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15
서쪽의 청목애(靑木崖)가 있는 곳에서도 질 수 없다는 듯 1천 척 크기의 검은색 진흙탕이 썩는 냄새를 풍기며 피어올랐다.
이 진흙에서는 계속해서 기포가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들이 이따금씩 떠올랐다.
이 검은 진흙이 나타나자마자 사방의 눈과 바람이 진동했다.
다음 순간, 북쪽의 흑혼파(黑魂派)에서도 고함이 들려오면서 굉장히 나약해 보이는 젊은 남자 한 명이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마치 무슨 병이라도 걸린 듯 얼굴이 창백한 그가 허공으로 떠올라 오른손을 아래로 휘두르자 흑혼파 여기저기서 검은색 기체가 나타났다. 이 기체들은 서로 교차하면서 검은색 붓 한 자루를 이루었다.
이 붓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바람이 형세를 바꾸었다. 구리솥 위에 앉은 붉은 옷의 노인과 검은 암석 위에 아홉 개의 쇠사슬로 고정된 비쩍 마른 노인은 놀란 표정이었다.
지하 얼음 조각
평범해 보이는 검은색 붓이 천천히 젊은 사내의 손에 떨어져 내렸다. 붓을 손에 쥔 순간, 청년의 얼굴에는 기이한 혈색이 돌았다.
지금껏 4파 연맹국의 네 문파에서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칼을 갈고 있었다. 이들은 각자의 문파에서 보유하고 있는 가장 소중한 법보들을 꺼내 들었다. 이제 첫 번째 반격이 진행될 것이다.
4파 연맹국 수련자 대부분은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이었다. 비록 설역국 수련자들이 오기 전까지 의견이 나뉘긴 했지만 결국 그들은 맞서 싸우기로 했다. 상갓집 개와 같은 신세로 전락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향을 잃고 떠돌아다니기를 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 남은 것은 죽음을 건 전쟁이었다. 패배가 정해져 있지 않은 이상 죽음에 이를 때까지 전력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흰옷의 여인은 여전히 차가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모두 죽여라. 이곳은 우리 설역국의 새로운 터전이 될 것이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설역국 수련자들은 순간 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고함 소리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여인은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순간 한 갈래의 오색찬란한 빛이 그녀의 손에서 번쩍이며 피어올랐다. 그 빛은 나타나자마자 그녀와 똑같은 모습의 다섯 인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 다섯 여인은 분신이 아니었다.
이 무렵, 4파 연맹국의 한 설산 봉우리에 있던 한제는 신식을 통해 이미 전쟁이 벌어졌음을 알고 있었다. 한데 여인이 만들어낸 다섯 개의 분신을 본 순간, 한제의 신식에 섞여 들어 있는 석주가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했다.
한제는 순간 땅속에서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기이한 눈빛을 번득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오행의 령(靈)이다!”
당시 석주는 불의 마수를 집어삼키자마자 불의 속성이 가득 채워졌다. 이에 그 오행의 령을 보자마자 한제의 마음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는 곧장 그 생각을 접어버렸다. 이곳에 있는 흰옷의 여인이 무태가 말한 그 설역국의 천재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가 그 수련자이건 아니건, 저 흰옷의 여인은 분명 화신기 이상이었다. 한제가 대항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오행의 령이 나타난 순간, 백운종의 비쩍 마른 노인은 껄껄 웃으며 순식간에 날아올라 쇠사슬로 얽힌 검은 암석을 끌고 질주했다.
오행의 령 중 물의 령이 고개를 돌리더니 어떤 법력의 파동도 없이 맑은 물이 되어 노인 쪽으로 향했다. 동시에 다른 세 개의 령 또한 각자 4파 연맹국의 문파 하나씩을 택해 질주했다. 유일하게 불의 령만이 허공에 서서 푸른 화염을 피어 올리며 흉포하게 돌진하는 상고시대의 원시인을 불태웠다,
뒤이어 모든 설역국의 수련자들도 각각 가까운 곳의 문파를 택해 서늘한 빛을 번득이며 살육을 자행했다.
지면의 눈과 얼음에서 서늘한 기운이 발산되었다. 이 기운은 4파 연맹국의 수련자들에게는 서늘하고 차가운 느낌을 들게 했지만 설역국 수련자들에게는 가장 좋은 법보이자 무기였다. 이 한기는 심지어 그들의 영력을 어느 정도 회복시켜주기까지 했다.
온 4파 연맹국의 하늘은 알록달록한 법보의 빛으로 가득 뒤덮였다. 수묵문, 백운종, 청목애, 흑혼파, 이 네 개의 문파가 있는 곳은 이 전쟁의 최종 전장이었다.
요행히 살아남은 일반인들은 묵묵히 기도했다. 그들은 이 일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 또한 대부분은 이렇게 많은 수련자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4파 연맹국과 맞닿은 이웃 나라들은 분분히 높은 수준의 수련자들을 보내 4파 연맹국을 포위하게 했다. 참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4파 연맹국의 수련자든, 설역국의 수련자든 어느 수련자라도 그 안에서 뛰쳐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승패가 확실히 갈릴 때까지 경계를 늦출 수는 없었다.
총 99명인 거대한 원시인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설역국 수련자들과 한 데 얽혀 거대한 팔을 뻗었다. 그가 주먹질을 할 때마다 수많은 설역국 수련자들이 쓰러지고 숨을 거두었다. 원시인들의 힘은 끓어 넘치는 듯했으며 주먹질에 법술도 함유되어 있었고 심지어는 경지도 어느 정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의 령에서 피어오르는 화염에는 맥을 추지 못했다. 한데 기이하게도 화염의 온도가 매우 높은데도 불구하고 지면의 눈에는 조금의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오히려 하늘에 존재하던 거대한 진이 파괴된 후 끝없이 많은 폭설이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흰옷의 여인에게만 강력한 법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4대 연맹국 네 개 문파 주위의 설역국 수련자들 가운데 몇몇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중 백운종 방향에 있던 백발의 노파 하나가 두 팔을 넓게 벌리며 복잡한 저주를 읊조렸다. 순간, 기이한 바람이 하늘의 균열에서 불어와 반경 1천 척 내에 쌓인 눈을 하늘로 솟아오르게 했다. 또한 이 기이한 바람에 평원에 쌓인 눈은 얼음 조각으로 응결되었다.
뒤이어 노파가 눈빛을 번득이며 이마를 두드리자 그녀의 원영이 체내에서 빠져나와 그 얼음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 거대한 얼음이 기이하게 흔들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얼음으로 만들어진 거인으로 변했다.
거인의 눈에서는 얼음 결정의 빛이 번득였다. 뒤이어 주먹으로 땅을 내리치자 대지가 진동하면서 그 위에 쌓여 있던 눈과 얼음이 또 한 차례 하늘로 솟아올라 서로 엉겨 붙어 긴 창이 되더니 거인의 손으로 향했다.
사방의 설역국 수련자들도 노파를 뒤따랐고 곧 얼음으로 만들어진 거인들이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냈다.
4파 연맹국의 수준 낮은 수련자들은 그 모습에 깜짝 놀랐다. 어째서 설역국이 다른 나라를 침범하기 전에 그렇게 많은 눈을 내리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들의 법술 대부분은 얼음과 눈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원영으로 만들어진 얼음 거인들은 4파 연맹국 수련자들과 엉겨 붙었고 순식간에 이 전장은 더욱 혼란에 빠졌다.
흰옷의 여인은 꼼짝도 않고 냉랭한 눈으로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수묵문 방향에서 구리솥에 올라 있는 노인에게 대항하고 있는 것은 오행의 령 중 금속의 령이었다. 노인이 오른손으로 구리솥을 누르자 순간 솥 표면의 각종 부호가 마치 살아 있는 듯 하나하나 떠올라 그 붉은 옷을 입은 노인의 통제 아래 금속의 령을 향해 법술을 퍼부었다.
청목애의 검은색 진흙탕이 대항하고 있는 것은 나무의 령이었다. 그 진흙탕 속에서 빠른 속도로 수많은 검은색 빛이 튀어나왔다. 설역국 수련자들은 그 검은 빛에 닿자마자 온몸이 썩어 들어갔다. 나무의 령 또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상황이 가장 기이한 것은 흑혼파와 그 나약한 청년이 있는 쪽이었다. 그가 대항하고 있는 것은 오행의 령 중 흙의 령이었는데 이 나약한 청년은 제자리에서 검은색 붓을 든 오른손만 허공을 향해 긋고 있었다. 한데 붓이 허공을 그을 때마다 흙의 령은 피하기에 급급했다. 심지어 청년은 아예 눈을 감아버리기까지 했다. 자세히 보면 그 청년은 가만히 있었고 손에 들린 붓이 알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었다. 양국의 화신기 고수들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만약 설역국 수련자들의 힘이 이 정도라면 이 전투에서 4파 연맹국이 소멸될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4파 연맹국의 가장 강력한 화신기 후기 수련자들은 흰옷의 여인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가 설역국에서 자랑하는 천재 수련자인 ‘하늘의 딸’이 맞는지 파악하는 중이었다. 그녀가 맞다는 확신만 든다면 그들은 계획의 첫 번째 단계를 실행할 생각이었다. 다만 아직 확신할 수가 없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않을 뿐이었다.
한제 역시 기다리고 있었다. 설산 봉우리에 숨어 묵묵히 이 전쟁을 주시하던 그는 여태까지 수많은 수련자가 목숨을 잃고 쓰러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한데 기이한 현상이 그의 시선을 끌었다.
양국 수련자의 시체는 몸뚱이가 조각이 난 채 지면에 떨어진 뒤 얼음으로 굳어져 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얼음 조각이 되어서는 천천히 눈 속으로 파묻혀 들어갔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 시체가 눈 속으로 파묻혀 들어간 순간, 보일 듯 말 듯한 영력의 파동이 피어올랐다.
이런 상황은 한제를 조금 불안하게 했다. 그는 어째서인지 이러한 상황에 대해 깊은 위기감을 느꼈다.
한참 동안 고민하던 한제는 몸을 더 가라앉혀 눈과 얼음이 쌓인 그 아래로 뚫고 들어갔다.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봐야만 할 것 같았다.
눈과 얼음 속에서는 법력을 전부 발휘할 수가 없었기에 이동은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거의 한 시진을 움직인 끝에야 그곳에 이른 한제는 토둔술을 이용해 그 아래로 파고 들어갔다.
땅속 4만 척 깊이에 이르러서야 살짝 멈춘 한제의 얼굴에는 그늘이 졌다. 또한 그는 땅속 5만 척 깊이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종유굴 하나를 발견했다. 이 종유굴은 끝이 없었다. 4파 연맹국 땅속은 이미 이 종유굴로 뒤덮인 듯했다.
이 종유굴 속에는 몇 만 척마다 얼음 조각상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조각상의 높이는 약 1백 척 정도였고 그 위에서는 기이한 빛이 번득였다. 게다가 모든 조각상은 흉악한 표정의 인간 얼굴에 몸은 뱀과 같았다.
대충 그 안을 둘러본 한제는 그 얼음 조각상의 수가 굉장히 많으며 그것들이 놓인 위치에 모종의 규칙이 있음을 파악했다.
전장에서 죽은 이들의 시체는 모두 이곳에 모여들었고 곧바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얼음 조각상에 흡수되었다.
한제는 한참 동안 고민했다. 원래 4파 연맹국에서 이 기이한 동굴을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지만 직접 들어와 신식으로 조사를 벌였음에도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다.
한제의 신식이 이미 화신기 후기 수준에 이르렀음을 감안하면 그가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 곳에서 무언가를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은 4성 수련국 안에서도 굉장히 적었다.
한제는 천천히 물러나 다시 지면의 눈과 얼음 쪽으로 향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고민하던 한제는 저물대에서 소리 전달 옥패 하나를 꺼냈다. 무태가 그에게 주고 간 옥패였다.
한제는 신식으로 그 안에 몇 마디 말을 남긴 뒤 오른손으로 옥패를 내던졌다. 옥패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나타난 화염 한 덩어리가 거대한 원시인 하나를 깨끗하게 불태워 소멸시켜 버렸다.
원시인은 이미 죽었지만 그 화염은 끊임없이 타올랐다. 그러더니 먼 곳에 있는 한제를 향해 미친 듯이 접근해왔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얼른 몸을 뒤로 물렸다. 그와 동시에 그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물의 장막을 만들어내 화염을 저지했다.
그 잠깐의 틈을 타서 한제는 순간적으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2천 리 이상 떨어진 곳에 다시 나타났다. 한제의 순간이동은 이전보다 훨씬 더 이동 거리가 늘어나 있었다.
물의 장막이 잠시 화염을 저지시키다가 흰색 연기로 증발되면서 사라져버리자 화염은 사방을 한 바퀴 돈 뒤 백운종 방향으로 움직였다.
한제는 공연히 화를 불러일으키고 싶지는 않았기에 화염을 소멸시키지는 않고 다른 곳에 숨기로 했다. 4파 연맹국과 설역국의 화신기 수련자들이 대대적으로 나서기 전까지 한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작정이었다.
흰옷의 여인은 두 눈을 감은 채 특수한 방식으로 네 개 문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를 살폈다. 그녀의 입가에 냉소가 걸렸다. 그녀가 오른손으로 결인을 하자 한 줄기 하얀 빛이 손에서 튀어나와 구름을 뚫고 균열 안으로 사라졌다.
창룡(蒼龍)
우르릉 소리가 들려오더니 여인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반경 10만 리 내의 균열들이 갑자기 이동하기 시작했다. 균열들은 하나하나 합쳐지더니, 매우 빠른 속도로 거대한 하나의 균열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얼음 탑들이 그 균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설역국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문파가 나눠진 것이 아니라 전체가 하나의 부족을 이루고 있었다. 설역국 수련자는 원영기에 이르면 그 원영으로 거대한 신을 응결시킬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체외에서 얼음과 눈으로 이루어진 거인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는 신분의 상징이었다.
마찬가지로 화신기에 이르면 가장 먼저 자신에게 속한 얼음 탑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 탑은 자신의 수련 장소 역할을 했다. 그러니 얼음 탑의 등장은 화신기 수련자들이 나타났다는 의미였다.
이 얼음 탑들은 생김새와 크기가 각기 달랐다. 높이도 서로 달랐는데 높은 탑일수록 그 주인이 높은 수준의 수련자라는 의미였다.
이번에 나타난 얼음 탑은 총 36개로 그중 네 개는 이미 99층에 이르러 있었다. 이는 그 주인의 수준이 화신기 후기에 이르렀음을 뜻했다.
얼음 탑들이 나타난 순간 4파 연맹국의 화신기 수련자들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각 문파의 진 안으로 들어갔고 이내 그 안에서 사라졌다.
흰옷의 여인 아래 땅에서 일곱 빛깔로 번쩍이는 거대한 문 하나가 생겨났고 4파 연맹국의 화신기 수련자들이 그 문을 통해 나타났다.
백운종의 중년 문인과 노파 역시 그들 중에 섞여 있었다. 하지만 세월의 경지를 깨달은 푸른 옷의 노인은 그 안에서 찾을 수 없었다.
그중 네 명의 노인이 가장 눈에 띄었는데 방금 막 관에서 나온 듯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이들은 4파 연맹국의 네 개 문파를 보호하는 대장로였다.
네 사람은 고개를 들어 내려오고 있는 얼음 탑을 힐긋 보았다. 그중 한 노인이 갑자기 허리를 곧게 세웠다. 순간, 그의 빼빼 마른 몸이 미친 듯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뼈도 굵어지는 듯 몸에서 뚜둑 하는 소리가 이어졌고 얼굴의 주름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눈 깜짝 할 사이에 그는 빼빼 마르고 쇠약한 노인에서 위엄 넘치는 중년으로 바뀌었다. 그는 신중한 눈빛으로 흰옷의 여인을 바라보며 낭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흑혼파(黑魂派)의 구운이오. 귀하는 설역국의 홍접 도우 아니시오?”
홍접은 주작국의 초청을 받은 바로 그 여인의 이름이었다.
흰옷의 여인이 냉랭하게 말했다.
“구운이라… 4파 연맹국의 화신기 후기 수련자 여덟 명 중 한 명.”
질문에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구운은 미간을 살짝 구겼다. 그는 냉랭한 눈빛으로 오른손을 앞쪽으로 뻗어 휘둘렀다. 이는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으며 동시에 4파 연맹국의 계획 중 두 번째 단계를 개시하는 신호이기도 했다.
구운은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눈앞의 여인이 홍접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는 없었으나 도박을 걸어볼 작정이었다.
그의 곁에 있던 각 문파의 화신기 수련자들은 분분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흰옷 여인은 경멸하듯 그들을 바라보았다. 얼음 탑에서는 설역국의 화신기 수련자들이 하나하나 빠른 속도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양국의 진짜 전쟁이 이제 곧 시작되려 했다.
강대한 법술들에 따라 4파 연맹국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졌으며 바람이 변했다. 산을 움직이고 바다를 뒤엎을 수 있는 화신기 수련자들의 능력의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양국의 경지가 낮은 수련자들은 그 파동에 닿는 순간 중상을 입었고 심한 경우 죽기도 했다.
화신기 아래의 수련자들은 지면에서, 화신기 수련자들은 공중에서 전투를 벌였다. 여태 한제가 봐온 것 중 가장 강렬한 전투였다.
설산 봉우리 안에 숨은 한제는 높은 경지의 화신기 수련자들의 경지와 법술들을 자세히 관찰했다.
화신기 수련자들은 1만 리 거리를 질주하며 전투를 벌였다. 이에 얼마 지나지 않아 양국의 화신기 수련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졌고 4파 연맹국 전체가 죽음의 전장으로 바뀌어갔다.
흰옷의 여인은 점점 더 경멸하는 듯한 눈으로 전장을 바라보다가 다시 오른손으로 결인을 했다. 한 줄기 흰색 빛이 그녀의 손에서 튀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