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54
푸른 옷의 노인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마치 번개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하얀 옷의 여인 곁으로 다가가 선검을 잡아채려 했다.
하지만 그가 검을 쥐려한 그 순간, 번개보다 몇 배는 더 빠른 속도로 중년 문인 하나가 튀어나와 먼저 그 선검을 잡아챈 뒤 뒤쪽으로 멀리 달아났다.
“하하, 능천후! 이 천묵자는 네 자루의 선검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한 자루만 있으면 되지. 그럼 이만!”
“천묵자 감히 내 물건을 훔쳐다가니! 너희 천묵성(天墨星)은 반드시 우리 대나검종의 손에 멸망할 것이다!”
푸른 옷의 노인은 분노에 차 소리를 질렀다. 천묵자는 동년배의 수련자 중 가장 속도가 빠른 수련자였다. 그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노인은 그저 멀리 달아난 그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하하, 능천후. 자네도 늙었군. 자네와 나의 결전은 어차피 피할 수 없네. 언제든 기다리지!”
천묵자는 능천후의 위협에 웃음으로 응대하며 더욱 속도를 높였다. 허무의 공간에 어느새 검은 구멍 하나가 나타나 있었는데 그 중년 문인은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 검은 구멍은 그의 고향인 천묵성과 연결되어 있었다.
“굉장한 속도다! 성라반보다도 몇 배는 더 빨라!”
한제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천묵자라는 이가 남긴 잔상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법술의 선의(仙意)로도 가릴 수 없는 미친 사랑
흰 옷의 여인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본 척도 않고 또 다른 금룡의 몸에 오른손을 대었다. 그 금룡은 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금빛을 잃었고 뱀처럼 굽은 선검으로 변해 허공에 둥실 떴다.
능천후는 눈을 번득이며 그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때, 그의 뒤쪽에 자리한 천운자의 커다란 손 역시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얀 옷의 여인은 냉랭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살짝 흔들었다. 그러자 능천후가 비명을 질렀다. 그의 상반신이 쫙 소리와 함께 쪼개졌고 그의 가슴팍에는 검은색 지문이 나타났다.
능천후는 한 움큼 선혈을 토해냈다. 하지만 그의 오른손은 조금도 느려진 기색 없이 선검을 향해 뻗어나갔다.
하얀 옷의 여인의 몸에 드리운 죽음의 기운은 이미 최고점에 달한 상태였다. 그녀는 슬픈 눈빛을 드러내며 조용히 말했다.
“검을 원한다면 주겠다. 하지만 검혼(劍魂)은 내가 가져야겠다!”
뱀 모양의 선검에 푸른 옷의 노인의 손이 닿은 순간, 한 덩어리의 금빛이 위로 떠올라 여인의 손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빛은 곁에 있던 금룡의 미간에 스며들었다.
“이 검은 나의 것이다!”
능천후는 하하 웃으며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애써 참으며 뱀 모양의 선검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뒤쪽을 향해 내리쳤다.
그의 뒤쪽에서 나가오던 거대한 손은 순간 움찔하더니 옆으로 비켰다.
그러더니 더는 쫓아오지 않고 곧장 뒤로 물러나서는 치호와 싸웠던 그 중년 남자를 움켜쥔 뒤 빠르게 소용돌이로 들어가 사라졌다.
그것이 사라진 순간, 소용돌이 안에서는 다시 천운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능천후, 네가 선검을 얻은 것도 하늘의 뜻이니 더는 널 막지 않겠다. 잘 해봐라.”
능천후는 하하 웃으며 눈을 번득이더니 흰 옷 여인의 곁에 내려와 음침하게 말했다.
“네 공격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지문을 찍었는데도 날 죽이지는 못하는구나. 선인이니만큼 너를 죽이지는 않겠다. 허나 남은 두 자루의 선검에 자리한 검혼은 더 이상 탐하지 마라!”
검혼이 없는 선검이 크게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 깃든 신통함은 기대할 수 없어 나중에 다시 제련해야만 했다.
여인의 눈에 깃든 슬픔이 더욱 짙어졌다.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쉰 뒤 오른손으로 다시 금룡을 건드렸다. 그 금룡은 포효하더니 한 자루의 큰 검으로 변해 허공에 둥실 떴다.
능천후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더니 몸을 날려 왼손으로 그 검을 쥐려했다.
하얀 옷의 여인은 작게 한숨을 쉰 뒤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순간, 그녀의 몸에 남아 있던 선력이 미간으로부터 쏟아져 나와 그녀를 중심으로 사방에 약 1백 척 길이의 선막(仙幕)을 만들어냈다. 능천후는 곧장 그 막 바깥으로 밀려났다.
그는 분노에 찬 소리를 지르며 오른손으로 쥔 선검을 휘둘렀다. 매섭게 휘두른 선검에 부딪힌 선막은 휘청거렸지만 깨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능천후가 단념할 리 없었다. 그는 빠르게 선검을 휘두르며 법술로 신통력까지 발휘해 선막을 공격했다.
남아 있는 선력을 다 써버린 여인의 두 눈이 천천히 감겼다. 그리고 그녀는 순간 짙은 죽음의 기운으로 뒤덮였다.
“주일⋯⋯ 난 선군(仙君)의 진혼(眞魂)이 아니다. 선군의 진혼은 어떤 감정도 가지지 않아. 난 어떻게 생겨났는지도 모를 잔혼(殘魂)일 뿐이다. 2천 년이 넘는 세월동안 날 보살펴준 너를 계속 봐왔다. 그리고 네가 네 원신을 태우던 그 순간 알았지. 난 네 치정(痴情), 그 미친 듯한 사랑으로 인해 태어났다는 것을⋯⋯. 고맙다. 만약 내세가 있다면 잔혼이 아니라 네 곁의 배필로 태어나고 싶다.”
마지막으로 남은 금룡의 미간에 있던 보라색 안개에서 애통한 포효가 흘러나왔다.
“정아!”
여인의 몸이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그녀는 마지막 발악을 하듯 오른손을 들어 큰 검을 건드렸다. 한 덩어리의 금빛이 그 큰 검에서 떠올라 천천히 마지막으로 남은 금룡의 미간에 스며들었다.
모든 것을 마친 그녀의 입가에 처음으로 기쁨에서 비롯된 미소가 내걸렸다. 그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하늘과 땅, 그리고 우리를 만날 수 있게 해준 운명에 감사해. 법술의 선의(仙意)로도 네 오랜 미친 사랑을 가릴 수는 없었어. 수천 년에 달하는 오랜 보호가 날 살리는 기적을 만들었다. 네 미친 사랑은 하늘을 감동시켰고 땅을 움직였다. 나를 위해 생명까지 내버린 너를 위해 나 역시 이 삶을 버릴 거야. 약속하자 내세에서도 이번 삶을⋯⋯ 잊지 말자고⋯⋯.’
“안 돼!”
금룡의 미간에 자리한 보라색 안개에서 참혹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곧이어 한 줄기 맹렬한 검광이 그 안에서 튀어나와 주일의 모습이 되었다. 그의 정수리에서 네 개의 금색 빛이 끊임없이 융합됐고 결국 만들어진 한 자루의 금빛 검의 허상이 그의 몸으로 스며들며 금색 섬광이 번쩍거렸다.
하지만 그 금색 빛에 부드러움은 없었다. 깊은 슬픔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금룡은 주일이 빠져나간 뒤 곧장 무너져 내렸다. 점점이 부서지는 금빛 속에서 여인이 사용할 법한 단검이 나타나 거대한 검 옆으로 떠올랐다. 마치 부부 같은 모습이었다.
여인은 눈을 감은 채 떨어져 내렸다. 그녀의 죽음에 따라 선막도 사라져 버렸다.
“왜! 어째서 이런 짓을… 난 이미 죽었는데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네가 죽었을 때는 내가 살았고 내가 살았을 때는 네가 죽으니, 우리의 운명은 어째서…”
주일은 여인의 시체를 끌어안으려 했지만 그의 몸은 마치 투명한 것처럼 아무 것도 안을 수가 없었다.
그의 눈에 드리운 슬픔은 가히 하늘과 땅을 감동시킬 만했다.
여인의 시체는 주일의 몸을 관통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선막이 사라진 순간, 부부처럼 나란히 서 있던 큰 검과 작은 검 역시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무언가에 이끌리기라도 한 것처럼 두 자루의 선검은 여인의 시체를 맴돌며 떨어져 내렸다.
끊임없이 추락하는 여인의 시체를 바라보는 주일의 두 눈에 드리운 슬픔의 빛은 끝을 모르고 짙어졌다.
‘정아⋯⋯.’
‘날 정아라 부르지 마라.’
‘허나, 정아라는 그 이름, 꽤⋯⋯ 마음에 든다.’
‘난 어떻게 생겨났는지도 모를 잔혼(殘魂)일 뿐이다. 네 치정(痴情), 그 미친 듯한 사랑으로 인해 태어난⋯⋯.’
능천후는 두 자루의 선검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동시에 그의 두 눈은 두려움을 안은 채 주일을 살폈다.
멀찍이서 이 모든 것을 본 한제의 마음에 슬픔이 차올랐다.
‘그가 살면 그녀가 죽고 그가 죽으면 그녀가 살고⋯⋯. 이 역시 생사의 또 다른 부분이구나.’
이 순간, 한제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도가(道家)에서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 했다. 한제는 또 한 번 그 말을 체득했다.
삶은 삶이고 죽음은 죽음이다. 이는 생사의 경지가 갖는 첫 번째 함의에 불과했다.
한제는 4파 연맹국이 설역국에 멸망당하는 것을 보았고 그에게 깃털 부채 법보를 넘겼던 화신기 수련자를 보았다. 그는 생이 끝에 달한 순간에도 설역국을 멸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리고 그를 보며 한제의 경지는 은연중에 벽을 돌파하려는 기색을 보였다.
삶과 죽음은 얇은 선 하나를 사이에 두었을 뿐이었다. 때로는 분명 죽었지만 누군가의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이도 있었으며, 분명 살아 있으나 변화하지 않아 죽음의 기운을 띠는 이도 있었다.
한제의 눈이 점점 더 밝아졌다.
주일의 죽음은 정아의 삶을 야기했다. 정아의 죽음은 다시 주일의 삶을 야기했다. 운명의 장난 같은 삶과 죽음이었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의 생사는 끝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로 마음속에 존재했다.
삶이지만 삶이 아니었고 죽음이지만 죽음이 아니었다.
한제는 또다시 뭔가를 깨달았다.
생사의 경지를 간파하려는 듯한 기운이 그의 몸에서 솟아올랐다. 바로 이 순간, 그의 생사의 경지가 갑자기 맹렬하게 진동했다.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자신의 경지가 곧 상승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화신기 중기가 머지않았다.
화신기에 이른 뒤에는 경지에 대한 깨달음이 수준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경지를 돌파하면 수준을 돌파하는 데에는 십 년도 걸리지 않았다.
말하자면 그릇에 비유할 수 있었다. 주먹만 한 그릇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내용물은 그 정도에 불과하다. 경지를 돌파하는 것은 그 그릇을 몇 배로 불리는 일이었다. 비록 지금의 단계에서 그 안에 든 내용물은 주먹만 한 그릇에 담겨 있던 그 정도에 불과하지만 한계가 사라지면 그 내용물은 더 늘어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그 몇 배로 불어난 그릇을 다 채웠을 때 경지를 돌파하게 되는 셈이었다.
이 무렵, 대나검종의 검존(劍尊) 능천후는 떨어지고 있는 여인의 시체에 거의 다가가고 있었다. 손을 쭉 뻗은 그의 목표는 그녀의 시체 곁에 맴도는 크고 작은 두 자루 선검이었다.
주일은 멍하니 여인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은 지금 텅 빈 상태로 아무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능천후의 행동은 마치 끓는 기름에 차가운 물을 뿌리듯 주일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그는 몸을 훌쩍 날렸고 체내에서 금빛이 솟아올랐다. 순간, 그는 거대한 검의 허상이 되어 번개처럼 빠르게 휙 날아들었다.
하늘이 어두워졌고 대지에는 균열이 일었다.
능천후는 안색이 변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몸을 돌리고 기합을 넣은 그는 두 손을 합장했다가 벌렸다. 그리고 몸 앞에 나타난 검광을 앞으로 떠밀어 주일에게 날려 보냈다.
펑!
검광은 곧장 무너져 내렸고 노인은 한 움큼 피를 토해냈다. 그의 가슴팍에 자리한 검은색 지문은 곧장 확산되어 두 배는 더 넓어졌다.
“이 선인의 지문은 너무나 강력하구나. 오늘은 부상을 입어 전력을 발휘할 수 없으니 일단 한 자루의 선검을 차지한 것에 만족해야겠다!”
능천후는 몸을 돌리더니 오른손으로 허공을 휙 그었다. 순간 허무의 공간에 거대한 입구가 벌어졌다. 천운성의 대나검종에 이를 수 있는 입구였다. 그는 몸을 훌쩍 날려 그 입구으로 들어가려 했다. 주일이 만들어낸 거대한 검의 허상은 더욱 빠른 속도로 능천후에게 달려들었다.
능천후는 사색이 되어 입구 안으로 들어가면서 동시에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바닥에 엎드려 있던 기린은 머리를 흔들며 한 줄기의 푸른빛이 되어 그와 함께 그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그 구멍은 빠르게 맞물렸지만 주일이 이룬 검의 허상은 그 구멍이 맞물리던 순간 그 안을 뚫고 들어갔다.
그자를 죽이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
주일의 돌진과 함께 대나검종의 재난이 시작됐다.
모든 것은 아주 빠르게 진행됐다. 거의 몇 초 만에 발생한 일이었다. 벌어진 틈이 사라짐과 동시에 사방은 순식간에 고요해졌고 사방에 자리하고 있던 서로 다른 경지의 수련자들은 분분히 곧 땅에 이를 것 같은 여인의 시체로 시선을 옮겼다.
그 여인의 시체 곁에는 두 자루의 선검이 맴돌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그 검을 향해 있었다.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여인의 시체가 땅에 닿은 순간, 갑자기 여인은 몸을 움찔 움직이더니 두 자루의 선검과 함께 한 줄기 하얀 빛이 되어 수많은 사람 중 한제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날아들었다.
한제는 흠칫 놀란 얼굴로 이를 악물고 오른손을 흔들었다. 순간 그의 손에 보탑이 나타났다. 여인의 시체는 눈 깜짝할 사이 두 자루의 선검과 함께 그 보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전부 한제를 향했다. 그 눈빛에는 탐욕이 가득했다.
치호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한참 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