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48
눈앞에는 웅장한 궁전들이 있었다. 모두 영석으로 만들어진 궁전들은 빽빽하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 수가 많았다. 정중앙의 궁전은 멀리서 보기만 해도 짙은 선기(仙氣)가 느껴졌다.
“저 가운데 궁전은 설마 선옥(仙玉)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치호가 숨을 들이키며 말했다.
그보다 신식이 더 강한 한제는 그쪽을 훑어보자마자 그 중앙의 궁전이 전부 다 선옥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반 정도는 영석이 섞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궁전의 주인이 당시 얼마나 위세가 대단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선왕(仙王)의 침궁(寢宮)!”
먼 곳에서 광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음종의 노인은 놀랍고도 희색 어린 얼굴로 웃음을 터뜨렸다.
“어느 선왕의 침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면 분명 선인의 시체도 있을 터!”
노인은 하하 웃으며 몸을 앞으로 날려 그 궁전 쪽으로 들어갔다.
한데 그때, 여인의 시체를 품에 안은 주일이 나타났다. 그는 곧장 앞으로 향했다. 느린 듯 보였지만 단 세 걸음 만에 시음종 노인의 앞에 이르렀다.
“정아, 저자를 죽이고 함께 허무 속으로 사라지자. 난 이미 약해지고 있다. 하지만⋯⋯ 뭔가 깨달은 것도 같구나. 마치⋯⋯ 네가 누구인지 알 것도 같다.”
주일은 깊은 눈빛으로 여인의 시체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시음종의 노인은 안색이 변해 얼른 뒤로 물러났다.
주일은 몸을 훌쩍 날려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영변기 후기의 수련자에게 들이받히는 것은 누구에게나 악몽과도 같을 것이기에 노인은 다시 사색이 되어 얼른 도망쳤다.
“주일, 이 미친 자식아! 시체도 넘겼는데 어찌 이리 쫓아오느냐?”
시음종의 노인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주일은 깊은 눈으로 여인의 시체를 바라보며 그 미간에 입을 맞추더니 두 눈을 감았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 눈에 더는 집착의 빛을 찾을 수 없었다. 그보다는 꿈에서 깨어난 듯 전과 달리 맑았고 흰자와 검은자의 구분이 명확했다.
그가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을 때, 하늘에서 한 줄기 벼락이 내리쳤다. 그 벼락 속에서 주일은 타오르는 유성이 되어 노인에게 달려들었다.
사방의 하늘에서 끊임없이 우르릉 소리가 울려 퍼지며 붕괴가 다시 시작됐다. 다만 이번 붕괴는 하늘에서 좀 더 두드러졌다.
찢어지고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손이 하늘을 통째로 찢어발기는 것 같았다. 거대한 공간의 균열들도 하나둘 나타났다.
“나의 경지는 치(痴)이며 나의 도심(道心)은 정아다. 정아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을 수 있다!”
주일의 목소리가 그 타오르는 유성 속에서 흘러나왔다.
“나, 주일의 생이 여기서 끝에 이르렀다. 허나 내게 원망과 후회는 없다!”
노인은 다시 안색이 변해 욕을 내뱉으며 얼른 뒤로 물러났다. 그는 상대가 이미 거의 말로(末路)에 이르렀음을 알고 있었다. 조금만 버티면 상대는 흩어져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내 일생의 끄트머리에서 원신을 불태움으로써 깨달음을 얻게 될 줄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주일의 목소리에서 한 줄기 한탄과 아쉬움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한제의 몸은 그 힘에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하고 추락했다.
치호의 상태는 더욱 좋지 않았다. 그는 이미 땅속까지 짓눌려 발버둥조차 치지 못하고 있었다.
궁전들 역시 우르릉 소리와 함께 모두 무너져 가루로 변했다. 유일하게 중앙의 궁전만이 우뚝 솟아 있었지만 그 궁전 역시 붕괴의 조짐을 보였다.
한제는 내심 감탄한 심정으로 타오르는 유성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다. 그의 굳은 마음에도 저항할 수 없는 진동이 일어났다.
“이것이야말로 도(道)구나! 허나 안타깝다. 사부께서 일찍이 말씀하신, 가르침을 구하는 자는 아침에 나서 저녁에 죽는다는 것이 이런 뜻이었구나.”
주먹만 한 크기의 붉은 구슬 하나가 주일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구슬은 곧장 붉은 액체가 되더니 타오르는 유성 안으로 섞여 들어갔다. 순간, 유성에서 타오르던 화염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전신에서 붉은 빛이 번득이는 사람 하나가 나타났다. 그는 일견 안타까운 듯하면서도 감격한 듯한 눈빛으로 왼손을 뻗어 시음종 노인을 가리켰다.
그러나 막 숨으려던 시음종 노인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노인의 창백한 얼굴이 경악으로 가득 찼다.
“무, 문정(問鼎)⋯⋯.”
허나 주일은 노인을 거들떠도 보지 않고 품 안에 안긴 여인의 시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처음 이 선계에 왔을 때 너를 만났고 네가 나의 치의(痴意)를 강화시켜주었지. 난 이제야 너의 목적을 깨달았지만 후회는 않는다. 삶이 돌고 돈다면 난 기꺼이 너를 만날 수 있는 곳을 선택하겠다.”
오행종(五行宗)의 제자였던 그는 천부적인 자질로 오행술(五行術)을 하나하나 익혀나갔고 종파 내의 유일한 영변기 후기 선배를 스승으로 모신뒤로는 단번에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화신기에 이른 순간, 스승은 그에게 우정(雨鼎)을 주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선계행이 그를 완전히 바꿔놓으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선계에서 우연히 들어선 어느 우아한 누각 안에서 그가 본 것은 나무 침상 위에 누워 있는 여인의 시체였다. 그 후, 뜻밖에도 그는 자기 자신을 잃고 말았다. 이제 이 여인의 시체가 자신의 전부였다.
여인의 시체를 위해 그는 그의 종파와 동문을 배신했다. 그의 스승은 사랑하는 제자를 어쩌지 못해 한숨만 내쉬다가 결국 그를 파문했다.
시체 애호가 미친놈 등등 좋지 않은 별명과 소문이 주작성에 돌았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그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후회란 없었다.
그 집착에 가까운 사랑에 더불어 그의 경지는 점점 더 깊어졌고 결국 영변기 수련자가 됐다.
그의 스승은 문정에 오르는 데 실패한 후 수명이 다해 눈을 감았다. 주일은 그날 오행종 밖에 꿇어앉았다. 그는 7일 동안 계속 꿇어앉아 있었다.
그 후 오행종에서는 그의 마음을 돌리려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그는 결국 다시는 오행종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그 순간들이 주일의 마음을 스쳐지나갔다.
시음종 노인은 저항을 포기했다. 이제 더 이상 삶에 대한 갈구도 없었다. 경지의 차이는 일체의 반항을 무력화시켰다.
주일의 눈은 맑아졌지만 두 눈에는 이전의 부드러움이 아닌 경지만이 번득였다. 그는 다시 고개를 숙여 여인의 미간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몸을 돌려 치호에게로 시선을 던지며 덤덤하게 말했다.
“날 대신해 나의 아내를 살펴주겠는가?”
치호의 몸이 순간 신기한 힘에 의해 바닥에서 솟아올랐다. 그는 놀란 눈으로 주일을 바라보았다.
“그⋯⋯.”
치호는 마음이 복잡했다. 그는 시체를 보살피고 싶지 않았다. 이 일을 거마족 장로가 알게 된다면 그의 앞날에 영향이 미칠 것이다. 하지만 죽음이 코앞에 이른 한 문정기 수련자의 부탁을 감히 거절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치호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허나 주일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넌 거마족의 소족장이니 고려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나처럼 될까 겁이 나겠지. 됐다!”
말을 마친 그의 시선이 이번에는 한제에게 닿았다.
“너, 날 돕겠느냐?”
몸에 가해지던 압박이 조금 약해진 것을 느끼며 일어선 한제는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나의 아내는 선옥이 있어야만 상태가 유지된다. 천 년마다 천 개의 선옥을 모아둬야만 하지. 쉽지 않겠으나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어쩌겠느냐?”
주일은 맑은 눈빛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느릿하게 물었다.
“저는 그렇게 많은 선옥을 모을 수 있다고 감히 자신할 수 없습니다.”
한참이나 고민에 빠져 있던 한제는 조용히 말했다.
빙그레 미소를 짓던 주일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다. 수천 년간 이어질 부탁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할 수는 없지!”
한제는 왠지 마음이 무거웠으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주일이 손을 아래쪽으로 휙 그었다. 그러자 지면에 아직 남아 있던 궁전이 붕괴하더니 그 궁전을 이루고 있던 선옥들이 하나하나 날아들었다. 그 선옥들은 공중에서 하나의 보탑을 이루었다.
두 개의 선물
주일은 품에 안은 여인의 시체를 마지막으로 바라본 뒤 보탑 쪽으로 떠밀었다. 여인의 시체는 그 탑 안으로 사라졌다. 주일이 오른손을 휘두르자 보탑은 곧장 줄어들더니 한제의 손에 떨어졌다.
보탑과 접촉한 순간 기이한 힘이 순간 한제의 체내로 스며들었고 그의 원신에 낙인이 하나 찍혔다.
“이 보탑에 나는 문정기의 경지를 남겨 높았다. 이 탑을 방출한다면 네가 원하지 않는 이상 나보다 강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탑의 반경 1백 리 안으로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
주일은 한제를 향해 빙그레 웃은 뒤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순간, 손톱만 한 붉은색 옥석이 그의 미간에서 빠져나와 한제를 향해 날아갔다.
그 옥석이 나타나자마자 선계 조각의 붕괴가 멎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옥석 안에서는 천도의 위엄이 발산됐다. 한제는 그 옥석을 본 순간 화범(化凡)하여 일반인으로 살던 당시 느꼈던, 상상을 초월하는 천도의 규칙에 담긴 힘이 다시 느껴지는 듯해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이건 네게 주는 첫 번째 선물, 문정의 결정이다. 지금의 너에게는 쓸모가 없겠지만 네가 문정기에 이르고 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시음종의 노인은 탐욕스런 눈으로 그 옥석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 옥석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 비록 어떤 신통력도 담기지 않았지만 수련자가 천도를 깨달아 문정기에 이르는 순간 천지간의 자연은 술처럼 빚어지기 마련이었다. 만약 그 문정의 결정을 손에 넣는다면 문정기에 이를 가능성이 3할은 더 높아질 것이다.
문정의 결정을 잃은 문정기 수련자는 영원히 경지가 퇴보할 뿐만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된다.
치호는 멍한 눈으로 그 문정의 결정을 바라보았다. 거마족의 소족장답게 견문이 넓은 그는 단번에 그 가치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에 그는 후회가 밀려왔다. 주일이 목숨보다 아끼는 여인의 시체라면 결코 대가 없이 부탁하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설마하니 문정의 결정을 내주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만약 미리 알았더라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부탁을 들어주었을 것이다. 더구나 주일은 이를 ‘첫 번째’ 선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세 번째 선물도 있을 것이다.
주일의 입가에 고고한 미소가 걸렸다. 그는 오른손으로 시음종의 노인을 가리켰다. 그러자 노인의 몸은 앞으로 이끌려 와 주일의 손에 붙들렸다.
“내가 네게 줄 두 번째 선물은 바로 이 자다! 시음종의 대장로여, 선택권을 주겠다. 여기서 죽겠느냐, 아니면 1천 년간 내 노예가 되겠느냐?”
시음종의 대장로는 맥없이 답했다.
“내 수명이 1천 년에 이르지 못하거늘 어찌 천 년 동안 노예가 되겠는가? 차라리 나를 죽여라.”
노인의 씁쓸한 목소리에 주일은 담담하게 말했다.
“죽기를 원한다면 그리해주지. 허나 네가 원한다면 너를 시체인형으로 만들겠다. 경지는 좀 낮아지겠지만 살 수는 있겠지. 선택은 네 몫이다.”
주일은 오른손을 들어 노인의 미간으로 가져갔다. 닿기만 하면 시음종의 대장로는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손가락 끝이 막 닿을 무렵, 노인의 이마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죽음의 그림자는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의 남은 수명은 비록 1천 년에 달하지 못하지만 만약 영변기 후기에 이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게다가 시음종에는 수명을 늘릴 수 있는 비법이 적지 않았다.
주일의 손가락 끝이 미간에 닿기 직전의 순간, 노인이 다급히 외쳤다.
“노예가 되는 쪽을 택하겠네!”
주일의 오른손은 멈추지 않고 더욱 빠르게 움직여 노인의 미간을 찍었다. 그와 동시에 반대편 손은 한제를 가리켰다. 한제의 몸도 역시 그 힘에 이끌려갔다.
한 줄기 기이한 빛이 노인의 미간에서 번쩍거리며 튀어나와 주일의 체내로 들어갔다가 반대편 손을 통해 빠져나오더니 한제의 이마로 들어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