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20
한제는 복잡한 심경으로 얼음 탑으로 돌아왔다. 귀중한 법보를 얻기는 했지만 기쁘지만은 않았다. 그의 표정에는 슬픔뿐이었다.
이 순간, 한제는 자신이 느끼고 깨달은 생사의 경지를 다시 한 번 체득하게 되었다. 무엇이 생(生)이고 무엇이 사(死)인가?
이 질문이 그의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맴돌며 떠나지 않았다.
수묵문의 화신기 후기 수련자는 인생 최후의 불꽃을 태웠다. 마치 등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그는 빙설 신전 꼭대기의 설선(雪仙) 조각상에서 자폭을 했고 그 덕에 그 빙설 신전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붉은 선혈로 물들었다. 또한 그를 토벌하기 위해 포위했던 설역국의 몇몇 화신기 수련자가 그 자폭으로 인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의 죽음은 비밀로 돌려져야 했다. 4파 연맹국 수련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 ★ ★
눈 깜짝할 사이에 또 1년이 지났다.
그동안 한제는 계속해서 삶과 죽음 사이의 경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점차 그 경지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한 차례 탈변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치 한 층의 안개가 그의 두 눈을 가린 듯 앞에 놓인 것이 무엇인지 살필 수는 없더라도 느낄 수는 있었으며, 느낄 수는 있으나 만질 수는 없었다.
이 깨달음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봄이 가고 가을이 오는가 싶더니 또 2년이 지났다.
얼음 조각상 꼭두각시에 대한 한제의 연구는 이미 어느 정도 진보한 상태였다. 얼음 조각상 꼭두각시는 주로 눈으로 만들어진 그 안의 경맥으로 유지됐다. 49갈래 경맥의 움직임에 따라 결단기 중기 수준에 해당하는 공격을 할 수도 있었다.
원영기에는 81갈래의 경맥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 얼음 조각상 안의 경맥이 많을수록 그것을 통제하기란 더욱 어려워 서로 부딪힐 가능성은 더 커졌다. 한 번만 부딪히더라도 얼음 조각상은 붕괴되기 마련이었다. 그 난도는 한 갈래의 경맥이 더해질 때마다 몇 배로 늘어났기 때문에 81갈래의 경맥을 가진 얼음 조각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통제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얼음 조각상 꼭두각시의 경맥을 만드는 데 필요한 빙설결(氷雪訣)을 연구한 한제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빙설결에서 중히 여기는 것은 정련된 마음이었다. 이 빙설결은 얼음을 뼈로 눈을 마음으로 만들어 빙설의 혼을 완성함으로써 마음을 얼음처럼 맑고 깨끗한 경지에 이르게 했다. 그야말로 현묘하고 신기한 공법이었다.
이는 설역국 수련자들이 왕왕 제멋대로 구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 공법은 간결한 성정을 중히 여겼다. 또한 먼지를 묻히지 않고서는 마음을 깨끗하고 간결하게 다듬을 수 없었다.
빙설결을 연구할수록 한제는 이 공법이 두려워졌다. 이 공법은 단단하고 바른 길이 아니라 굉장히 비정규적인 방법이었다. 육욕마군이 수련하던 공법과 다르긴 해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겠다고 느끼기까지 했다.
한제는 이 공법을 수련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약간 모방하여 눈으로 만든 경맥을 피로 만든 경맥으로 바꾸고 선혈로써 생사의 경지를 변화시켜 얼음 조각상 꼭두각시를 조종할 생각이었다.
한제가 이 작은 마을에 머물기 시작한 지도 벌써 3년 째였다. 거기다 일전에 설역국 곳곳을 돌아다닌 1년까지 더하면 4년이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1년뿐이었다. 한제는 화신기에 이를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화신기가 되는 순간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이 화신기에 이르면 주변의 모든 수련자가 그 사실을 알아챌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한제는 얼음 탑을 떠났다.
그가 떠나기 전, 빙설 신전에서는 이미 모든 결단기 이상 수련자들에게 신전으로 와서 전도례(傳道禮)를 행하라고 분부를 내렸다. 당시 주작국으로 간 13명의 수련자들 중 한 사람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주작국 관정 행사 유일한 성공자로 이미 영변기에 이른 상태였다.
조나라로 돌아가다
한제는 조용히 이동했다. 3년간 탑에 갇혀 있던 결단기 수련자는 한제의 신통력 아래 감금되었던 기억을 잃고 원래의 신분을 회복했다.
설역국 국경에 이르렀을 때 한제는 고개를 돌려 진중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수십 년 세월이 그의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한제는 긴 한숨을 내뱉으며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한제는 목표는 조나라였다. 그곳에서 화신기에 이를 준비를 할 생각이었다. 조나라가 꽤나 구석진 곳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오색 부채를 준 그 화신기 후기 수련자와의 대화에서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고향에 대한 애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다. 한제에게는 조나라가 진정한 고향이었다. 그리고 수마해 건너편의 초나라와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한 여인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곳이 한제에게는 더 고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조나라로 돌아가기 전, 한제는 철물점을 하던 대우가 살고 있는 이웃 나라의 마을에 들렀다. 한제는 멀찍이서 대우가 새로 연 대장간을 보았다. 그의 아내는 나이가 적지 않았지만 또 다시 아이를 가진 것 같았다.
한제는 미소를 머금은 채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그 새로운 생명은 여자 아이로 하루하루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떠날 무렵, 한제는 대우 아내의 체내에 영력을 한 줄기 불어넣었다. 이 영력은 모녀의 평안을 보장해줄 것이다.
대우는 줄곧 그리던 한제가 자신을 보고 갔다는 사실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죽음에 이를 때까지 대우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아쉬움은 임종을 지키지 못한 소우가 아니라 이생에서 한제의 모습을 다시 보지 못한 것이었다.
한제는 곧장 날아서 조나라로 향했다. 40년 전, 같은 길을 가던 그때 그는 막 원영기에 이른 상태였지만 지금은 화신기를 앞둔 상태였다.
오래된 전송진을 거친 한제가 낯선 대지 위를 날던 그때, 갑자기 하늘이 느릿하게 어두워지더니 새카만 구름에서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빗발은 갈수록 거세지더니 마치 비로 이루어진 장막이 드리운 듯했다.
한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폈다. 이렇게 거센 비를 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대산파에 있었을 때 장호의 방에서 쏟아지는 비를 봤던 그 날이 떠올랐다.
이때, 하늘에 한 줄기 번개가 스쳐지나갔다. 우르릉 쾅쾅 하는 소리와 함께 춤추는 은빛 뱀 같은 그 모습이 퍽 아름다웠다.
한제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그와 동시에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나무의 이파리들이 한 데 모여들어 우산 형태를 이루었다.
우산을 든 한제는 이 낯선 숲을 거닐었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4만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오래된 전송진이 있다. 앞으로 두 개의 오래된 전송진을 더 거치면 조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산속에서 빗물 떨어지는 소리만 요란하게 울렸다. 전방으로 멀지 않은 곳에는 오래된 절 하나가 있었는데 이미 버려졌는지 원래는 붉은색이었을 대문이 이미 칙칙한 색으로 변해 있었으며, 여기저기 파손된 부분도 보였다. 심지어 문에 박힌 구리 못과 구리 고리도 녹이 잔뜩 슬어 그 가장자리는 녹색 빛마저 돌았다.
여태까지 살면서 본 적도 들은 적도 많지 않았던 불당을 바라보던 한제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 오래된 절 안에는 불상도 없었고 그저 반 토막의 꽃잎 같은 받침대만 있을 뿐이었다.
안을 둘러보다가 옆으로 고개를 돌려 절의 문을 살피던 한제는 더는 신경 쓰지 않고 한 바퀴 둘러보기만 했다. 문 옆에 서서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는 바깥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정취마저 느껴졌다.
한참 뒤,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그러더니 도롱이를 입은 사내 몇 명이 욕을 지껄이며 빠른 걸음으로 이 불당 쪽으로 걸어왔다.
“빌어먹을 날씨, 한 번 내리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니까!”
“저기 불당이 있네. 가서 좀 피했다가 빗발이 좀 줄어들면 이동하자고.”
대화를 나누며 걸어오던 사람들은 불당 안의 한제를 보고 움찔 멈추었다. 서로를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보던 그들은 그대로 불당 안으로 들어왔다.
한제의 곁을 스쳐지나가던 그때, 그들 중 한 사람이 몸을 옆으로 틀어 오른손으로 가볍게 한제를 두드리려고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옆에 있던 사람이 작게 소리치며 그 사람을 밀쳤다. 한제를 두드리려던 사람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대로 불당 안으로 들어갔다.
다섯 사람은 불당 안에서 도롱이를 벗고 장작을 쌓아올리더니 먹을 것을 꺼내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한제를 힐끔거렸다.
한제는 고개를 저었다. 저 다섯 일반인은 비오는 밤의 정취를 깨고 분위기를 흐려놓았다. 한데 작게 한숨을 내쉬고 막 불당 밖으로 나가려던 한제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숲 저 멀리서 장발의 사내 하나가 얇은 옷을 입은 채 한 걸음씩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걸음은 빠르지 않았으나 한제는 그가 모종의 축지법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한참 멀리 있던 그는 다음 순간 벌써 한제 곁으로 다가와 불당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한제의 곁을 스쳐간 순간, 그 사내는 흠 소리를 내며 불당 안으로 들어오던 걸음을 우뚝 멈추더니 한제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희고 깨끗한 이가 드러나도록 부드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런 곳에서 수련자를 볼 줄이야. 저는 묵지라고 하는데 그쪽은 누구십니까?”
한제는 내심 신중해졌다. 상대는 정말이지 이상한 사람이었다. 체내에서는 조금의 영력도 느껴지지 않으니 보기에는 일반인과 다름이 없었지만 그렇다면 자신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을 리 없었다. 한제는 변함없는 얼굴로 포권을 하며 말했다.
“산과 들을 다니는 사람이라 이름은 딱히 없습니다. 그저 대우라고 부르십시오.”
사내는 기이한 눈빛을 띈 채 흥미롭다는 듯 한제를 바라보며 웃었다.
“대우, 비 내리는 이 밤에 잠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떻겠습니까?”
한제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가부좌를 틀고 자리에 앉은 그는 오른손을 휘둘러 술주전자 하나를 소환해내더니 한 모금 들이켰다.
4파 연맹국의 상황이 급변한 뒤로 한제에게는 과일주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라 최대한 아껴야 했다.
사내는 하하 웃으며 마찬가지로 자리에 앉아 말했다.
“수준이 아주 놀라우십니다. 역시 제가 잘못 본 게 아니었어요. 하늘이 시기할 경지를 가지셨군요.”
사내의 말에 한제의 경계심이 더욱 짙어졌다. 하지만 평온한 표정으로 빙그레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멀지 않은 모닥불 주위에 모여 있던 여러 사내들 중 하나가 큰 소리로 비웃었다.
“무슨 헛소리들을 하는 거야?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구만. 하늘이 시기할 경지라니, 그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람! 미친 거 아니야?”
묵지는 가만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말씀 한 번 잘 하셨습니다. 미쳤다. 미치지 않고서야 천도를 깨닫기는 힘들지요. 또한 미치지 않는다면 어찌 장생술(長生術)을 익힐 수 있겠습니까.”
모닥불의 사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욕을 지껄였다.
“정말 미친놈이네, 한 마디도 못 알아듣겠어.”
묵지는 소리 없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한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우, 귀하는 알아듣겠지요?”
한제는 미묘한 표정으로 답했다.
“귀하의 말은 너무나 현묘하여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허나 미쳤다는 말보다는 정신이 나갔다는 말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묵지의 두 눈이 순간 번쩍 밝아지더니 그가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정신이 나갔다, 그쪽이 훨씬 낫겠군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정신이 나가지 않는다면 어찌 수련의 결과를 내고 천도의 명을 받들겠습니까?”
한제는 술을 마신 뒤 말 없이 미소만 지었다. 묵지는 그런 한제를 잠시 멍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한제는 그의 눈을 마주한 순간, 마음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기척 없이 조용히 오른손을 허리춤에 매인 저물대로 가져갔다.
한참 뒤, 묵지의 눈에 비췄던 멍한 빛이 차차 사라졌다.
“방금⋯⋯ 우리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죠?”
한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상대를 주시했다.
모닥불에 있던 사내들은 줄곧 둘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듯했다. 아까 입을 열었던 그 사내가 비웃으며 말했다.
“정말 미친 자식이었네.”
묵지는 조용히 한숨을 내쉰 뒤 한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잊은 것은 잊은 것이니 그냥 둡시다. 저는 묵지라고 하는데 귀하의 이름은 뭡니까?”
한제의 미간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한참 뒤,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웃던 한제가 한 모금 술을 들이키며 말했다.
“대우!”
묵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비 오는 바깥 전경을 바라보더니 감탄하며 말했다.
“비 오는 밤의 광경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정취도 있고요. 초목이 물을 들이켜니 죽음의 기운이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리네요. 그것이 비 오는 밤의 장점이자 인생의 맛 아니겠습니까?”
한제는 고개를 돌려 불당 밖을 바라보았다. 투둑투둑, 비 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때때로 천둥과 번개가 하늘을 가르며 빛을 번쩍였다.
불당 안의 모닥불은 빛과 어둠으로 타올랐고 이에 주변은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그 밝음과 어두움에도 생사의 천도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빛과 삶, 어둠과 죽음. 빛과 어둠의 반복은 생사의 교차와 같았다.
“무엇이 생(生)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