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9
조롱박으로 물을 떠낸 한제는 한 모금을 마신 뒤 눈을 살짝 감고 그 물에 깃든 영기의 농도를 느꼈다. 잠시 후 눈을 떴을 때 그의 표정은 한층 밝아져 있었다.
“이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샘물보다 훨씬 낫군! 쓸 만하겠어.”
그는 곧장 저물대에서 지난 반년 동안 모아둔 조롱박들을 꺼냈다. 그리고 장원의 눈을 싹싹 긁어모아, 영기가 든 물로 만들어 조롱박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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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며칠 동안 한제는 꿈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눈을 모으러 다니는 데 집중했다. 마음 같아서는 큰 항아리를 가져다 쓰고 싶었지만 지금은 조롱박을 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조롱박은 많았다. 며칠 후에는 수백 개의 조롱박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이것들은 꿈속에서도 아주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을 터였다.
조롱박에 물을 모두 담아낸 한제는 수련을 시작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열흘이 지났다. 그동안 한제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샘물을 마셨다. 응기 2단계에서는 1단계보다 몇 배의 영기가 필요했다. 샘물은 마시자마자 몸속에서 빠르게 분해되어 영기로 변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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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과 약속한 날, 한제는 꿈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저 이현이 오기를 기다렸다. 자정이 되자 또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이현이 다가왔다. 그는 방에 들어오지도 않고 조급하다는 듯 말했다.
“스승님의 연단 때문에 늦었어. 미안. 얼른 가자. 교역회가 곧 시작될 거야.”
이현은 이미 바깥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기에 한제는 얼른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쌓인 눈을 밟으며 걸었고 문파 영역 밖으로 빠져나간 후 산속의 작은 길을 따라 계속해서 걸었다.
눈 때문에 길이 미끄러워 걸음을 재촉하기도 힘들었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던 이현은 몸을 바들바들 떨며 작게 욕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날씨, 눈까지 내릴 건 또 뭐람. 잘못하다가는 굴러 떨어지게 생겼네.”
허나 한제는 이현의 말에 공감하지 못했다. 사실 그는 몸이 가뿐해져 걷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고 눈 녹인 물을 더 많이 만들 수 있을 테니 오히려 기뻤다.
잠시 후, 이현이 걸음을 멈추고 비밀스러운 표정으로 한제에게 녹색약 한 알을 건넸다.
“곧 도착이야. 며칠 전에 한 번 와봤거든. 일단 약부터 먹자. 다른 사람한테 들키면 안 되니까.”
이현이 먼저 약을 입에 털어 넣자 순식간에 몸에서 짙은 검은색 연기가 피어올라 그를 뒤덮었다. 이어서 거친 목소리가 그 짙은 연기 속에서 흘러나왔다.
“어때?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어?”
한제는 그를 훑어보았지만 진흙으로 뒤덮인 듯 그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아니, 전혀 모르겠어. 이 약, 효과가 아주 대단한데?”
말을 마친 한제 역시 약을 입에 넣었다. 그러자 이현과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두 사람의 시커먼 그림자가 방향을 몇 번 꺾어 들어가자 오솔길 끄트머리에 공터 하나가 나타났다. 그 넓은 터에는 역시 검은 그림자로 뒤덮인 수십 명의 사람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그들 중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고 있었다.
한제와 이현도 빈자리를 찾아 들어가 꿈쩍 않고 섰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올 사람은 모두 온 듯했다. 그러자 누군가가 앞으로 나서 마른기침을 한 뒤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됐군요. 제가 먼저 시작하죠.”
말을 하면서 그는 은색 단검을 내보였다.
“이 비검은 문파의 검령각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우연히 얻은 것입니다. 위력도 썩 괜찮은 녀석이죠. 제가 원하는 것은 부적 5백 장입니다!”
서로 눈치를 보는 건지 아니면 필요한 사람이 없는 건지 한동안 조용했으나, 이내 누군가가 부적 뭉치를 내놓았다. 단검을 내놓은 사람은 부적의 수를 헤아리더니 단검을 건넸다. 거래 성사였다.
이를 기점으로 거래는 더욱 활발해졌다.
“이것은 기회 옥패입니다. 지열과 비슷한 법술을 세 번 쓸 수 있죠. 영기단 10개와 바꾸겠습니다.”
“내가 사겠소!”
누군가가 기다렸다는 듯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때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내가 사겠소! 영기단 12개를 줄 테니 나에게 파시오!”
먼저 사려던 사람과 둘 사이에 잠시 실랑이가 있었으나, 기회 옥패는 결국 더 많은 영기단을 제시한 사람의 손에 들어갔다.
“이건 법술이 담긴 옥패입니다. 응기 2단계에 진입하면 수련할 수 있죠.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수준을 숨길 수 있고 축기기가 아닌 이상 발각될 일이 없습니다. 영기단 5개를 원합니다.”
사실 제자들 입장에서야 자신의 수준을 숨길 이유가 없기 때문에 별 쓸모가 없는 법술이었다. 그런 법술을 영기단 5개씩이나 들여 살 사람이 있겠는가? 여기저기서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건을 내놓은 사람도 이를 눈치 챘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한제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섰다.
“영기단 5개, 여기 있소.”
옥패를 내놓은 사람조차 그게 무려 영기단 5개에 팔렸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으나, 정작 한제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건을 구할 수 있어 매우 만족했다.
의외의 거래가 성사되면서 잠시 조용해진 교역회장에 비록 목소리는 거칠지만 고고하고 오만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말투로 누군가 한마디 툭 내뱉었다.
“조화단 하나. 대가는 알아서 제시해보도록!”
흥분한 이현이 얼른 입을 열었다.
“영기단 20알!”
“부적 1천 장! 거기에 비검 한 자루 더!”
“기회 옥패 하나, 비검 한 자루, 영기단 10개, 부적 5백 장!”
그 뒤로도 사람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조화단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이현에게 들은 바로 조화단을 먹으면 약효가 체내에서 두 달간 머무는데 그 기간에는 영기를 흡수하는 속도가 몇 배나 높아진다.
때문에 정식 제자들이 응기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 할 때, 가장 원하는 약이기도 했다. 다만 문파 내에서도 매우 진귀한 것이라 일반적으로 그 약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딱 두 번, 검은색 옷을 입게 될 때 한 알, 자주색 옷을 입게 될 때에는 두 알을 얻을 수 있을 뿐이었다.
한제는 조화단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다만 계속 가격이 올라가는 걸 보니 이현이 손에 넣긴 어려울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때, 뒤쪽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영기단 230개! 내가 가진 전부요.”
순간 교역회장이 조용해졌다. 영기단 230개라니, 지금껏 그 누가 제시한 것보다도 높은 대가였다. 하지만 조화단을 내놓은 사람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더니 말했다.
“영기단 230개? 겨우 그 정도로 내 조화단을 가져가려 했단 말인가? 꿈 깨시지! 영기단으로 내 조화단을 받고 싶다면 적어도 2천 개는 있어야 할 거다!”
목소리는 변형되어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거만한 말투가 낯이 익었다. 확신할 수는 없었으나, 한제는 그자가 이산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기단 2천 개라는 말에 주위는 조용해졌다. 그러자 누군가가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조화단 거래는 물 건너 간 것 같군요. 그럼 계속해서 다음 교역을 하도록 합시다.”
그렇게 다시 교역이 시작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제 차례가 됐다. 그는 크지 않은 병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한 방울만 먹어도 영기단 한 알을 먹은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신비의 물약입니다. 병에는 1백 방울 정도가 들어 있죠. 응기 3단계 이후의 구결과 바꾸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병을 열어 영기를 발산시켰다.
수많은 사람이 흥분했다. 알약 형태의 영기단은 복용하는 것밖에 쓸모가 없지만 액체 형태라면 다양한 방법으로 쓸 수 있을 것이었다. 먹을 수도 있고 법보나 비검을 정제할 때에도 그 효과를 더해줄 수 있으니 말이다.
합동 훈련
누군가가 소리쳤다.
“응기 4단계의 구결을 주겠소!”
한제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
“4단계의 구결만?”
“4, 5, 6단계의 구결과 바꿉시다, 어떻습니까?”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내저었다.
“응기 3단계에서 15단계까지 필요한 모든 구결을 원합니다.”
“너무한 것 아니오? 작년 시합 우승자인 설호 사형도 아직 응기 6단계로 그 사형도 7, 8, 9단계의 구결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오. 10단계에서 15단계까지의 구결은 몇몇 사숙 외에는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단 말이오.”
몰랐던 사실에 흠칫 놀란 한제가 잠시 머뭇거리고 있을 때, 멀지 않은 곳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물약 두 병을 준다면 4단계에서 9단계까지의 구결을 알려주지!”
모두가 목소리의 주인공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자주색 옷을 입은 스물 후반의 남자가 변신단을 사용하지도 않은 채 오솔길을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그가 냉정한 표정으로 현장을 훑어보자 모든 사람이 공손히 인사했다.
“사형도 참석하시는군요!”
하지만 자주색 옷을 입은 남자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한제만을 응시했다.
“두 병, 가지고 있나?”
한제는 간담이 서늘했다. 상대의 몸에서는 위험한 느낌이 뿜어져 나오고 있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느껴질 정도였다. 사부인 손대주도 장 사형도 이 사람 앞에서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저도 우연히 얻은 것이라, 한 병 반 정도뿐입니다.”
한제가 공손히 말하자 자주색 옷의 남자는 피식 웃더니 옥패 하나를 꺼내들었다.
“좋아. 가지고 있는 모든 물약을 다오. 이 구결은 네 것이다.”
옥패를 받아 든 한제는 신식으로 그 구결이 틀림없음을 확인한 후, 주머니에서 병을 하나 더 꺼내 바닥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상대에게 접근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자주색 옷의 남자는 말없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두 개의 병이 둥둥 떠서 그에게로 날아갔다. 그는 병을 확인도 하지 않고 주머니에 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물약을 또 얻게 되거든 날 찾아오도록. 조화단이든, 비검이든, 옥패든, 응기 10단계 이후의 구결이든 다 줄 테니까.”
말을 마친 그가 소매를 한 번 펄럭이자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