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65
잠시 후, 아름다운 한 소녀가 느릿하게 2층으로부터 올라오더니 공손하게 보라색 옥패 하나를 내려놓고 물러났다.
“도우, 자네의 저 꼭두각시, 내가 사지. 이 옥패는 어느 곳에 있는 연기각에 가든 상급 영석 2만 개 값은 할 걸세.”
백발노인이 말했다.
한제는 빙그레 웃으며 그 옥패를 본 척도 않고 1층을 향해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급 영석 2만 개!”
그의 말이 나오자마자 와아 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바로 이때, 같은 3층에 자리한 중앙의 방 안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상급 영석 3만 개.”
한제가 미간을 구겼다.
이때, 구사평이 이를 악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도우, 내게 상급 영석 4천 개가 있네.”
“필요 없네.”
한제의 목소리는 평온하고 담담했다.
상급 영석 3만 개는 주작국에서도 상당한 금액이었다. 한참이 지나도록 호가를 하는 사람은 없었고 결국 이 6품 단약 제조 방법은 중간 방에 자리한 사람의 손에 들어갔다.
6품 단약 제조 방법은 굉장히 희귀했으며 그 단약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도 대부분 이미 절멸(絶滅)됐다. 때문에 그런 제조 방법을 얻는데 상급 영석 3만 개를 들인 것은 상당한 손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만약 6품 단약과 직접적으로 바꾸는 것이라면 다르겠지만…
백발노인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일어나더니 보라색 옥패를 챙기지도 않고 자리를 떠났다. 옥패는 여전히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가자.”
한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옥패를 챙긴 뒤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다만 그의 눈에는 한 줄기 서늘한 빛이 흘렀다. 그는 모완과 함께 계단을 따라 내려와 객잔으로 돌아갔다.
“가가 실망하지 마. 어차피 우리는 그 제조 방법으로 만들 수 있는 단약이 뭔지도 모르잖아.”
모완은 방으로 돌아와 조용히 말했다.
한제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 그 단약 제조 방법은 내가 반드시 얻어내고 말 테니까.”
모완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주변을 훑던 한제의 시선이 여비와 철암에게 닿았다.
“두 사람은 이곳을 지키도록!”
여비와 철암은 허리를 숙여 답했다.
한제는 몸을 앞쪽으로 훌쩍 날리더니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마역성 밖이었다.
그는 신식을 펼쳐 사방을 훑어본 뒤 다시 한 번 사라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곳으로부터 3천 리 떨어진 곳의 절벽 위에서 나타났다.
그 절벽에는 한 여인이 서 있었다. 푸른색 옷의 여인은 하얀색의 얇고 성긴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그녀 뒤로는 노인 한 명이 있었다. 노인의 눈빛은 덤덤했으며, 그의 체내에는 아무런 영력의 파동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제의 모습이 나타난 순간, 노인의 눈빛이 번득였다.
“후배 주연홍, 선배님을 뵈옵니다.”
여인의 목소리는 아름다웠다. 한제를 향한 눈빛은 잔잔한 물처럼 안정적이었다.
“나를 여기까지 불러들인 이유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각오해야 할 것이다.”
여인은 두 눈을 번득이며 사랑스럽게 웃었다.
“과연 통찰력이 대단하십니다. 감탄했어요.”
여인은 한제와 함께 3층에 있었기 때문에 3층에서 있었던 일들과 한제의 경지가 화신기라는 것을 다 파악한 상태였다. 한제가 상급 영석 2만 개를 불렀을 때 그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가격을 부름으로써 이 상황의 발단을 만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게다가 연기각의 경매가 끝나자마자 여인은 곧장 떠난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줄곧 기다리고 있었다. 한제는 자연스레 그녀의 목적을 간파할 수 있었다.
“허튼 소리 마라!”
한제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푸른 옷의 여인 뒤에 있던 노인이 코웃음을 치며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 노인을 힐긋 본 한제는 무심하게 말했다.
“이제 막 화신기에 이르러 수준도 공고해지지 않았고 깨달은 경지 또한 다른 사람의 것이로군. 물러가라!”
내심 깜짝 놀란 노인은 이를 악문 채 그 자리에 못 박은 듯 섰다.
한제는 노인을 힐긋 바라보며 오른손을 튕겼다. 순간 한 줄기 빛이 그의 손으로부터 튀어나갔다. 노인은 깜짝 놀라 저물대에서 우산 모양의 법보를 꺼내 휙 소리가 나도록 받쳐들었다. 순간 오색찬란한 빛이 발산됐다.
한제는 그 모습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펑!
한제가 쏘아 보낸 빛이 우산에 닿자 우산에는 곧장 균열이 일었고 오색찬란한 빛도 순간 어두워졌다. 노인의 몸은 한참 뒤쪽으로 밀려났다. 얼굴이 기이하게 붉어진 그는 한참이 지난 후에서야 겨우 원상태를 회복했다.
그를 죽일 마음이 없었던 한제의 눈이 여인에게 닿았다. 여인의 두 눈에도 두려움이 어렸다.
한참 침묵하던 그녀는 저물대에서 비단으로 감싼 상자를 하나 꺼내들더니 두 손으로 그것을 떠밀었다. 한제는 둥둥 떠서 다가온 상자를 받아 든 후 살짝 두드렸다. 그러자 상자에 균열이 일면서 그 안에 들어 있던 옥패 하나가 떠올랐다. 한제를 정신을 집중하여 그 옥패를 탁본한 뒤 손을 휘둘러 상자 안에 들어 있던 옥패를 다시 여인에게 내던졌다. 그리고 말했다.
“나를 여기까지 불러들인 이유는?”
푸른 옷의 여인은 옥패를 받아들고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낮게 말했다.
“저는 주나라 표묘종 사람입니다. 제 아버지는 표묘종의 종주였지만 20년 전, 선유지(仙遺地)로 들어가셨다가 여태 돌아오지 않으셨죠. 그 땅은 구유(九幽) 황무지와 함께 주작국의 2대 험지(險地)로 꼽히는 곳으로 제 수준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허니 선배님, 부디 제 아비의 유골이라도 수습할 수 있도록 그곳에 들어가는 걸 도와주십시오.”
말을 마친 푸른 옷의 여인은 애처로운 얼굴로 아랫입술을 깨문 채 한제의 답을 기다렸다.
“시간이 없다!”
한제는 덤덤하게 말한 뒤 저물대에서 백발노인이 준 보라색 옥패를 꺼내 상대에게 건넸다.
“이 옥패는 상급 영석 2만 개의 가치가 있다. 6품 단약 제조 방법 옥패를 탁본하게 해준 값이다.”
말을 마친 그는 몸을 훌쩍 날려 긴 잔영을 남기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푸른 옷의 여인은 한제가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눈에 절망의 빛이 어려 있었다. 애초에 아버지의 유해를 수습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나, 곁에 있던 노인이 저 사내가 화신기 경지임을 알려준 순간, 그녀의 마음에는 속절없는 희망이 피어올랐다. 그 많은 값을 들여 옥패를 구입한 것은 바로 한제를 불러들이기 위해서였다.
한제에게는 정말로 시간이 없었다. 방금 손에 넣은 제조 방법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6품 단약은 귀원단(歸元丹)으로 사실 귀원단은 1성 수련국에서도 만들어낼 수 있는 단약이었다. 하지만 1성 수련국에서 만들어내는 귀원단은 1품 귀원단에 불과했다.
귀원단의 효능은 하나였다. 그것을 복용하면 단기간에 영기를 흡수하는 속도가 몇 배는 높아진다.
하지만 이 단약에도 제한은 있어서 1백 년에 딱 한 알만 먹을 수 있었고 그 제한을 넘게 복용하면 체내에 급속도로 많아진 영력은 결정화된다. 그럼 복용자는 인간 모양의 수정이 되어 영혼이 그 안에 봉인되어 버렸다. 오랜 시간 제련을 통해 인간 모양의 수정은 점점 작아지고 아주 드물게 최상급 영석에 버금가는 영석이 된다.
때문에 높은 단계의 귀원단은 사실 상고 시대 수련자들에게는 최상급 영석을 만드는 방법으로 전해졌다. 다만 그 최상급 영석이 만들어지는 확률이 아주 낮을 뿐이었다. 이런 최상급 영석은 차최상급 영석이라고 불렸다.
이 단약 제조 방법을 확인한 한제는 엄청난 절제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표정 변화를 숨길 수가 없었다. 너무나 악독한 방법이었다.
이 단약 제조 방법의 설명에 따르면 차최상급 영석은 한 줄기 핏줄을 가지고 있다. 화신기 경지에 이르러야만 원신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핏줄이었다.
저물대를 두드린 한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상급 영석들을 꺼내어 하나하나 자세히 살폈다.
“내가 가진 최상급 영석 중 하나를 제외하고 전부 핏줄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한제는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몸을 훌쩍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쉬워하다
열흘 뒤, 초나라 국경의 오래된 전송진 밖에 한제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 오래된 전송진을 사용했을 때, 한제는 착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진을 활성화시킨 그 순간 어렴풋한 한숨 소리를 들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소리는 최상급 영석에서 흘러나왔다.
한제 일행은 다시 초나라 선유지 옆의 산골짜기로 돌아왔다. 이곳은 그들이 떠났을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여비와 철암은 1백 리 밖에 멈춰서 좌선했다. 체내의 영력을 응결시켜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원영기 후기 절정에 이르기 위해서였다.
한제의 생활은 다시 안정되어갔다. 그는 매일 모완의 몸을 살폈고 모완은 6품 단약 제조 방법을 연구했다. 그 단약을 만드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약초들은 절멸되어 이를 대체할 것들을 찾아야만 했다.
죽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으나 한제 곁에서 떠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계속해서 한제의 곁에 붙어 있기 위해 모완은 단약 제조 방법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때때로 모완은 고개를 들어 자신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눈에는 행복이 차올랐지만 그 속에는 깊은 아쉬움과 미련이 섞여있었다.
모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단약 재료의 대체품을 찾는 일은 한 달 뒤까지 이어졌다. 한제는 구양자를 소환했다. 안타깝게도 운천종에 마지막으로 남은 5품 단약사 천운자는 오래 전 화신기에 이르는 데 실패하면서 숨을 거두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 사람이 동시에 연구하면서 진전이 좀 더 빨랐을지도 몰랐다.
구양자는 단약 제조에 미친 사람답게 6품 단약 제조법을 보고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는 방법이라도 되는 듯이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밤낮 없이 연구를 해가며 6품 귀원단을 만드는 데 필요한 137개 재료의 대체품을 알아냈으며, 그 약의 성분을 분리하고 배합하기까지 했다.
그가 하나의 대체 약재를 알아낼 때마다 운천종의 류비와 송청은 그것을 찾아 가져다 주었다. 만약 운천종에 없는 재료라면 높은 가격을 들여서라도 다른 나라에서 구해왔다. 그것도 불가한 경우에는 여비와 철암이 직접 다른 곳에서 그것을 채집해왔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2년 후, 6품 단약에 필요한 137개 재료 중 세 개를 제외한 모든 재료의 대체품이 마련됐다. 이 2년 동안 구양자는 거의 잠을 자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잊은 채 오로지 이 6품 단약 제조 방법에만 매달렸다.
한편 그 동안 모완의 얼굴에는 시간의 흔적만이 천천히 늘어갔다. 피부 역시 더 이상 이전처럼 희지 않았고 약간의 잿빛이 돌았다.
2년 동안 한제는 꼬박꼬박 그녀의 몸에 영력을 불어넣어 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도와 윤회의 힘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모완의 노쇠한 모습을 볼 때마다 한제의 마음은 칼로 에는 듯 아팠다.
모완의 눈에 어린 아쉬움이 한층 더 짙어졌다.
비오는 어느 날 밤, 산골짜기 밖에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렸다. 모완이 잠든 뒤 한제는 홀로 빗속에 서서 먼 산을 바라보았다. 마음을 에는 듯한 통증이 갈수록 깊어졌다.
“모완의 몸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어. 억지로 원영기에 이르려고 시도했다가 원영이 형성되기 전에 육신이 죽음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미완성된 원영도 흩어져 버려 혼백조차 구할 수 없게 되겠지.”
한제는 멍하니 먼 곳을 내다보며 길게 탄식했다. 무너지듯 자리에 앉은 그는 저물대에서 술주전자를 꺼내 한 모금 들이켠 뒤 바위에 기대어 앉았다.
이제 한제에게는 이 과일주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매번 술을 마실 때마다 한제의 머릿속에서는 어린 대우가 술을 한 동이씩 가져다주던 장면이 떠올랐다.
‘알겠다. 아저씨 수도에 와서 장사하는 건 여기서 돈 많이 벌어서 그 분과결혼하려고 그러는 거였구나?’
옛날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한제는 몇 모금 만에 주전자를 비웠다. 그리고 굳은 의지가 어린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멀지 않은 구양자의 연구실에서 흥분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뒤이어 구양자가 황급히 방 밖으로 나오더니 빗속의 한제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얼른 이쪽으로 달려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종주님! 마지막 세 재료의 대체품을 찾았습니다!”