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12
한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노인은 닭다리 하나를 뜯어 한 입 물고는 우물우물 거리며 말했다.
“요새 4파 연맹국의 상황이 심상치 않으니 최대한 빨리 화신기에 이르는 게 좋을 것이다.”
한제는 흠칫 놀라며 노인을 향해 물었다.
“선배님께서는 4파 연맹국이 혼란한 이유를 아십니까?”
노인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턱을 쳐들고는 한제를 힐긋 살폈다.
“이 세상에 어디 내가 모르는 일이 있을까보냐. 4파 수련국의 어느 녀석이 설역국 수련자의 우정(雨鼎)을 훔쳤다더군. 허니 어찌 설역국에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
“우정⋯⋯.”
한제는 10년 전 쯤 무태와 세자 사이에 있었던 갈등도 이 우정이란 것이 원인이었음이 떠올랐다.
“우정이란 게 사실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다. 구체적인 수량은 모르지만 이 솥을 가진 사람은 천도가 시작되는 날 풍운뇌전의 4대 선문에 진입할 수 있다는군. 그러니 훔쳤겠지. 허나 4파 연맹국과 설역국 사이에서 우정을 뺏고 빼앗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다가 5, 6성 수련국의 눈길을 끌면 언제들 그들 손에 들어가겠지.”
노인은 어느새 닭다리를 다 먹어치운 뒤 목 부분을 뜯으며 말했다.
한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소문에 따르면 풍우뇌전의 4대 선문이 고선계로 통하는 방법이라더니, 과연 많은 사람이 원하는가보군요.”
노인은 히히 웃었다.
“왜? 너도 마음이 동하느냐? 허나 고선(古仙)들은 일찍이 원고시대에 발생한 큰 전투로 목숨을 잃었다. 지금 고선계는 텅 비었어.”
한제는 흠칫 놀랐다. 서사의 기억에는 그런 사실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제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모두 죽었습니까?”
노인은 순식간에 닭목을 다 뜯어먹은 뒤 이번에는 커다란 살코기를 뜯으며 말했다.
“물론이지. 그렇지 않다면 어찌 영변기 수준 이상의 수련자가 여전히 여기 남아 있겠느냐? 갈 곳이 없기 때문이지.”
한제는 다소 충격을 받았다. 상고시대 수련자들이 큰 재난을 맞아 목숨을 잃었고 이로 인해 수련자 연맹이 나타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고선계의 신선들도 모두 죽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노인은 한제의 놀란 얼굴을 보며 의기양양한 얼굴로 트림을 거하게 하더니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기름진 두 손을 옷에 아무렇게나 문질러 닦았다.
“놀랐느냐? 고대 신들도 고선들도 모두 죽었다. 상고시대의 수련자도 몇 남지 않았지.”
한제는 한참 후에야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 풍운뇌전의 4대 선문은 여태 존재하는 겁니까?”
노인이 히히 웃으며 말했다.
“고선은 죽었으나 고선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이제 거칠고 무수한 폭풍이 여기저기서 불어닥치고 무수히 많은 부분으로 분할되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좋은 것들이 아직 많지.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존재하는 선계의 기(氣)다!”
“선계의 기?”
한제가 중얼거렸다.
노인은 아쉽다는 듯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말했다.
“그래, 그건 이 닭고기보다도 훨씬 맛있지.”
한제는 쓰게 웃었다.
“화신기를 넘어 영변기에 이르려면 희귀한 영변단 또는 충분한 선계의 기를 흡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돌파할 수 없어. 상고시대에는 화신기 정도까지만 수련을 해도 곧장 선계로 올라가 충분한 선계의 기를 흡수하면서 수련할 수 있었어. 허나 지금은⋯⋯ 위험을 무릅쓰고 선계 밖으로 가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다.”
노인은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한제는 그런 노인을 한참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 우정이라는 것은 정말로 쟁취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로군요. 특히 화신기 수련자들에게는 개인과 나라의 승급을 위해서도 그 우정이 반드시 필요하겠습니다. 나머지 세 개의 솥도 나타났습니까?”
노인은 술주전자를 쥐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풍우뇌전의 솥 네 개는 몇 년 간격으로 세상 깊은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을 얻는 것은 순전히 운에 달려 있어. 4대 선문은 거의 온 수련자 연맹의 국경 안을 뒤덮고 있다시피 하니 선문에 가까운 수련성일수록 그 선문에 해당하는 솥을 보기 쉽겠지.”
“예를 들어 주작성 부근의 별들은 모두 우정(雨鼎)을 품고 있는 것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정들이 연달아 나타날 것이다.”
노인은 한제를 힐긋 바라보며 여유롭게 말했다.
한제는 덤덤한 눈빛으로 느릿하게 말했다.
“천도가 시작되는 날이 언제입니까?”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왜? 마음이 움직이느냐? 사실 네 수준으로는 선문(仙門)에 가봐야 위험하긴 하겠지만 조금 조심하기만 하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선문 안에는 실력에 대한 거대한 제한이 있어 수준이 높을수록 속박이 크거든.”
한제는 고개를 들어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어째서죠?”
노인은 술주전자를 들어 남은 술을 모조리 들이켜더니 입맛을 다셨다.
“고선계는 이미 산산조각이 났으니 천지의 법칙도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만약 그 안에서 큰 힘이 파동을 일으키면 선계 일부가 붕괴할 수도 있다. 물론 선계 조각의 크기에 따라 견딜 수 있는 힘의 크기도 다르겠지. 그러니 높은 경지의 수련자라면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큰 힘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대체로 쓸 수 있는 힘을 화신기 정도로 제한하지.”
한제는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한참 뒤에야 그는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설마 선배님이 오늘 이곳에 오신 이유가 제게 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아니겠지요?”
노인은 히히 웃었다. 어딘가 비열한 느낌도 드는 웃음이었다.
“내가 온 것은 곧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전에 내게 조각상 하나를 먼저 만들어줘야겠다. 홍분루(紅粉樓)의 소취에게 내 생각이 날 때마다 그것으로라도 그리움을 달래라고 해야지. 나처럼 전설에서 걸어 나온 것 같은 용맹한 남자야 말로 마음에 품기 가장 좋은 사내가 아니겠느냐.”
말을 마친 그는 애석한 표정을 지으려 했으나, 그 안에 의기양양한 기색이 확연히 드러났다. 말을 마친 그는 이따금 한제를 곁눈질했다. 물론 자신을 좀 더 치켜세워주기를 바라는 것이겠으나 한제는 이미 그쪽으로는 자신이 젬병임을 알고 있었기에 입을 다물고 묵묵히 목재와 조각칼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그가 막 대략적인 윤곽을 잡았을 때, 노인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불만스럽다는 듯 말했다.
“옷은 필요 없다!”
한제의 손이 우뚝 멈추었다. 쓴웃음을 짓던 그가 잠시 망설이다가 오른손으로 목재를 한 번 쓸더니 다시 조각을 시작했다. 이번에 그의 손은 더는 멈추지 않고 마치 질주하는 바람처럼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재는 온몸이 비쩍 마른, 마치 원숭이 같은 나체의 노인의 형상으로 변해 있었다. 이 조각상은 광기 어린 경지가 배어 있지 않다는 점만 제외하면 기본적으로는 노인과 똑같았다. 신비롭게도 생동감이 넘치는 조각상이었다. 심지어 얼굴의 주름에도 오차 하나 없었다.
노인은 완성된 조각상을 얼른 가져가더니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허나 노인의 표정은 갈수록 구겨졌다.
“이게 뭐냐? 눈곱만치도 안 닮지 않았느냐? 네 눈에는 이몸이 이리 보인다는 말이냐? 이건 내가 아니라 원숭이다, 원숭이. 알았느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름 하나까지 똑같…”
“안 닮았다고! 하나도 안 닮았어!”
그 순간, 노인의 눈이 광기로 번득였다. 그리고 그 순간, 한제는 사방의 영력이 마치 모종의 법칙에 따라 위험하게 변해가는 느낌을 받았다. 노인의 경지는 지난 수십 년간 한제가 추측해본 것 이상이었다.
한제는 노인을 힐긋 바라보더니 목재를 하나 집어 들었다. 칼을 쥔 그의 오른손이 다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더니 좀 전보다 두 배는 빨리 조각상 하나가 완성되었다.
그 조각상은 용맹스럽고 여유로웠으며, 그 두 눈이 형형했다. 가히 절세 미남이라고 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였다. 두 눈이 멀쩡하다면 이 조각상과 노인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사람을 없을 것이다.
노인은 이번 조각상 역시 완성되자마자 뺏어가 살피더니 금세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이제 나와 똑같구나! 녀석, 역시 솜씨가 좋군. 그 밀짚모자 법보를 네게 빌려주기를 잘한 것 같다.”
노인은 보면 볼수록 그 조각상이 마음에 드는지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이렇게만 하면 된다. 비록 나와 약간 다르긴 하나 큰 차이는 아니지. 참고로 내 젊은 시절의 모습과 똑같구나.”
노인은 말을 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밖으로 나가려다가 불쑥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남은 99개의 조각상은 화신기에 이른 다음 만들도록 해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네가 가는 곳 어디든 따라갈 것이다.”
노인을 배웅한 한제는 처음에 만들었던 노인의 조각상을 들어 살펴보았다. 그리고 피식 웃더니 그것을 옆에 있는 선반에 올려두었다.
당장은 선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노인 말대로 화신기에 이른 뒤에 가도 늦지 않을 터였다. 지금은 일렀다.
4파 연맹국과 설역국 사이의 전쟁에 대해서도 한참 고민한 끝에 참여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섣불리 끼어들었다가는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할지도 몰랐다.
하늘의 딸
한제의 생활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4파 연맹국에 내리던 많은 눈은 한 달 동안 내내 내리다가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늘에 나타난 수련자들의 법보가 내는 빛이 점점 더 빈번해졌으며 때때로 몇몇 수련자가 뭔가를 고치곤 했다. 한제는 그들이 진을 만들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눈을 멈추게 하는 효력의 진인 듯했다.
또한 각 문파와 가문의 많은 수련자들이 성과 평원을 돌아다녔다. 그들의 역할은 내린 눈을 치우는 것이었다.
수련자들이 움직이는데 일반인들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황제는 수많은 병사들에게 눈을 치우게 했다. 하지만 4파 연맹국은 워낙 넓은 곳이라 군대만으로는 역부족이었기에 성안의 백성들 역시 눈 처리 작업에 강제로 징집되었다. 대우 역시 강제 징집 대상이었다.
이미 말년에 접어든 노인들도 예외는 없었다. 하지만 황제의 명령에 따라 한제는 징집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눈 처리 작업은 몇 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징집된 대우는 남쪽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으며 온 수도 심지어 4파 연맹국 내의 모든 성은 거의 텅 비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신분이 높은 몇몇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각지로 차출되어 눈을 치우는 데 동원됐다.
부녀자와 아이들도 징집되었는데 대우가 떠나기 전 한제는 그와 아내에게 몸에 지니고 다니라며 작은 조각상 하나를 선물했다. 몸이 얼지 않도록 열기를 발산하는 조각상이었다.
수련자들 사이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가장 먼저 고통받는 것은 4파 연맹국의 일반인들이었다. 심지어 이들은 눈이 내리는 원인도 알지 못한 채 온갖 고통을 겪고 있었다.
계속해서 쌓이는 눈 때문에 4파 연맹국의 논밭이 매몰되었고 수많은 사람이 얼어 죽었으며, 적지 않은 건물이 눈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한마디로 재난이었다.
한제는 이른 아침 가게밖으로 나가보았다. 처리 작업을 했음에도 눈은 여전히 약간 쌓여 있었고 하늘에서는 눈발이 천천히 날리고 있었다.
며칠 전에 무태가 놓고 간 옥패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한제를 초빙하려 하기보다는 최근의 상황들을 전해주었다. 대대적인 눈 처리 작업 결과 4파 연맹국 안에 쌓인 눈은 이미 많이 줄었으나 대신 하늘을 꿰뚫을 듯 높이 솟은 눈 봉우리가 셀 수 없이 생겨났다고 한다. 4파 연맹국 내의 수련자 대부분이 이미 4파 연맹국과 함께 전쟁에 나아갔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무태는 설역국이 지금까지는 이렇게 몇 달이나 계속해서 눈을 내리게 한 적은 없어 의아하다고 했다. 보통은 열흘 남짓 눈을 내린 후에는 곧장 쳐들어갔다는 것이다. 수련자들의 전쟁이 일반인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최대한 빨리 전쟁을 마치도록 하는 것이 주작국의 규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벌써 4개월째 눈이 내렸고 심지어 그 양이 줄어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저 수련자들이 설치해놓은 진으로 덮여 있을 뿐이었다.
무태는 조심스레 추측했다. 설역국에서는 4파 연맹국의 근간을 파괴하고 나라를 멸망시키려는 즉 멸국전(滅國戰)을 진행하려 하는 것 같다고…
주작성 내의 유일한 6성 수련국인 주작국의 관여 때문에 주작성에서 멸국전이 벌어지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일도 아니었다.
알려진 바로는 주작성에서 벌어진 멸국전은 총 네 차례였으며, 그중 세 번은 4성 수련국에서, 나머지 한 번은 5성 수련국에서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