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98
얼마 지나지 않아 한제의 눈이 살짝 번득였다. 이 일반인들의 수도에서 그가 발견한 수련자는 여태까지 열 명 남짓이었다. 그들은 응기 수준에 불과했지만 수련자가 일반인들 틈에 섞여 있는 것은 조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한제는 성 중심에 자리한 아홉 개의 검은 기둥이 그 이유라 생각했다. 그 검은 기둥이 바로 4성 수련국의 특징인 듯했다.
오후까지도 한제는 여전히 여러 상점들을 돌아보고 있었다. 개중에는 수련자들을 위한 점포도 있어서, 옥패나 법보 등을 팔기도 했다. 이런 점포 밖에는 한 층의 금제가 걸려 있어 일반인은 접근할 수 없었다. 그 점포들을 기웃거리는 일반인이 없는 것을 보니 수도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했다.
한제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여러 점포들을 들락거렸다. 그러던 중 어느 점포에서 막 나왔을 때, 갑자기 멀지 않은 곳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불결해 보이는 노인 하나가 어느 사내에게 밀려 바닥에 쓰러졌다. 뒤이어 거대한 주먹이 노인의 가슴팍으로 날아들었다.
노인은 연이어 비참한 신음을 흘려댔다. 처량한 목소리였다. 동시에 사내의 주먹에 가격당할 때마다 입에서는 울컥울컥 피가 흘러나왔다.
사내는 몇 번의 주먹질을 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나며 욕을 지껄였다.
“늙은이, 다시 한 번 내 가게에 들어왔다가는 혼쭐날 줄 알아! 나이 처먹고 그렇게 저급한 짓을 해!”
말을 마친 그는 침을 퉤 뱉어냈다.
그때 한제 곁에 있던 중년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말세로군. 저 노인은 거의 매일 얻어맞는 모양이야. 여자 옷 좀 보겠다고 저런 수모를 당하다니, 원.”
한제는 노인을 힐끗 바라본 후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걸음을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다시 몸을 돌려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입가에 흐른 피를 문질러 닦아낸 뒤 득의양양하게 그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왔다.
한제는 한쪽으로 비켜 선 채 냉랭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노인은 한제의 곁을 스쳐지나가다가 우뚝 멈추더니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놀라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한제를 몇 번 훑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미간이 충만하고 보라색 빛을 발하는 것은 보니 범상치 않은 인물이구나.”
한제는 미간을 살짝 구겼다. 신식을 통해 살핀 노인은 일반인에 불과했다. 심지어 몸 곳곳에 수많은 상처가 있었는데 모두 맞아서 생긴 것인 듯했다.
흥미가 사라진 한제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노인은 안타깝다는 듯한 눈빛으로 한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옆에서 지도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평생 화신이 되기는 힘들 텐데 아쉬워.”
한제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에 천천히 뒤로 돈 한제는 노인을 주시하며 냉랭하게 말했다.
“누구냐?”
노인은 험상궂게 구겨진 한제의 얼굴을 보고도 조금의 변함도 없는 얼굴로 뒷짐을 진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노쇠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누구인지 알 필요는 없지. 네가 화신기에 이를 방법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냐.”
한제는 눈을 번득였다. 노인은 아무리 살펴도 일반인에 불과했음에도 한제의 경지를 꿰뚫어보았다. 이는 상대가 일반인이 아니라 한제가 꿰뚫어볼 수 없도록 자신을 감출 수 있는, 최소한 화신기를 뛰어넘은 자라는 뜻이다.
“내가 어떻게 하면 화신기에 이를 수 있지?”
한제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노인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늙어서 그런지 배는 고픈데 딱히 먹고 싶은 건 없단 말이지. 내가 좋은 술집을 좀 알고 있는데 한잔하면서 이야기하는 게 어떻겠나?”
말을 마친 그가 입술을 핥았다. 때마침 노인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 ★ ★
복순객잔(福順客棧)은 수도에서 가장 호화로운 술집 중 하나였다. 노인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가슴을 딱 벌린 채 성큼성큼 그 안으로 들어섰다.
대청에서 밥을 먹는 것은 성에 차지 않는지 노인은 곧장 방으로 향했다. 옆에 있던 심부름꾼은 노인이 나타나자마자 표정을 와락 구겼으나, 노인 뒤에 붙은 한제를 보고는 얼른 나와 맞이했다.
한제의 표정은 여전히 싸늘했다.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노인은 이 객잔이 처음이 아닌 듯 한제는 들어본 적도 없는 요리들을 시켰다. 곧이어 탁자가 가득 차도록 음식이 차려지자 노인은 며칠 굶은 사람처럼 게걸스럽게 음식들을 먹었다.
한제는 말없이 술만 마시며 싸늘한 눈빛으로 물었다.
“먹을 만큼 먹었으면 이제 말해봐.”
노인이 음식을 다 먹었을 무렵 한제가 냉랭하게 말했다.
노인은 돼지 허벅지살을 쥔 채 한 입 크게 베어 물더니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야지, 말해줘야지. 일단 이 고기 좀 먹고.”
말을 마친 노인은 순식간에 고기 한 덩이를 꿀꺽 삼킨 뒤 트림을 하더니 두 손을 옷에 문질러 닦으며 입을 열었다.
“화신기에 오르려면 천도를 깨달아야 할 뿐만 아니라 일종의 경지에 이르러야 하지. 혹시 경지에 대해서 알고 있나? 그것 또한 깨달아야 한단 말이야. 일단 경지를 깨닫고 나면 화신기에 이르는 것은 금방이야. 일단 화장실에 다녀와서 마저 말해주지.”
노인은 갑자기 배를 움켜쥐더니 표정을 구기며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제가 보내주지 않을까봐 걱정이라도 된 건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시에 방귀를 뀌었다. 지독한 냄새가 방을 가득 채웠다.
겸연쩍게 웃은 노인이 다급히 방 밖으로 나갔다.
한제가 오른손을 휘젓자 미풍이 불어와 방 안의 방귀 냄새를 흐트러뜨렸다. 동시에 그는 신식으로 노인을 바짝 뒤쫓았다. 노인의 행동들은 어딘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화신기에 대한 그의 말은 한제가 알고 있는 것과 부합했고 이는 일반인들이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한제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신식으로 살피고 있던 노인은 득의양양한 얼굴로 술집 뒷문을 통해 나가더니 사람들속에 섞여 들어갔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렸고 어느새 술집 밖으로 나와 몰래 노인의 뒤를 쫓았다.
언제 갈아입었는지 조금전과 다른 옷차림의 노인은 작은 나뭇가지로 한참 동안 이를 쑤시며 쉬지 않고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노인이 어느 순간 멈췄다. 저 멀리 보라색 옷의 중년 남자를 본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 중년 남자는 뭔가를 느낀 듯 고개를 돌렸다가 노인을 발견했지만 모르는 척 무시했다.
노인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어이 거기, 미간이 충만하고 보라색 빛을 발하는 것은 보니 범상치 않은 인물이구나.”
중년 남자는 흠칫 놀라 걸음을 멈추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음산한 눈빛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안타깝다는 듯한 눈빛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옆에서 지도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평생 결단에 이르기는 힘들 텐데 아쉬워.”
중년 남자가 두 눈을 번득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십니까?”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누구인지 알 필요는 없지. 내가 죽이는 곳을 좀 알고 있는데 거기 가서 이야기하는 게 어떻겠나?”
한제의 안색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 중년 남자는 축기 수준의 수련자였다. 노인이 어디에서 그런 단어들을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련자만을 전문적으로 골라 등쳐먹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여태 살아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일반인에게 희롱당하고도 관대하게 넘어갈 수련자는 많지 않으니 말이다. 게다가 보아하니 노인은 수련자의 현재 수준을 알아보고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방법을 미끼로 삼아 접근했다. 그 점이 의아했다.
오후 내내 한제는 노인을 미행했다. 그 노인에게 대체 무슨 비밀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노인은 한제를 포함해 총 네 명의 수련자를 속였다. 수련자를 등쳐가며 그가 누린 것은 먹을 것과 마실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기생집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보라색 옷의 중년 남자를 포함한 세 사람에게서는 짜증나거나 화난 기색을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치 노인이 한 말에 마력이라도 깃든 듯했다.
한제는 왠지 간담이 서늘해졌다. 노인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간단한 몇 마디로 수련자들에게 깨달음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를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선배님을 만나 감격했다고 고개 숙여 인사하기도 했다.
한참 동안 고민하던 한제는 신식을 거두고 더는 그 노인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다. 저런 비밀스러운 자는 건드리지 않는 편이 나을 듯했다.
한제가 신식을 거둔 그때, 기생집 안에 있던 노인은 어여쁜 여인을 품에 안은 채 눈을 번득였다. 그리고 키득거리며 한제가 있는 쪽을 바라보다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원영기, 그것도 원영기 중기로군. 도와줄까, 말까?”
그때 품에 안긴 여인이 교태를 부리며 그를 불렀다. 순간 노인은 한제에 관한 생각은 아예 뒤쪽으로 밀어 버리고 여인에게 달려들었다.
한제는 성의 서쪽 외진 곳에서 금 여덟 냥으로 크지 않은 가게를 빌렸다.
한제가 생각하기에 화신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일반인이 되어 인생을 느끼고 천도를 깨달아야 했다. 그는 차분히 점포 안을 살핀 후 가게에 딸린 뒷방으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잠자코 인간 세상을 느꼈다.
작은 은거자는 야생에 큰 은거자는 도시에 있는 법이라고 했다. 한제는 지금 번화한 인간 세상의 도시에서 조용히 천도와 윤회를 느끼는 중이었다.
법보
한제가 빌린 점포는 작은 골목길에 있었기에 자세히 살피지 않는다면 찾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한제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룻밤 좌선을 통해 그의 몸을 두른 붉은 안개는 다시 약간 응결된 상태였다.
이른 아침, 한제는 일반인처럼 점포의 문을 열고 정리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몸을 훌쩍 날려 점포 안에서 사라졌다.
다시 돌아왔을 때 그의 저물대에는 뿌리째 뽑혀온 큰 나무들이 가득했다.
한제는 어릴 적 아버지가 가르쳐준 방법을 기억에서 하나하나 되살려 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목재로 각종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제는 왼손으로 목재 하나를 집어 가볍게 휘둘렀다. 순간 그 목재는 열 개의 조각으로 나뉘었다. 그중 한 조각을 집어든 한제의 오른손에는 언제부턴가 조각칼 하나가 들려 있었다. 한제는 당시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 목재를 하나하나 깎고 무언가를 새기기 시작했다. 칼질 한 번마다 다시 그 작은 마을에 살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데 그때, 한제 체내의 영력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뭇조각을 깎아나갈수록 칼날의 움직임이 격렬해졌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 밤이 찾아왔다.
한제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손에 든 나무 조각을 살폈다. 목재는 이미 나무 조각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중년 남자였다. 거친 무명옷을 입었고 두 손에는 상흔이 가득했다.
거칠고 서툰 솜씨로 만든 것이었지만 영혼이 깃든 듯 조각에서 영력이 발산되었다. 한제는 멍하니 나무 조각을 바라보았다. 비통한 마음이 치솟아 올랐다.
그는 오른손으로 나무 조각을 가볍게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아버지, 보고 싶어요. 정말 보고 싶어요.”
한참 동안 침묵하던 한제는 나무 조각을 한쪽에 내려놓고 또 다른 목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묵직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그 목재를 새롭게 조각해 나가기 시작했다.
하루가 지났지만 한제는 잠시도 쉬지 않았다.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올랐을 때, 한제의 손에는 또 하나의 조각이 들려 있었다. 이번에는 중년 여인이었다. 자애로운 미소를 띤 채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는 마치 멀리 떠나간 자식을 그리워하는 듯했다.
두 개의 조각을 나란히 내려놓은 한제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음 목재를 들어 조각을 시작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