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63
“이 장로가 일찍이 수마해에서 살았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이제 보니 거짓은 아니었군.”
철암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가 종주와 이 장로가 알게 된 곳인가 봐. 여 사제, 그동안 경지가 좀 정진한 것 같은데?”
여비가 웃으며 말했다.
“1천 척 안으로 진입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어.”
철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이제 겨우 5백 척 정도 들어갈 수 있을 뿐이었다. 전력을 다해 최대한 빨리 3리 안에 진입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한제가 긴 잔영을 남기며 하늘 끄트머리로 날아가는 그 놀라운 속도에 하늘이 깨지는 소리가 났나. 그 소리에 수마해 외곽 지역의 수련자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제와 모완은 당시의 동굴이 있던 자리에 도착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동굴이 자리한 산맥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모두 변해버렸네⋯⋯.”
모완의 두 눈에 어두운 빛이 어렸다.
“수백 년이 흐르는 동안 청룡도 부서지고 동굴도 흩어져서는 옛날에 대한 기억과 함께 사라진 모양이야.”
모완의 몸에 드리운 죽음의 기운이 갑자기 짙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한제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가자. 화분국에는 가고 싶지 않아졌어. 단약 제조 방법을 산 뒤에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뒤쪽에 서 있던 여비와 철암은 안타까움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한제는 모완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동굴은 사라지지 않았어!”
말을 마친 그가 오른손을 앞쪽으로 뻗어 휘둘렀다. 화신기 수련자의 법력이 순간 그의 체내에서 솟아올랐다. 하늘에서 우르릉 쾅쾅 소리와 동시에 사방의 대지가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갈라졌다. 뒤이어 거대한 힘이 갑자기 나타났다. 지면의 균열은 갈수록 커지더니 거대한 돌기를 이루어서는 높게 부풀어 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산봉우리 하나가 나타난 셈이었다.
이 산봉우리는 당시 한제가 머물던 그 산봉우리와 완전히 똑같았다.
산봉우리가 땅을 뚫고 올라오면서 땅은 우르르 흔들렸고 그 흔들림에 반경 수만 리 안에 있던 모든 수련자들는 깜짝 놀랐다.
경지가 높은 몇몇 수련자들은 점점 더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수리 밖에서 놀란 눈으로 갑자기 나타난 산봉우리를 바라보기만 했다.
한제는 두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그러자 산봉우리 중간쯤에 난데없이 동굴 하나가 만들어졌다. 한제는 신식을 통해 그 동굴을 예전의 동굴과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었다.
“봐, 동굴은 사라지지 않았지!”
한제가 고개를 돌려 모완을 바라보았다.
보완은 멍한 눈으로 동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띠었다. 그 순간, 그녀의 몸에 드리운 죽음의 기운이 약간은 옅어졌다.
동굴 안으로 들어간 모완은 마치 어린 소녀처럼 끊임없이 사방을 둘러보는가하면 때로는 한제를 끌고 이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떠들어댔다.
“나는 그때 여기서 3년 동안 가가를 기다렸어. 그렇게 많은 사람을 뒤에 달고 올 줄은 생각도 못했거든.”
모완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날 가가는 교룡 한 마리도 들고 왔잖아. 그 교룡을 본 순간부터 정말로 가가가 잡은 거냐고 묻고 싶었는데 그때 가가 표정이 너무 차가워서 감히 물어볼 엄두도 못 냈지 뭐야.”
모완의 눈빛이 한없이 부드러워졌다.
한제는 코를 만지작거리며 소리 없이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동굴에서 사흘을 머문 끝에야 모완은 못내 아쉽다는 듯 동굴 밖으로 나갔다. 한제는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려 만들어낸 한 줄기 금제를 산 위에 찍은 뒤 모완과 함께 마역성으로 향했다.
이번 수마해 방문은 썩 만족스러웠다. 모완의 몸에 드리운 죽음의 기운은 약간이나마 옅어졌다.
8일 째 되던 날, 마역성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영석을 지불하고 성 안으로 들어간 여비는 곧장 네 사람이 머물 객잔 하나를 찾았다.
철암은 젊었을 적 이 수마해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었기에 여비보다 훨씬 이곳에 익숙했다. 한제의 명령에 따라 연기각으로 갔다가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에는 한 장의 초대장이 들려 있었다.
“종주님, 7일 뒤에 경매가 열린다고 합니다. 이건 초대장입니다.”
철암은 공손하게 초대장을 한제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 7일 동안 한제와 모완은 마역성 안 곳곳을 돌아다녔다. 모완은 상당히 즐거워했다. 심지어는 낙하문에서 아무걱정 없이 보냈던 당시보다도 더 즐거웠다.
7일 뒤, 연기각에서 경매가 시작됐다.
마역성에서 가장 큰 3층짜리 궁전 1층에는 남은 자리가 거의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수련자가 계속해서 모여들고 있었다.
한제 일행이 도착했을 때 문 밖에 있던 연기각 소속 축기 수준 제자 둘은 한제가 내민 초대장을 받아들고 그를 대전 안으로 들였다.
한제가 지난 번 단약 제조 방법을 찾던 때 그를 초대했던 중년 남자는 대전에서 수련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제를 보고는 곁에 있던 수련자들에게 작별을 고한 뒤 얼른 다가왔다. 그러더니 한제로부터 30척 정도의 거리에 이르렀을 때 깊이 허리를 숙이며 공손하게 말했다.
“선배님, 오셨습니까? 이렇게 누추한 곳에 와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이곳은 복잡하니 3층으로 가시지요.”
주변의 수련자들 몇몇은 내심 놀랐다. 그 중년 남자는 연기각 내에서 지위가 높고 전도가 아주 유망한 이였다. 그런 그가 이처럼 깍듯하게 행동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기에 그들의 눈빛은 자연스레 한제 일행에게로 향했다.
한데 그들은 다른 의미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한제는 그들이 보기에 일반 사람처럼 어떤 영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올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일반인일 리가 없었다. 곁의 여인은 결단기 후기에 불과하고 몸도 상당히 허약한 상태였다.
허나 그들이 경악한 것은 사실 여비와 철암의 존재였다. 그들은 원영기 후기의 엄청난 수련자였다.
수마해라고 해도 원영기 후기의 수련자는 결코 많지 않았다. 심지어 대전 안의 수많은 사람 중 그 정도 경지에 이른 사람은 다섯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원영기 후기 정도면 수마해 안에서는 발만 굴러도 주변 사람들을 질겁하게 할 수 있었다.
한데 이 두 명의 원영기 후기 수련자가 일반인 같은 청년을 수행하고 있다니,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중년 남자의 안내 아래, 한제 일행은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에는 세 개의 방밖에 없었다. 그 방은 모두 매우 화려했는데 나머지 두 방에는 이미 누군가가 들어가 있었기에 한제 일행은 오른쪽 방에 자리를 잡았다.
중년 남자는 곁에서 한참 동안 떠들어대다가 한제의 얼굴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얼른 물러났다.
방 밖으로 나왔을 때 그의 등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였다. 그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지난 번 한제가 5품 단약 제조법을 가지고 떠난 뒤, 그는 함께 있던 노인에게 상세히 질문한 바 있다. 노인은 이미 원영기 후기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눈빛 한 번에 수그러들었다. 이를 통해 중년 남자는 상대의 수준이 화신기에 이르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수마해 안에서 화신기 수련자를 감히 건드릴 사람은 없었다. 연기각은 화신기 수련자 한 명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마해 안에서 안정적으로 발을 붙이고 살아가면서 이 정도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년 남자는 얼른 아래층으로 내려와 2층의 어느 별실 앞에서 멈추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제자 허루오, 선조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들라!”
별실 안에서 부드럽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중년 남자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곧장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 뒤, 별실 안에서 나온 그는 안색을 원래대로 회복한 뒤 아래층으로 내려가 지인들과 마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한제 일행의 정체를 몇 번이고 물었지만 중년 남자는 그럴 때마다 답을 피하며 웃기만 했다.
연기각의 화신기 수련자
마역성으로부터 수만 리 밖 평원 지하의 어느 동굴 안에 백발의 노인 하나가 앉아 있었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하다가 돌연 눈을 번쩍 뜨더니 허공을 향해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그의 앞쪽에 허상 하나가 나타나 점점 실체를 갖추었다. 매우 아름다운 소녀였다.
소녀는 상당히 아름다웠다. 몸에서는 요염한 매력이 풍겼고 눈빛은 사람을 홀릴 듯했다.
소녀는 공손하게 몇 마디 말을 한 뒤 노인에게 예를 갖추더니 이내 허상으로 변해 흩어졌다.
“화신기 수련자로 의심이 된다?”
코웃음을 치며 눈을 번득이던 노인이 몸을 훌쩍 날린 순간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는 한제가 결단기 수준이었을 당시 마주쳤던 현무 형상의 마수를 다루는 노인으로 그가 두 번째로 고대 신의 땅에 들어갔을 때 쇄성란 밖에서 마주쳤던 사람이었다.
★ ★ ★
3층의 별실 안, 연기각의 제자들이 가져다준 수마해 특유의 과일이 있었지만 누구도 건드리는 이는 없었다.
이곳에 앉아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곧장 1층의 대전 중앙에 놓인 평평한 대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경매가 진행될 곳이었다.
한제와 모완은 속삭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완은 때때로 웃어 보였고 한제를 향한 눈빛에는 부드러움과 행복이 가득 담겨 있었다.
여비와 철암은 문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좌선했다.
그 둘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한제가 해준 몇 마디 조언에 따라 거의 모든 시간을 수련에 쏟고 있었다. 한제의 말에 따르면 체내의 번잡한 영력을 하나로 합치해야만 화신기에 이르는 데 필요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모두 원영기 후기 수준이기는 했지만 그 절정에 이른 상태는 아니었다.
화신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특별한 경지가 없는 경우 그저 한 걸음씩 나아가 원영기 후기의 절정에 이르러야만 시도해 볼 수 있었다.
한제를 따르기 시작한 뒤부터 화신기에 대한 두 사람의 자신감은 전에 없이 충만했다. 사실 두 사람의 수명은 모완에 비하면 충분했지만 그렇게 많이 남아있지도 않았다. 만약 1백 년 안에 화신기에 이르지 못하면 그들 역시 흙과 먼지로 돌아가 버릴 터였다.
바로 이때, 갑자기 한 줄기 신식이 3층의 왼쪽 방에서 튀어나왔다. 여비와 철암 두 사람은 맹렬히 두 눈을 뜨고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여비는 곧장 신식을 펼쳐 달려드는 그 신식에 대항했다.
순간, 왼쪽 방에서 비명 소리가 한 번 들려오더니 신식은 곧장 흩어져 버렸다.
그러는 동안 한제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그저 모완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그동안 모완과 함께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모완에 대한 한제의 마음에는 애정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미안함이 더 컸다.
왼쪽 방에서 이번에는 여러 명의 신식이 달려들었다. 철암은 눈을 번득이며 여비와 동시에 신식을 펼쳐 그것에 맞섰다.
“대담한 녀석이군. 대체 누가 이렇게 방자한지 직접 봐야겠다!”
왼쪽 방에서 냉랭한 콧방귀 소리가 들려왔다. 이 콧방귀에 여비와 철암의 신식은 순간 흩어져 사라졌다. 하지만 두 사람이 부상을 입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저 차게 웃었다.
“저자의 수준은 화신기가 아니군. 그저 원영기 후기에 머물고 있던 시간이 우리보다 훨씬 길 뿐. 분명 원영기 후기 절정에 이른 자겠지.”
왼쪽 방 안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보라색 옷을 입은 그의 머리는 희끗희끗 했으며 별달리 무얼 하지 않아도 위엄이 느껴졌다.
방에서 나온 그는 성큼성큼 걸어 한제 일행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는 내심 상당히 분노해 있었다. 연기각의 허루오가 직접 누군가를 데리고 왔다는 제자의 말에 호기심이 일어 살펴보고자 했더니 상대가 자신의 신식을 끝까지 막아내고 흩어버렸다. 그 과정에서 그는 약간의 내상도 입었기에 그는 분노에 차 곧장 상대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한제 일행의 방에 이른 노인은 문에 드리운 발을 홱 치우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때, 한제가 고개를 들어 냉랭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