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07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는 혼절하여 푹 고꾸라졌다.
붉은 도포 차림의 수련자는 차게 웃으며 한제를 힐긋 보더니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일반인은 볼 수 없는 검은 기운이 그의 손에서 흘러나와 허공에서 거대한 해골 머리로 바뀌었다. 그 해골은 서도를 삼키려는 듯 달려들었다. 수련자의 악독한 기운은 한제까지 뒤덮고 있었다.
그의 눈에 한제는 일반인 한 명에 불과했으나, 서도가 목숨을 걸고 찾아온 사람이라면 분명 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한꺼번에 죽여 버릴 참이었다.
한제의 미간이 구겨졌다. 상대가 서도의 목숨만을 거두려했다면 굳이 끼어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비록 서도가 10년 넘게 자신을 존중해왔지만 굳이 이런 일에 끼어들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겨우 축기 수준에 불과한 수련자가 방자하게 날뛰는 것을 보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오른손을 살짝 휘둘렀다. 마치 벌레를 내쫓는 듯 가벼운 손짓이었다.
순간, 허공에 나타난 검은 해골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재빨리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한제가 오른손을 휘두른 순간, 허이국 마혼이 나타나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그 해골을 삼키더니 쩝쩝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험상궂은 눈으로 깜짝 놀란 듯한 수련자를 노려보며 천천히 사라졌다.
수련자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허이국 마혼이 해골을 삼킨 순간, 이미 심신에 손상을 입은 그는 피를 한 움큼 토해낸 뒤 황급히 도망쳤다.
한제는 냉랭한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더는 손을 쓰지 않았다. 지금 그의 화범(化凡)은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 있었다. 겨우 이런 작은 일로 오랜 시간 동안 진행해온 수련을 그르칠 수는 없었다.
설탕 공예
수련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매우 짧았다. 또한 법술을 사용해 일반인 눈에는 보이지 않게 해두었기 때문에 길을 지나던 사람 중 이상한 낌새를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껏해야 바람이 불었나 싶은 느낌이 전부였다.
한제는 한숨을 내쉬며 뒷짐을 진 채 느릿하게 옆의 잡화점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가자 잡화점 사장이 얼른 허리를 굽히며 그를 맞이했다.
한제는 멀지 않은 곳에 혼절해 쓰러져 있는 서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미안한데 자네 가게 직원 둘만 좀 빌려주게. 저자를 내 가게까지 옮겨다주면 되네.”
잡화점 주인은 잠시 망설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아무도 이쪽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앞으로 나와 한제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사장님, 이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지 않습니다? 보아하니 관리인 것 같은데 공연히 말려들었다가 뒤집어쓰시면 어떡하시려고요.”
서도의 부모가 8년 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탓에 이제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제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잡화점 사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네. 옮겨줄 사람이나 찾아주게.”
말을 마친 그는 뒷짐을 진 채 몸을 돌려 천천히 잡화점 밖으로 나왔다.
멀어져가는 한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잡화점 사장은 한숨을 내쉬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 사장님은 정말이지 좋은 분이시라니까.”
그러더니 그는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둘째야, 셋째야, 여기 좀 나와 봐라. 저 앞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이 사장님 가게로 옮겨드리고 와라!”
한제가 자신의 가게로 돌아온 것과 거의 동시에 거친 무명옷을 입은 두 남자가 서도를 끌고 왔다. 그들은 한제의 지시에 따라 가게 바닥에 서도를 눕혔다.
한제는 아무렇지 않게 대충 은 몇 냥을 집어 두 남자에게 건넨 뒤 가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 화롯가에 앉아 한참이나 말없이 그렇게 있었다.
서도에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절대 살아날 수 없을 터였다.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의 성의를 봐서 저물대 안에서 가장 저급한 단약 하나를 꺼내 상대의 입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술주전자를 들어 조금씩 마시며 서도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 ★ ★
성의 동쪽 근교에는 도관(道觀)이 하나 있었다. 사방은 매우 그윽하고 고요했으며, 맑고 깊은 못에는 분홍색 연꽃도 여러 송이 피어 있었다. 이따금 물고기들이 비취색 연잎을 툭툭 건드렸는데 그러면 연잎은 느릿하게 회전하면서 연못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 그야말로 탈속적인 광경이었다.
자갈로 이루어진 길 하나가 그 도관으로부터 구불구불하게 뻗어 있었다. 길 양편의 버드나무는 바람이 불 때마다 한들한들 흔들리며 솨아아 하고 소리를 냈다. 그 역시 퍽 우아했다.
이때, 한 줄기 미풍이 불어왔지만 버드나무가 흔들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허공을 가르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무지개를 그리며 질주하듯 달려온 사람은 그 붉은 옷의 수련자로 그는 도관 밖에 착지하자마자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창백한 얼굴로 도관의 문을 연 그가 비틀비틀 들어갔다.
도관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수련자들이 눈을 번쩍 떴다. 그중 한 사람은 곧장 붉은 옷의 수련자에게 다가가며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사제, 겨우 일반인에게 이렇게 중상을 입은 건가?”
붉은 옷의 수련자는 그 사람을 밀어낸 뒤 소리쳤다.
“사부님, 사부님을 뵈어야 합니다!”
“어찌 그리 허둥대느냐!”
도관 안쪽에서 위엄 있는 중년 남자가 걸어 나왔다. 얼굴 폭이 좁고 두 귀는 매우 컸다.
그가 나타나자 가부좌를 틀고 있던 수련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한쪽에 섰다.
붉은 옷의 수련자는 철퍼덕 소리가 나도록 바닥에 꿇어앉으며 말했다.
“사부님, 제 영혼과 연결된 나찰(羅刹)이 파괴당했고 제 심신에도 큰 손상을 입었습니다. 사부님, 부디 복수를 해주십시오!”
큰 귀의 사내는 어린 수련자를 한 번 훑어보더니 허공에 대고 오른손을 쥐었다. 순간 여러 갈래의 검은 기운이 허공에서 나타나 빠르게 응집하더니 거대한 검은색 두개골 형상을 이루었다.
잠시 후 그 큰 귀의 사내는 오른손을 살짝 움직여 그 검은 두개골을 쥐고 말없이 어린 수련자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그러자 그 어린 수련자는 고통에 찬 얼굴로 몸을 떨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에게서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고 한참 뒤에는 검은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얼굴에 드리웠던 검은 기운이 천천히 흩어지더니 곧 얼굴이 붉어졌다. 상처 입었던 그의 나찰도 완벽하게 회복됐다.
“상세하게 고하라!”
큰 귀의 사내가 오른손을 들며 느릿하게 말했다.
어린 수련자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자신이 겪은 일을 조금 더 과장해가며 덧붙여 전했다. 큰 귀의 사내는 그 수련자의 설명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곁에 있던 몇몇 제자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눈에는 의심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 수련자의 설명이 끝났다.
“사부님, 저는 사부님의 높으신 이름을 내걸었지만 그자는 더욱 방자하게 굴었습니다. 사부님, 반드시 그자에게 한 수 가르치셔야 합니다!”
큰 귀의 수련자는 여전히 덤덤한 얼굴로 차분히 물었다.
“그 사람 체내에 조금의 영력도 없었다는 것이 확실하냐?”
어린 수련자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님, 틀림없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일반인인 줄 알았습니다.”
스승의 눈이 기이하게 빛났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기쁨도 분노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앞장서라. 법술을 사용하지 않고 걸어서 가겠다.”
어린 수련자는 기쁜 얼굴로 얼른 스승을 안내하며 도관을 나섰다.
안에 남은 수련자들은 따라나서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사부가 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았으니 입맛만 다셨다. 그중 한 사람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저 녀석을 정말 아끼시는 모양이야.”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지. 이제 질투도 안 나. 지혜로운 사부님이 어떻게 저 녀석의 허황된 말에 넘어가시는 건지 모르시어. 그냥 신경 쓰지 말자.”
옆에 있던 중년 수련자가 쓴웃음을 지으며 느릿하게 말했다.
“저 방자한 녀석은 언제가 큰일을 내고 말 거야!”
또 다른 한 사람이 중얼거린 뒤 입을 다물었다.
“사부님이 계시는데 무슨 큰일을 내겠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맨 처음에 입을 열었던 사람이 씁쓸하게 말했다.
“사부님께서 편애하시는 것은 어차피 알고 있었잖아. 공법을 수련할 때도 그랬지. 그렇다고 직접 말했다가는 우리만 소심한 사람 되겠지.”
“그 녀석에게 혼쭐을 낸 그 사람, 어느 문파 사람인지 몰라도 일반인들 사이에 끼어들어 살아가는 모양인데?”
중년 수련자가 의심스럽다는 듯 말했다.
“나라가 이렇게 큰데 어떤 수련자인들 없겠어? 내 생각에 그자는 결단일 것 같아. 그러니 그렇게 가볍게 그 녀석의 나찰을 처리했겠지.”
“결단기가 아니라 원영기 수련자라고 해도 무슨 상관이야? 스승님이 가셨는데…”
그들은 한참 떠들어대다가 이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좌선을 했다.
붉은 옷의 어린 수련자는 앞장서서 안내하면서 득의양양했다. 그는 일찍이 사부가 자신에게 잘 대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사부의 마지막 제자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렸을 때부터 어떤 일이 생기든 사부님을 부르기만 하면 그가 겪던 문제는 깨끗하게 해결됐다. 지금껏 사부는 자신의 부탁을 거절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는 냉소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 사부님이 나선 이상 넌 죽었다. 날 건드린 대가가 뭔지 똑똑히 알려주겠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그는 곁에 있는 사부를 힐끔 곁눈질했다. 기쁜 건지 화가 난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지만 어린 수련자는 즐거웠다. 그가 아는 사부는 분노할수록 무표정해졌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화를 돋운 사람을 처리해줄 때면 사부는 항상 그런 표정이었다. 어떤 사람이든 사부를 보기만 하면 혼비백산하여 창백해진 얼굴로 꿇어앉아 삶을 구걸하거나 도망쳤다. 간간이 반항을 시도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결국 그들의 최후는 똑같았다.
어린 수련자는 걸음을 좀 더 서둘렀다.
그런데 그의 사부가 갑자기 우뚝 멈추었다. 붉은 옷의 수련자는 몇 걸음 앞서가다가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사부의 눈빛은 옆에서 설탕 공예를 하고 있는 좌판에 닿아 있었다.
사부의 눈에 부드러운 빛이 담겼다. 그는 좌판으로 다가가 온화하게 물었다.
“이거, 얼마인가?”
좌판의 주인은 큰 귀의 수련자에게 왠지 모를 호감을 느끼며 웃었다.
“동전 한 닢만 주십시오.”
큰 귀의 수련자는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뒤 동전 한 닢을 꺼내 좌판에 내려놓고 반짝거리는 눈으로 공예가 된 사탕들을 자세히 살피다가 하나를 골라 집어 들었다.
어린 수련자는 흠칫 놀랐다. 사부가 사탕을 사는 모습은 그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사부는 그 사탕을 자신에게 건넸다.
“복아, 어린 너를 처음으로 보았을 때 너는 한 무리의 못된 아이들에게 사탕을 빼앗긴 상태였단다. 너는 이미 잊었을는지도 모르겠지만⋯⋯.”
큰 귀의 수련자가 감상에 젖은 얼굴로 말했다.
어린 수련자는 멍한 얼굴로 사탕을 받아들었다. 저도 모르게 힘들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사부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자신은 벌써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눈이 붉어진 어린 수련자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