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39
사랑하는 여인의 시체
어느 평원 위에서는 한 중년 남자가 조롱박에 든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주작성에서 온 그 중년 남자였다.
“정아, 급하게 굴 것 없다. 내 너를 위해 얼른 선옥(仙玉)을 얻어 네 몸을 천년 동안 변하지 않게 할 것이야.”
그는 술을 마시며 평원 위를 걸었다.
한참 뒤, 그는 멈춰 서더니 고개를 숙여 발이 닿은 곳을 바라보았다. 기억을 더듬는 듯한 눈빛이었다.
“정아, 이곳을 기억하느냐? 풍경은 여전하나 안타깝게도 사람은 달라졌구나.”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쉰 뒤 오른발로 땅을 살짝 굴렀다. 순간 그는 곧장 땅속으로 끝없이 깊게 빠져 들어갔고 한참 뒤에는 거대한 동굴에 이르렀다.
동굴에는 푸른 기운으로 뒤덮인 누각 하나가 있었다.
중년 남자는 곧장 그 푸른 기운을 뚫고 누각 안으로 들어갔다.
누각은 세 층이었고 구조는 매우 간단해 일반인들의 집과 다를 것이 없었으나 아담하고 탈속적인 느낌이었다.
누각으로 들어간 그는 부드러운 눈으로 가구 하나하나를 쓸어보다가 어느 의자에 앉아 중얼거렸다.
“정아, 당시 난 이곳에서 널 만났지.”
그의 눈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그가 저물대에서 보탑(寶塔) 하나를 꺼내 오른손으로 한 번 문지르자 그 안에서 하얀 빛 한 줄기가 번쩍 스쳐갔다. 이어 그의 품에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의 시체가 하나 나타났다. 중년 남자는 여인의 시체를 바라보며 웃음기를 머금은 채 말했다.
“정아, 여길 봐. 우리 집에 돌아왔어.”
여인은 꼭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 피부는 눈처럼 희었지만 약간의 붉은 기운도 돌아 살아 있다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여인의 시체는 누각 안의 환경과 하나로 융합되었다. 마치 이곳이 원래부터 이 여인의 집이었던 것만 같았다.
남자는 한층 사랑이 가득한 눈빛으로 여인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난 널 처음 보자마자 다짐했다. 널 내 아내로 만들고 말겠다고… 정이라는 이름, 마음에 드느냐?”
그는 중얼거리며 고개를 숙여 여인의 미간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너를 위해 난 문파 내의 집권자 자리도 버렸고 스승을 배반했다. 그러나 난 후회하지 않는다. 정말로 조금도 후회하지 않아. 누가 날 미친놈이라고 해도 난 안다. 난 미치지 않았어!”
남자는 여인의 얼굴을 쓰다듬다가 한참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아, 올라가보자. 그곳에 네 화장대가 있다. 내가 널 위해 화장을 해주겠다.”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여인의 시체를 끌어안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더니 2층의 화장대 옆에 시체를 잘 내려놓고 눈썹먹을 쥐었다.
“정아, 기쁘냐? 난 너무 기쁜데⋯⋯.”
한없이 부드럽던 그의 표정에 한 줄기 찬 기운이 어렸다.
“왜 말이 없어? 기쁘지 않은 것이냐? 말을 해!”
그의 목소리도 조금씩 격해져갔다. 그러더니 이내 손에 쥐었던 눈썹묵을 한쪽으로 던져 버리고 여인의 시체를 쥐고는 격렬하게 흔들며 목이 찢어져라 소리쳤다.
“빨리 말 해! 왜 말이 없는 것이냐!”
한참 뒤, 남자는 멍해진 얼굴로 여인의 시체를 끌어안고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정아. 날 미워하지 마라. 내가 잘못했다. 다시는 네게 소리치지 않겠다. 누구도 내게서 너를 빼앗아갈 수는 없다. 누구도 안 돼. 누군가 그런 짓을 한다면 그자가 누구건 내 손으로 죽여 버릴 것이다.”
그는 시체의 뺨에 입을 맞추더니 웃으며 말했다.
“정아, 봐라. 이 누각, 당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리려던 것을 내가 법술로 여태 유지시켰다. 이곳은 네 집이지 않느냐? 음⋯⋯ 우리 집이라고 해야 더 맞겠구나! 이제 피곤할 테니 쉬거라.”
그는 여자의 시체를 안아 침상에 내려놓더니 그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정아, 너는 처음 보았을 때부터 조금도 변함이 없구나. 기억하느냐? 당시 나는 원래는 선계의 영기를 얻기 위해 처음 이곳에 들어왔지만 여기서 너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알았다. 네가 내 아내가 될 사람이라는 것을… 이곳에서 너를 데리고 오랫동안 있겠다고 생각했지.”
그는 손을 뻗어 여인의 시체를 매만지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넌 너무도 아름답구나. 넌 나의 것이다. 너 역시 나를 사랑한다는 걸 나는 안다. 내게는 선계의 영기도 필요 없다. 너야말로 나의 보물이니까.”
중년 남자는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여인의 시체 곁에 누워 중얼거렸다.
“좋다, 정아. 우리 이렇게 좀 쉬다가 내일 다시 선옥을 찾아보자. 걱정 말고 자라. 내가 있으니까.”
★ ★ ★
어느덧 한 달의 기한이 거의 끝에 이르러 있었다. 한제는 치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그가 말한 장소로 가는 중이었다. 세 자루의 선검은 차치하고 선옥만 해도 그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선옥이 있으면 앞으로 화신기 후기나 영변기에 오를 때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제에게 영변기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영변기에 이르면 사도환을 깨울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아직 화신기 초기에 불과해 언제 후기에 이를지 알 수 없었으나, 그는 조급하게 굴지 않았다. 수련자가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조급함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묵묵히 걷다 보면 길은 자연스레 완성되는 법이었다.
선옥 외에도 그 연못에 떠 있던 선계의 약초들 역시 한제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 선초들을 모완에게 가져다준다면 분명 훌륭한 단약을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 모완의 수준 역시 훌쩍 높아질 것이다.
한제는 지금으로서는 단약 복용을 피하려 했다.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깨달음이었다. 단약을 통한 경지 향상은 대도(大道)라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선계의 약초로 만든 선단(仙丹)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 정도의 단약이라면 언제든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결정을 내린 한제는 계속해서 솟아올라 선계 조각의 하늘을 넘어 소용돌이로 향했다. 그 소용돌이에서 옥패를 활성화시키면 치호와 약속한 곳에 이를 것이다.
★ ★ ★
그 무렵, 선계 중앙의 어느 조각에서 거마족 치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전송진 하나가 있었다.
치호의 눈빛은 덤덤했다. 그는 이곳에서 이미 7일 동안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동안 조무래기 몇몇이 왔다가 그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그가 기다리는 것은 두 사람이었다. 치호는 만약 그 둘이 와준다면 이번 여정이 성공할 가능성이 7할 이상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때문에 치호는 급하지 않았다.
그 둘은 세심하게 선발한 이들이었다. 첫 번째 사람은 워낙 명성이 자자한데다가 거마족과는 인연이 있는 사람이었다.
두 번째 사람인 천우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자는 비록 화신기 초기 수준이었지만 치호는 그에게서 위기감을 느꼈다.
그런 천우에게 제안을 한 이유라면 역시 그 힘 때문이었다. 어쨌든 강한 자의 도움이 있을수록 성공할 가능성은 커질 테니 말이다. 상대가 자신을 죽이고 법보를 강탈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치호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자신의 힘에 그 정도 자신감은 있었다.
그렇게 7일을 기다린 끝에 그의 앞에 있던 전송진이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그 빛은 점점 더 강해졌다. 그러나 눈을 찌르는 듯한 그 빛은 치호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그는 눈도 떼지 않고 전송진 안을 들여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왔다.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진 안의 빛이 어느 순간 갑자기 어두워졌다. 뒤이어 낭창한 인영이 진 안에서 나타났다. 무척 아름다웠지만 그만큼 차가워 다가서기 힘든 상대였다.
그녀의 몸에서 짙은 한기가 줄기줄기 풍겨나왔다. 심지어 눈꽃이 떨어져 내리기까지 했다. 경외심이 절로 생기는 모습이었다.
‘그녀다!’
치호는 속으로 외쳤다.
그는 하하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홍접 도우, 오랫동안 기다렸네!”
그녀는 설역국에서 온 하늘의 딸, 홍접이었다.
홍접은 냉랭한 눈으로 치호를 힐긋 보더니 진 밖으로 빠져나오며 말했다.
“이전에 한 말이 거짓이라면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
치호는 자신감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말게. 여기까지 와줬으니 나도 더 숨길 것은 없지. 이 옥패는 우리 거마족의 시오 시조께서 직접 탁본한 것이네. 그분께서 어디 거짓을 말씀하셨겠나?”
“시오 시조라⋯⋯.”
홍접의 얼굴이 살짝 누그러졌다. 시오 시조는 그녀 스승의 선배로 서로 교류도 있었다.
주작성 부족으로 존재하는 수련국은 거마족과 설역국 둘 뿐이었기에 두 부족 사이의 교류는 적지 않았다. 따지자면 둘은 서로 동맹국이었다.
“시오 시조께서 직접 본 것이라면 틀림없겠지. 좋아, 함께 가도록 하겠다. 다른 것은 필요 없지만 그 옥석으로 만든 관만큼은 내가 가져가겠다!”
홍접이 단호하게 말했다.
치호는 내심 속으로 불만을 토했다. 하지만 비록 그 옥석으로 만든 관이 탐나긴 해도 그가 진정 원하는 것은 세 자루의 선검이었다. 다만 천우가 그 관을 원할 경우 분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 문제였다.
“도우, 그 문제는 잠시 후에 논의하도록 하지. 한 명이 더 오기로 했거든!”
“그게 누구지?”
홍접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덤덤하게 물었다.
“천우라고 그도 주작성에서 온 사람이네.”
치호가 말했다.
“주작성에서 왔다고?”
홍접은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그녀의 머릿속에 나머지 네 사람의 모습이 하나하나 스쳐갔다.
바로 그때, 두 사람 앞의 진이 다시 빛을 발했고 머지않아 꼿꼿한 누군가의 인영이 그 전송진 안에 나타났다.
“저자는!”
홍접은 눈을 번득이더니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순간 하얀 빛이 번개 같은 속도로 전송진 안으로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