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55
돌파
가라앉은 눈빛의 한제는 보탑을 거두었다. 그 여인의 시체와 선검이 그 보탑으로 날아들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 덕분에 그는 이곳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노리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도우, 그 두 자루의 선검 중 한 자루만 내게 넘기게. 그러면 우리 혼원종(混元宗)의 여덟 사람은 자네의 안전을 보장해주겠네. 어떠한가?”
검은 옷의 노인 하나가 앞으로 몇 걸음 나서며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뒤에 있던 일곱 사람이 곧장 그를 따라 앞으로 나섰다. 탐욕어린 눈빛을 숨기지도 않은 채, 그들은 서슴없이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왔다.
‘화신기 후기 세 명, 나머지는 모두 화신기 초기⋯⋯.’
한제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음이 묵직해졌다.
주위의 수련자는 총 1백 명이 넘었고 모두 화신기 수준이었다. 혼자서 대항할 수는 없었다.
“혼원종, 무슨 수작인가? 도우, 내게 한 자루를 넘긴다면 우리 천마문(天魔門)에서 안전을 보장해주겠네!”
짙은 남색 옷의 중년 남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더니 경멸어린 눈빛으로 혼원종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혼원종이고 천마문이고 모두 속이 시커멓군. 그 두 자루의 선검은 우리 천지육합파(天地六合派)에서 반드시 손에 넣을 것이다!”
그 목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빠르게 튀어나와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이는 연쇄반응을 일으켜 거의 1백 명에 달하는 수련자가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한제는 미간을 구겼다. 그중 한 사람은 벌써 가까워진 상태였다. 나이가 꽤 있는 그 노인은 회색 옷을 입고 있었고 눈에는 탐욕이 가득했으며, 경지는 화신기 중기였다.
한제는 자신이 지금 도망친다고 해도 소용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후퇴했다가는 다시는 기세를 회복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오른손을 들어 그 노인을 가리켰다. 생사의 경지가 곧장 솟아올랐다.
그 회색 옷의 노인은 접근해오며 한제를 응시했다. 상대의 손짓은 아무런 영력의 파동도 없었지만 기이한 경지가 그를 엄습해왔다.
“화신기 초기의 경지로 감히 이 몸 앞에서 으스대다니!”
노인은 경멸하는 듯한 말을 내뱉으며 더욱 빠르게 달려들었다. 저자가 사용한 경지의 공격은 너무나 거칠었다. 조심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풋내기 같았다. 더구나 화신기 초기 수련자가 내뿜은 경지의 공격은 화신기 중기 수준인 그에게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었다.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노인은 흉악하게 웃으며 원신의 경지를 움직였다. 상대의 경지를 완벽하게 깔아뭉갤 생각이었다.
한제는 침착한 눈빛으로 중얼거리듯 외쳤다!
“무엇이 생(生)인가!”
이 순간, 그의 눈빛은 맑고 깨끗했다. 그는 지금 4파 연맹국에서 만났던 그 불나방처럼 무모한 화신기 수련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의 경지를 통한 공격을 받은 회색 옷의 노인은 순간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는 자신의 몸을 엄습한 상대의 경지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력을 다해 자신의 경지를 동원해도 그것에 막아설 수 없었다. 그의 정신은 부지불식간에 천도의 윤회에 말려든 것 같았다.
충격을 받은 그는 얼른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얼마 물러나지도 못한 그때 창백해진 얼굴로 입가에 선혈을 주르륵 흘린 그는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좌선했다.
한제의 뒤에 회색 빛 고리가 하나둘 나타났다. 그 속에서 회색빛이 천천히 발산되며 거대한 그림을 그려냈다. 흑백의 그 그림은 매우 흐릿해 바람이 불면 그대로 흩어질 것 같았고 무척 단조로웠다. 하지만 그림이 나타나자 한제에게 달려들던 모든 수련자는 놀란 표정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저건 무슨 경지지?”
“저 흑백 그림은 왜 이렇게 두려운 마음이 들게 하는 거야?”
“윤회… 저것은 윤회생사축(輪回生死軸)이야!”
흑백은 간단하지만 그 검은색은 죽음을 하얀색은 삶을 대표했다.
한제의 모습은 그 거대한 그림 앞에서 회색 옷의 노인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무엇이 사(死)인가?”
그 회색 옷의 노인 뒤쪽에서 갑자기 일련의 허상이 나타났다. 그 그림자 속에서 두 명의 백발노인을 볼 수 있었다. 두 노인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닥에 꿇어앉은 한 중년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노인의 젊은 시절 모습인 듯 그와 무척 닮아있었다.
노인의 경지는 효(孝)였다.
하지만 순간, 그 허상은 붕괴하더니 바로 그 흑백 그림이 대신했다.
회색 옷의 노인은 경련을 일으키며 두 눈을 번쩍 뜬 뒤 엄청난 피를 다시 토해냈다. 그의 두 눈에 빛이라곤 없었고 경지도 파괴됐으며 도심(道心) 역시 소멸됐다. 경지를 잃은 탓에 그의 수준 역시 화신기에서 끊임없이 떨어져 내렸다.
한제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앞으로 날려 오른손 검지로 노인의 미간을 두드렸다.
펑.
노인의 머리는 피와 살덩이로 터져 흩어졌고 몸은 푹 고꾸라졌다.
‘나의 수준은 화신기 초기에 불과하나 그 경지는 방금 화신기 중기에 이르렀다. 생사의 경지가 두 번째 층에 이른 것이다. 그전에도 화신기 후기였던 홍접과도 맞서 싸웠던 나에게 감히 네가⋯⋯.’
한제는 기이한 눈빛을 번득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 눈빛에 사방의 모든 수련자들은 분분히 침묵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깃든 탐욕은 여전했다.
그들이 보기에 한제의 경지는 상당했지만 그는 혼자였다. 오늘 이곳에서 죽을 것이 분명했다.
한제는 덤덤한 눈빛으로 조용히 말했다.
“너, 아직도 안 나올 테냐?”
한제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하늘에서 우르릉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거대한 보라색 관이 나타났다. 그 관은 별안간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한제의 수십 척 앞에서 부서졌다. 그 충격에 사방으로 폭풍이 일었다.
순간, 주변의 수련자들은 놀란 얼굴로 물러났다.
관 위에는 한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는 모습을 드러낸 뒤 눈도 떼지 않고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복잡한 빛이 어려 있었다.
“내가 여기 있는 걸 알았던 것이냐?”
노인이 느릿하게 말했다.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지금껏 따라오지 않았나.”
노인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시음종!”
누군가가 노인의 정체를 알아보더니 안색이 크게 변해 소리쳤다. 그리고 그 한 마디에 대부분의 수련자들은 안색이 변했다.
“꺼져!”
노인이 미간을 팩 구겼다. 그리고는 짜증난다는 듯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가장 가까이 있던 두 수련자가 피를 토하며 한참 뒤로 떠밀렸다.
“영변기!”
주위의 수련자들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뒤로 물러났다.
시음종의 노인은 눈을 굴려 한제를 바라보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아, 거래를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내가 너를 도와 이 녀석들을 죽여주면 넌 내게 1천 년의 자유를 주는 거지. 그 1천 년 동안 난 너를 찾지 않을 테니 너도 내 원신을 파괴하지 않는 거다. 어떠냐?”
한제가 웃으며 말했다.
“천 년은 너무 길군. 게다가 내가 만약 천 년 안에 죽으면 어찌할 것이냐?”
노인은 멍한 얼굴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화가 난다는 듯 소리쳤다.
“주일! 내가 그 자의 꾐에 빠졌구나. 저자가 만약 1천 년을 살지 못한다면 내가 어찌 원신을 바치지 않을 수 있으리!”
노인의 두 눈은 시뻘게졌다. 답답함에 미칠 것 같았다. 그는 맹렬히 한제를 노려보더니 몸을 훌쩍 날려 사방의 수련자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모든 수련자는 얼른 뒤로 물러났다. 그들의 수준으로 영변기 중기 수련자에게는 어떠한 저항도 할 수가 없었다.
주위는 곧 살육의 장으로 바뀌었다.
치호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단숨에 휩쓸려 나가는 수련자들을 보았다.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한제의 표정은 시종일관 변함이 없었다. 그는 잠자코 사방을 둘러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뒤, 곁으로 돌아온 노인은 짙은 살기(殺氣)가 가득한 두 눈으로 한제를 한참이나 노려보다가 오른손을 앞으로 휘둘렀다. 전광(電光)을 번득이는 옥패 하나가 한제의 손에 들어왔다.
“1천 년 동안 너를 위해 힘써줄 테니, 넌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한다!”
노인은 말을 마친 뒤 몸을 훌쩍 날려 관과 함께 하늘로 솟아오르다가 자취를 감추었다.
한제는 태연하게 저물대에서 성라반을 꺼내 그 위에 올라앉은 뒤 고개를 돌려 치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치호, 올라오게. 주작성으로 돌아가세.”
치호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나침반 위로 몸을 날렸다. 한제를 바라보며 입을 벌려 뭔가 말을 하려던 그는 그러나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방금 그가 몇 걸음 물러남으로써 둘의 관계는 다소 어색해져 버렸다.
한제는 아무 말도 않고 나침반을 조종해 허무의 공간 속으로 진입해 소용돌이가 있는 쪽으로 질주했다.
한참 뒤, 치호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고맙네.”
한제는 빙긋 웃으며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치호가 무엇에 고마워하는지 알고 있었다. 방금 그의 말 한마디였으면 손태는 치호를 죽였을 터였다.
“걱정 말게. 오늘 있었던 모든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 이 치호가 거마족의 이름으로 맹세하겠네!”
치호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진중하게 말했다.
★ ★ ★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성라반의 속도로도 며칠을 움직인 끝에 하나하나의 조각을 지나 마침내 거대한 소용돌이에 이를 수 있었다.
평평한 대 위에는 몇몇 수련자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소곤거렸다. 모두 그 선검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다.
다만 실제 그 일이 벌어졌던 조각에 있던 이들은 모두 손태에 손에 죽어버렸으니 그 선검이 대체 누구의 손에 들어갔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그들 중 아무도 없었다.
소용돌이에 가까워지자 한제는 성라반을 거둬들인 뒤 치호와 함께 날아서 이동했다. 곧 그들은 소용돌이 아래의 대에 이르게 됐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제는 포권을 취하며 웃었다.
“치호, 주작성에서 다시 보세!”
말을 마친 그는 저물대를 두드렸다. 회정(回鼎)이 그의 손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