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30
한데 지금 이곳은…
씁쓸한 마음을 다잡으며 한제는 앞으로 몸을 날렸다.
보기에는 별로 멀지 않은 것 같았으나, 실제로 날아보니 하늘에 보이지 않는 저항력이 있어서 속도를 어느 정도 이상으로 내기는 힘들었다.
한제는 한참 후에야 겨우 궁전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폐허들을 바라본 한제는 더욱 경외심을 느꼈다. 지금은 폐허에 불과한 이 건축물들은 모두 영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당시의 선계가 얼마나 부유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한제는 이전에도 영석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을 본 적이 있었다. 바로 초나라에 있는 모완의 처소였다. 하지만 그 건물은 눈앞에 있는 폐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이 궁전들은 어찌나 큰지 멀리서도 그 끝이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았다. 지금은 폐허일 뿐이었지만 당시 이곳이 얼마나 큰 위엄을 떨쳤을지 떠올려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궁전을 이루고 있는 영석들은 대부분 효력을 잃은 상태였다. 심지어 어떤 영석은 발로 툭 차기만 해도 재와 먼지로 변해 흩어져 버렸다.
한제는 다시 한 번 속으로 한탄했다.
폐허 사이를 걸으면서 한제는 말을 잃었다. 이곳에 한제가 원했던 선계의 영기는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지나버린 역사의 슬픔과 쓸쓸함뿐이었다.
궁전들의 정중앙에는 무언가에 움푹 팬 넓은 구역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거대한 손자국이었다. 우(雨)의 선문에 새겨져 있던 그 손자국이 떠오르면서 한제는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손바닥 하나의 힘이 이곳의 모든 것을 무너지게 만든 모양이다. 더구나 선계의 모든 것은 수련계보다 훨씬 더 강했다.
화신기 이상의 수련자만이 이곳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니 이 깊은 손자국에 대한 한제의 두려움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제는 그 손자국의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아 오른손을 그 위에 대고 눌러보았다. 순간 그 안으로부터 사멸의 기운이 한제의 팔을 타고 흘러들었다.
한제는 반사적으로 생사의 경지를 운용했다. 그의 눈빛은 놀라움에 한층 커졌다.
그 손자국 안에 아직 남아 있는 기운을 발견하고 직접 느껴보려 했으나, 상대의 강력함만을 더욱 깊이 통감했을 뿐이었다.
잠시 후, 한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곳을 빙 돌아 계속해서 폐허를 탐방했다.
며칠 뒤, 한제는 부러진 비석을 하나 발견했다. 그 비석에는 커다란 글씨 여러 개가 새겨져 있었다.
“우(雨)의 다섯 번째 선왕(仙王)이 천화 선사(仙士)에게 하사하는⋯⋯.”
큰 공로를 세운 천화 선사를 치하하기 위해 우의 다섯 번째 선왕이 신통력을 통해 이 궁전을 지어 하사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궁전은 하나의 진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그 안에서 수련하면 사방 10만 리 안의 선기(仙氣)를 모두 흡수할 수 있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뛰어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비석의 내용을 다 살핀 한제는 다시 한 번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선사라는 것이 선계에서 어느 정도의 지위에 해당하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선왕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선사의 궁전이 이토록 거대하다면 선왕의 처소는 대체 어느 정도일까?
막 떠나려던 한제는 돌연 몸을 틀어 다시 한 번 비석에 새겨진 내용을 자세히 살폈다. 보기에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비석이었다. 하지만 한제의 눈빛은 그 비석에 새겨진 글씨를 하나하나 훑었다.
천화 선사는 왜 궁전을 이곳에 지었을까? 게다가 이 비석은 위대한 공적을 기록한 것이니 밖에 두고 누구든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일반적일 텐데 왜 하필 이 폐허의 내부에 있는 것일까?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허공을 가리켰다. 순간 한줄기 기운이 그 비석에 떨어졌다. 그러자 비석의 균열이 더욱 커졌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한 자루 비검을 꺼냈다. 비검은 한제의 통제 아래 비석을 그었다. 그러자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데다가 그 손자국의 힘도 미쳤을 것인데도 비석은 매우 단단했다.
한참 뒤, 이 비석은 마침내 비검에 의해 깎여 나갔다. 한제는 고개를 숙여 지면에 깊이 박혀 있는 비석의 끝을 살폈다. 특별한 점은 없었다. 허나 한제는 분명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한제는 비석을 뽑아보기로 했다. 곧 우르릉 소리가 들려오더니, 비석은 한제의 전력을 다한 법술 아래 조금씩 뽑혀 나오기 시작했다.
선계의 기운
지면 밖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갈수록 많아졌다. 땅속에 파묻혀 있었던 부분은 밖으로 드러나 있던 부분과는 분명 달랐으나, 습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선계의 땅은 수많은 조각으로 나뉘긴 했지만 이곳은 폐허가 된 지 오래였고 그동안 선계의 문이 열릴 때마다 많은 사람이 드나들었다. 그러니 어떤 수련자도 방문한 적 없던 선계의 조각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선계의 조각에는 이미 수많은 수련자가 다녀간 흔적이 남았을 것이 분명했다.
한제의 머릿속에 어떤 추측이 떠올랐다.
이 위훈비는 언젠가 선계의 문이 열렸을 때 어느 수련자가 궁전 밖에 있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놓은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비석 아래쪽에 오랫동안 땅에 묻혀 있었던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만약 이 비석이 처음부터 운반되지 않았다면 아래쪽도 오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군데군데 마르고 갈라졌어야 했다.
확신을 얻은 한제는 위훈비를 완전히 뽑아 한쪽으로 옮겼다. 그러자 비석이 뽑혀나간 순간, 비석이 있던 구멍에서 갑자기 한 줄기의 맑고 순수한 선계의 기운이 풍겨 나왔다. 그 기운은 결코 많다고 할 수는 없었고 그나마도 풍겨 나오자마자 곧장 흩어지려 했다.
한제는 얼른 두 손으로 그 선계의 기운을 한데 뭉쳤다.
바로 그때, 갑자기 저 멀리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져 내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한 줄기 벼락이 하늘을 가르며 내려왔는데 그 안에는 거대한 팔각형의 진이 있었다.
푸른 옷을 입은 수련자가 검 하나를 등에 지고 진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곧장 폐허 쪽으로 질주하듯 달려왔다. 마치 명확한 목표가 있는 듯해 보였다.
허나 한제는 그자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고 선계의 영기를 응축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한 줄기 선계의 기운은 한제의 손길 아래 천천히 응집되어서는 쌀알 크기의 한 방울 액체로 변했다.
한제는 이 선계의 영기를 자신의 원신을 통해 정련해 영석과 같은 결정으로 만들어야만 보존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다만 수련자의 경지에 따라 정련에 필요한 시간은 달라졌다.
푸른 옷의 수련자는 여전히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아직은 멀찍이 떨어져 있던 그는 순간 안색이 변한 채 소리쳤다.
“멈춰!”
말을 마친 그는 무슨 법술을 썼는지 순간 몇 배는 더 빨라진 속도로 달려들었다.
한제는 그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상대의 수준은 그와 같은 화신기 초기로 한제는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상대가 여기까지 도착하는 데 걸릴 시간만을 계산했다.
푸른 옷의 수련자는 한제가 멈추기는커녕 더욱 빠른 속도로 정련하는 모습을 보자 분노하여 소리쳤다.
“이곳은 우리 대나검종(大羅劍宗)에서 3천 년 전에 발견한 곳이다. 선계 영기를 모으는 작업을 멈추지 않으면 우리 대나검종의 추격을 받게 될 것이다!”
한제는 상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하고는 피식 웃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어찌 주인이 있을 수 있겠는가? 특히 선계의 영기는 주인을 가릴 수 없는 존재인 것을…
한제는 오른손을 빠르게 휘둘렀다. 그의 손목을 감싸고 있던 구리 고리가 순간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두꺼비로 변했다.
뇌와는 나타나자마자 배를 불룩 부풀리더니 거대한 번개공을 푸른 옷의 수련자에게 쏘아 보냈다. 그러자 상대의 안색이 순간 변했다. 그는 곧장 등에 매었던 보검(寶劍)을 두드렸다. 순간 검이 칼집에서 빠져나오면서 태양처럼 눈부신 빛을 뿜어댔다.
푸른 옷의 수련자는 두 손으로 결인을 한 뒤 번개공을 가리켰다. 그의 결인에 따라 보검이 휘둘러진 순간, 팔뚝만 한 굵기의 검기(劍氣)가 뿜어져 나왔다. 검기는 하늘과 땅을 가를 듯한 기세로 돌진했다.
엄청난 속도의 검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번개공을 둘로 갈랐다. 중간에서부터 그대로 찢겨나가 양쪽으로 흩어진 번개공은 지면에 떨어져서는 거대한 두 개의 깊은 구덩이를 남기고 흰색 연기를 뿜으며 사라져갔다.
푸른 옷의 수련자는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온 한 움큼의 선혈을 억지로 삼켜냈다.
이 보검은 대나검종의 칠검(七劍)중 하나로 최고급 영기(靈器)에 속했다. 자신과 같거나 자신보다 높은 수준의 수련자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보검의 검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뇌와는 화신기 중기 절정에 해당하는 힘을 가진 마수였다. 비록 경지의 힘은 가지지 못했지만 뇌와가 발휘하는 천둥번개는 하늘이 준 공격 수단이었다. 그가 보검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 역시 그 때문이었다.
뇌와가 그 수련자에 대항하는 사이 한제는 마침내 선계의 기운을 응축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의 손에는 쌀알만 한 크기의 보라색 결정체가 하나 들려 있었다.
이 한 알의 결정체에 담긴 영력은 조나라에 존재하는 영력 전체의 절반과 맞먹었다. 그 엄청난 영력에 내심 놀란 한제는 결정체를 저물대에 집어넣고는 냉랭한 눈으로 푸른 옷의 수련자를 바라보았다.
비석 아래쪽에는 이 궁전들을 이루었던 진의 눈 하나가 묻혀 있었다. 진은 이미 파괴되었지만 아직 남은 효능으로 조금씩 돌아가면서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주위에 미약하게 흐르는 선계의 기운을 흡수하여 정련된 선기로 전환시켰다. 대나검종은 이를 인지한 뒤 비석으로 숨겨 다른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선계의 문이 열릴 때마다 사람을 보내 그 선기를 수확해가는 듯했다.
별도의 금제를 걸지 않고 비석으로만 눌러놓은 것 역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금제는 법력의 파동을 풍겼고 아무리 약한 파동이라 하더라도 선계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라면 금세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금제를 걸면 비밀이 발각될 가능성이 더 큰 것이다.
한제는 냉소를 지으며 오른손으로 비석을 뽑아 생긴 구멍을 눌렀다. 카강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순간 선기를 응집해두었던 진의 눈이 곧장 무너져 내렸다. 이제 진의 눈은 더 이상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선기를 건드린 이상 대나검종인가 뭔가 하는 쪽에서 달가워할 리 없다.
그래서 한제는 아예 끝장을 볼 생각으로 남아 있는 진의 눈을 파괴했다. 선기를 얻지 못할 테니 저쪽에서는 더 많은 고수를 배출하기 어려워졌을 것이다.
푸른 옷의 수련자는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더니 보검으로 한제를 가리켰다. 보검은 순간 금빛을 번쩍이며 아까보다 두 배는 더 굵어진 검기를 쏘았다. 검기는 하늘을 가를 듯 강력한 기세로 엄습했다.
푸른 옷의 수련자는 한 움큼의 선혈을 토해내며 곧장 보검을 놓아버렸다. 그는 공격의 결과도 보지 않고 보검을 챙긴 채 곧장 달아났다.
한제는 미간을 두드렸다. 순간 줄기줄기 검은 빛이 미간에서 번쩍이며 튀어나와 하나하나가 유혼이 되어 공중에서 포효하며 검기와 충돌했다. 그와 동시에 뇌와도 다시 배를 부풀리더니 이전보다 훨씬 더 큰 번개공을 토해냈다.
“어디 한 번 도망쳐 봐라!”
한제가 저물대를 두드리자 금번이 나타났다. 99개 조의 금제를 걸어 놓은 금번의 위력은 당연히 강력했다. 금번은 한 줄기 검은 안개로 변해 한제의 몸을 감싼 채 갑자기 돌진했다.
수백 마리 유혼들이 허공에서 찢어져 사라져가며 퍼부은 공세에 검기의 5분의 1 정도가 줄어들었고 그 빛도 약간 어두워졌다. 그 상태에서 뇌와의 번개공이 우르릉 소리를 내며 검기에 접근했다. 번개공은 빛으로 흩어졌지만 검기 역시 흩어져 전보다 훨씬 줄어들었고 빛도 거의 사라져, 금번에 감싸인 채 질주하는 한제에게는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했다. 얼마 남지 않은 검기는 한제가 쏘아 보낸 몇 갈래의 금제에 산산이 흩어졌다.
한제는 멈추지 않고 푸른 옷의 수련자를 뒤쫓았다.
상대는 신식으로 뒤쪽을 살피다가 깜짝 놀랐다. 상대가 그렇게 간단하게 검기를 해결하고 자신을 뒤쫓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기 때문이다.
상대의 보검은 상당히 특이했고 그 검기도 매우 강해, 만약 선계에 오기 전에 충분한 준비를 해두지 않았다면 큰 부상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선계에 들어온 수련자라면 그 누구도 얕잡아볼 수 없음을 한제는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겼다. 그럼에도 한제는 평온한 모습이었다.
금번에 감싸인 한제의 속도는 매우 빨라, 푸른 옷의 수련자와의 거리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상대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는 무슨 비법을 쓴 것인지 전보다 한층 빨라지더니 이곳에 올 때 사용했던 진이 있던 자리에 이르렀다.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리자 그 진이 다시 나타났고 그는 그제야 한시름을 놓았다. 선계의 조각은 셀 수도 없이 많으니 진에 들어서기만 하면 상대에게 따라잡힐 염려는 없었다.
진으로 들어서기 전, 그는 한제를 돌아보며 냉소했다.
“이번에 우리 대나검종에서는 네 사람이 왔고 그중 내가 가장 낮은 사람이다. 사형과 함께 와서 네놈의 어리석음을 후회하게 해줄 테니 기다려라.”
한제가 눈을 번득이자 그의 몸이 금번의 검은 안개에서 사라졌다. 푸른 옷의 수련자는 보고도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의 신식은 화신기 초기에 불과했지만 한제의 신식은 이미 화신기 후기 수준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한제는 그가 나타나자마자 그 사실을 알아차렸는데 그는 어느 정도 가까워진 뒤에야 한제를 알아차린 것도 그런 이유였다.
푸른 옷의 수련자는 진 안으로 한 발을 들여놓았다.
한데 그때, 한손에 방울을 든 한제가 바로 옆에 나타났다. 이렇게 빨리 따라잡히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푸른 옷의 수련자는 안색이 급변했다.
그가 당황해 있던 틈에 한제가 든 방울이 부풀어 올라 거대해지더니 푸른 옷의 수련자를 가두었다. 한제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금번이 나타났다. 그가 손을 한 번 휘두르자 금번은 한제와 방울을 함께 감싸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는 이미 바닥이었다.
“아쉽지만 넌 네 사형을 만날 수 없다.”
한제의 목소리는 덤덤해서 꼭 혼잣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가부좌를 튼 채 두 손으로 결인을 하며 법술들을 방울에 쏘았다. 그러자 방울은 진동하며 딸랑딸랑 소리를 냈다. 그 소리의 대부분은 바깥으로 흘러나오지 않고 안으로만 향했다. 하지만 그 딸랑거리는 소리 사이사이에 누군가의 비참한 비명이 섞여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울의 떨림은 갈수록 격렬해졌고 딸랑거리는 소리 사이에 뭔가 부딪히는 소리도 들려왔다. 방울에 갇힌 푸른 옷의 수련자가 보검으로 방울을 부수려하는 모양이었다.
한제는 이 방울이 보검을 막아낼 것인지 확신하지 못했으나, 가볍게 코웃음을 치더니 두 손으로 더욱 빠르게 결인을 그렷다. 딸랑거리는 방울소리는 갈수록 커졌고 그 빈도도 높아졌지만 반대로 반격해오는 소리는 갈수록 약해져갔다.
잠시 후 방울에 결인이 적용되면서 정련이 시작되었다. 상고시대 수련자의 법보로 주로 누군가를 가두는 작용을 하는 이 방울은 심지어 원신도 완벽하게 정련시킬 수 있었다. 물론 방울을 다루는 사람이 방울에 갇힌 자보다 경지가 높아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도리어 거꾸로 삼켜질 수도 있다.
한제의 결인이 하나하나 방울에 떨어짐에 따라 그 안에서 흘러나오던 비명도 천천히 약해지다가 결국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한제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한참이나 정련을 진행한 뒤에야 결인을 거두었다.
손을 휘두르자 방울이 줄어들었고 한제는 그것을 저물대에 챙겼다.
방울 안에 들어 있는 수련자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 파악하는 것은 당장 할 필요가 없었다. 그자가 죽었다 해도 죽기 직전에 반격을 해오리라고 생각했다.
화신기 수련자가 죽음을 앞두고 행하는 반격은 결코 쉽게 생각할 수 없었기에 신중한 한제로서는 성급하게 그 수련자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방울은 자체의 정련 능력을 통해 그를 열흘, 보름, 심지어는 그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정련할 터였다. 그럼 죽기 직전 반격하겠다는 수련자의 의지는 어둠 속에 그대로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한제는 이 수법을 극절(極絶)이라 칭했다.
어둠 속에 묻혀 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