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93
등화원은 강렬한 살기를 내뿜으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의 손에는 금색 깃발이 들려 있었다. 그 깃발을 흔들자 금색 안개가 흘러나오더니 이내 거대한 해골이 되어 소리 없는 포효를 내지르며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제는 변함없는 표정으로 저물대에서 영혼의 깃발 하나를 꺼내 흔들자 1천 개가 넘는 영혼들이 애통하게 울부짖으며 깃발에서 빠져나왔다.
“등화원, 400년 전 너는 내 가족들의 영혼으로 나를 겁박했다. 그때의 내 기분을 너도 똑같이 느끼게 해주겠다. 어디 이 영혼들을 마음대로 삼켜 보아라! 난 전혀 아깝지 않으니…”
한제는 덤덤한 말투로 말하며 동시에 오른손을 다시 움켜쥐었다. 이번에는 1백 명이 넘는 등 씨 가문 사람들의 몸이 등가성에서 떠올랐다. 그들이 몸부림을 쳐도 소용없었다.
등 씨 가문을 멸하다 (2)
등화원은 낮게 울부짖으며, 한제의 법술을 막으려는 듯 소매를 휘둘러 괴상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허나 한제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더니 극의 신식을 번득였다. 붉은 번개가 내리치자 그 괴상한 바람은 흩어져 사라졌다.
뒤이어 한제는 움켜쥔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1백 명이 넘는 이들이 동시에 폭발했다. 그들의 살과 피는 하늘에서 뿌리는 꽃가루처럼 훌훌 떨어졌다.
등 씨 가문 사람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등가성 밖으로 날아올라 사방팔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한제는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으로 그들을 가리켰다. 순간 공중에 떠 있던 수천 개의 영혼들이 나란히 흩어지며 자신들의 옛 가족들을 삼켜버렸다.
등화원은 몸을 훌쩍 날리며 이를 악물고 손에 든 금색 깃발을 다시 휘둘렀다. 그러자 꼼짝도 않고 있던 금색 해골이 수천 갈래로 나뉘어 영혼들을 삼켜대기 시작했다.
등화원은 이를 악물었다. 방금 그의 행동은 가문 사람들을 직접 죽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는 도망치고 있는 등 씨 가문 사람들의 곁에 이르러 있었다. 그 순간, 열흘 전만 해도 자신의 성이 등 씨라는 사실에 상당한 자부심을 느꼈던 한 청년은 이제 자신의 성씨를 저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그의 마지막이었다. 냉랭한 손바닥이 목을 틀어쥐었고 순식간에 그의 숨이 끊어졌다.
순식간에 한 사람을 죽인 한제는 또 훌쩍 몸을 날려 또 다른 등 씨 가문 사람 곁에 이르렀다. 이번 목표는 여린 소녀였지만 한제는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등 씨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가느다란 목을 꺾은 한제는 유유히 다음 목표를 향해 내달렸다.
등화원은 분노에 차 포효하며 몸을 훌쩍 날렸다. 하지만 그의 속도로 한제를 잡기란 불가능했다. 그는 매번 상대의 잔상만을 좇으며 또 다른 가족의 죽음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가문 사람들의 연이은 죽음에 등화원은 비통함을 금할 수 없었다. 특히 그를 미치게 만드는 것은 저 멀리 다시 모습을 드러낸 한제의 곁에 이제 막 스물이 된 소년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소년은 등화원이 직접 자라나는 모습을 봐온 7대 장손이었다.
“안 돼!”
등화원이 시뻘게진 두 눈으로 한제를 노려보며 외쳤다.
한제는 냉랭한 눈으로 등화원을 힐긋 바라보더니 오른손을 소년의 머리 위에 얹었다. 그리고 소년의 한 맺힌 눈빛을 받으며 영력을 살짝 불어넣었다. 소년은 펑 하고 피로 범벅이된 살덩이로 뭉개졌다.
“다음 생에는 등 씨로 태어나지는 말아라.”
그 말만을 남기고 한제는 다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등화원은 자신의 눈앞에서 피범벅이 된 장손을 멍하니 바라보며 고통에 차 절규했다.
“이한제!”
한제는 그로부터 1천 척 정도 떨어진 곳에 나타나서는 냉랭하게 말했다.
“아픈가? 다행이군. 4백 년 전의 나 또한 그랬으니까.”
말을 마친 그는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의 곁에서 다급히 도망가던 중년 남자가 비참한 비명과 함께 피범벅의 살덩이로 변해버렸다.
“내가 네 가족들을 죽인 그 이유는 네가 나의 증손자 등력을 죽였기 때문이다!”
등화원은 흉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 잘난 네 증손자 손에 내가 죽음을 맞았겠지. 이 세상에서 너희 등 씨만 다른 사람들을 죽일 수 있다더냐? 너희가 죽이기로 했으면 다른 사람들은 고분고분 죽어줘야 한다는 것이냐?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은 너희 등 씨를 죽이면 안 된단 말이더냐!”
한제는 차게 웃으며 저물대를 두드렸다. 그러자 열 자루가 넘는 비검이 튀어나와 사방을 휘저었다. 등화원이 보고 있는 가운데 수십 명이 그 칼날에 목숨을 잃었다.
등화원은 주먹을 움켜쥔 채 금빛 깃발을 휘둘렀다. 순간 사방에서 영혼들을 막느라 애쓰고 있던 금빛 해골이 한데 모여들더니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금번을 꺼내 흔들었다. 그러자 검은색 막이 나타나 금빛 해골을 단번에 감싸버렸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물었다.
“등화원, 당시 내 고향집이 어디인지는 어떻게 알았느냐?”
등화원의 얼굴이 경련을 일으켰다. 한제를 노려보는 눈에 깊은 한이 어렸다.
“무슨 수를 써도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한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검은 막에서 수많은 금제들이 튀어나와 수백 명에 달하는 등 씨 가문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말할 텐가 말하지 않을 텐가?”
등화원은 저물대에서 큰 검 한 자루를 꺼냈다. 10척에 달하는 긴 검에서는 질박한 느낌이 풍겨 나왔다. 등화원은 혀끝을 깨물어 한 움큼 피를 토해냈다. 그 결과 등화원은 순식간에 기력이 꺾였지만 대신 검이 번득이며 한제를 향해 날아들었다.
한제는 그 커다란 검이 날아든 순간 극의 신식을 미친 듯이 펼쳤다. 붉은 번개들이 비검을 감쌌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검은 결국 조금씩 흩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한제가 몸을 날려 극의 신식을 한계치까지 발휘하자 그 검은 재가 되어 흩어져버렸다.
한제는 손을 꽉 쥐어 저물대에서 등 씨 가문 사람들의 원영 몇 개를 꺼내더니 그대로 삼켜 체내의 원영을 빠르게 보충했다.
등화원은 사라진 비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느새 폭삭 늙은 모습이었다.
한제는 오른손으로 결인을 한 뒤 미간을 두드렸다. 순간 허이국 마혼과 세 번째 마혼이 튀어나와서는 포효하며 사방에 가득한 등 씨 가문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또 다시 수많은 사람들이 숨을 거두었다. 주위에서 비명이 들려올 때마다 등화원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말할 텐가 말하지 않을 텐가?”
한제의 목소리는 기이할 정도로 냉랭했다.
등화원은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눈을 감았다.
한제는 무표정한 얼굴로 등화원은 쳐다보지도 않고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뒤 금제 한 갈래를 쏘아 보냈다. 순간 등가성을 둘러싼 금제가 좁혀졌다.
도망치던 등 씨 가문 사람들은 끊임없이 줄어들고 있는 금제를 절망적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의 반응은 둘 중 하나였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자포자기하거나, 두 눈을 시뻘겋게 뜨고 법보를 꺼내 한제에게 달려들거나…
점점 많은 사람들이 한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하늘에서 떨어진 금제에 목숨을 잃었고 그들의 피가 다시 땅을 적셨다.
가족들의 절규와 비명이 하나하나 등화원의 귓속으로 들어왔다. 그는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애통함을 금할 수 없었다. 저항도 해보았으나 상급 수련국에서 준 법보도 소용없었다.
등화원의 얼굴이 한 차례 더 늙은 듯했다. 지금 그에게서는 본래의 위풍당당함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무참히 살해당하는 가족들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무력한 노인일 뿐이었다.
“마⋯⋯ 말하겠다!”
등화원이 두 눈에 깊은 한을 품은 채 한제를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당시 내게 너희 가족이 있는 곳을 가르쳐준 자는 표묘종의 고계명이다. 그가 신통술을 이용해 너희 가족이 있는 곳을 알아냈어! 그는 지금 표묘종의 최고 시조다.”
“고계명!”
한제는 등화원을 주시하며 말했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었다. 한제는 그 이름은 단단히 기억해놓았다.
등화원을 바라보던 한제의 안색이 순간 변하더니 먼 곳을 힐긋 바라보았다. 그리고 살기 가득한 눈길로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끊임없이 수축되던 금제가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다. 금제가 1만 리 밖에서부터 빠르게 접근해오는 사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연이어 비명을 내지르며 목숨을 잃어갔다. 동시에 그들의 머리는 인두탑에 더해졌고 이제 인두탑은 구름을 뚫을 정도로 높아졌다.
어느새 등 씨 가문 사람은 등화원을 제외한 모두가 숨을 거두었다. 땅에서는 강을 이룬 피가 흐르며 진한 피비린내를 풍겼다.
등화원은 멍하니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다가 실성한 듯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끝없는 애통함이 어려 있었다. 피눈물이 그의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한제는 조용히 등화원을 바라보았다. 한참 뒤, 등화원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분노를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좋다. 나는 너의 일족을 죽이고 너는 나의 일족을 죽였으니 너와 나, 이 씨 가문과 등 씨 가문은 이제야 모든 원한을 갚았구나. 원인과 결과는 돌고 돈다더니 과연 그렇다. 이제 끝을 보자. 이한제, 오너라!”
한제가 오른손을 들자 그의 손가락 끝에 맑은 빛이 한 점 반짝였다. 이어서 체내의 영력이 꿈틀거리며 그 손가락 끝에 모여들었다.
바로 그때, 하늘 끝자락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멈춰라!”
흑천의 목소리였다.
등화원은 살아남아 복수할 수 있다는 희망에 한제를 바라보며 깊은 살기를 내뿜었다. 원한에 대한 청산이고 뭐고 일단은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했다. 살아날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를 들이더라도 화신기를 돌파한 뒤 한제를 비참하고 잔인하게 죽여 오늘의 원한을 갚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흑천을 과대평가했고 그만큼 한제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일찍이 흑천이 1만 리 정도 거리로 다가왔을 때부터 한제는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다가오거나 말거나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보는 게 옳았다.
흑천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한제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 끝에 맺혀 있던 빛이 등화원의 미간에 적중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이 그렇게 단숨에 숨을 거두었다.
그의 말 대로였다. 오늘 일을 통해 이 씨와 등 씨 양 가문의 원한은 마무리됐다. 등 씨 가문의 혈통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 날은 등 씨 가문이 멸망하고 천지가 피바다로 변할 날이었으며, 조나라가 큰 변화를 맞이할 날이었다. 수 백 년이 흘러도 조나라 수련자들은 이 날을 기억하며 간담이 서늘해질 것이다.
이 날, 등가성 안에서 흐른 피는 대지를 뒤덮을 정도였다.
또한 이 날은 백발의 냉랭한 청년이 모든 수련자를 두려움에 떨게 만든 날이기도 했다. 동시에 이한제라는 이름이 흑천 대신 조나라의 일인자로 꼽히게 된 날이었다. 그 동안 조나라 최고로 꼽혔던 많은 수련자가 그 명성을 잃었다.
흑천이 빠르게 다가왔다. 그는 멍한 얼굴로 바닥을 가득 적힌 선혈과 무수히 많은 살점들을 그리고 고꾸라진 등화원의 시체와 아직도 부릅뜨고 있는 두 눈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구름을 뚫고 높이 솟아 있는 인두탑이었다. 천하의 흑천도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는 거의 어떤 망설임도 없이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순간 저물대에서 푸른빛과 붉은빛이 하나씩 튀어나왔다.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흑천을 주시하며 덤덤하게 말했다.
“늦었군.”
흑천은 한제를 본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한제를 몇 번이고 자세히 살피던 그가 입을 열었다.
“너⋯⋯ 넌 그때 그 대산파의 제자!”
한제는 흑천을 바라보며 두 말 않고 극의 신식을 펼쳤다. 극의 신식과 충돌한 푸른빛과 붉은빛은 격렬하게 번득이다가 겨우 붉은 번개를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두 개의 빛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흑천은 굳은 얼굴로 곧장 혀끝을 깨물어 피를 한 움큼 뱉어내 두 개의 빛에 뿜었다.
흑천이 한제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가라!”
순간 두 빛이 질주하듯 내달렸다. 사방의 공간이 찢기며 균열이 드러났다. 한제는 손을 뻗어 금번의 금제를 쏟아냈다.
그 금제들은 거대한 용으로 변해 두 빛의 전진을 막았다. 하지만 그 금제만으로는 전진을 약간 늦췄을 뿐 두 빛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사악하고 기이한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