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87
피를 토해낸 구양 노인의 안색도 더 이상 좋지 못했고 마음도 혼란스러워졌다. 그의 곁에 있던 세 원영기 수련자의 몸도 뒤틀렸다. 이미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저물대를 두드려 그 안에서 옥병 하나를 꺼냈다. 그것을 부수어 깨자 그 안에서 원영의 정화 세 개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상황에서 세 개의 정화를 하나하나 삼켜버린 한제는 서늘한 눈으로 붉은 빛을 번득이며 오른손을 천천히 들었다. 그의 손바닥 중앙에서 점점 붉은색의 번개 공이 응결되어갔다. 이는 극의 경계로 이루어진 것으로 점점 더 커지더니 주먹만 해져서는 손 위로 떠올랐다.
구양 노인은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이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원영을 약처럼 집어 삼키는 사람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떠내려 오고 있는 번개 공을 바라보며 그가 외쳤다.
“멈추시오! 열겠소! 진을 열겠소. 그리고 등 씨 가문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 전혀 상관치 않겠소.”
말을 마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얼른 옥패 하나를 꺼내 영력을 불어넣었다. 순간 합환종의 진이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그 번개 공이 닿기 직전에 사라져버렸다.
땀을 닦은 구양 노인은 진을 열자마자 얼른 공손하게 말했다.
“선배님, 등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대전 안에 있습니다.”
한제는 구양 노인은 본 척도 않고 곧장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대전 안에서는 어떤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저 진한 피비린내만 풍길 뿐이었다.
1각 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대전에서 나와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허공에 떠 있던 흡혈 마수의 입에 물린 교룡의 힘줄이 대전을 뚫고 들어가 수 백 구의 시체를 끌고 나왔다. 그 시체들의 얼굴은 진한 원한과 두려움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나이가 어린 편이었다. 만약 한제가 아니었다면 머지않아 결단기에 이르거나 화신기에 이른 수련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등 씨였다.
그는 등력을 한 번 죽였고 등화원은 그를 한 번 죽였다. 그걸로 끝이었다면 더 이상 원한은 남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등화원은 한제의 일족을 말살했다. 이는 씻을 수 없는 원한이었다.
한제가 떠날 준비를 하던 그때, 광장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한제?”
그 목소리는 너무나 미약했다.
한제는 우뚝 멈춘 뒤 그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멀리 떨어진 광장 구석에 허약한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한제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빛은 추억으로 젖어 있었다.
한제는 그 중년 남자 앞에 쪼그려 앉아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지?”
그 중년 남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쓰게 웃으며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제가 사람을 잘못 봤나 봅니다. 언짢아하지 마십시오.”
한제는 그를 자세히 살펴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날 누구로 봤기에?”
중년 남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게는 아주 오래 전에 한 사제가 있었습니다. 그 녀석을 신선계에 입문시킨 것도 저였지요.”
한제의 눈빛이 흔들렸다. 마침내 그도 눈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본 것이다.
잠시 후, 그가 소매를 휘두르자 그와 중년 남자는 합환종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 ★ ★
합환종에서 1백 리 떨어진 곳에 있는 어느 절벽 위.
중년 남자를 땅에 앉힌 한제는 침착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중년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복잡한 심경이 어린 얼굴로 말했다.
“저⋯⋯.”
“장 사형, 날 알아봤으면서 왜 잘못 본 척했습니까?”
한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느릿하게 물었다. 그러자 중년 남자는 흠칫 놀라며 잠시 고민하다가 쓰게 웃었다.
“나는⋯⋯ 그⋯⋯.”
중년 남자를 바라보던 한제는 당시의 기억들을 또렷하게 떠올렸고 한참 뒤에야 감정을 겨우 가라앉히고 질문을 할 수 있었다.
“대산파는 어떻게 됐습니까?”
“이미 돌아가지 않은지 오래야.”
중년 남자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 사형은 왜 합환종에 와 있는 겁니까? 게다가 사형의 수준은⋯⋯?”
한제는 미간을 살짝 구기며 중년 남자의 팔을 쥐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말을 이었다.
“영력이 굉장히 혼란스럽군요. 경맥도 너무나 약해져 있고요.”
중년 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난 당시 떠난 뒤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어. 스승님들이 기대를 많이 했던 만큼 엄청난 대가를 들인 끝에 내 수준을 결단기 후기까지 올려주셨지. 그 뒤 난 대산파를 떠났어. 수련을 하면 일찍이 원영을 맺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럼 대산파의 영광을 되찾을 생각이었어. 하지만 뜻밖에 한 여인을 만나게 됐지. 그 여인은 합환종의 제자였고 나는⋯⋯ 휴, 그때까지 수련했던 모든 것이 다 수포로 돌아갔어. 그 망할 계집은 옛정 때문인지 날 죽이지는 않고 내 몸을 합환단(合歡丹)으로 제련시켜 주었지. 그 단약을 복용하기 전까지 난 폐인이었어.”
한제는 한참이나 중년 남자를 바라보다가 저물대를 두드려 백옥병 하나를 꺼내 건넸다.
“이 안에는 일곱 개의 단약이 들어 있어요. 한 달에 하나씩 복용하세요. 7개월 후면 적어도 반 정도의 수준은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장 사형, 꼭 다시 봅시다.”
말을 마친 한제는 중년 남자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는 흡혈 마수에 올라타 빽빽한 시체를 뒤에 매단 채 날고 있었다.
중년 남자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사라져가는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슬픔이 차올랐다. 사실 그를 바로 알아보긴 했지만 한제의 변화가 너무 컸고 경지도 짐작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서 의심이 들었다. 사실 지금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백옥병을 꽉 쥔 그는 깊은 숨을 내쉬며 몸을 날려 비틀거리며 어디론가로 향했다.
한제는 신식을 펼쳐 조나라 전역의 등 씨 가문 사람들을 살폈다. 그의 생각대로 그들은 등가성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한제는 잔인한 눈빛을 번득이며 중얼거렸다.
“가라, 모두 등가성에 모여들었을 때, 그때 등화원을 만나러 갈 테니까.”
한데 한제는 신식을 통해 일곱 개의 빛이 시종일관 한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동안의 학살 과정에서 한제는 등 씨 가문에 총 아홉 명의 핵심 구성원이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등화원 외에 이들의 수준을 아는 자는 매우 적었다. 말하자면 이들은 등화원이 직접 교육한 등가성의 후계자인 셈이었다.
이들을 수련시키기 위해 등화원은 엄청난 대가를 들여 조나라에 아홉 개의 영혈(靈穴)을 팠다. 이 아홉 명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 안에서 폐관 수련을 했다. 필요한 단약과 법보, 공법의 공급은 오직 등 씨 가문 사람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이 아홉 명의 임무는 오직 하나, 수련뿐이었다.
일정 시간마다 등화원은 이들을 주변 국가의 위험한 곳으로 데리고 가 시험을 치기도 했다. 말하자면 이 아홉 명은 경지로 보나 전투 경험으로 보나 최고였다.
하지만 이 아홉 명이 한 번 정해졌다고 절대 바뀌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50년에 한 번씩 등 씨 가문 사람이라면 이들에게 도전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승리하면 그를 대신해 핵심 구성원이 될 자격을 얻었다. 그를 통해 도전 성공자는 상대의 영혈을 차지하고 등 씨 가문의 자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이 아홉 명의 핵심 구성원 중 한 명을 제외한 여덟 명은 최소한 세 차례 이상 바뀐 상태였다.
또한 이런 시험을 통해 핵심 구성원들의 경지는 자연스레 더욱 높아졌다.
한제는 꿈쩍도 않는 이 일곱 개의 빛이 핵심 구성원임을 알고 있었다. 나머지 두 명은 이미 등가성으로 소환되었다.
이제 거의 모든 등 씨 가문 사람들은 한제의 계획대로 등가성으로 모여든 상태였다. 그러니 현재 그의 목표는 움직이지 않고 있는 일곱 명이었다. 이들은 아주 오랜 기간 끊임없는 도태를 겪으며 엄선된 핵심 구성원인 만큼 반드시 죽여야만 했다.
달빛도 없고 바람도 세찬 밤이었다. 피비린내가 천천히 하늘에서 풍겨왔다. 한제는 마치 원수를 갚기 위해 지옥에서 올라온 귀신처럼 느릿하게 먼 곳의 모래 언덕을 향해 날아갔다.
★ ★ ★
등구는 하나의 이름인 동시에 아주 영광스러운 호칭이었다. 이 이름은 이미 여러 차례, 정확히는 총 여섯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등구는 밀실 안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이 밀실은 보잘것없었지만 등구는 이 밀실이 모든 등 씨 가문 사람들을 흥분하게 하는 존재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역시 한때는 밀실에 흥분하여 달려든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천재라고 불린 그는 줄곧 핵심 제자가 되기를 꿈꿔왔다. 그래야만 등 씨 가문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고 가주로부터 총애를 받을 수 있으며, 그를 통해 원영기 수련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등 씨 가문의 방계 혈통으로 자라온 그는 사람들의 냉랭한 눈초리에 울분이 쌓여갔다. 어렸을 때 겪은 그 모든 일들은 그의 마음을 차갑게 얼려 갔고 실력을 위해서는 어떤 대가도 아끼지 않도록 만들었다.
심지어 그가 자신에게 핵심 구성원이 될 자격이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죽인 자는 바로 그의 형이었다. 그야말로 자신의 경쟁 상대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핵심 구성원에 도전할 수 있는 의식에서는 도전자 아홉 명이 선발되었다. 각종 관문을 하나씩 통과한 끝에 그는 마침내 아홉 명 중 하나가 되었다. 모든 것은 인간성을 포기하고 피땀 흘린 끝에 얻어낸 것이었다. 그의 적은 등구라는 이름을 가졌던 자로 그 수준은 이미 결단기 후기에 이르러 있었다.
도전에 성공하기 위해 그는 각종 잔인한 비술들을 수련했고 다른 사람의 영력을 삼켜 수준을 증가시켰다. 이런 공법은 수련자의 수명을 적지 않게 단축시키지만 동시에 빠른 성장을 가능케 했다.
등구는 이 밀실이 퍽 마음에 들었다. 이곳의 영력은 바깥에 비하면 열 배에 달했다. 자세히 보면 이 밀실을 만든 재료는 모두 상급 영석이었다.
이 밀실 아래에는 영맥이 흐르고 있었다. 큰 영맥은 아니었지만 수련을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단약도 모자라지 않았다. 필요한 단약은 말만 하면 각종 방식으로 등 씨 가문에서 조달해주었다.
공법도 많았다. 각종 문파의 공법 역시 요청만 하면 각종 방식으로 등 씨 가문에서 조달해주었다.
법보는 차고 넘쳤다. 게다가 모든 법보는 원영급이었다.
여인 또한 등구에게는 모자라지 않았다. 원하기만 하면 등 씨 가문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여자 수련자들을 무한정으로 제공해주었다. 그에게 흡수될 제물들이었다.
어떤 것에 대해서도 등구는 조심할 필요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가문의 핵심 구성원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그 특권을 대가로 한 임무는 단 하나, 수련, 수련, 그리고 또 수련이었다.
가족의 핵심 구성원
한제는 신식으로 모래 언덕 지하에 밀실 한 칸 있으며, 그 밀실 안에 자신의 사냥감이 들어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자는 한제가 본 등 씨 가문 사람들 중 등화원을 제외한 첫 번째 원영기 수준 수련자였다. 게다가 그에게서는 강렬한 살기(殺氣)가 풍겨 나왔다.
죽음의 고비를 수차례 넘겨오지 않고서는 저런 살기를 갖기란 쉽지 않았다. 비록 한제의 살기(煞氣)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지만 그자의 살기(殺氣)는 수마해의 수련자들보다 훨씬 짙었다.
높은 수준의 등 씨 가문 사람이 등장하자 한제의 두 눈이 밝아졌다.
마혼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요구 조건은 흉악함이었다. 이 흉악함이 클수록 마혼이 된 후의 위력도 강해졌다.
한제는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린 뒤 땅을 꾹 눌렀다. 순간 온 모래 언덕에 손바닥 모양의 자국이 나타나더니 우르릉 소리를 내며 그 자국이 점점 깊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