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05
“우리 백운종의 진을 부수다니, 합당한 이유가 없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노인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허공에 대나무 의자가 나타났다. 그는 그 의자 위에 비스듬히 앉아 한제를 가리키며 말했다.
“난 모른다. 난 그저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다. 날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이 자이니 이 자에게 이유를 구하라.”
그 중년 문인의 눈에는 보일 듯 말 듯한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의 대상은 한제가 아니라 노인이었다.
조령패(祖靈牌)
노인의 말을 들은 그 수련자는 곧장 한제에게 따지듯 물었다.
“도우, 우리 백운종이 도우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저물대를 두드렸다. 순간 그 안에서 평범한 비검 하나가 튀어나왔다. 한제는 그것을 살짝 흔들어 그 안에 신식을 찍어두었다. 그러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검은 곧장 액체로 녹아들어 주먹만 한 은구슬로 응결되었다.
“백운종의 수련자 여러분, 저는 오늘 도전을 하러 왔습니다. 실례되는 부분이 있다면 부디 용서를 바랍니다!”
말을 마친 그가 오른손을 들어 결인을 그린 뒤 은구슬을 가리켰다. 그러자 은구슬은 허공을 가르며 날았다.
줄곧 신중하던 중년 남자는 그 은구슬을 본 뒤 흠칫 놀라더니 일갈했다.
“감히!”
그는 법보를 들지도 않고 허공에 오른손을 뻗었다. 순간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뿜어져 나온 보라색 영기가 질주하듯 내달렸다.
그 영기는 보라색 용으로 변하더니 은구슬을 향해 포효했다. 은구슬이 움찔하는 순간, 한제는 두 손으로 결인을 하며 외쳤다.
“변신!”
순간 그 은구슬은 기이하게 요동치며 거북이 형태의 생물이 되었다. 그것은 한제가 수마해에서 죽였던 마수, 종고였다.
은구슬로 이루어진 종고는 모습을 갖추자마자 살아 있는 것처럼 예리한 이빨을 드러내며 소리 없이 포효했다. 순간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공기의 파문이 보라색 용을 휘감았다.
코웃음을 친 중년 문인은 오른손을 휘두르며 결인하더니 외쳤다.
“분리!”
순간 보라색 용이 둘로 분리되더니 종고에게서 벗어나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한제는 미간을 구기며 뒤로 물러나려했다. 그때, 그의 귓가에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피하느냐? 그럴 것 없다. 화신기 수련자의 경지를 보아라!”
노인의 말에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이를 악문 한제는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머물렀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두 보라색 용의 공격에 한제는 그대로 적중당하고 말 터였다.
노인의 눈에 감탄이 어렸다. 한제는 곁눈으로 두 마리 용을 확인한 뒤 오른손을 들어 가볍게 움켜쥐었다. 순간 한 마리의 용은 마치 거품처럼 팍 하고 터져버렸다.
중년 문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눈에 담긴 경계와 두려움은 한층 짙어졌다.
남아 있던 보라색 용은 포효하여 거센 기세로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한제의 몸이 떨렸다. 그는 거대한 충격이 닥쳐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충격은 보기에는 상당했으나 실제로 그의 몸에 닿을 때에는 미풍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미풍에는 놀라운 힘과 무정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 힘은 눈 깜짝할 사이에 확산되어 한제의 온몸을 덮쳤다. 심지어 그의 원영도 피하지 못했다.
한제는 그 무정함이 중년 남자의 법술에 포함되어 있던 경지임을 곧장 알아차렸다. 이 경지는 마치 하늘에서 기인한 힘과 같아서 한제는 저항할 수가 없었다.
만약 그가 금번을 들고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화신기 상대와의 싸움에 있어 한제에게 금번은 필수였다.
하지만 이번 싸움은 경지를 직접 체득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법보를 쓸 필요는 없었다. 이를 통해 아무런 장애도 없이 그는 아주 적나라하게 화신기 수준의 공격 속 경지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노인의 눈이 밝게 빛났다. 그가 오른손을 쥐자 순간 보라색 기운이 한제의 정수리로부터 피어오르면서 보라색 공이 되었다. 그 공은 둥둥 떠서 노인의 손으로 들어왔고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정신을 차렸다.
한제는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방금 경험한 상대의 경지를 완전히 깨달았다. 좀처럼 하기 힘든 귀중한 경험이었다.
노인은 손을 꽉 움켜쥐어 보라색 구슬을 흩어버렸다. 중년 문인은 잔뜩 구겨진 얼굴로 노인을 주시하며 말했다.
“선배님께서 여기까지 오신 것은 제자를 화신기에 올려줄 경지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군요.”
노인이 히히 웃으며 오른손으로 문인의 곁에 있는 한 사람을 가리켰다.
“너, 나와라. 이제 네 차례다.”
노인에게 지목된 사람은 노파였다. 그녀는 약간 어스름한 눈빛으로 노인을 주시하다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수준이 하늘을 찌른다고는 하나 우리 백운종이 어찌 네놈 뜻대로 움직여주겠느냐!”
그 말을 들은 노인은 뭐라 중얼거리며 내키지 않는다는 듯 품에서 더러운 저물대 하나를 꺼냈다. 그러더니 그 저물대를 한참 뒤진 끝에 검은색 나무 영패를 하나 꺼냈다. 노인이 던진 기름때와 푸성귀 이파리가 덕지덕지 붙은 그 나무 영패는 곧장 노파에게로 날아갔다.
그 옥패를 본 노파는 경악하며 외쳤다.
“조령패(祖靈牌)!”
중년 문인은 얼른 손을 뻗어 그 영패를 받아든 뒤 그 위에 결인을 찍었다. 순간 그 나무 영패에서 피어오른 일곱 빛깔은 오래도록 흩어지지 않고 번쩍였다. 중년 문인은 쓰게 웃으며 노인에게 공손하게 말했다.
“조령패도 가지고 계셨군요. 지시를 따르겠습니다. 허나 선배님은 이 조령패로 우리 백운종의 경지를 제자에게 일깨워주시려는 게 확실합니까?”
노인은 득의양양하게 한제를 훑어보다가 중년 문인을 향해 코웃음을 쳤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시키는 대로 하기나 해. 너, 나와!”
그의 손가락이 노파를 가리켰다.
노파는 좀 전과는 달리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앞으로 나왔다. 그녀는 복잡한 빛이 어린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좋은 사부를 두었구나. 당시 내가 화신기에 이르려 할 때 이런 기회가 있었다면 그렇게 헤맬 필요는 없었을 텐데…”
말을 마친 그녀가 분홍색 영기를 한 줄기 토해냈다. 그 영기가 나타나자 사방에 싱그러운 향기가 가득 퍼졌다. 그와 동시에 그 분홍색 기운은 마치 활시위를 떠난 듯 날아가 한제로부터 3촌 정도 떨어진 거리에 이르러서는 펑 하고 분홍색 안개로 바뀌어 한제를 감쌌다.
“노파의 경지를 천천히 느껴보아라!”
그 분홍색 안개 속에서 한제는 훈훈함을 느꼈다. 그는 체내의 영력과 원영이 그 훈훈한 기운 아래 천천히 나태해져 갔다. 이 순간 일체의 살인도 심지어 수련을 하여 화신기에 이르겠다는 결심도 한제의 마음을 훌훌 떠나고 있었다. 심지어 한제는 한숨 자고 싶은 느낌마저 느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흐릿해져 갔다.
하지만 바로 그때, 그의 저물대에 들어있던 살기(煞氣) 구슬 중 하나가 제멋대로 저물대에서 튀어나와 한제의 손바닥을 통해 체내로 녹아들어갔다.
뒤이어 느껴지는 강렬한 살기(殺氣)에 마치 찬물을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쓴 듯 한제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가 깨어난 순간 살기는(煞氣) 곧장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노파는 엇 하는 소리를 내며 재빨리 분홍색 영기를 거두었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만약 그 붉은 구슬이 아니었다면 그는 벌써 상대의 경지에 빠져버렸을 것이다. 무서운 공격 수단이었다. 화신기 수련자에 대한 두려움에 조심스러움이 한 층 더 쌓였다.
노파는 한제를 바라보다가 뒤로 물러나서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인의 시선은 먼 곳에 서 있는 푸른 옷의 노인에게 닿아 있었다. 노인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너, 이리 와라. 네 경지는 굉장히 특이하구나. 체험한 후에는 곧장 떠나서 더는 너희를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다.”
지목당한 노인은 고개를 들고 한제를 힐긋 보더니 덤덤하게 말했다.
“저자는 제 경지를 감당하지 못할 겁니다!”
노인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손을 휘둘렀다.
“헛소리! 내가 곁에 있지 않느냐? 너희 백운종 모두가 달려든다고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으냐?”
말을 마친 그는 도둑처럼 음흉한 눈빛으로 백운종의 깊은 곳을 몰래 곁눈질했다.
푸른 옷의 노인은 더는 따지지 않고 이마를 두드렸다. 순간 그의 미간에서 검은색 입이 생겨나 벌어졌고 그 안에서 손바닥만 한 비검 하나가 튀어나오더니 한 갈래의 번개가 되어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한제로서는 저항이 불가능한 속도였다. 그의 얼굴이 구겨졌다. 금번을 펼친다 해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한제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저항할 수는 없어도 정말 위험할 때에는 천벌의 가닥을 쓸 수 있다.
이 화신기 수련자들이 강력하다고는 하나 그들도 두려워하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만약 한제가 지금 천벌을 사용한다면 저 푸른 옷의 노인도 곧장 비검을 거두어들일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공멸(共滅)할 테니 말이다.
상대의 비검이 10척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르자 서늘한 기운이 밀려왔다.
그 기운에 담긴 경지는 이전의 두 경지와 전혀 달랐다. 마치 하늘과 땅의 기운이 깃든 듯 체내의 영력이 곧장 쇠락하기 시작했다.
만약 영력에 생명력이 있다고 한다면 상대의 경지는 그 생명력을 빠르게 빨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기이한 경지에 한제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만약 이 경지가 영력만이 아닌 수명에도 작용한다면 엄청난 공포를 주는 공격이 될 것이다.
푸른 옷의 노인은 덤덤한 얼굴로 오른손을 거두었다. 순간 비검도 뒤로 물러나 노인의 곁으로 돌아와서는 그의 미간으로 사라졌다. 노인이 느릿하게 말했다.
“내 경지는 세월이다!”
한제 곁에 앉아 있던 노인은 푸른 옷의 노인을 가만히 응시했다. 저자가 범상치 않은 경지를 가지고 있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설마하니 그 경지가 세월의 흐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노인이 깊은 숨을 들이마시자 그 얼굴에 드리워 있던 비열한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금의 그는 위엄이 넘쳐 보였으며, 비쩍 마른 몸에서 거대한 기운이 풍겼다.
한제는 만약 저 노인이 주작성에서 가장 뛰어난 고수라 해도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은 경지로구나. 만약 이 생에서 문정(問鼎)에 이른다면 그 경지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조령패는 너희가 갖도록 해라.”
말을 마친 노인은 한제에게 다가와 그의 팔을 쥔 채 사라졌다.
그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수도 안의 구석이었다.
노인은 또다시 거친 숨을 몰아쉬었지만 여전히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좀 전에 보인 위엄은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그는 뻐기는 표정으로 한제를 빤히 쳐다보았다.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고는 밀짚모자를 벗어 저물대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선배님의 신통술은 정말 충격적입니다. 살면서 한 번도 이런 능력을 본 적이 없습니다. 선배님 덕에 오늘 제 눈이 크게 호강했습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만족스럽지 않은 듯 눈을 흘겼다.
하지만 일평생 알랑거리는 말이라고는 해본 적 없던 그로서는 도통 다른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노인은 못마땅한 듯 혀를 차더니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손을 휘둘렀다.
“됐다. 경지 체험이 끝났으니 돌아가거라. 최대한 빨리 화신기에 올라 내게 조각상을 만들어주는 것 잊지 말고.”
말을 마친 노인은 몸을 돌려 저벅저벅 걷기 시작했다. 한제는 할 말이 있는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노인의 등에 대고 물었다.
“선배님, 조령패라는 게 뭡니까?”
노인은 고개를 돌려 한제를 바라보더니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거? 별거 아니다. 난 아직도 잔뜩 가지고 있거든!”
그가 저물대에서 각양각색의 영패를 꺼내들며 말했다.
“이건 천둔문(天遁門)의 것이고 이건 영무종(靈霧宗)의 것, 이건 4성 수련국 거마족의 것이고 또 이건 5성 수련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