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91
하지만 그중 여섯 개의 빛은 나타나자마자 급격하게 번쩍거리더니 점점 어두워졌고 이내 사라져 버렸다.
흑천의 얼굴이 보일 듯 말 듯 경련이 일었고 안색도 약간 어두워졌다. 순간 주위의 공기가 묵직해졌고 종유석을 타고 흘러내리던 물방울도 얼어붙은 듯 더는 떨어지지 않았다. 이처럼 두 눈을 번쩍이는 것만으로 주변의 영력 파동을 변화시키고 복잡한 신통술을 부리는 것은 화신기 수련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흑천은 이미 화신기의 변두리에 이르러 있었다. 창호지 같이 얇은 하나의 층만 찾아 뚫으면 화신기에 이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흑천은 석벽의 빛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등화원, 대체 어떤 자를 건드렸기에 이리 큰 화를 불러일으킨 것이냐. 만약 사자께서 너희 일족을 실험자로 지정하지만 않았더라면 내가 끼어들 필요도 없었을 것을!”
흑천의 안색이 어두워져 있었다. 사실 그는 여태까지도 사자가 등 씨 가문의 어떤 점을 보고 그들을 실험자로 삼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지만 않았더라도 등 씨 일족의 자질로 아홉 명의 원영기 수련자를 갖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고 등화원이 겨우 몇 백 년 만에 원영기 초기에서 후기로 올라와 자신에 버금가는 실력자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흑천이 소매를 휘두르자 그의 모습이 사라졌고 이내 현도종 산꼭대기에 나타났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두 손으로 빠르게 여러 결인을 그려댔다. 그의 손이 그리는 결인의 변화에 따라 구름이 점점 불어나더니 엄청난 위압감을 발했다.
잠시 후 흑천은 두 손을 휘두르며 크게 외쳤다.
“하급 수련국 흑천, 법기를 빌리겠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떨어지자마자 대산의 주요 봉우리 두 개에서 푸른색과 붉은색의 빛이 번쩍 터져 나오더니 점점 더 격렬하게 빛났다. 그 순간, 조나라 안의 거의 모든 영력이 미친 듯이 이쪽으로 몰려들었고 뒤이어 푸른색과 붉은색의 빛이 천천히 피어올라 흑천의 양쪽에 떨어졌다.
빛이 어두워지면서 그 안에 들어 있는 두 개의 법륜(法輪)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법륜에서는 네 개의 비스듬한 칼날이 튀어나와 서늘한 빛을 번득였고 심지어 그 주위에는 얇은 공간의 균열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이 법륜이 화신기 이상의 수련자가 직접 제작한 법보임을 알 수 있었다.
흑천은 공손하고 진중한 표정으로 바닥에 머리를 몇 번 찧은 뒤 조심스레 법륜을 저물대에 집어넣었다.
잠시 후, 흑천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서늘한 살기를 풍기며 중얼거렸다.
“등화원, 내가 너에게 베푸는 마지막 도움이다. 만약 1백 년 안에 너희 등 씨 가문에서 화신기 수련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나도 더 이상은 너희 가문에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 ★ ★
흑천이 두 개의 법륜을 내려 받을 때 영력이 몰아친 순간, 한제는 곧장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잠시 후 차갑게 코웃음을 치고는 등 씨 가문 사람들 중 유일하게 이동하지 않은 핵심 구성원이 있는 쪽으로 질주했다.
조나라 변방에는 매우 신비로운 곳이 있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그 부근의 일반 무사들은 그곳에 대한 이야기만 나와도 기겁을 했다. 심지어 수련자들 중에도 그곳을 두려워하는 자가 있었다.
그곳은 매우 넓고 검은 수렁이었다. 그 구덩이가 대체 얼마나 깊은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나, 확실한 건 그 수렁을 이루는 검은 진흙에서는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났다.
이 수렁은 1백 년에 한 번씩 놀라운 기세로 폭발했다. 또한 사람이건 신선이건 날아다니는 마수건 근처에 이르기만 하면 엄청난 흡인력에 생매장을 당하기 일쑤였기에 이곳은 금지 구역으로 분류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언젠가부터 회색 안개가 피어올라 사방을 완전히 뒤덮은 이 수렁은 지난 4백 년간 조나라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불린 흑이담(黑泥潭)이었다.
그 흑이담 안 가장 깊은 곳에는 검은 수정으로 된 관이 하나 있었다. 관에는 뚜껑이 없었지만 검은 진흙으로 완전히 뒤덮여 있었고 관의 주변, 그러니까 검은 진흙 더미의 사방에는 백골이 빽빽하게 널려 있었다. 개중에는 사람의 것도 있었고 짐승의 것도 있었다. 모두 지난 4백 년간 강력한 흡인력에 매장된 것이다.
또한 이곳은 등팔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인 등일의 수련지이기도 했다.
등일은 등 씨 가문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등화원의 후손이 아니었다. 엄밀히 말해 그는 등화원의 먼 친척 동생으로 아홉 명의 핵심 구성원 중 단 한 번도 도전을 받지 않은 유일한 사람으로서 지난 4백 년간 등일이라는 이름을 독점해온 자였다.
한제는 흑이담에서 2천 리 거리에 이르렀을 때 이상한 느낌을 감지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흡혈 마수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날아서 이동했다. 그리고 그가 1천 리 거리에 든 순간, 흑이담 아래 관에서 장작처럼 비쩍 마른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뒤이어 해골 같은 남자가 관 안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의 온몸은 새까맸고 가죽과 뼈만 남아 있었다. 또한 그의 머리에는 머리카락이 몇 가닥밖에 남지 않아 흉물스럽고 무서운 몰골이었다.
그 무렵, 한제는 이미 흑이담 상공에 이르러 있었다. 그의 표정은 조나라에 들어온 이후 가장 신중했다. 이미 금번이 그의 곁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흑이담을 한 번 살핀 한제는 망설임 없이 극의 신식을 펼쳤다. 극의 신식은 갈래갈래 번개가 되어 흑이담을 파고들어갔다.
흑이담 깊은 곳에 있던 관 속의 남자에게서 어스름한 빛이 나타나더니, 그 순간 밝아졌다. 붉은 번개들은 진흙을 파고들어 그 남자에게 달려 들었고 남자는 비쩍 마른 오른손을 뻗어 그중 하나를 살짝 건드렸다.
순간 펑 소리와 함께 붉은 번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남자의 손가락에는 한 줄기 균열이 일었다.
남자는 입가를 핥았다. 그의 눈가에 맺힌 빛에 강렬한 적의가 드러났다.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몇 개의 붉은 번개가 연달아 내리쳤다. 하지만 그 번개들은 모두 남자의 손짓에 저지당했다.
모든 번개들을 소멸시킨 남자의 오른손에는 많은 균열이 생겼다. 그는 자신의 오른손을 힐긋 본 뒤 한 번 털어냈다. 그러자 조각조각 부서진 오른손이 사라져버렸다. 그럼에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오히려 더 강렬한 적의를 풍기며 훌쩍 뛰어올랐다.
한제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그는 상대가 한 손을 대가로 극의 신식을 모두 제거했다는 것을 똑똑히 느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제는 상대의 수준이 화신기에 이르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상대는 자신의 극의 신식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 해골 같은 남자가 수렁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순간, 한제는 망설임 없이 금번을 펼쳐 사방을 둘러쌌다. 수많은 금제(禁制)들이 하나하나 검은 용이 되어 검은 막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한제가 오른손으로 그려낸 금제를 따라 수렁을 향해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해골 같은 남자는 그 금제들을 앞에 두고도 피하거나 숨지도 않았다.
순간 그의 몸에 여러 갈래의 균열이 나타났다. 하지만 마지막 금제가 그의 몸에 적중하며 사라진 후로도 그의 온몸은 비록 무수한 상흔을 안고 있었지만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표정이 더욱 차갑게 굳은 한제는 곧장 몸을 뒤로 날리면서 오른손으로 결인을 맺었다. 순간, 또 다시 수많은 금제가 쏟아져 내렸다.
등일
해골 같은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몸에 난 수많은 균열들을 바라보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한제를 바라보며 입술을 핥았다. 그러더니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제는 즉각 몸을 옆으로 휙 날렸다. 파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한제의 소매가 찢겨나갔다. 방금 전까지 그가 있었던 자리에 나타난 해골 같은 남자는 왼손으로 한제의 찢어진 옷소매를 쥔 채 강렬한 적의가 담긴 눈을 번득였다.
한제는 머리가 저릿해졌다. 만약 피하는 게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위험했을 것이다.
한제는 묵직한 눈빛으로 손을 휘둘렀다. 금제들이 다시 상대에게로 쏟아졌다. 그 해골 같은 남자는 이번에도 피하거나 숨지 않고 그 금제들을 몸으로 받아들였다. 몸의 균열이 더욱 늘었다.
한제는 이를 악물고 그 금제들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다시 영력을 쏟아부어 같은 양의 금제를 발휘했다. 굉음이 연이어 울려 퍼졌지만 한제는 금제가 내리치는 순간 극의 신식을 함께 내뿜었다.
해골 같은 남자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극의 신식이 내리치던 순간 왼손을 뻗어 그것을 막았다. 그의 몸에 생긴 균열은 이미 온몸을 뒤덮어, 극의 신식이 적중한 왼손은 이미 가루가 된 후였다.
정말이지 기이한 전투였다. 전투라면 이골이 난 한제에게도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그리고 한제는 깨달았다. 저 해골 같은 남자가 바로 등 씨 가문 아홉 명의 핵심 구성원 중에서도 가장 윗자리를 차지한 자일 것임을…
그렇다. 이 기이한 싸움을 이어가는 해골 같은 남자가 바로 등일이었다.
등일은 피하지도 숨지도 않고 묵묵히 공격을 받아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된 공격은 한제 입장에서 감당할 수가 없었다. 특히 극의 신식은 사용할 때마다 원영에 엄청난 손실을 입혔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렸다가 1백 리 밖에서 나타나 저물대에서 옥병 하나를 꺼내 체내의 영력을 보충했다.
그때, 등일이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더니 몸을 날렸다.
잔뜩 경계하고 있떤 한제는 재빨리 움직였고 가까스로 위험을 겨우 넘길 수 있었다.
한제의 이마에 땀이 흘렀다. 방금 복용한 단약을 소화시켜 원영을 회복하자마자 이번에는 저물대에서 오래된 검집을 꺼내 재빨리 비검을 찔러 넣었다. 순간 검집 안에서 미친 듯이 뿜어나온 검기(劍氣)가 등일에게로 향했다.
등일은 다시 멍한 눈빛으로 그저 묵묵히 그 공격을 받아냈다. 결국 그의 온 몸은 연이은 공격에 가루로 부서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온몸이 가루로 변한 그때, 등일은 눈을 번득이더니 어색하게 왼손을 들었다. 곧 가루로 완전히 흩어져 버릴 것 같은 그 손으로 결인을 그려낸 그는 뼈를 갈아가며 내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응결!”
순간, 가루로 변한 그의 몸에서 금빛이 번쩍이더니 완전무결했던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왔다. 그 모습에 천하의 한제도 질려버렸다.
등일은 강렬한 적의가 번득이는 눈으로 한제를 응시했다. 이어 그는 잔영을 일으킬 정도로 빠르게 달려들며 주먹을 휘둘렀다.
한제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주위의 영력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뽑혀나가는 것을 느꼈다. 심지어 그를 가둬놓는 듯했다. 그 강렬한 힘에 한제는 발이 묶여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한제는 곧장 냉정을 되찾았다. 그는 저물대에서 청동 거울을 꺼내 상대를 비추었다. 하지만 이 거울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등일에게 전혀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그의 주먹질에 거울에는 쩌적 하고 균열이 생겼다. 동시에 그 균열 사이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순간, 한제를 억압하던 힘이 다소 풀어졌다. 한제는 망설임 없이 곧장 내달렸다. 동시에 쓰린 속을 달래며 낮게 외쳤다.
“폭발!”
청동 거울에서 발하던 빛이 격렬해지더니 이내 폭발해버렸다. 그리고 이 폭발이 일으킨 강렬한 폭풍은 사방으로 몰아쳤다. 폭풍이 지나간 뒤 등일은 금빛 피를 토해냈고 몸이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당황한 듯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피를 향해 움직였다. 그 금빛 피를 다시 삼키려는 모양이었다.
한제는 즉각 앞으로 돌진했다. 저 금빛 피에 뭔가 있는 모양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등일은 한제가 달려드는 것을 보고 속도를 올려 피 쪽으로 손을 뻗었다. 한제 역시 손을 뻗었다. 두 사람의 힘겨루기에 그 금빛 핏덩어리는 둘로 나뉘어 각각 두 사람에게 날아갔다.
등일은 피를 움켜쥐자마자 곧장 삼켜버렸다. 그러더니 곧장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반면 한제는 금빛 피를 손에 넣자마자 재빨리 도망쳤다.
두 사람은 쫓고 쫓겼다. 한제는 흑이담 주위를 뱅뱅 돌았다. 그는 이 금빛 피를 본 순간, 상대에게서 느꼈던 이질감에 대해 실마리를 잡았다. 비록 이게 뭔지는 알지 못했지만 고대 신 서사의 기억에 이와 비슷한 것이 있었다. 사실 이 금빛 피에는 고대 신의 피가 조금 섞여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등일의 공격은 단 한 번도 육체를 통해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공격 방식은 수련자의 것이 아니었다. 눈앞의 등일은 목내이로 만든 시체 인형처럼 그저 거친 힘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공격을 당할 때마다 드러나는 멍한 표정 속에도 깨달음의 빛이 어려 있어, 기이한 공법을 수련한 존재임을 알 수 있었다.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도 그 공법 때문일 것이다.
신선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공법이 있으니 한제가 그 모든 공법을 알 수는 없지만 그의 추측은 상당히 정확했다. 등일이 수련한 공법은 고대 신의 육체 단련과 상당히 비슷했던 것이다.
이 공법은 스스로 깨달은 것이 아니라 통천탑의 사자를 통해 알게 된 것이었다. 이 공법을 수련하면 신식과 신식의 바다가 더 이상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온몸의 뼈에 녹아들었다. 극의 신식이 치명적인 작용을 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제는 손에 쥔 금빛 피를 바라보았다. 등일의 행동은 시체 인형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고대 신을 모방한 결과라는 것이 점점 더 확실해졌다.
한제가 저물대를 두드리자 검은 안개 한 덩이가 나오더니 두 구의 시체 인형으로 바뀌었다. 이들은 등 씨 가문의 핵심 구성원 중 한 원영기 수련자에게서 얻어낸 존재였다.
한제는 손가락을 튕겨 두 방울의 피를 각 시체 인형의 미간에 집어넣었다. 순간 두 구의 시체 인형은 붉은 눈빛을 번득이며 포효하더니 등일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더니 주먹질과 발길질로 상대를 공격했다.
등일 역시 주먹을 말아 쥐고 시체 인형의 가슴팍을 공격했다. 순간 그 시체 인형은 몸을 부르르 떨며 조각조각 부서져 버렸다.
그 장면을 지켜보고도 다른 시체 인형은 두려움 따위는 모른다는 듯 등일에게 달려들었다.
그 기회를 틈타 자리에 멈춰선 한제는 손에 든 금빛 피를 내던진 뒤 두 손으로 기이한 결인을 그리면서 입으로는 알아듣기 어려운 저주를 중얼거렸다.
아무리 박학다식한 사람이라도 한제가 중얼거리고 있는 저주의 뜻을 알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이는 고대 신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사실 한제는 고대 신의 신통술 상당수를 알고 있었지만 이는 고대 신의 힘의 유산을 전승받지 않는 이상 근본적으로 활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그가 펼치려는 법술은 고대 신의 피만 있으면 펼칠 수 있는 몇 안 되는 법술 중 하나였다. 금빛 피를 본 순간, 한제는 이 법술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한제가 주문을 외자 그의 앞에 둥둥 떠 있던 금빛 피가 끓어오르며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피어오르는 연기의 양이 많아질수록 금빛 피가 줄어들더니 이내 하나의 부호로 변했다. 그리고 그 부호가 나타난 순간,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구름이 흩어져 사라졌다. 뒤이어 한 줄기 금빛이 하늘에서 내리쳤는데 그 안에는 영력으로 이루어진 거인이 있었다. 그 거인은 머리가 하늘을 뚫고 올라갈 정도로 거대했다.
거인의 몸이 응결됨에 따라 조나라 영맥(靈脈)들의 영력이 급격히 흘러나와 전체의 5분의 3이 평범한 산봉우리로 변해버렸다. 나머지 영맥들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금빛 피가 너무 적어 거인의 몸이 완전히 응결되지는 않았다.
한제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이 법술은 사용하기에 벅찼다. 미간의 보라색 반점이 번쩍거렸다. 한제는 말을 잘 듣지 않는 손가락을 가까스로 펼쳐 저 멀리 도망치고 있는 등일을 가리켰다. 그러자 거인이 커다란 손을 휘둘렀고 그 순간 등일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한제는 등일의 신식이 빛을 잃은 것을 확인했다.
잠시 후, 등일이 사라진 지점에서 금빛 피 한 방울이 떠올라 한제의 손으로 들어왔다.
거인은 한제를 향해 살짝 허리를 굽히더니 몸을 돌려 어디론가 걸어 나갔다. 그리고 천천히 사라졌다. 동시에 금빛 피의 부호도 천천히 사라졌다.
그때, 조나라 국경의 모든 원영기 수련자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음을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