의 가문을 몰살했을 때 달려나와 막아선 수련자가 있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는 등화원이 이미 원영기에 이르러 있었고 그의 가문이 이미 하나의 패주(霸主)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겨우 일반인이, 겨우 축기에 불과한 제자가 등화원을 막아설 수는 없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그 상황은 그저 한바탕 활극에 불과했다.
등화원 입장에서 한제는 개미새끼 한 마리에 불과했다. 난 너를 죽일 수 있지만 너는 내 증손자를 죽여서는 안 된다. 만약 네가 내 증손자를 죽인다면 난 네 온 가족을 죽일 것이다. 이게 그의 방식이었다.
이미 일이 이렇게 된 바에야 한제도 같은 방법을 쓸 생각이었다. 모든 등 씨 가문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그에게는 그른 일이 아니었다. 잔혹하긴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과 지난 4백 년 동안 겪지 않아도 됐을 각종 위기들을 떠올릴 때면 그의 살기는 하늘을 뒤덮을 듯 끓어오르곤 했다. 그들을 죽이지 않고서는 부모님과 몰살당한 가족들을 향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정도(正道)나 마도(魔道)나 다를 바 없었다. 자신의 몸이 파괴되었을 때 한제는 그 사실을 실감했다.
무봉골을 중심으로 반경 1천 리 안은 이미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등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갔고 그들의 영혼은 영혼의 깃발에 흡수되었으며, 시체는 교룡의 힘줄에 매달렸다. 땅은 점점 피로 물들어 갔다. 겨우 1백 명의 피로 바다를 만들 수는 없었지만 흉악하고 광기어린 느낌만은 충분히 낼 수 있었다.
2각 후, 한제는 무봉골을 떠나왔다. 그의 손에는 한 사람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 바로 등고였다. 등고의 눈에는 경악과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한제의 뒤로 교룡의 힘줄 끝자락에는 이미 1백여 구의 시체가 매여 있었다.
이 시체들은 한제의 움직임에 따라 천천히 부채꼴 형태로 펼쳐졌다. 누구든 이 광경을 본다면 간담이 서늘해지리라.
끔찍한 살육이 끝난 뒤 무봉골에서 두 백발노인이 걸어 나왔다. 무봉골의 원영기 시조들이었다. 허나 그들의 눈에는 분노가 아니라 오히려 광기 어린 희색이 번득였다. 그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등 씨 가문은 완전히 끝났어!”
또 다른 한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래, 수준이 저리 높은 것을 보니 상급 수련국의 어느 마도 문파에서 온 사람인 모양이야. 이렇게 일을 벌인 것은 분명 등 씨 가문을 완전히 멸망시키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겠지. 흑천에게도 대항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러지 못하더라도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없을 거야.”
“근데 저자 낯이 좀 익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단 말이야.”
“그래?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로군! 그럼 틀림없이 어디선가 본 사람인 모양인데…”
두 사람은 한참이나 고민했지만 결국 그자가 누구인지 떠올리지는 못했다. 그들은 당시 결명곡 밖에서 축기기의 수준으로 등화원과 싸우다가 육신이 찢겨 죽은 소년에 대해서는 이미 잊은 상태였다.
한제를 태운 흡혈 마수는 비행을 계속했다. 한제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이번 목표는 8천 리 밖에 있는 한 산촌이었다. 그곳에 있는 등 씨 가문 사람들은 총 174명이었다.
★ ★ ★
등가성.
그늘진 얼굴로 저택 앞 대청에 앉아 있는 등화원의 손에는 옥패가 하나 들려 있었고 그의 앞에는 세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 대청에는 그들 셋 외에도 수십 명이 좌우로 나뉘어 앉아 있었는데 모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두려움이 어른거렸다.
“나흘 동안 우리 가문 사람 961명을 죽였다? 좋아, 좋아, 아주 좋아!”
등화원이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의 두 눈은 너무도 냉랭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옥패를 바닥에 꿇어앉은 세 사람 중 하나에게 내던지며 가라앉은 얼굴로 말했다.
“빨리 읽어라! 네가 얻어온 정보를 읽어!”
그러자 얼굴이 백옥처럼 흰 청년 하나가 잔뜩 침통한 얼굴로 옥패를 들어 이마에 얹은 뒤 한참 동안 내용을 살폈다. 그리고 안색의 변화도 없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나흘 전, 그자는 천도문에 나타나 우리 등 씨 가문 사람들 일곱을 죽이고 떠나갔습니다. 같은 날, 그자는 무봉골에 나타나 두 개의 봉우리를 무너뜨린 뒤 1천 리 반경 범위를 봉쇄했고 등 씨 가문 사람 93명을 죽였습니다. 사흘 전에는 등 씨 가문의 외척이 사는 산촌에서 방계 혈통 174명을 죽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