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1
또 다른 노인 하나가 웃으며 덧붙였다.
손대주의 얼굴은 붉어졌다 사색이 되었다 야단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한제를 죽일 듯 노려보더니, 분을 삭이며 왼쪽 첫 번째 자리 옆에 앉았다.
남색 옷을 입은 남자는 미간을 찌푸린 채 차가운 눈빛으로 한제를 훑어보더니 이내 시선을 거두고는 입을 열었다.
“방금 말한 것처럼, 이번 합동 훈련으로 확실한 성과를 얻어야 한다. 이번 현도종과의 교류에서 절대 패배해서는 안 된다! 오늘부터 너희는 뒷산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곳에서 각자의 수련지를 배정받고 수련에 정진해야 한다. 이번 합동 훈련 동안 총 1만 개의 영기단을 배급할 예정이다. 이 기간에는 뒷산을 떠나서는 안 된다. 알았나?”
모든 정식 제자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남색 옷을 입은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말을 이었다.
“4년 뒤, 너희들 중 자주색 옷을 입을 제자가 나타나길 바란다. 자 이제 너희를 뒷산으로 데려다주겠다.”
말을 마친 남색 옷의 남자는 긴 소매를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하얀색 섬광이 그의 소매에서 튀어나와 대전 안을 한 바퀴 빙 돌았다. 남자가 낮은 소리로 외쳤다.
“열려라!”
그러자 하얀색 빛이 끝없이 넓어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막을 이루어 모든 정식 제자들을 감쌌다. 이어서 빛의 장막이 미세한 파문을 일으키더니 이내 내전 안에서 사라졌다.
★ ★ ★
온몸이 간지러운 느낌이 들고 눈앞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밝아졌다. 한제가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산골짜기였다. 다른 제자들도 모두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한제는 이곳이 다른 곳보다 영기가 훨씬 충만함을 알 수 있었다. 멀리서 물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골짜기 안에는 그저 반들반들하고 거대한 암벽 하나뿐, 어떤 식물도 없었다. 암벽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동굴이 마치 벌집처럼 얽혀 있었고 그중 몇 개는 거대한 돌로 막혀 있었다.
한제가 문득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보니, 이산이 비웃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막 한제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듯했는데 그때 암벽의 한 동굴에서 자주색 옷을 입은 청년이 날아 내렸다. 그는 차가운 눈으로 정식 제자들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이곳은 우리 대산파의 뒷산이다. 뒷산이라고는 하나 정말 대산의 뒤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은 500년 전 원영기에 이른 몇몇 시조께서 정식 제자들이 수련할 수 있도록 만들어낸 곳으로 영기가 넘쳐난다. 이곳에 왔으니 시간을 아껴가며 수련에 정진해라. 게으름 피웠다가는 영원히 이곳에 버려질 테니까.”
자주색 옷을 입은 청년은 당연히 한제에게서 샘물을 가져간 자로 이름은 설호였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벌써 응기 6단계에 이른 상태라 한다.
한제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설호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위험에 처할지도 몰랐다.
“응기 7단계 이하의 구결을 난 다 알고 있다. 상응하는 단계에 이르렀는데도 구결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내게 오도록. 간단한 검사를 거친 뒤 구결을 알려주겠다. 암벽에 있는 동굴 중 막혀 있지 않은 곳이라면 마음대로 선택해 각자 수련하면 된다. 자 이건 각각 영기단 50알씩 들어 있는 병이다. 해마다 한 병씩 보충될 것이다.”
말을 마친 설호가 오른손을 한 번 흔드니 땅에 유백색의 병 50개가 나타났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교역회가 있던 그날 변신단을 복용한 상태였으니 상대가 자신을 알아볼 일은 없을 터였으나, 절로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정식 제자들을 하나하나 살피던 설호는 한제와 눈이 마주치자 묘하게 눈빛이 바뀌었다.
“네 이름은 뭐냐? 왜 응기 1단계에도 이르지 못한 것이냐? 사부가 누구지?”
걸음을 우뚝 멈춘 한제는 몸을 돌린 뒤 공손히 대답했다.
“사제는 이한제라고 합니다. 사부님의 함자는 손자 대자 주자 되십니다. 타고난 자질이 부족하여 여태 응기 1단계도 돌파하지 못했습니다.”
그 말에 설호는 웃었다.
“이한제? 이야기는 들었다. 타고난 자질은 물론 중요하지만 끈기 역시 선인이 되는 데 아주 중요한 관건이다. 자질이 부족한 만큼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제가 얼른 대답했다.
“아직 1단계를 이루지 못했으니 암벽을 오르기도 힘들겠구나. 내가 올려주마.”
설호가 소매를 한 번 휘두른 순간, 엄청난 힘이 발아래서부터 한제를 밀어 올렸다. 한제는 순간 느껴지는 강력한 힘에 몸을 가누지 못하였다. 그렇게 한제는 두둥실 허공으로 떠올랐고 이내 암벽 위쪽까지 빠른 속도로 다다랐다. 그러더니 한제가 한 동굴에 이르자 그 추진력은 금세 사라졌다.
설호에게 공손하게 감사 인사를 전한 한제는 돌아서자마자 엄숙해진 표정으로 동굴 안쪽으로 향했다. 교역회에서의 일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설호를 친절한 사람이라고 여겼을지도 몰랐다. 허나 그는 이미 상대의 진짜 속셈을 알고 있었다.
크지 않은 동굴 안에는 돌로 된 침상 하나가 있었고 그 옆의 벽에는 손잡이가 하나 있었다. 한제는 한참 그것을 살피다가 손을 뻗어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순간 우르릉 소리가 나며 거대한 돌벽이 동굴 입구 위쪽에서 스르르 내려왔다. 이윽고 그 돌벽은 쿵 소리와 함께 입구를 완전히 막았다.
동굴 안을 자세히 살피며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한제는 이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애초에 산 아래로 내려가겠다는 것이 이런 수련 장소를 찾기 위해서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곳은 영기가 충만하지 않은가?
딱 한 가지, 이 동굴에서 물의 근원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한제의 수련은 주로 영기를 머금은 액체에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주머니 안에 비축해둔 눈 녹은 물이 적지 않았으니 당분간은 괜찮을 터였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그는 석주를 가지고 동굴에서의 첫 번째 수련에 돌입했다.
★ ★ ★
어느새 2년이 지났다. 2년이라고는 하지만 꿈속에서의 수련까지 더하면 한제는 13년에 가까운 시간을 수련한 셈이었다. 현실의 시간으로 하루의 절반 정도를 꿈속 세계에서 보냈으니, 실제로 현실에서는 절반인 1년 정도만을 수련에 쏟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의 하루에 꿈속에서 6일이 조금 넘게 수련했으니 꿈속에서 12년 이상 수련을 쌓은 셈이었다.
이곳의 영기는 충만했다. 영기를 머금은 샘물보다는 못했지만 매일 호흡하는 이곳의 영기는 밀도가 다른 곳보다 몇 배나 더 진하고 깊었다.
이곳에서 수련을 시작한 지 1년쯤 지났을 무렵, 즉 꿈속에서 약 6년 간 수련을 진행했을 때 한제는 2단계의 절정에 이르렀고 이후 몇 차례의 시도 끝에 응기 3단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응기 3단계의 절정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답답하게도 그 후로는 아무리 애를 써도 4단계로는 진입하지 못했다. 영기가 부족해서는 아니었다. 다만 그는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중요한 순간마다 4단계의 관문에서 그를 막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3단계는 끝이 없는 것만 같았다. 호흡에 따라 영기도 끊임없이 증가했고 몸도 점점 좋아지곤 있었다. 심지어 이미 4단계에 이른 상태라고 착각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멈춰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을 알 수가 없었다.
영기를 머금은 눈 녹은 물을 모두 써버리고 짐 안에는 마지막 조롱박 하나가 남아있었다. 이 마지막 조롱박은 굉장히 오래된 것으로 그가 막 대산파에 입문했을 때 묻어두었던 세 개의 조롱박 중 하나였다.
당초 석주에 구름 10개를 나타나게 하기 위해 일찍이 두 개를 써버렸다가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고 나서는 이 조롱박에 담긴 이슬을 함부로 마실 수 없었다.
결국 한제는 다시 조롱박을 집어넣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 조롱박에 담긴 영기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일 것 같았다. 응기 단계가 조금 더 높아진 후에 쓰는 게 안전할 것이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잠시 몸을 푼 뒤, 벽에 달려 있는 손잡이를 당겼다. 그러자 우르릉 소리와 함께 입구를 막았던 돌벽이 열렸다.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눈이 부셨다. 잠시 빛에 눈을 적응시킨 그는 밖으로 나서며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골짜기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랫동안 동굴에 갇혀 수련을 거듭하다 답답해진 마음을 대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풀려는 모양이었다.
응기 1단계에 이른 상태로 느껴지도록 자신을 감춘 한제가 소매를 휘두르자 발아래를 떠받친 추진력이 느껴졌다. 그 힘은 그의 몸을 가볍게 떠받들고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꿈속에서 12년간 수련한 그의 인력술은 상당한 상태여서, 입으로 구결을 외지 않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다.
지금도 인력술로 자신의 몸을 하늘에 띄운 것이었다. 이는 일정 정도의 인력술을 갖추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사실 인력술로 몸을 띄울 경우 속도 조절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는데 한제는 그마저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었다.
보통은 10년 넘게 인력술을 익혀도 불가능한 수준이다. 엄밀히 말해, 인력술 같은 기초적인 신선술에 10년을 들이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었다.
신선이 되기 위해 수련을 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에 더 높은 기술을 익히는 데 힘쓰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한제는 천천히 산골짜기로 내려갔다. 그런데 땅에 발을 딛기도 전에 자신을 비웃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쓰레기 이한제도 응기 1단계에 이르다니. 이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동굴을 자유롭게 들락날락거릴 수 있겠는데?”
보지 않아도 이산임을 알 수 있었다.
이산 곁에는 몇 명의 정식 제자들이 앉아 있었다. 그중 스물네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하얀색 옷을 입은 청년이 조소했다.
“이한제, 넌 여기에 오지 않는 편이 나았어. 잡무처에서 왕 노릇이나 할 것이지 여기에는 굳이 왜 온 거냐? 거기서 다들 설설 기니까 네가 얼마나 형편없는 놈인지를 잊었나?”
한제는 그들을 신식으로 훑어보았다. 이산은 그와 마찬가지로 응기 3단계에 이르러 있었으며, 하얀색 옷을 입은 청년은 응기 4단계의 절정에 이르러 있었고 5단계 진입이 가능한 상태였다.
한제는 갑자기 당황스러웠다. 자신은 응기 3단계에 불과한데 어떻게 자신보다 높은 수준의 상대를 이렇게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걸까? 게다가 그 하얀색 옷을 입은 청년의 체내에 있는 영기는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말이다.
4년
“네 주제를 알고 살아.”
이산이 비웃었다. 그러자 곁에 있던 흰옷의 청년 역시 비웃으며 덧붙였다.
“이봐, 저기 강변에서 물 좀 떠와! 이 사형이 네게 한 수 가르쳐 줄지도 모르니까!”
그가 던진 작은 병이 발치에 떨어지자 한제는 말없이 상대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뭐야? 싸우자고? 설호 사형께서는 뒷산에 있는 정식 제자들끼리의 싸움은 허락된다고 하셨어. 적당히 알아서 처신하지 않으면 몸으로 교훈을 주는 수밖에 없지.”
흰옷의 청년이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다들 멈춰!”
그때 차가운 목소리가 절벽 쪽에서 들려왔다. 이어서 검은색 그림자가 번개처럼 땅으로 내려오더니, 이윽고 설호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제자들을 훑어보았다.
“이산, 손호경. 수련도 하지 않고 자신보다 약한 자를 괴롭히니, 재미있나?”
두 사람은 굳은 얼굴로 한제를 살짝 노려보더니 흥 하고 콧방귀를 뀔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설호가 두렵기는 한 모양이었다.
설호는 한제에게로 시선을 거둔 뒤 마찬가지로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한제, 넌 분명 이곳에 와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이미 와 있으니 수련에 정진하도록. 모든 것은 자신의 실력에 달려 있으니까.”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장 사형,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응기 1단계의 절정에 이른 뒤 아무리 수련을 거듭해도 2단계로 진입하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이산은 흥, 하는 소리를 내며 중얼거렸다.
“네 타고난 자질 때문이지. 넌 평생 2단계로 진입하지 못할 거다!”
설호는 냉담한 시선으로 이산에게 말했다.
“단계 돌파의 관건은 분명 타고난 자질과 큰 연관이 있다. 어떤 사람은 한 번에 성공하고 어떤 사람은 백 번, 천 번 넘게 걸리기도 하지. 심지어 평생 1단계도 돌파하지 못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한제는 낙담한 표정으로 얼른 물었다.
“장 사형, 매 단계 돌파를 할 때마다 이렇게 어렵습니까? 2단계에서 3단계로 넘어갈 때에도 3단계에서 4단계로 넘어갈 때에도 이렇습니까?”
장 사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지. 특히 3단계에서 4단계로 넘어갈 때, 그리고 5단계에서 6단계로 넘어갈 때는 더욱 어렵다.”
설호가 대답하는 사이 먼 곳에 있던 적지 않은 제자들도 이쪽으로 몰려들었다. 어느 여자가 불쑥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