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52
미래의 사형
허무 속에서 기린을 타고 있던 노인 역시 검의 소리를 들었다. 그의 뒤로 멀리서 검의 무리가 나타나 휙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노인의 눈에 탐욕이 드러났다. 저 검들은 모두 선검이었다. 만약 저것들을 거두어 제자들에게 하나씩 나눠준다면 대나검종은 천운성 최고의 종파가 되어 천운자를 억누를 수 있을 터였다.
그 선검 안에는 참배의 검혼(劍魂)이 포함되어 있었다. 만약 그 앞을 가로막는다면 사방에 존재하는 모든 비검이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그의 경지라면 선검에 포위된다고 해도 죽지는 않겠지만 허겁지겁 도망쳐 빠르게 천운성으로 돌아가야만 할 터였다. 그랬다가는 우검을 얻을 기회는 사라진다.
노인은 얼른 곁을 지나쳐간 검의 무리를 뒤쫓았다.
수많은 검의 무리가 휘젓는 사이 허무 속에 존재하던 마수들이 모두 숨어버린 덕에 허무의 공간은 오히려 안전해졌다. 정말로 운이 나쁘지 않은 이상 비검의 흔적을 쫓다 보면 마수를 맞닥뜨릴 가능성은 무척 낮았다.
많은 수련자는 선검을 쫓아 허무의 공간으로 들어간 직후에는 조심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는 마음 놓고 선검만 쫓아갔다. 더구나 허무의 공간이 위험한 것은 방향을 판별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선검이 방향까지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선검의 속도는 너무나 빨라 허무의 공간에 들어온 수련자들끼리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선검을 한두 자루 차지하겠다는 탐욕에 덤벼든 자들은 모두 그 선검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때, 허무의 공간 속 어느 곳에서는 일고여덟 명의 수련자가 가로로 늘어서서 각자의 법술을 펼쳤다. 그들의 전방으로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무리의 선검들이 휙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그 순간, 펑펑 소리와 함께 그중 다섯 명이 심장을 관통당해 목숨을 잃었고 남은 사람들은 기겁하며 전력을 다해 세 자루의 선검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그들의 이마는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들에게 붙잡힌 세 자루의 비검은 강렬한 검광을 번득이며 미친 듯이 부딪히려 들었다.
“오래 버틸수록 선검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한 노인이 창백해진 얼굴로 소리쳤다. 다른 사람들은 속으로 비명을 질러댔지만 두 눈에는 기대감 같은 것이 어려 있었다.
그때, 또 한 무리의 선검이 멀리서 다가왔다. 하지만 수련자들을 전력을 다해 세 자루의 선검을 붙드는 데 집중했다.
한데 그 세 자루의 비검은 격렬하게 우는 소리를 내더니 순간 우뚝 멈추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방향을 돌려 이 수련자들을 향해 맹렬히 다가왔다.
수련자들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노인은 선검에서 손을 떼고 황급히 달아났다. 그러자 본래도 안정적이지 못했던 금제가 곧장 붕괴해 버렸다.
검들이 서로 교차하는 사이 피와 살이 사방으로 튀었다. 검의 무리는 선검을 붙잡고 있는 수련자들을 죽인 후 머지않아 앞서 도망친 노인까지 따라잡아 한 덩이 핏물로 바꾸어버렸다.
그때, 한 줄기 검은 빛이 스쳐 지나갔고 이들의 저물대가 사라졌다.
잠시 후, 그 검은 빛은 거대한 나침반으로 변했다. 치호는 손에 든 저물대를 한쪽에 내려놓고 웃었다.
“천우, 벌써 37번째 저물대일세. 수확이 아주 넘쳐나.”
한제는 살짝 웃었다. 두 사람은 지금껏 선검에 달려든 수련자를 숱하게 봐왔지만 그중 누구도 성공하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그들의 저물대 중 몇몇은 선검에 훼손됐고 나머지는 그들의 손에 들어왔다.
성라반의 속도는 상당해 선검들에도 거의 뒤지지 않았다. 덕분에 뒤처지지 않고 수많은 저물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한제는 성라반을 조종하고 치호는 저물대를 수거했는데 둘의 호흡이 꽤나 잘 맞았다.
수련자 몇몇은 성라반을 알아보고는 빼앗으려 달려들기도 했으나, 한제와 치호의 연합에 이제 모두 고인이 되었다.
두 사람은 검은 빛이 되어 검의 무리 하나를 멀찍이서 따라갔다.
한데 그때, 그늘진 얼굴의 중년 남자가 원판을 밟고 서서 선검 무리를 뒤쫓고 있던 중 멀리서 다가오는 한제와 치호를 발견했다. 그는 성라반을 보고는 눈을 번득이더니 발을 살짝 굴렀다. 순간 그가 밟고 있던 원판이 사라졌다. 그는 그대로 한제 일행을 향해 다가갔다.
“거기 두 도우, 나도 같이 타도 되겠소?”
그는 굉장히 겸손하게 말하면서도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화신기 후기야!”
치호가 눈을 번득이며 신식을 통해 조용히 말했다.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어떻게 할까? 치호 자네가 정하게.”
지금 성라반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를 낸 상태가 아니었다. 그 속도를 완전히 발휘하면 화신기 후기 수련자 하나 정도야 쉽게 따돌릴 수 있었다.
치호는 하하 웃으며 벌떡 일어나서는 포권을 취하며 신식으로 말했다.
“천우 자네는 화신기 후기인 홍접과도 맞붙어 밀리지 않았고 난 화신기 중기일세. 화신기 후기 수련자 하나 상대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군.”
말을 마친 그는 앞으로 발을 굴러 성라반에서 날아오르며 입으로 말했다.
“이 나침반에 오르고 싶다면 실력을 먼저 보이게!”
중년 남자는 하찮다는 듯 피식 웃더니 거침없이 말했다.
“거마족이로군. 꺼져!”
말을 마친 그가 오른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쉭!
한 줄기 회색 기운이 화살이 되어 치호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 순간, 사방이 순식간에 살의로 차올랐다.
“살(殺)의 경지?”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즉각 상대의 경지를 알아보았다. 그가 풍기는 살기는 어찌나 짙던지 그의 본체가 풍기는 살기에 비해서도 결코 모자라지 않았다.
“살의 경지다!”
치호는 소리치며 두 손으로 주먹을 쥐어 매섭게 휘둘렀다. 순간 오만한 기운이 치호의 몸으로부터 발산됐고 그의 온몸은 쩌적쩌적 소리를 내며 몇 배로 부풀어 올라서는 수십 척 높이의 거인이 됐다. 그의 미간에서 도끼 모양의 반점이 빠르게 번쩍거렸다.
그 도끼는 거마족의 중요한 보물로 따로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주일이 조종했던 홍접과의 싸움에서 부서졌음에도 다시 응결시켜낼 수 있었다. 다만 한 번 부서질 때마다 그 위력이 조금씩 약해졌다.
치호는 응결된 도끼를 손에 들고 마치 마신(魔神)처럼 앞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휘둘렀다.
펑!
회색 기운은 붕괴해 흩어졌다. 치호는 손에 든 도끼를 가볍게 흔들며 몸을 뒤로 수십 척 물렸다. 그는 푸른 정맥이 울툭불툭 튀어 오른 몸으로 크게 웃기 시작했다.
“통쾌하다! 다시 해보시지!”
중년 남자는 잠시 멈칫 하더니 이내 냉소하며 저물대를 두드렸다. 순간 그 안에서 한 조각의 수정이 떠올랐다. 중년 남자가 살짝 건드리자 그 수정은 곧장 녹아내려 액체가 되더니 이내 마름모 모양으로 변해 앞으로 날아갔다. 중년 남자가 중얼거렸다.
“한 번 부딪히면 어떻게 되나 봐라!”
그 수정을 본 순간, 치호는 온몸에 한기를 느끼며 마음까지 혼란스러웠다. 한제는 그 수정을 주시하다가 빠르게 말했다.
“치호, 가세!”
치호는 하하 웃으며 몸을 돌려 성라반 위에 올라서더니 말했다.
“역시 화신기 후기 수련자를 이기기란 무리였군. 먼저 가겠네!”
중년 남자는 싸늘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마름모 모양의 수정은 더욱 빠르게 성라반 쪽으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나침반은 곧장 번쩍하며 저 멀리 질주해갔다. 수정도 매우 빨랐지만 성라반에는 미치지 못했다.
중년 남자는 안색이 변하더니 수정을 붙잡고 놓칠 수 없다는 듯 뒤따랐다.
한참 뒤, 그 중년 남자는 눈을 번득이며 그 자리에 멈춰서는 성라반이 사라진 쪽을 한동안 주시하며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천운성의 힘의 평형을 위해 대나검종이 우의 선검을 얻지 못하도록 막으라는 스승님의 지시만 아니었다면 저 두 녀석과 재미나게 붙어봤을 텐데 아쉽군. 흥! 대나검종, 너희가 비록 우리 천운종과 동급에 놓여 있기는 하나 천운자 스승님이 직접 손을 쓴다면 네놈들 따위는 눈에 차지도 않는다는 것을 모르느냐.”
그는 냉랭하게 먼 곳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리며 한 마디 내뱉었다.
“그 나침반 위에 있던 녀석은 이 수정이 뭔지 알아챈 모양인데 식견이 생각보다 넓군!”
★ ★ ★
“천우, 방금 그 마름모 모양의 수정은 대체 뭔가? 왜 나를 만류한 건가? 나는 거마족 특유의 강인함이 있으니 그자가 두렵지 않았는데 말일세.”
치호는 나침반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물었다.
한제는 나침반을 조종하며 말했다.
“살인을 하면 살기(殺氣)를 응집하게 되는데 이것이 쌓이면 살기(煞氣)로 변한다네. 이 살기(煞氣)가 농축되면 액체가 되고 그것이 진해지면 수정이 되지. 그것은 살기의 수정이었어. 자네가 살(殺)의 경지를 익히지 않은 이상 그 액체에 닿는 순간 원신에 큰 부상을 입게 되네!”
치호는 조용히 좀 전에 수정이 나타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금 마음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치호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한제 역시 속으로 한탄했다.
‘그자의 수준은 홍접보다도 높아. 특히 그의 살의는 홍접이라도 전력을 다해야만 막아낼 수 있었을 거야. 내 본체라도 그것을 막아낼 수 있었을지 모르겠군. 본체⋯⋯ 얼마나 많은 영력을 모아야 세 번째 탈변을 할 수 있을까? 이번에 주작성으로 돌아가 선옥의 선기를 호흡한다면 그럼 어쩌면…’
머지않아 그들은 또 다른 선검 무리를 뒤쫓기 시작했다.
그 무렵, 점차 허무의 공간 전방에서 선계의 조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조각 안에서 짙은 검기가 흘러나왔다. 마치 수십만 척에 달하는 빛이 사람의 접근을 막기 위해 찌를 듯 달려드는 것 같았다.
무수한 선검이 휙 달려들었다. 이곳은 바로 우의 검혼이 있는 곳이었다.
이 선검들은 하나하나 검광(劍光)이 되어 질주했다. 성라반은 빠르게 검광을 뒤쫓아 허무의 공간으로부터 눈 깜짝할 사이에 선계의 조각으로 진입했다.
“저 여인은!”
한제가 처음으로 본 것은 저 멀리 허공에 뜬 채 긴 머리를 휘날리고 있는 하얀 옷의 여인이었다. 그녀의 앞에는 두 마리의 금룡이 있었다.
치호 역시 그 여인을 보자마자 놀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제는 성라반을 회수한 후 공중에 떠올랐다.
두 마리 금룡은 포악하게 포효했다. 허무의 공간을 지나 각 조각에서 날아온 선검들은 모두 그 두 마리의 금룡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선검이 날아와 한데 교차되면서 또 한 마리의 금룡을 이루었다.
세 마리의 금룡은 몸을 꿈틀거리며 하얀 옷의 여인을 맴돌았고 음산한 기운이 가득한 눈으로 사방을 훑어보았다.
그때, 또 하나의 선검 무리가 허무의 공간에서 날아왔고 그 뒤를 따라온 수많은 사람도 속속 도착했다. 선검을 놓치지 않고 따라온 것으로 미루어 이들의 속도 또한 매우 빠를 것이다.
선검들은 끊임없이 날아왔고 수련자 역시 갈수록 많아졌다. 이들은 모두 탐욕이 가득한 눈으로 금룡들을 주시했다.
선계에 들어온 자는 모두 각자의 수련성에서 빼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수련자로 심신을 통제하는 능력 또한 강한 이들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탐욕을 억누르며 누구 하나 직접 나서지는 않고 있었다.
“정아, 그만 둬. 이미 세 자루의 우검(雨劍)이 있으니 충분해.”
한 마리 금룡의 미간에서 미약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