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49
그 빛은 시음종 대장로의 모든 의식이었다. 한제는 이제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그 노인의 의식을 느낄 수 있고 심지어 그 원신을 소멸시킬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시음종의 대장로는 속으로는 한탄하며 부자연스럽게 한제를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 결코 겉으로 씁쓸함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노예 손태, 주인님을 뵈옵니다.”
치호의 후회는 점점 더 짙어져만 갔다.
‘영변기 수준의 노예라니, 만약 내가 얻었다면 곧장 거마족의 족장이 될 수도 있었을 터. 저자가 도와준다면 주작국을 제외한 어느 나라든 원하는 대로 갈 수 있을 텐데… 순간의 망설임이 이토록 큰 후회를 낳았구나.’
그 무렵, 주일의 몸은 이미 거의 다 타들어가 더는 응결될 수 없어 보였다. 그는 못내 아쉽다는 듯 사방을 둘러보다가 마지막으로 한제에게 말했다.
“그녀를 잘 돌봐주게.”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의 장면은 빠르게 변환됐다. 그는 아직까지도 자신이 얻은 수확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주일은 한제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며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그의 몸은 발끝부터 천천히 흩어졌으나 얼굴만은 줄곧 미소를 띠고 있었다.
“사부님, 만약 내세가 있다면 그때에도 사부님의 제자로⋯⋯.”
바로 그때, 한제의 손에 있던 보탑이 갑자기 빠져나와 커지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하얀 빛이 번쩍거리더니 보탑에서 나온 여인의 시체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이미 몸이 반쯤 사라진 주일은 놀란 기색 없이 덤덤한 눈빛으로 여인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정아, 허튼 짓 말고 돌아가!”
“당신은 죽어서는 안 돼!”
기이한 목소리가 여인의 시체로부터 천천히 흘러나왔다.
바로 그때, 여인의 한 마디에 갑자기 하늘이 울리면서 위층의 조각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이어 끝없는 회오리바람이 엄습했고 대지는 쩍쩍 소리를 내며 수만 갈래로 갈라졌다.
여인의 시체는 천천히 두 눈을 떴다.
펑, 펑!
여인이 눈을 뜬 순간, 대지가 갑자기 쪼개졌다. 그 갈라짐은 아래의 두 개 층까지 함께 붕괴시켰다.
한제와 치호는 경악하며 망설임 없이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시음종의 대장로는 뭔가를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나와라, 우(雨)의 일검(一劍)!”
여인의 외침에 한 줄기 금빛이 지면의 갈라진 틈 깊은 곳에서 튀어나왔다. 그 금빛이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한제는 강력한 검기가 엄습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인의 시체는 앞으로 한 발 내딛어 그 금색 빛을 쥐었다. 하늘을 뒤흔들 듯한 소리가 허무의 공간을 관통했고 선계의 모든 조각에 검이 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인의 시체는 그 금빛을 쥐고 옥처럼 고운 손으로 이미 타오르고 있는 주일의 가슴을 가리켰다. 순간, 주일의 원신은 그 금색 빛에 흡수됐다.
“나를 2천 여 년간 수호해온 공이 크니, 내 너를 이 선검의 혼으로 봉인하여 1만 년 동안 기른 뒤 선존(仙尊)에 봉해주겠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냉랭한 눈으로 한제 등을 훑어보았다. 그 눈빛이 마지막으로 닿은 곳은 한제였다. 그를 한참 동안 자세히 살피던 그녀는 고운 손으로 보탑을 가리켰다. 보탑은 즉시 줄어들어 한제에게로 날아갔다.
이어 그녀는 몸을 훌쩍 날렸다. 손에 쥔 금빛은 10만 척 길이의 금색 용이 되어 포효한 뒤 그녀를 태우고 하늘의 균열을 통해 허무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순간, 선계의 모든 조각에 있던 수련자들은 놀란 얼굴로 그 검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심지어 생사를 걸고 전투를 하고 있던 자들도 동작을 멈췄다.
★ ★ ★
선계의 정중앙에 자리한 어느 조각 위, 푸른 옷을 입은 문인은 고개를 번쩍 들고 기이한 눈빛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우(雨)의 선검! 그래, 오직 우의 선검만이 이런 기세를 낼 수 있지. 몇 번째 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기이한 눈빛으로 몸을 훌쩍 날려 빠르게 위로 솟아올랐다. 눈을 감고 한참 동안 뭔가를 찾는 듯하던 그는 번개처럼 움직여 검이 우는 소리를 찾아갔다.
★ ★ ★
선계의 서북쪽 어느 조각에서는 보라색 옷을 입은 노인이 놀란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한참 고민하다 발을 굴러 상공으로 솟아올랐다.
“우의 선검인가? 그 검이 있다면 우리 대나검종이 몇 배는 더 성장할 테지. 내가 가지고 있는 선수(仙獸)를 그 검에 깃들게 할 수만 있다면 본래 찾으려던 선혼을 조종하는 그 검 못지않겠지.”
그가 높은 상공으로 치솟았을 때, 머리에 뿔이 달린 거대한 기린이 공중에서 번쩍 나타났다. 노인은 몸을 훌쩍 날려 그 기린의 머리를 밟고 섰다.
기린은 머리를 휘두르며 코로 두 갈래의 흰색 김을 내뿜었고 그 순간 이 조각은 곧장 무너져 내렸다. 수많은 균열이 나타나고 지면이 갈라졌다.
거의 눈 깜짝할 순간에 사방은 허무에 집어 삼켜졌지만 노인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기린은 포효하며 그 허무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 ★ ★
한제가 자리한 조각은 위아래 할 것 없이 모든 층의 조각이 붕괴하는 중이었다. 치호 역시 잔뜩 겁에 질려 멍하니 사방을 둘러보았다.
“치호! 성라반(星羅盤)!”
한제가 소리쳤다.
하늘의 균열이 이어지며 떨어져 내렸고 대지는 이미 허무로 변해 있었다. 이 허무의 커다란 입은 모든 것을 끊임없이 집어삼키며 다가왔다.
치호는 한제의 고함에 정신을 차린 듯 저물대에서 성라반을 꺼내 앞으로 내던졌다. 그 순간 다시 한 갈래의 균열이 생겼다. 치호는 성라반 중앙으로 몸을 날렸다. 한제는 성라반 동쪽에 가부좌를 틀었다.
한편 시음종의 대장로 손태는 여인의 시체가 사라진 곳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가부좌를 틀고 앉은 한제의 곁으로 다가왔다.
“성라반, 거마족의 보물 중 하나지. 허나 안타깝게도 이것은 진짜 성라반이 아니구나.”
손태가 덤덤하게 말했다.
치호는 쓰게 웃으며 이를 악문 채 성라반을 조종했다. 성라반은 번개처럼 빠르게 허무를 향해 돌진했다.
“천우, 성라반은 이미 많이 망가져서 멀리 갈 수 없을 게다. 만약 봉인을 풀어준다면 너를 안전히 주작성으로 되돌려주지. 어떠냐?”
손태는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그가 아까 한제를 깍듯이 대한 것은 주일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일도 없는 마당에 영변기 중기 수련자인 그가 순순히 노예로 살아가기를 택할 리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노예로 사는 것은 죽느니만 못했다.
“급하게 답할 필요는 없다. 대가 없이 봉인을 풀어달라는 것은 아니다. 네게 화신기 후기 수준의 시체 인형 두 개를 주마. 그것들이 있으면 앞으로 네 안전은 충분히 보장될 것이다. 또한 내가 알고 있는 것 중 네가 알고 싶은 공법이라면 다 알려주마. 게다가 나는 선단(仙丹)과 묘약도 가지고 있다. 봉인만 풀어준다면 전부 다 주겠다.”
손태의 제안에 한제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높은 수준의 선배님께서 노예로 있기를 원할 리 없죠.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잘 압니다. 허나 저는 아직 봉인을 푸는 방법을 모릅니다. 안다고 해도 풀지 않겠지만요.”
손태가 미간을 팩 구기며 냉랭하게 외쳤다.
“이 녀석아, 정말 네가 주인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아니라 주일 선배님이 그리 여기신 거지요. 게다가 선배님이 봉인에서 풀려나면 가장 먼저 저를 죽일 거라는 건 바보라도 아는 사실입니다.”
주인에게 덤비다
손태는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한제를 한참이나 노려보더니 이내 크게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에도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
“말해봐라. 어떻게 봉인을 풀 테냐?”
한제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봉인을 푸는 법을 모른다고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손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제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망할 녀석,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가 어떤 꼴을 당할지 두렵지 않느냐? 난 주작성 시음종의 대장로이자 영변기 수련자다. 너 따위의 손에 죽지는 않는다! 네가 언제든 나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내게는 세 개가 아니라 네 개의 영혼이 있다. 네가 내 원신을 소멸시키는 순간, 내 관의 시체 인형 체내에 깃든 네 번째 영혼이 너를 죽일 것이다!”
한제는 빙그레 웃었다. 그의 눈빛은 한없이 침착했다.
“제가 봉인을 풀 수 없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리 말씀하시는 걸 보니, 선배님께 다른 목적이 있는 모양이군요.”
손태는 감탄한 듯한 표정으로 한제를 내려다보았다.
“과연 주일이 선택한 자답게 명석하구나! 그래, 이 봉인을 푸는 방법은 내가 찾겠다. 하지만 그전까지 너는 나와 함께 다녀야 한다. 일단은 너를 이곳에 묶어둬야겠구나. 그래야 안심할 수 있으니! 허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봉인을 풀고 나면 그에 대한 보상을 분명히 해주겠다고 맹세하마.”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죽으면 선배님의 세 번째 영혼에도 영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걱정 마라. 난 널 죽이지 않는다!”
손태는 냉소하며 손을 들어 한제를 쥐었다.
‘노예의 인장은 안정적이지 못하나 보탑이 있다면 손태는 너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
주일은 사라지기 직전 한제에게 이 말을 전했다.
손태가 한제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한 줄기 하얀 빛과 함께 보탑이 한제의 저물대에서부터 솟아올라 하얀 빛을 사방으로 발산했다. 그 빛에는 문정기에 이른 치정(痴情)의 경지가 녹아들어 있었다.
손태는 비참한 비명을 지르며 얼른 뒤로 물러났다.
손태에게 네 번째 영혼이 있다는 말이 정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보탑으로 그를 능히 막아낼 수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한제가 발을 구르자 보탑이 맹렬히 앞으로 돌진했다. 그는 두 눈으로 기이한 빛을 번득이며 냉소했다.
“이 보탑에 어린 경지가 다른 자에게는 그저 접근을 막는 정도의 역할을 할 뿐이지만 손태 네게는 엄청난 효력을 가진다. 주일 선배가 이미 그리 손을 써두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