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60
귀를 찢을 듯 날카로운 비명이 그 피로 만들어진 벌레에게서 흘러나왔다가 천천히 사라졌다. 작은 마수는 음산한 눈빛을 번득이며 모완의 앞을 가로막고 흉악한 눈빛으로 전백을 노려보았다.
전백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그 작은 마수를 바라보았다.
“혼수(魂獸)인가?”
모완은 아련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한제,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
“한제? 하하, 그 이한제를 말하는 것이냐?”
전백은 껄껄 웃었다.
“그 이한제라는 놈이 이곳에서는 제법 이름을 날린 모양이지?”
전백은 미친 듯이 웃다가 경멸의 빛이 어린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정말 궁금하군. 그 이한제라는 자가 도대체 누구냐? 너는 왜 또 죽기 전에 그 이름을 입에 담는 거지?”
“왜냐하면 그녀는 내 여인이니까. 내가 바로 이한제다!”
냉랭한 목소리 하나가 전백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려옴에 따라 수많은 검은색 유혼(遊魂)들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마신(魔神)들처럼 곧장 사방의 벌레들을 향해 퍼져나갔다.
류비의 몸에도 이미 몇 마리의 벌레들이 들어찬 상대였다. 그의 눈에 절망이 깃들었지만 순간 음산한 바람이 그의 체내에 들어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원영을 뜯어먹고 있던 벌레가 마치 천적을 만난 듯 발버둥 치며 그의 체내에서 빠져나가 미친 듯이 도망쳤다.
류비는 멍한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전백의 뒤쪽에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 그인가?”
송청의 두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가지고 있던 거의 모든 법보를 쓴 상태였지만 눈앞의 벌레들은 끝도 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그는 비참하게 웃었다. 체내의 영력도 이미 상당히 손실된 상태였다. 하지만 단약을 꺼내 흡수할 시간조차 없었다. 멈칫하는 순간 셀 수 없이 많은 벌레가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밀려드는 비참함에 이성을 잃은 그가 자신의 원영을 폭발시키려 하던 그 순간, 음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의 몸을 꿰뚫은 벌레나 몸에 달라붙은 벌레들은 그 바람 한 줄기에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분분히 물러났다.
송청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전백의 뒤로 낯익은 듯하면서도 낯선 누군가가 있었다.
“그인가⋯⋯?”
운천종에 남아 있던 두 원영기 후기 대장로 역시 그 음산한 바람을 느낀 순간 사방의 벌레들이 물러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흠칫 놀라며 단박에 그 바람을 일으킨 장본인을 알아차렸다.
“그다!”
모완 역시 멍한 얼굴로 전백의 뒤에 나타난 그를 바라보았다. 눈에 가득 차오른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한제의 모습은 이곳을 떠났을 당시와 많이 달라져 있었지만 그녀는 단박에 그를 알아 볼 수 있었다.
“한제⋯⋯.”
전백의 몸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살짝 떨렸다. 상대가 뒤로 다가올 때까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그는 상대가 자신보다 수준이 높음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맹렬하게 몸을 돌려 한제를 본 순간, 그의 눈은 경악으로 가득 찼다. 그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며 소리쳤다.
“너는⋯⋯ 천우!”
순간, 주위가 기묘한 적막으로 뒤덮였다.
운천종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대장로부터 가장 말단의 제자까지, 운천종의 모든 수련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한제를 바라보았다.
한제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였다. 등 씨 가문을 학살할 때 나타났던 그 서늘한 빛은 한제의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만 드러나는, 상대를 죽이겠다는 일종의 징조였다.
“운천종을 멸하려 한 건가?”
한제의 목소리는 차가운 바람이 쌩쌩 부는 듯했다.
전백은 그 차가운 바람에 깊은 서늘함을 느꼈다. 사람의 이름은 나무의 그림자와 같다고 했다. 한제는 홍접의 한쪽 팔을 잘라냈고 전백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그 뒤까지 다가왔다. 이는 전백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전백은 물러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우. 자 자네가 운천종 사람인 줄은 몰랐네. 이 일은 나의 불찰⋯⋯.”
전백이 말했다.
“불찰?”
한제가 눈을 번득이며 앞으로 돌진했다. 그러는 사이 금번을 꺼내 흔들자 그 안에서 피어오른 검은 안개가 전백을 향해 달려들었다.
전백은 기겁하며 얼른 뒤쪽으로 물러났다.
전백의 원신
“불찰?”
한제는 미친 듯이 웃으며 두 손으로 결인을 한 뒤 앞으로 뻗었다. 순간, 금번에서 쉭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금제들이 흉악한 용으로 변해 포효했다. 그 용들은 빠른 속도로 한제 앞에 모여들더니 검은색의 긴 창을 이루었다. 당시 홍접마저 두렵게 해 그녀가 영혼으로 연결된 법보를 꺼내들게 만들었던 바로 그 창이었다.
하늘이 순간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끝없는 검은 안개에 뒤덮였다. 그 검은 안개 아래, 벌레들은 천적을 만난 것처럼 귀를 찢을 듯한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전백은 잔뜩 구겨진 얼굴로 다시 뒤로 물러났다.
한제는 한손으로 창을 쥐고 전백을 계속해서 추격하면서 저물대를 두드렸다. 그 안에서 나온 아홉 개의 나무 조각상이 공중에서 부풀어 오르더니 진짜 사람만 해져서는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순간, 뒤로 물러나던 전백의 몸이 우뚝 멈추었다.
“불찰?”
전백의 몸이 우뚝 멈춘 순간, 한제가 쥔 긴 창은 번개 같은 빛을 번득였다. 동시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질 듯 우르릉 소리가 들려왔고 긴 창은 그대로 앞으로 쏘아졌다.
전백은 소리를 지르며 손을 합장했다. 그의 미간에서 한 마리의 지네 허상이 튀어나왔다. 지네가 몸을 꿈틀거리자 전백의 몸에서 줄기줄기 촉수가 튀어나와 그를 감싸며 거대한 고치를 이루었다.
펑!
커다란 소리와 함께 긴 창이 고치를 찌른 순간, 맹렬한 금제가 그 안으로 치고 들어갔다. 고치는 곧장 무너져 내렸고 전백은 고치가 붕괴한 순간 빠르게 뒤로 물러나 단번에 1백 척이 넘는 거리를 움직였다. 그리고 창백한 얼굴로 한 움큼의 선혈을 토해냈다. 그 선혈에는 꿈틀거리는 수많은 구더기가 섞여 있었다. 역겨운 모습이었다.
“천우! 공연한 짓은 마라!”
한제의 창에 깃든 복잡한 경지에 전백은 부상을 당했다. 만약 그의 경지가 특수하지 않았다면 훨씬 큰 부상을 입었을지도 모른다.
“공연한 짓? 오늘 내 너를 죽이고 말 것이다!”
한제는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순간 평범해 보이는 영력의 빛이 전백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이는 경지의 공격이었다.
전백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그는 말없이 몸을 빠르게 뒤로 물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한제가 그냥 둘 리 없었다. 그는 몸을 훌쩍 날려 앞으로 달려듦과 동시에 오른손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순간 수많은 유혼들이 쏟아져 나와 사방팔방에서 빠른 속도로 전백을 가로막았다.
전백은 흙빛이 된 얼굴로 순간이동을 하려 했다. 그러자 한제가 오른손을 휘둘렀고 순간 하늘에서 파지직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거대한 공간의 균열이 나타났다. 만약 지금 전백이 순간이동을 한다면 갑자기 나타난 공간의 균열에 의해 둘로 갈라지고 말 터였다.
“미친놈!”
전백은 깜짝 놀라 순간이동을 그만두었다.
거칠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 닥쳤다. 대지에는 수많은 균열이 일었고 사방의 영력은 미친 듯이 그 균열 안으로 흘러들었다.
전백은 화신기 수련자를 죽인 적도 있었으나 한제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한제의 전투 경험은 그가 봐왔던 그 어떤 사람보다도 많은 것 같았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 맨손으로 공간의 균열을 뜯어내는 것은 일반적인 화신기 수련자로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방식으로 상대의 순간이동을 막는 사람을 전백은 여태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거대한 공간의 균열은 초나라의 영력을 완전히 붕괴시켰다.
한제의 눈빛은 여전히 서늘했다. 끊임없이 전백에게 따라붙던 그는 하늘을 향해 뻗은 오른손을 꽉 움켜쥐었다. 순간 그의 뒤로 거대한 고리 모양의 원이 하나둘 나타나며 흑백의 그림이 펼쳐졌다.
“운이 좋구나. 너는 생사의 경지의 두 번째 제물이 될 것이다!”
한제의 목소리에는 음산함이 가득했다. 그는 오른손을 전백 쪽으로 뻗으며 가볍게 읊조렸다.
“생사의 변화!”
순간 그의 뒤쪽에 있던 그림이 거대한 손에 의해 휘둘려진 듯 고공을 가로지르며 점점 더 커졌다. 결국 반경 10리를 뒤덮을 듯 커진 그림에서는 강렬한 기세가 흘러넘쳤다. 공간의 균열은 그 기세에 맞물려 사라진 상태였다.
회색 기운이 그림 안에서 발산됐다.
한제가 전력을 다해 생사의 경지를 발휘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자신이 깨달은 천도와 윤회를 전부 녹여냈다.
전백은 속으로 비명을 질러댔다. 이토록 대단한 자였던가? 한제의 눈에 깃든 흉악함은 자신의 그것보다 더욱 무시무시했다. 전백이 저물대를 두드리자 그의 오른손에서 붉은색의 작은 벌레가 한 무리 쏟아져 나왔다.
“천우, 너는 생사의 은혜와 원한에 대해서도 모르느냐? 어찌 나를 죽이는데 혈안이 된 것이냐? 운천종에서 내가 죽인 이는 몇몇 제자에 불과하지 않느냐!”
전백이 소리쳤다.
한제는 대답 없이 오른손으로 전백을 가리켰다. 순간, 하늘에 나타난 그림에서 우르릉 소리가 나더니 거대한 소용돌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소용돌이 주위는 짙은 회색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소용돌이 안에 수많은 흉측한 얼굴이 부유하듯 떠다녔다. 모두 한제의 손에 죽어나간 이들이었다.
이것은 한제의 생사의 경지이자 또 다른 천도의 윤회, 그 자신에게 속한 윤회였다. 전백의 경지가 화신기 중기에 이르지 않은 이상 저항은 소용이 없었다.
벌레들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하나둘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모든 벌레의 몸에서는 한 줄기 회색 기운이 피어올랐고 그것은 모두 소용돌이에 흡수됐다.
전백의 두 눈에 깊은 두려움이 어렸다. 그는 큰 소리로 기합을 넣으며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순간 그 미간에서 지네의 허상이 다시 번득이기 시작했고 동시에 그 정수리 위로 한 덩어리의 일곱 빛깔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 안개는 순간 1천 척에 달하는 거대한 지네로 변했다. 보기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광경이었다.
그 지네의 머리 아래쪽에는 또 다른 머리가 달려 있었는데 그 머리는 바로 전백의 것이었다. 이 거대한 지네는 전백의 원신이었다.
당시 구유(九幽) 황무지에서 그는 이 마수의 원신과 합체한 끝에 화신기에 이를 수 있었다. 그가 깨달은 천도는 충수(蟲獸)의 도인 셈이었다. 그는 충수로 하여금 자신을 대신해 천지의 법칙과 천지의 냉혹함을 행하게 했다. 사람이 마수를 죽일 수 있다면 마수도 사람을 죽일 수 있었으며, 사람이 마수를 먹을 수 있다면 마수도 사람을 먹을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신선이 될 수 있듯이 마수도 신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원신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하늘을 향해 포효하더니 전백의 몸을 떠나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큰 입을 벌려 거대한 소용돌이를 삼키려 들었다.
한제가 콧방귀를 뀌며 가볍게 외쳤다.
“어딜 감히!”
하늘이 우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소용돌이가 갑자기 커지기 시작했다. 무정한 천도가 전백의 원신을 삼켰다. 그 안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가 한참 뒤에서야 잠잠해졌다. 천벌을 담은 그림도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한제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전백의 몸이 무너져 내리며 피범벅이 된 살덩어리로 바뀌었다. 그 살덩어리에는 구더기가 가득했으며 고약한 냄새도 풍겨 나왔다.
한제가 오른손을 뻗자 그의 손에서 화염 한 덩어리가 빠져나와 그 살덩어리에 내려앉았다. 이내 그 지네의 몸은 오그라들다가 결국 재로 변해버렸다. 바닥에는 저물대 하나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저물대를 손에 들고 신식으로 살피던 한제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 저물대에는 벌레만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던 것이다.
그는 저물대를 봉인해 놓은 뒤 몸을 돌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운천종 상공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는 천천히 지면으로 착지했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모완의 눈에 기쁨의 눈물이 들어찼다. 뭔가를 말하려던 그녀는 격렬하게 기침을 하더니 창백해진 얼굴로 픽 쓰러졌다.
한제는 재빨리 다가가 모완을 안아들었다. 그는 두 손으로 모완의 몸 곳곳을 두드리다가 잔뜩 어두워진 안색으로 고개를 들며 말했다.
“류비, 송청, 산을 봉쇄해라. 누구도 내가 오기 전까지 밖으로 나가서는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