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64
노인은 한제와 눈이 마주친 순간 세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이마에서는 땀이 배어나왔고 체내의 원영이 붕괴할 듯했다. 그는 바로 직감했다. 눈앞에 있는 청년은 분명 화신기 수련자였다.
노인은 속으로 쓴물을 삼켰다. 화신기 수련자가 있는 걸 알았다면 절대로 찾아와 건드리지는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와서 감히 물러설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는 씁쓸한 얼굴로 포권을 취했다.
“선배님께서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제 무례를 부디 용서해주시지요.”
한제는 잠시 고민했다. 저 노인은 어딘가 익숙한 것이 분명 수마해에서 만난 적이 있던 사람인 것 같았다. 그저 너무 오래 전이라 생각이 나지 않을 뿐이었다.
한데 그때, 갑자기 밖에서 긴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뒤이어 연기각의 그 현무 마수를 가진 노인이 3층으로 올라왔다. 그는 보라색 옷의 노인은 본 척도 않고 한제의 방 밖에서 웃으며 말했다.
“연기각의 이번 경매에 화신기 도우가 왔다는 소문에 기뻐 달려왔는데 안면이 있는 사람일 줄이야.”
방문의 발이 저절로 휙 젖혀졌고 백발노인은 거리낌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여비와 철암은 살짝 변한 얼굴로 얼른 뒤로 물러나 한제의 뒤쪽에 섰다.
“앉게!”
한제는 평소와 같은 얼굴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백발노인은 모완을 힐긋 보더니 한쪽에 앉아 웃으며 말했다.
“그때 헤어진 후 잘 지냈나? 화선(火線)은 몇 개나 건졌는지 모르겠군?”
한제는 흠칫 놀랐다. 당시 쇄성란 밖에서 마주쳤을 때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던 그는 상대에게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는데 상대는 자신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분명 뭔가 신통한 구석이 있는 듯했다.
한제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그 구멍의 입구가 너무나 작아 몇 개 가지고 나오지 못했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그랬지. 한데 몇 년 전에 다시 가보니 다른 것들보다 몇 배는 더 두꺼운 굵은 선이 하나 있더군!”
노인은 물끄러미 한제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한눈에 알아보는 것이 여전히 껄끄러웠다.
그때, 방 밖에 있던 보라색 옷의 노인은 난감한 표정으로 감히 자리를 뜨지도 못하고 그저 밖에 가만히 서 있었다.
백발노인이 한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1층의 경매가 시작됐다. 처음에 나온 물건들은 법보와 단약들로 무두 상당한 환영을 받았다.
모완은 한제의 곁에 가만히 앉아 경매를 구경했다. 입가에 걸린 미소는 시종일관 떠나지 않았다.
백발노인은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도우, 꽤 익숙한 느낌인데… 저번에 쇄성란에서 봤을 때 말고도 전에 본 적이 있지 않나?”
사실 그는 이 방에 들어오면서 한제가 당시 쇄성란에서 본 그 사람이라는 것을 파악한 순간부터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한제는 어딘가 낯이 익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에서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화신기 수련자에게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백발노인은 만약 자신이 이전에 상대를 보았다면 잊었을 리 없다고 굳게 믿었다.
한제는 빙그레 미소를 지을 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방 앞에 있는 보라색 옷의 노인을 향해 손짓했다. 보라색 옷의 노인은 한시름 놓으며 얼른 앞으로 다가와 방 안으로 들어선 뒤 공손하게 말했다.
“구사평, 선배님을 뵈옵니다.”
말을 마친 그는 백발노인을 향해서도 똑같이 인사했다.
백발노인은 가볍게 음, 하며 인사를 받았다. 그의 눈빛에 한 줄기 불쾌감이 스쳐갔다. 같은 화신기 수련자면서 자신이 묻는 말에 답하지 않고 까마득한 후배를 불러들이는 한제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이다.
한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도우, 오랜만이군. 그간 안녕했는가.”
구사평은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백발노인 역시 눈을 번득이며 다시 구사평을 살폈다.
구사평은 한제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보면 볼수록 어딘가 낯이 익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아 조심스레 물었다.
“저를 아십니까?”
한제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날 잊은 모양이군. 자네 이름을 듣지 못했다면 나 역시 생각이 나지 않았을 것이네. 도우, 당시 두 개의 원영을 찾아 자네와 내가 하나씩 나눠 가졌고 지도도 탁본했지. 이제 기억이 나나?”
구사평의 눈에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빛이 어렸다. 그는 숨을 헉, 들이마신 뒤 소리쳤다.
“이한제!! 자⋯⋯ 자네, 화신기에 이르렀군!”
한제는 고개를 끄덕인 뒤 이번에는 백발노인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도우도 이제 뭔가가 생각나시오?”
백발노인의 눈에 놀란 빛이 어렸다. 그는 한참 동안 한제를 바라보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기억나는군. 그 결단기 수련자가 벌써 화신기에 이르렀을 줄이야⋯⋯.”
이제야 확실히 기억이 났다. 당시 셋은 한 자리에서 맞닥뜨렸다. 당시 한제 체내의 기이한 힘, 극의 경계를 알아차린 그는 억지로 그를 도둑으로 몰았다. 그 기이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런 상대가 어느덧 화신기에 이르러 자신과 같은 수준이었다. 백발노인이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곧장 흩어져 사라졌다.
구사평은 여전히 멍하니 한제만 바라보았다. 옛날의 기억이 하나하나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제는 언제나 그 자신을 앞질렀다. 결단기 수준이었을 때 그는 한제를 이길 수 없었다. 원영기 수준에 이르고 난 뒤에도 그랬다.
원영기 후기 절정에 이른 지금, 다시 만난 한제는 이미 화신기 경지였다.
백발노인은 하하 웃으며 말했다.
“당시 일은 내가 경솔했네. 도우도 너무 언짢게 생각하지 말게.”
말을 마친 그는 화제를 돌려 물었다.
“도우가 이번에 연기각을 찾은 것은 어떤 법보 때문인가?”
한제가 웃으며 말했다.
“6품 단약 제조 방법을 찾기 위해서지.”
백발노인은 난색을 표하며 말했다.
“다른 물건이라면 내 마음대로 도우에게 줄 수 있지만 그 단약 제조 방법 만큼은 누군가가 연기각에 경매를 해달라고 부탁한 물건이라 별다른 도움을 줄 수는 없네.”
“괜찮네! 손에 넣지 못할지언정 탁본이라도 뜰 생각이니까.”
한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백발노인은 하하 웃을 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층 대전에서는 이미 수많은 단약이 팔려나간 상태였다. 그 뒤를 이어 무대 위로 올라온 허루오가 소리 높여 외쳤다.
“다음은 아주 귀한 보물이 나올 예정입니다. 이미 여러 도우분들도 알고 있을 겁니다. 바로 6품 단약 제조 방법입니다! 이 단약 제조 방법은 우리 연기각에서도 열어보지 않아 판매를 부탁한 분의 봉인이 아직 걸려 있습니다.”
허루오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6품 단약은 오직 주작국에서만 만들어낼 수 있지요. 하지만 제조 방법이 있다면 말은 달라집니다. 이 물건의 가치는 다들 잘 알고 계실 테니 더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경매의 규칙만 조정해 상급 영석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만약 법보를 제시하시겠다면 저희 연기각에서 바로 영석으로 바꿔드릴 수도 있습니다!”
3층짜리 건물이 고요속에 잠겼다. 이번 경매에 이 물건을 노리기 위해 온 사람은 매우 많았고 이에 가격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연이어 입을 열어댔다.
모완은 약간 긴장한 기색이었다. 한제는 그녀의 손을 살짝 두드렸다. 그리고 표정 변화 하나 없이 1층을 내려다보았다.
구사평은 씁쓸했다. 그가 이곳에 온 것 역시 그 단약 제조법을 얻기 위해서였으며 그를 위해 충분한 준비를 해왔다. 하지만 지금 그는 가격 제시조차 할 수가 없었다.
6품 단약 제조 방법의 가격은 빠르게 상급 영석 1만 개로 뛰어올랐다.
6품 단약 제조 방법
“상급 영석 1만 개라⋯⋯.”
한제의 눈이 번득였다.
그의 저물대 안에 있는 상급 영석은 1만 개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최상급 영석 한 조각이면 상급 영석 1만 개의 가치를 능가할 터였다.
하지만 최상급 영석 한 조각으로는 다소 부족할 듯했다. 계속해서 올라가는 가격을 압도하기 위해서는 최상급 영석도 여러 조각이 필요할 터였다. 그렇게 된다면 단약 제조 방법을 얻는 데 들이는 비용이 결코 적지 않았다.
물론 선옥을 지불한다면 6품 단약 제조 방법은 단번에 한제의 차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한제는 특유의 세심함 때문에 바로 살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한제는 한참 고민하다가 저물대에서 나무 조각상 하나를 꺼냈다. 이것은 당시 그가 만든 세월의 경지를 담은 조각의 차등품으로 화신기 수련자가 갖는 경지의 힘에 비교한다면 분명 떨어지지만 원영기 후기의 힘 정도는 충분히 낼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안에는 여러 갈래의 경맥도 흐르고 있어 시체 인형과 마찬가지로 사용상의 제한이랄 것이 없었다. 수마해의 수련자들에게 이런 법보는 굉장한 유혹이 될 것이 분명했다.
백발노인을 눈을 번득이며 그 나무 조각을 힐긋 바라보았다. 그에게 신경 쓰이는 것은 그 나무 조각의 힘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진 수법이었다.
연기각은 여러 법보나 도구들을 제련하는 것으로 이름이 나 있는 만큼 백발노인의 연기(煉器) 수법 역시 결코 낮지 않았다. 그는 단번에 그 나무 조각의 범상치 않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안에 어렴풋이 자리한 화신기의 경지는 물론이고 피로 이루어진 경맥까지 하늘을 놀라게 할 제조법이었다. 다만 그는 그 안에 흐르는 피의 경맥을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제는 나무 조각을 들고 아래쪽으로 내던지며 외쳤다.
“이것으로 값을 대신하겠다!”
줄곧 3층을 주시하고 있던 허루오는 그 나무 조각을 보자마자 몸을 훌쩍 날려 잡아챈 뒤 공손하게 읍했다. 그리고 곁에 있는 몇몇 법보 감정사에게 그 조각을 건넸다.
감정사들은 나무 조각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며 숙덕거렸다.
백발노인은 한제에게 물었다.
“도우, 저 조각상에 흐르는 붉은 경맥은 설역국의 얼음 꼭두각시를 만드는 방법으로 실현해낸 건가?”
한제는 내심 놀랐으나, 상대가 이미 오랜 시간 화신기에 이르러 있었던 연기각의 집권자임을 상기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1층의 감정사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이것은 저희로서는 본 적이 없는 물건입니다만 그 효능이 원영기 후기의 꼭두각시와 같다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상급 영석 5천 개 값을 쳐드리지요.”
1층에 있던 사람들은 그 나무 조각상을 보았다가 고개를 들어 3층을 살피기도 했다.
한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나무 조각의 가치는 절대 상급 영석 5천 개에 그치지 않았다.
백발노인 역시 미간을 팩 구기더니 신식을 통해 누군가에게 무슨 말을 하는 듯했다. 감정사들은 그 물건의 가치를 잘 알지 못했지만 그의 수준으로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른 것들은 차치하고 그 안에 흐르는 피의 경맥만으로도 그 물건은 결코 상급 영석 5천 개로 갈음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안에는 한 줄기 화신의 경지도 배어 있었다.
한제는 덤덤한 눈빛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방의 문 쪽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