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95
겨우 전송진을 통해 다른 한쪽 끝으로 나온 한제는 몇 움큼의 선혈을 토해냈다. 그의 분신으로 만들어진 원영은 기력을 잃고 곧 흩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한제는 잠시도 쉬지 않고 곧장 순간이동을 했다. 그리고 1백 리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그는 도망치는 것을 멈추고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손끝에서 붉은색의 가느다란 실이 떠올랐다.
한제는 도망쳐봐야 상대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원영에 상당한 손상을 입은 상태라 이대로는 상대의 손에 잡히지 않더라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이에 순간이동을 하는 틈에 재빨리 천벌의 가닥을 꺼낸 것이다. 이는 지금 그가 가진 것들 중 가장 강력한 법보였다.
또한 그는 저물대에서 단약 한 병을 꺼내 모두 입에 쏟아부었다.
그때, 1백 척 정도 앞에서 나타난 청년은 한제의 손에 들린 천벌의 가닥을 보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
“천벌의 힘이라니, 생각도 못했군. 이 작고 버려진 수련성에 그런 법보가 있을 줄이야!”
청년이 느릿하게 말했다.
한제는 시종일관 상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상대가 천벌의 가닥을 보고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인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만약 상대가 이것을 보고도 동요하지 않거나 쳐다보지도 않는 눈치였다면 한제는 석주 공간으로 들어가 피할 생각이었다. 허나 이는 결코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청년은 상당히 초조한 상태였다. 이 별에서 천벌의 힘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의 경지가 완전히 원래대로 돌아왔다면 신경도 쓰지 않았겠으나, 지금 그는 겨우 3할 정도의 수준밖에 회복하지 못한 영변기 초기였다. 저 천벌의 힘에 대항할 정도는 되겠지만 경지가 다시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영변기 아래로 경지가 떨어진다면 다시 적당한 장소를 찾아 폐관수련을 해야 한다. 그럼 이 별을 떠날 수도 없다. 성라반을 사용하려면 최소한 영변기는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방금 전송진 안에서 매우 익숙한 힘을 느꼈기에 그는 놀라고 있었다.
청년은 가볍게 콧방귀를 뀐 뒤 더는 천벌의 힘을 쳐다보지 않고 한제에게 시선을 돌리며 외쳤다.
“저물대를 내놓아라. 그렇다면 이 일은 없던 것으로 해주겠다.”
“선배님께서 원하는 것이 이것입니까?”
한제는 신중한 눈빛으로 그를 주시하며 품에서 저물대 하나를 꺼냈다.
그 청년의 표정이 밝아졌다.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가져와라.”
한제는 잠시 망설였다. 워낙 신중한 그로서는 거리를 벌려달라고 요청하고 싶었으나, 생각해보면 어차피 상대는 너무 빨랐다. 거리를 벌리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한제는 과감하게 저물대를 내던졌다.
청년은 그 저물대를 받아든 뒤 신식으로 한 번 훑었다. 표정이 약간 풀어지는 것 같았다. 한제를 힐긋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서는 기쁨도 분노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한제는 상대를 주시하며 한 가닥의 천벌을 앞쪽에 두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배님, 저물대를 돌려드렸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가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한제를 향한 청년의 두 눈에 기이한 빛이 번득이더니 순간 오색찬란한 빛 두 갈래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잔뜩 경계하고 있던 한제는 곧장 극의 신식을 눈으로 뿜어냈다. 붉은 번개가 오색찬란한 빛과 충돌했다. 뒤이어 한제는 한 움큼 피를 토해냈다. 극의 신식으로 이루어진 붉은 번개는 그 오색찬란한 빛에 갈가리 찢겨 버렸다.
그와 동시에 한제는 곧장 몸을 뒤로 날리며 저물대를 두드려 금번을 손에 쥐고는 휘둘렀다. 그리고 금번에 금제를 걸려는 순간, 그 청년의 얼굴이 크게 변하더니 다급하게 외쳤다.
“멈춰!”
말을 마친 그는 얼른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금번을 본 그는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청년은 내심 쓰게 웃었다. 천벌 한 가닥이야 기껏해야 경지가 낮아지는 정도이니 천 년쯤 폐관수련을 하면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 백발의 애송이가 들고 있는 금번을 본 순간, 그는 어째서 저 녀석이 천벌의 가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 눈치챘다. 저 깃발은 천벌을 일으키는 법보이리라.
그런 법보라면 그의 저물대에도 몇 개 있었다. 그는 천벌을 유도하는 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눈앞의 녀석이 정말 천벌을 일으킨다면 경지가 낮아지는 것에서 끝날 리 없었다.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 원래의 경지를 회복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한제는 토해낸 피를 입가에 묻힌 채로 사악하고 기이한 사내를 주시하고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마지막 금제를 금번에 걸 수 있었다. 그러면 이 법보를 따로 쓰지 않더라도 미리 가지고 있었던 한 가닥의 천벌의 흡인력에 따라 새롭게 내리칠 천벌의 대부분을 상대의 몸으로 유도할 수 있었다.
“저물대는 이미 돌려줬다. 그것에 손을 대지도 않았다. 한데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한제는 상대를 주시하며 느릿하게 말했다.
사악하고 기이한 청년은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방금 네가 사용한 그 붉은 번개, 극의 경계냐?”
그의 말투는 약간 불확실했다.
한제의 표정은 침착했으나 마음속에서는 거대한 파도가 일었다. 그는 상대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청년이 한제를 주시하며 말했다.
“맞을 것이다. 네가 방금 사용한 것은 극의 경계야.”
사실 청년은 지금 심경이 복잡했다. 저 백발 애송이는 여러 차례 자신을 놀라게 했다. 반쯤 버려진 것과 다름없는 이 별에서 천벌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가사의한데 천벌의 힘을 유도할 수 있는 법보를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 극의 경계까지 발휘할 수 있었다.
그 극의 경계를 본 순간, 청년의 살기는 눈 녹듯 사라졌다. 그러더니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한제는 무표정한 얼굴로 상대를 마주보다가 불쑥 말했다.
“다른 일이 없다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가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만약 상대가 또 다시 자신을 공격한다면 망설임 없이 천벌을 불러일으킬 생각이었다.
청년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극의 경계의 병목 현상을 돌파하고 싶지 않나?”
그 말에 한제는 우뚝 멈춰선 채 하염없이 상대를 바라보았다.
사악하고 기이한 청년은 잠시 망설이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좋아, 잘 들어라. 극의 경계는 일종의 극단적인 힘이야. 그런 힘의 한계를 돌파하기는 어렵다. 아주 어렵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야.”
한제는 꼼짝도 않고 잠자코 상대를 바라보았다.
청년은 기특해하는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눈을 번쩍였다. 오색찬란한 빛이 천천히 그의 눈에서 흘러나와 한 덩이로 뭉치더니 그의 손 위에 둥실 떠올랐다.
한제는 잔뜩 경계심을 드높였다.
그 오색찬란한 빛 덩이를 바라보던 청년은 어쩐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신식으로 살펴봐도 좋다.”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것을 신식으로 살폈다. 그 순간 한제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한제는 자신도 모르게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 이건⋯⋯?”
한제는 그 오색찬란한 빛 덩이 안에서 분명한 극의 경계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한제의 머릿속을 완전히 헤집어놓았다.
청년이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느릿하게 말했다.
“눈치챘나? 이 빛은 나의 모성(母星)에서 오색찬란한 극의 경계라 불리는 것이다. 본디 나의 소유는 아니었으나 친한 벗이 죽기 전 내게 넘겼지.”
한제는 숨을 들이마시며 오색찬란한 빛 덩이를 주시했다.
청년이 손을 꽉 쥐자 그 빛 덩이는 사라졌다.
청년은 한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극의 경계는 종류가 다양하다. 정확히 몇 종류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극의 경계를 가진 수련자는 온 수련 연맹을 통틀어도 드물다. 그러니 난 네 극의 경계가 어떤 속성인지는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어느 종류건 극의 경계에는 한계가 있고 이를 돌파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거지.”
한제는 상대의 말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허나 난 그 한계를 돌파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바로 수성(修星)의 결정이지. 이 결정은 6성 수련국이 봉호를 받을 때 수련 연맹의 노인들이 동시에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저절로 응집되어 만들어지는 결과물이지. 6성 수련국의 가장 귀중한 보물이기도 하다. 그 보물을 얻게 된다면 극의 경계의 한계를 돌파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지.”
한제의 얼굴에는 어쩔 수 없이 약간 실망한 기색이 드러났다. 6성 수련국의 가장 귀중한 보물이라면 얻기는 매우 힘들 터였다.
청년은 말을 마친 뒤 한제를 한참 바라보다가 저물대에서 손바닥만 한 검은색 나침반을 꺼냈다. 그것을 두드리자 순간 나침반이 거대해지면서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아래쪽으로 부드러운 빛을 뿜었다.
“만약 네가 앞으로 그 수성의 결정을 얻어 이 버려진 별을 떠날 자격을 얻게 된다면 오행성(五行星)으로 와 날 찾아라. 내 이름은 만표다.”
말을 마친 그는 하늘로 솟구쳐 올라 천천히 나침반 안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그 나침반은 빠르게 회전했다. 그 회전에 따라 점점 빛을 번득이는 시커먼 구멍이 허공에 나타났다. 그 구멍 안에는 반짝거리는 우주가 들어 있었다.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의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나침반은 곧 그 시커먼 구멍 안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구멍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가 더 이상 저물대에 관한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에 한제는 속을 쓸어내렸다. 금번과 천벌의 가닥은 그가 가진 궁극의 법보였다. 특히 천벌의 가닥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사라져버린 검은 구멍이 있던 곳을 바라보던 한제의 마음에 강렬한 욕망이 들끓었다. 어린 시절에는 하늘을 나는 것만으로도 벅찼건만 이제는 별과 별 사이를 돌아다니고 싶어진 것이다.
그러나 수성의 결정은 그가 당장 얻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 청년의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어쨌든 실마리는 되었다. 만약 충분한 경지가 된다면 한제는 수성의 결정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해야 하는 것은 화신기 경지로 올라서는 것이었다.
화신기는 3성 수련국을 4성 수련국으로 올리는 관문 역할을 하는 만큼, 이루기란 매우 어려웠다. 온 주작성을 통틀어 3성 수련국은 넘쳐났지만 4성 수련국은 20개가 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영력과 환경이 월등한 4성 수련국으로 가서 수련하는 것이 한제의 생각이었다.
그는 저물대에서 지도 옥패를 꺼내 한참 살펴보다가 지금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4성 수련국인 ‘4파 연맹국’을 목적지로 정했다.
★ ★ ★
보름 뒤, 4파 연맹국 변방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변두리는 빛의 장막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이는 4성 수련국과 3성 수련국의 차이 중 하나로 외부인의 진입을 막는 방어막이었다.
한제는 그 빛의 장막에 다가가 한참 살펴보더니 오른손을 들어 잔영의 원을 하나 만들어냈다. 그것을 빛의 장막에 찍자 작은 틈이 하나 생겼다. 한제는 곧장 몸을 날려 그 안으로 들어갔다.
화범(化凡)
빛의 장막 안으로 들어간 한제는 곧장 자신의 경지를 숨긴 채 일반인처럼 길을 따라 걸었다.
원영기를 돌파하여 화신기에 진입하는 과정에는 어떤 공법도 효력이 없었다. 심지어 단약도 6품 이상이 아니면 도움이 되지 않았다.
화신기의 경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천도(天道), 즉 천지자연의 도리를 깨우쳐 자신에게 속한 경지를 알아내야 했다.
한제가 4성 수련국에 들어온 것은 어느 문파에 들어가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방식으로 화신기에 이르려면 그 문파의 핵심부에 진입해야만 했는데 이는 당연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곳에서 시간낭비를 할 마음은 없었다.
지난 4백 년간의 수련을 통해 얻은 지식과 몇몇 화신기 수련자들과의 싸움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한제는 화신기에 이르려면 천도를 깨닫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많은 사람을 죽이고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은 천도를 깨닫는 데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았다. 한제는 만약 이대로 계속 나아가다가는 원영기를 돌파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여겼다.
길을 따라 걷는 도중에 한제의 신체에 조금씩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그의 본체 안에 잠들어 있던 분신이 점점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