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31
일찍이 거두어져 손목에 감긴 뇌와를 힐끔 내려다본 한제는 잠시 고민한 끝에 이 선계의 조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려 했다.
한데 그때, 그는 갑자기 안색이 변하더니 금번으로 방어막을 펼쳤다. 그리고 그 안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저물대에서 꺼낸 몇 개의 단약병을 입에 털어 넣었다. 한제 체내의 영력이 빠른 속도로 구리 고리에 의해 흡수되었다가 한참 뒤에야 멈추었다.
한제는 몇 알의 단약을 더 복용하여 체내의 영력을 보충했다.
“처음에는 6일에 한 번이더니 요즘은 4일에 한 번이군. 뇌와는 쓰기는 좋지만 키우기에는 영력이 너무 많이 들어. 앞으로는 미리 영력을 불어넣어 둬야겠어. 싸우고 있는 와중에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위험할 테니까.”
한제는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궁전들 안을 다시 자세히 살폈다. 하지만 아무런 수확도 없었고 한제는 먼 곳으로 나가 탐색을 계속했다.
그가 있는 선계의 조각은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결코 작지도 않은 땅으로 조나라와 비슷한 정도였다. 신식으로 한 번 훑으면 모두 덮을 수 있을 정도였지만 선계의 기운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접근하지 않는 이상 신식으로 탐지되지 않았다.
한제는 한 달에 걸려 이 선계의 조각을 마침내 모두 조사했다. 이곳에는 처음 발견한 궁전 외에 다른 건물은 없었다. 지면 곳곳에 파인 깊은 구덩이를 통해 당시 이곳에서 선인들의 전투가 벌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제는 어느 산봉우리에 이르렀다. 이 봉우리는 매우 높았고 형태가 기괴했다. 마치 커다란 자물쇠 같은 모양으로 비교적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다만 그 봉우리에 뿌리내린 나무들은 이미 완전히 말라 죽은 상태였다.
한제는 손을 뻗어 나무를 건드려보았다. 나뭇가지는 곧장 재와 같은 먼지로 바스라졌다.
한제는 쓰게 웃었다. 만약 이 나무들이 말라 죽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곳의 나무들은 모두 천 년 이상 되었고 심지어 만년 이상 된 것들도 있었다. 이 나무들로 조각상을 만들면 자신이 가진 것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 아쉬울 만도 했다.
대신 그는 산봉우리 꼭대기에서 동굴 하나를 발견했다. 동굴의 입구인 대문은 부서져 있었고 그 안에는 먼지가 가득했다. 이 앞을 지나다니는 누구나 발견할 수 있을 법한 전혀 은밀하지 않은 동굴이었다.
크지 않은 동굴에는 일고여덟 개의 석실이 있었다.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누군가가 이미 모조리 털어간 모양이다.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아쉽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동굴의 내부를 샅샅이 살피는 이유는 혹시라도 잔존하는 금제가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는 선인의 금제는 어떠한지 궁금했다. 만약 선인의 금제를 발견한다면 금번에 걸린 금제를 999개 조까지 채우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터였다.
거의 모든 금제가 이미 흩어졌으나, 다행히도 한 석실 밖에서 금제의 잔해를 발견했다.
그리 강한 금제는 아니었다. 그저 진입을 막고 문을 봉하는 작용을 할 뿐으로 이미 누군가에 의해 파괴된 상태였지만 석벽 가장자리 위치에는 약간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 한제는 그것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선인의 금제는 상고시대의 금제와 약간 비슷했지만 그 안의 구조는 분명히 달랐다. 이 금제는 사실 더 민첩하고 융통성 있는 하나의 진과도 같았다.
사흘 뒤, 한제는 동굴을 떠났다. 그 금제는 이미 그의 뇌리에 깊이 새겨진 상태였다.
산봉우리를 따라 내려와 막 떠나려던 한제의 표정이 순간 딱딱하게 변했다. 산봉우리의 모든 나무는 일전에 한제가 조사하면서 모두 재로 변해 흩어진 상태였다. 한데 지금, 그 재들이 모두 허공에 떠서 마치 모종의 힘에 이끌리듯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한제는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라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재들은 어떤 글자를 이루고 있었다.
살려줘
한제가 미간을 구겼다.
글자를 이루었던 재들은 천천히 흩어졌다.
한제는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이 산봉우리는 더욱 자물쇠 같아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까지 그가 있었던 동굴은 그 자물쇠의 중심이었다.
한제는 한참이나 고민했다. 이곳은 너무한 기이한 곳이라 깊은 곳까지 탐색하고 싶지는 않았다. 더구나 이 산의 수상함을 느낀 사람이 자신만은 아닐 것이다. 그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았겠는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곳을 탐색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진 한제는 몸을 천천히 물러나 먼 곳으로 이동했다. 이곳에 선인이 갇혀 있다 해도 목숨 부지하기도 어려운 곳에서 그 선인을 어쩌고 싶은 마음은 생겨나지 않았다.
최근 며칠 동안 이 선계의 조각을 한 번 훑어보았으나 선계의 기운은 찾지 못했다. 이에 한제는 이곳을 떠나 다른 조각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떠나기 전, 한제는 구수권에 영력을 불어넣어 푸른 옷의 수련자가 나타났던 그 진에 이르렀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가 방울을 꺼내들었다.
한제가 아는 한 선계의 조각을 떠나는 방법은 하늘의 벽을 돌파할 때까지 끝없이 상승하여 다시 선계의 문 안에 있던 그 소용돌이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한데 푸른 옷의 수련자는 전송진을 이용하여 이곳에 나타났다. 그렇다면 혹시 오래된 몇몇 종파에서는 여러 차례 선계의 문에 진입하면서 그 안에 전송진들을 구축해놓은 것이 아닐까? 그를 통해 해당 종파의 다른 제자들이 더욱 쉽게 선계의 조각들을 오갈 수 있도록 말이다.
한제는 방울을 흔들고는 결인을 그려 다시 정련을 시작했다.
이틀 뒤, 방울에 갇힌 수련자가 이미 거의 정련되었을 것이라 판단한 한제는 오른손을 휘둘렀다. 방울은 급격하게 커지더니 펑 하고 그 아래쪽에서 일곱 빛깔의 기운을 느릿하게 피워 올렸다. 그 안에는 저물대 하나와 보검 한 자루가 남아 있었다.
한데 방울이 열린 순간 보검은 웅웅 소리를 내며 팔뚝만 한 굵기의 검기를 쏘았다. 그러나 한제가 냉소하며 한 번 손짓을 하자 검기는 단박에 흩어졌고 그 안에 깃들어 있던 원신의 힘 역시 흩어져 사라졌다.
그 푸른 옷의 수련자는 죽기 전에 원신을 검에 심어 최후의 반격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정련되어 가면서 그의 원신도 결국 버티지 못했다.
그가 준비한 죽기 직전의 반격은 한제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그대로 사라져 버린 셈이었다.
그 오래된 보검을 신식으로 살피던 한제는 무척 감탄하며 그 보검을 조심스럽게 저물대에 챙겨 넣었다.
보검의 위력은 상당했다. 이미 그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보검의 내부 구조는 금번과 다르지만 같은 효과를 내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 안에는 단일한 공격 속성을 가진 수많은 금제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니 강력할 수밖에 없었다.
한제가 대충 살펴본 결과 이 보검 안에 걸린 공격용 금제 중 대부분은 이전까지는 전혀 본 적 없던 것들이었고 세 개의 금제가 하나의 조를 이루었다. 그런 금제의 조가 총 3백 개였다.
이 금제들은 결코 짧은 시간 안에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기에 한제는 당장이라도 금제들을 연구하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참고 푸른 옷의 수련자가 남긴 저물대를 집어 들었다.
신식으로 그 저물대를 한 번 훑은 한제의 표정이 다시 한 번 기이하게 변했다.
“앞으로도 다른 수련자를 죽이고 법보를 뺏고 싶은 유혹이 생기는군.”
한제는 고개를 흔들며 한탄하듯 말했다.
저물대에는 옥패 하나와 선계에 오자마자 모든 수련자가 하나씩 받은 옥정(玉鼎) 외에 최고급 영석 수백 개가 있었다.
수백 개의 최고급 영석이라니, 한제는 설레기까지 했다.
무의식적으로 사방을 둘러본 그는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을 안정시켰다.
“자제력을 한참 더 키워야겠군.”
주작성에서 최고급 영석은 매우 귀한 것이었다. 사실 대나검종이 있는 수련성에서도 최고급 영석은 결코 많지 않았다. 대나검종이 이토록 많은 최고급 영석을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역사를 가진 종파였기 때문이다.
저물대에 들어 있던 옥패를 살핀 한제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나검종은 이 선계에 수차례 드나들면서 선계의 조각을 총 37개 찾아냈고 그 조각마다 비밀스럽게 전송진을 설치해둔 상태였다. 다만 이 전송진은 선계에 구축해 놓은 관계로 최고급 영석을 사용해야만 이용할 수 있었다. 푸른 옷의 수련자가 가지고 있던 저물대에 이토록 많은 영석이 들어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이를 통해 한제는 이곳에 처음 온 사람이나 어떤 종파에 소속되지 않은 수련자가 아닌 이상 대부분은 이처럼 자신들의 전송진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제는 옥정을 들었다. 이 옥정은 해당 수련성으로 돌아가게 하는 작용을 했다. 만약 자신이 이 옥정을 사용한다면 주작성으로 돌아가게 될까, 아니면 대나검종이 있는 수련성으로 돌아가게 될까?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손에 든 솥을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솥과 분리하여 집어넣었다. 분리하지 않고 막 넣었다가 나중에 잘못 꺼내 대나검종이 있는 수련성에 떨어졌다가는 큰일이었다.
정리를 마친 한제는 손에 든 옥패를 꺼내 앞으로 던졌다. 순간 옥패에서 빛이 번득이더니 진 하나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 진에는 움푹 팬 홈이 두 개 있었다. 영석을 놓아두는 공간이었다.
한제는 두 개의 최고급 영석을 꺼내 각 홈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진이 활성화 되며 옥패의 빛이 점점 밝아지더니 지도와 같은 허상의 그림들이 떠올랐다. 선계에 들어올 때 보았던, 거울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 속에서 수많은 회색 조각들 중 37개만이 밝게 빛나 다른 조각들과 명확한 대비를 이루었다.
한제는 이전에 소용돌이로부터 어느 조각 위로 떨어지던 당시를 떠올리며 그 그림에서 자신이 있는 선계의 조각을 찾아냈다.
환하게 밝혀진 조각 중 하나를 손으로 건드리자 순간 그림이 사라지더니 진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었고 한제의 몸은 허공에서 사라졌다.
★ ★ ★
선계의 어느 가장자리 조각에서는 미친 듯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하늘 끄트머리의 거대한 균열에서 포효하듯 쏟아지는 차가운 바람이 온 세상을 뒤덮을 듯한 기세로 몰아쳤다.
이곳에 산이란 없었다. 주위는 온통 사막과도 같았다. 원래 아주 오래 전에는 산도 있고 물도 있는 곳이었지만 재난 이후, 어느 선인의 보물인 현풍선검(玄風仙劍)이 이곳에 떨어져 공간을 베면서 깊은 공간의 균열을 내고 말았다.
그 공간의 균열이 생겨난 순간, 현풍선검은 스스로 소멸하더니 포악한 바람이 되어서는 끊임없이 이곳을 채우고 있었다.
이 황폐한 세상의 하늘에 진 하나가 나타났다. 진은 밝은 빛을 발하며 보호막을 하나 형성했다. 이 빛의 보호막이 강한 바람을 막아주었지만 바람에 너무 거세게 흔들려 언제라도 깨어질 것만 같았다.
그 진에서 한제가 나타났다.
그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약간의 파손이 있었던 이전의 조각과는 달리 이곳은 완전히 파손된 상태였다.
대나검종에서는 어떻게 이런 곳에 전송진을 만들었을까? 한제는 잠시 고민했다. 그러는 동안 전송진의 빛은 더욱 격렬해졌다. 한제는 몸을 날려 진에서 빠져나왔다.
빛의 장막 밖으로 빠져나온 순간, 한제는 칼바람이 온몸을 훑는 것을 느꼈다. 뒤에 있던 진은 천천히 사라졌다.
인적은 없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소리라고는 바람 소리뿐이었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곡성과도 같은 바람소리는 한제의 몸이 아래로 내려감에 따라 더욱 커졌다.
홍접
모래 위에 착지한 순간, 한제는 잔뜩 경계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서 몰아치는 광풍 속에 검은 그림자들이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냈다.
한제는 내심 놀라고 말았다. 그 검은 그림자들은 신식으로도 느낄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금번을 꺼내들었다.
사람의 형상을 한 그 검은 그림자는 점점 명확해지더니 각각 아름다운 묘령의 여인으로 변했다.
쟁반을 받쳐 든 한 무리의 동자들이 다채로운 색상의 옷을 입고 있는 여인들을 뒤따랐다. 그 쟁반 위에는 선과(仙果)로 만든 수많은 술들이 놓여 있었다.
그들은 서로 웃고 이야기하면서 한제 쪽으로 걸어왔다.
한제는 경계심을 높였다. 그들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위기감이 엄습했다. 사방을 채운 것은 여전히 웅웅대는 바람소리뿐이었다.
그들은 점점 가까워졌다. 이때 한제의 눈은 그들의 위쪽 상공에 자리한 검은 그림자들로 향했다.
그 그림자들은 천천히 청년들로 바뀌어갔다. 각각 구름을 밟고 대열을 따라 앞으로 날아드는 그들은 마치 여인들을 호위하듯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금번을 거두었다. 순간 그들은 어느새 한제 앞에 이르러 있었다. 그들은 한제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중 어느 동자 하나는 한제의 몸을 통과하여 지나갔다.
그들이 아주 먼 곳까지 떠나고 나서야 한제는 웃었다. 그들은 진짜 사람이 아니라 환상에 불과했다.
이 선계의 조각에 깃든 기이한 힘은 당시 이 선계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환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한제는 멀어져가는 무리를 바라보며 씁쓸함을 느꼈다. 그들은 분명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이었으나 지금은 세월에 스러지고 환상으로만 남았다.
당시 선계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까지 끔찍하게 파괴된 것일까?
한제의 머릿속에 다시 의문이 떠올랐다.
한참 자리에 서 있던 한제는 저만치 떨어진 환상을 멀찍이서 따라갔다.
그들은 한참을 걸어 어느 곳에 멈추었다. 한제는 뒤에 서서 자세히 살피다가 그들이 멈춘 곳에서 환상이 한차례 변하는 것을 알게 됐다. 궁전 같은 건물들 안에 여러 개의 상이 펼쳐졌고 그들은 각종 술과 음식들을 그 위에 펼쳐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