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62
한제는 보탑 아래쪽에 산에서 난 돌로 여러 개의 석실을 만들었다. 모완은 신이 나서 깡충깡충 뛰며 옆에서 그를 도왔다. 그 모습을 본 한제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오늘부터 이곳이 바로 우리의 새로운 집이야!”
모완은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내며 마지막 돌을 잘 얹더니 한제를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한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피로한 기색의 모완을 본 그는 마음이 아팠다. 사실 그의 법력으로는 모완의 도움이 필요 없었다. 그저 모완이 고집한 일이었다. 그녀에게서 흔히 볼 수 없는 고집이었다.
모완의 성격은 언제나 부드럽고 온화하여 심지어는 유약하게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 유약함 속에 상상을 초월하는 고집이 있었다.
그는 모완이 기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때때로 그를 향한 모완의 눈빛에는 깊은 정과 더불어 약간의 아쉬움이 엿보였다. 이는 주일이 정신을 차렸을 때 정아를 보던 눈빛과도 비슷했다.
모완을 위해 영력으로 몸을 살펴주던 한제는 그녀가 천천히 잠에 드는 것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쉰 뒤 석실을 빠져나갔다. 하늘에는 밝은 달이 걸려 있었다. 여비와 철암은 가부좌를 틀고 좌선하다가 한제가 나오는 것을 보고 얼른 일어났다.
“종주님!”
한제는 두 사람을 보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둘은 원영기 후기에 이른 지 얼마나 됐지?”
여비와 철암의 마음에 기쁨이 들어찼다. 지난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한제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감히 먼저 묻지도 못하고 그저 묵묵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여비는 잔뜩 흥분된 마음을 가까스로 내리누른 뒤 공손하게 말했다.
“저는 벌써 143년째입니다.”
철암도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공손하게 말했다.
“저는 172년째입니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두 사람을 훑어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잘못 찾아왔다!”
여비와 철암은 한참이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철암이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종주님, 초나라에는 여태 화신기 수련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일전에 사자님께도 물어본 적 있었지만 결국 답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몇 년 전, 저는 이렇게 힘들게 폐관 수련을 해도 화신기에는 이를 수 없을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저와 여비 사제는 오랫동안 연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서만 화신기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데 그쳤습니다.”
한제는 작은 한숨을 내쉬더니 뒤쪽의 석실을 바라보며 말했다.
“모든 화신기 수련자는 각자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어야만 한다. 한데 자네들의 체내에 있는 영력은 비교적 복잡해. 이 보탑을 중심으로 1백 리 내에는 강한 압박감이 미치는 곳이다. 1백 리 밖으로 나갔다가 언제든 자네들의 수준으로 3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 때 돌아오도록!”
두 사람은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러더니 뭔가 깨달음을 얻은 듯 한 명은 동쪽으로 다른 한 명은 남쪽으로 향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한제가 모완의 몸을 살펴주고 있던 때, 모완은 손을 뻗어 한제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었다.
“내 몸이 좋지 않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난 괜찮아.”
한제는 고개를 저었다. 모완의 몸을 살펴주는 횟수는 한 달 전에는 하루에 한 번이었지만 이제는 이틀에 세 번으로 늘어났다. 횟수가 늘어났다는 것은 몸 상태가 악화되었다는 의미였다.
“넌 죽지 않을 거야.”
한제가 진중하게 말했다.
고개를 살짝 끄덕인 모완은 아름답게 웃으며 한제를 잠자코 바라보았다. 마치 다시는 못 볼 사람을 보듯…
한제는 코를 만지작거리며 웃었다.
“잊고 있었네. 선물을 준비했는데…”
말을 마친 그가 저물대에서 몇 개의 옥패를 꺼냈다.
손으로 입을 가리며 살짝 웃던 모완은 그것을 받아들고 살펴본 뒤 곧장 놀란 듯 말했다.
“5품 단약 제조 방법이잖아? 굉장히 귀한 물건일 텐데!”
한제가 웃으며 말했다.
“떠날 때 네가 단로를 가져갔잖아. 이 단약 제조 방법은 틈 날 때 한 번 시험해봐.”
모완은 두 눈을 번득였다. 그 순간의 그녀 역시 숨 막힐 듯 아름다웠다.
“나도 줄곧 묻는 다는 걸 잊었는데 가가의 모습은 왜 또 바뀐 거야? 그리고 왜 사람들은 가가를 천우라고 부르는 거지?”
모완은 아름다운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웃었다.
한제는 지난 1백 년간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모완은 크게 뜬 눈으로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그 홍접이 만약 가가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분명 찾아올 텐데…”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덤덤하게 말했다.
“몇 년 후면 나는 화신기 중기에 이를 수 있어. 그럼 홍접이 진짜 찾아온다고 해도 감당할 수 있을 거야.”
“그때 수마해의 동굴, 기억나? 거기 한 번 가보고 싶어. 그리고 화분국도 다시 가보고 싶다⋯⋯.”
모완은 한제를 바라보다가 불쑥 말했다.
“좋아. 며칠 뒤에 수마해의 연기각(煉器閣)에서 6품 단약 제조 방법 경매가 열린대. 같이 가자.”
한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모완이 기쁜 듯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던 한제의 마음이 다시 한 번 찌른 듯 아파왔다. 그는 모완을 계속 그렇게 바라보았다.
모완의 예쁜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절대 죽게 두지 않아. 절대!”
한제가 힘주어 말했다. 모완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모완이 잠든 밤, 한제는 석실 밖으로 나와 밝은 달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영력의 작용 덕에 모완의 몸은 좋아지기는 했으나 삶과 죽음의 윤회를 개인이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의 몸에 드리운 죽음의 기운은 더욱 짙어지기만 했다.
“원영기에만 이르면 수명을 늘릴 수 있어. 하지만 저렇게 몸이 약한 상황에서 원영기에 이르는 데 성공할 수 있을 리가⋯⋯ 모완의 수명이 끝에 이르렀으니 영혼을 거두더라도 다른 사람의 몸을 빼앗기는 힘들 거야. 6품 단약은 어쩌면 모완의 몸을 회복시킬 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몸만 회복된다면 내 도움으로 모완은 곧장 원영기에 이를 수 있어! 그동안 모완에게 진 빚이 얼마나 많은데⋯⋯.”
중얼거리던 한제는 한참이나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몸은 천천히 고독으로 뒤덮였다. 작은 한숨을 내쉬던 그는 굳은 의지가 가득한 눈을 번득이며 느릿하게 자리에 앉았다.
한동안 침묵하던 그가 손목에 두른 구수권을 만지작거리다가 앞으로 휙 휘둘렀다. 순간 그 안에서 튀어나온 빛이 뇌와가 되어 지면에 내려앉았다.
뇌와는 상당히 허약해 보였고 온몸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숨을 내쉬기만 할 뿐 들이쉬는 숨은 없었다.
한제는 단약 하나를 꺼내 뇌와의 입에 던져 넣은 후 영력을 움직여 흡수를 도왔다.
새로운 집
지난 며칠 동안 한제는 거의 매일 뇌와에게 단약 한 알씩을 먹이고 있었다.
이 단약은 구양자가 만들어낸 것으로 원래는 모완을 위해 준비했으나 모완은 이미 너무 많은 단약을 먹은 상태라 어지간한 단약은 소용이 없었다. 또한 그녀의 몸이 약해진 것은 이미 수명이 끝에 달했기 때문이지 부상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
뇌와는 단약을 복용한 뒤 약간 기력을 회복한 듯 보였다. 한제는 오른손으로 결인을 해 녀석을 다시 구수권으로 회수했다. 만약 뇌와와 구수권 사이의 봉인을 풀어버린다면 뇌와에게 남은 길은 죽음뿐이라 한제는 줄곧 녀석을 풀어놓지도 못하고 있었다.
한제는 고개를 돌려 석실을 한 번 살핀 뒤 저물대에서 대나검종의 제자로부터 빼앗은 보검을 꺼내들고는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이 보검에 걸린 금제는 한제가 익힌 것과는 전혀 달랐다. 한제는 지난 며칠간 이 금제들을 연구한 끝에 마침내 몇몇 실마리를 발견했다.
밤은 천천히 흘러, 하늘에 걸린 달이 차차 빛을 잃는가싶더니 동쪽에서부터 태양이 솟아올랐다. 달은 천천히 사라졌다.
이날 밤, 한제는 총 9개의 금제를 파악해 그것을 금번에 걸었다. 금번에 걸린 공격용 금제는 이미 145개 조에 달했다. 999개 조를 모두 채울 때까지는 아직 먼 길이 남아 있었다.
사흘 뒤, 한제는 모완과 함께 골짜기를 떠났다. 철암과 여비가 그들의 뒤를 따랐다.
한제는 보탑을 거두지 않고 그 자리에 내버려 두었다. 문정기 수련자가 이곳에 오지 않는 이상 주작성 안에서 어떤 사람도 그 보탑을 가져갈 수는 없었다.
초나라 가장자리에 이른 한제는 오래된 전송진을 가동해 모완과 여비 등을 데리고 이동했다.
여비와 철암은 다시 한 번 한제의 강대함을 경험했다. 여태 오랜 시간을 살아온 그들이었지만 오래된 전송진을 사용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들은 수마해 안, 화분국과 이어진 곳의 한 오래된 전송진에서 나타났다.
“진짜 오랜만이다. 가가 우리 일단 그 청룡진으로 가보자. 당시 그곳에 있던 사람들 중 몇이나 살아있으려나.”
모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청룡진.”
한제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는 당시에 모완이 자신에게 그 진이 탁본된 옥패를 주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네 사람은 수마해 외곽 지역을 느릿하게 날아 남투성 부근에 이르렀다. 일전에 투사파의 장교와 싸웠던 곳이었다.
눈앞에 자리한 거대한 산봉우리의 꼭대기에는 누군가가 법술로 만들어놓은 용 모양이 남아 있었다. 언뜻 보면 그 산은 마치 한 마리의 거대한 용이 둘둘 말고 있는 듯했다. 다만 그 창룡(蒼龍)은 불완전했다. 곳곳에 남은 균열은 말할 필요도 없고 용머리 부분은 누군가에 의해 반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모완은 멀리서 그 창룡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한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 산이 보이기 전부터 신식으로 미리 그 부근을 살핀 한제는 일전에 투사파와의 결투가 벌어졌던 그곳이 폐허로 변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안에는 더 이상 어떤 수련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는 저급한 마수들이 몇몇 모여 있을 뿐이었다.
“가가 그때 기억나? 그때 날 데리고 여기까지 왔었잖아.”
모완의 작은 소리에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시간이 참 빨라.”
“그때 그 동굴, 아직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모완은 당시 머물렀던 동굴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빙그레 웃으며 오른손으로 모완의 허리를 끌어안은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긴 무지개를 그리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여비와 철암은 얼른 그 뒤를 쫓았다. 두 사람은 신식을 펼쳐 줄곧 사방을 경계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곳은 초라나가 아니라 수마해였기 때문이다.
멀찍이서 한제와 모완을 쫓아가던 여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